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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25. 2019

Again Porto

13. 포르투 대성당




디노와 이네스 부부는 슈퍼 호스트입니다.

plus 에어 비앤비로 선정된 그들의 집은 거의 6개월 전부터 예약이 가득 찰 정도로 인기가 많더군요.

리스보아 산타 아폴로냐역에서 기차를 타고 포르투 캄파냐 역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포르투 숙소와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완전히 다른 동네였지요.


숙소 안내 사진에 파티오(스페인어로 위쪽이 트인 건물 내의 뜰)가 보였습니다.

추측대로 집은 여러 세대가 사는 옛날 식 아파트의 1층이었습니다.

디노와 이네스는 우리가 도착할 때, 집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네스는 학교에 미팅이 있어 혼자 왔다며 디노가 미안해합니다.

50대의 디노는 키가 작은 보통 체격의 남자로 뭐랄까 모범생 같은 인상이었지요.

뿔테 안경에 셔츠의 맨 위 단추까지 꼭꼭 채 스타일로 봐서요.

그는 집안 곳곳을 소개하며 인덕션이나 난방기, 세탁기, 식기 세척기 사용 방법은 물론이요.

싱크대를 하나하나 다 열어 보이며 어디에 무엇이 들어있는가를 설명했습니다.

말도 빠르지 않습니다. 조곤조곤 상대방이 이해했는지 체크를 하면서요.

그러니 선생님 눈을 피해서 조는 학생처럼 딴전을 피울 수도 없습니다.

물론 미소로 리액션해준 우리의 태도도 모범생이었지요.

그야말로 꼼꼼 대마왕 같습니다.

포르투 대학 출신인 그는 아마도 수학자가 아닐까 추측할 정도였지요.

사용 방법을 안다고 말을 해도 그의 설명은 계속되었어요.

마치 그러지 않고는 못 견디는 성격일지도 모릅니다.

17일 전 포르투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호스트는 저리 가라 할 정도였지요.

이어서 지도를 펴고는 포르투의 관광지며 음식점, 카페 등을 소개하기 시작합니다.

아~ 슬슬 멀미가 납니다.

짐을 풀고 좀 쉬고 싶은데 말이죠.







식탁에는 부부가 준비한 와인, 커다란 치즈 한 덩어리, 이네스가 손수 오븐에 구웠다는 커다란 머핀 케이크까지 놓여있었지요.

달달한 케이크는 물론이요, 치즈가 얼마나 부드럽고 맛있는지 식사 때마다 잘라먹었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건네니 고마워하며 이네스에게 전하겠다고 하곤 집을 떠났습니다.

물론 언제든 필요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지요.

그리곤 부부가 선물을 들고 찍은 사진을 보냈더군요.

뭐든 빈틈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게 증명되었습니다.




 


다음 날,

포르투 대성당에 가기로 했어요.

수많은 성당들이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지만 흔히 포르투 대성당이라 부르는 그곳은 그냥 카테드랄이라고 부릅니다.

지난밤에 내린 비로 돌길이 반들반들 제법 미끄럽습니다.

포르투 시청사가 있는 리베르다지 광장을 지나고 상 벤투 역을 지나갑니다.

그 모든 곳이 익숙하지요.

잡지와 음료수를 파는 구멍가게, 엽서와 그림을 파는 상점, 예쁜 전구들을 파는 상점도 지나갑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물건들에 자꾸 눈길이 향합니다.

어김없이 셔터를 누르지요.

그러니 거리가 가까운 곳에 가는데도 시간이 꽤 걸립니다.

여행은 목적하는 곳만 보는 게 아니니까요.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사물을 보고 기분이 좋으면 그것만으로도 힐링이니까요.









정면 중앙에 보이는 건물이 포르투 시청사




오르막길을 오르니 어두침침한 외관의 고딕 성당이 보입니다.

한 옆에 노숙자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을 잡니다.

흡사 그 모습이 미라를 연상시켜 섬뜩했지요.

포르투갈에는 유독 빈 집도 많고 홈리스도, 구걸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경제가 어렵다는 뜻이겠지요. 마음이 짠합니다.











성당 광장에는 페로우리뇨 라고 부르는 돌기둥이 우뚝 서있습니다.

죄인이나 노예를 묶어놓고 매질하던 기둥이라고 하는군요.

성당 내부로 들어갔습니다.

은세공품으로 장식된 중앙 제단이 화려하지만 품격 있어 보입니다.

반대편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장미 창이 있어요.

파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장미 창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별 다른 꾸밈없이 소박한지라 눈길을 끌었습니다.



페로우리뇨








성당은 무료지만 회랑으로 나가려면 티켓을 사야 합니다.

빼꼼히 열린 문으로 보이는 회랑이 호기심을 끌었지요.

나는 돌기둥 길게 늘어선 회랑을 좋아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곳에 들어가지 않고 돌아왔다면 아쉬움이 컸을 거라는 말이지요.

