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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Apr 03. 2019

New York의 고향, York

잉글랜드 요크




하워스(Haworth)에서 키슬리(Keighley), 키슬리에서 리즈(Leeds)를 거쳐 요크,     

기차를 타는 시간은 1시간 10분 남짓이지만 약 4시간이 걸렸습니다.     

요크에서 머물 집 앞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어요.     

뜰에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나팔꽃을 닮은 꽃들이 앙증맞게 피어 있습니다.     

집안에 여행 가방을 두고 나와 여장을 풀기도 전에 그곳에 모여 앉았지요.     

역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멀진 않았지만 다리를 건너느라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힘겨웠던 까닭입니다.      


노부부가 슬로비디오처럼 걸어갑니다.

뛰는 모습을 보니 게으름 한 번 피우지 않았을 법하게 가볍게 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조깅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스펀지 위에서 튀는 공처럼 뜀박질을 하는 그들이 그저 부럽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엄마, 자전거를 탄 젊은이들이 우리가 앉아있는 집 앞을 심심찮게 지나갔습니다.     

따뜻한 밀크티를 마시며 우즈 강을 바라보는 모양새가 마치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사람들처럼 편안합니다.

어제도 그랬다는 듯 그곳에서 맞는 저녁나절이 낯설지 않게 지나갔습니다.  

그날 오후의 너그러웠던 햇살과 서늘한 바람이 그립습니다.     








요크는 노스 요크셔 (North Yorkshire) 주에 있는 도시입니다.

영국의 요크와 미국의 뉴욕(New York)은 어떤 관련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찾아보았지요.     

1524년 이탈리아의 베라치노가 대서양을 항해하던 중 처음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후 영국의 허드슨이 맨해튼을 탐험했지만 맨 처음 이주한 사람은 네덜란드인이었습니다.

얼마 후 자리를 잡은 그들은 그곳의 원주민인 인디언으로부터 맨해튼 섬을 샀습니다.

그리고 뉴 암스테르담이라는 이름을 붙였지요.

그러나 1664년 영국 함대가 그곳을 강제로 점령했습니다.

그 후 영국의 요크 공 이름을 따서 ‘새로운 요크’, 즉 뉴욕(New York)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더군요.

요크셔테리어 역시 요크셔에서 길러지던 개라고 합니다.

요크셔의 직물 공장에서 주로 쥐를 잡기 위해 길러졌던 품종이더군요.      



New York

          

요크에서 첫 밤을 보낸 다음 날, 집을 나섭니다.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발길 닿는 대로 걷습니다.

예쁜 상점이 있으면 들어가서 구경하고 출출하면 달콤한 케이크이나 