사각형의 회랑은 회색빛 돌기둥이 늘어서 있고 사방의 벽면마다 오리지널 컬러인 푸른색 아줄레주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아줄레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성모 마리아와 오비디우스 시를 내용으로 한 메타모르 포세스라고 합니다.












회랑의 한쪽에 작은 채플들이 있습니다.

두 곳의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한 곳은 주교들이 회의를 하던 장소 같은데, 다른 한 곳의 천장화가 압권입니다.

수 백 년 전에 어떻게 그런 색감을 나타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지요.

오랜 시간이 지나 바래고 희미해졌지만 그저 감탄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치 파스텔을 적절히 문질러서 부드러운 질감을 나타낸 그림 같았습니다.

천연 섬유인 견이나 양모는 합성섬유가 갖지 못하는 색감을 나타냅니다.

그 채플의 천장의 색감이 광택이 없어 더욱 우아한 느낌을 주는 도비 실크를 연상시켰습니다.













계단을 오르니 작은 박물관이 있습니다.

존 왕과 필리파 공주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며 해양왕 엔리케가 세례를 받은 곳인 만큼 오래된 유물들이 많더군요.

왕관, 오래된 책, 중요한 의식에 입었을법한 금박 장식이 화려한 망토 등의 보관 상태가 좋았습니다.

옷 하나 만드는데 몇 달은 걸렸겠다 싶습니다.

그야말로 장인의 손길이 세세히 남아있는 작품들이었지요.

 












카테드랄에서 뒷골목으로 내려가면 히베이라입니다.

빨래들이 널려있는 좁은 골목들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평범한 동네였어요.

간이음식점에서 커피와 하몽이 얹어진 토스트를 먹었습니다.

하몽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음식인데 스페인과 가까운 포르투갈도 많이 먹는 듯합니다.

하몽은 돼지 뒷다리의 넓적다리 부분을 통째로 잘라 소금에 절여 건조·숙성시켜 만든 생 햄으로 호불호가 있지요.

생 고기를 소금에 절여 건조한 것이니 만큼 매우 짜고 비릿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호불호가 있습니다.

음식점 안쪽에 걸린 돼지 뒷다리가 리얼하게 걸려 있더군요.

아마도 그곳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듯해요.

수더분한 주인아줌마의 미소가 여행자의 피로를 알아주는 것 같았습니다.

값이 싸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요? 커피맛이 어디든 훌륭합니다.

단 돈 천 원이면 어디서든 마실 수 있는 커피가 스타벅스보다 낫게 느껴졌으니까요.

 

 












오르막도 힘들지만 내리막길도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울퉁불퉁한 돌길을 걷는 일이라 쉽게 허기가 지고 피곤합니다.

그나마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온이니 다행이지요.

주택가 골목을 내려가니 또 다른 길이 나왔습니다.


점심 식사할 곳을 찾아야 할 시간입니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구글맵을 사용하지요.

또는 트립 어드바이저를 통해 근처의 음식점 중 평점이 높은 곳을 찾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런 방법으로 음식점을 찾아가면 줄을 서거나, 아니면 한국인 듯 착각이 들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는 경우를 경험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밖에 세워둔 메뉴에서 음식 종류와 가격을 살펴보고 들어가는 방법을 씁니다.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서넛이 메뉴를 살펴보고 있는 음식점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점심 특선처럼 세트 메뉴를 팔고 있는 음식점이었어요.

음료와 수프와 메인 메뉴를 합한 가격이 꽤 저렴했습니다.

세투발에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으로 그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지요.

안을 들여다보니 테이블이 대 여섯밖에 안되는데 빈자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허름한 집이 로컬 맛집이고 단골손님만 오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그건 거의 확신에 찬 단정이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지 하고 일단 주인에게 3명이라고 말했습니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사진을 찍으며 기다렸지요.

좁은 골목길의 집들은 온통 낡은 문과 창과 벽이 가득했으니까요.













몇 번이고 다른 곳에 갈까? 하다가도

고지가 바로 요긴데 하며 기다렸지요.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벽 쪽으로 들어가 앉은 사람은 거의 감금 수준으로 테이블 간격이 좁습니다.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왔습니다.

역시나 수프가 어마어마하게 짜더군요.

메인 음식은 뭐랄까, 커민 비슷한 인도 향신료 맛이 강했습니다.

비위에 맞지 않아서요.

양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한 접시로 셋이 먹어도 될 만큼이었지요.

수프도 한 두 스푼 밖에 먹지 않고 남겨 놓은 걸 보고는 서빙하는 남자가 말합니다.

"이건 세트 메뉴에 포함된 거라 따로 돈 내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어서 드세요."

"네, 알고 있어요. 감사해요."

정말 대략 난감입니다.

포크질 한 번 했을 뿐인데 도무지 손이 가질 않습니다.

그 많은 음식을 어떻게 남기고 일어나야 할지 큰 일입니다.

애맨 빵만 뜯어먹고 감자만 집어먹다가 일어나야 했습니다.

외국인이니 입에 안 맞으려니 이해하겠지 하면서도 음식을 만든 사람에게 많이 미안하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주로 여행자를 상대하는 음식점과 현지인들의 단골 음식점은 그 맛이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요.




문제의 레스토랑(4개 나라의 깃발에 홀린 듯)



골목을 계속 내려가니 전에 가봤던 큐빅 광장이 나왔습니다.

큐빅 광장 주변 역시 많은 음식점과 상점이 있습니다.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 그려온 그림을 빈 벽에 거는 사람, 기타를 치며 버스킹 하는 사람

저마다 여행자를 겨냥한 사람들이지요.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점과 에스닉한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이 특히 많더군요.

여행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맘에 드는 물건을 맘껏 살 수 없음입니다.

여행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값이 비싼 것은 포기가 빠르니 상관없지만 저렴해도 살 수 없는 건 무게와 부피 때문이지요.

앤티크 서점이 몇 군데 보였지요.

뜻을 몰라 읽지는 못한다 해도 페수아 시집 한 권 사면 좋을 텐데 하며 기웃거리기만 했을 뿐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줄레주가 프린트된 컵이나 접시, 액자는 깨질 위험이 있고, 치즈 플레이트나 패브릭 제품은 무게 때문이지요.

몇 번이고 들었다 놨다 망설이다 제자리에 놓고 나오기 일쑤였습니다.

돌아가서 분명히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요.















걷다 보니 어느새 상 벤투 역입니다.

거의 맛만 보고 끝내버린 점심 식사인지라 허기가 몰려왔습니다.

노천카페에서 커피와 트라베세이루로 잠시 원기를 회복했지요.


거리는 여행자들로 활기차 보입니다.

허름한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목발을 짚고 불편한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 앞에 가서 멈추었습니다.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뭔가를 뿌립니다.

순식간에 비둘기들이 떼를 지어 날아들었지요.

노인의 팔에도 옷깃에도 가방에도 내려앉았습니다.

노인은 새들이 먹을 곡식을 뿌리고 있요.

아마도 그 노인은 하루에 한 번 씩 그곳에서 새들에게 모이를 나눠주는 게 낙인 듯합니다.

그의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가 떠나질 않더군요.

그렇게 한참을 노인과 비둘기들이 가족처럼 어울려 놀더군요.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챙겨주는 캣맘처럼 버드 파파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주석으로 만든 신문 배달부를 지나고 이발소를 지나 집으로 향하는데 눈길을 사로잡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포르투의 아르디나(ardinas)라고 불리는 신문 배달원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된 동상



길 복판에서 구두를 닦아주는 남자와 한쪽 구두를 내밀고 앉아있는 두 남자였어요.

그들을 본 순간 나도 몰래 가슴 한쪽이 찡합니다.

질 좋은 가죽점퍼를 입은 남자의 얼굴은 혈색이 좋아 보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검은색 가죽점퍼를 입었는데 한쪽은 광이 나고 한쪽은 회색빛입니다.  

구두를 닦아주는 남자의 등이 낙타처럼 둥글게 휘었더군요.

그 순간 셔터를 눌러야 할지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소심하게 셔터를 눌렀습니다.

머리칼과 흰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의자에 앉은 남자와 나이 차가 별로 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일 의자에 앉은 남자 나이가 젊은이였다면 내 마음이 덜 속상했을 것 같습니다.

구두닦이라는 직업이 하찮아 보서가 아닙니다.

그냥 그 광경을 보는데 맘 한 구석이 찡했습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극장 앞에 목련나무가 있네요.

유럽에서 목련을 본 건 처음입니다.

꽃봉오리가 터질락 말락 하는 게 이틀 내로 만개할 것 같아 보였어요.

참으로 많은 꽃을 보았던 포르투갈입니다.

물론 1월에도 30도를 밑도는 나라들은 빼고요.


산타클로스는 선물을 들고 굴뚝으로 들어온다고 알려졌지요.

그런데 이곳 포르투갈에는 발코니에 매달린 산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걸어둔 걸 아직 떼지 않아서겠지요.

아파트에는 굴뚝이 없으니 어린아이들이 발코니에 산타 인형을 걸어두고 산타 할아버지가 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닐까 합니다.


유리창에 비친 목련 나무
발코니에 매달린 산타
발코니에 매달린 산타 2




집 근처 슈퍼마켓 핑구 도스에 들러 쌀, 감자, 새우, 밀가루, 배추, 올리브기름, 샐러드용 채소, 과일 등을 샀습니다.

점심에 버린 입맛을 되찾기 위해 한식이 필요했으니까요.

냄비밥에 고추장 넣은 감자찌개와 새우 버터구이, 그리고 넙적한 배추전을 만들어 한 상 차렸습니다.

발사믹 식초와 짭짤한 맛이 나는 드레싱을 섞어 양념장을 대신했는데 그 맛이 훌륭했지요.

역시 집밥이 최고입니다.

포르투의 하루가 또 저물어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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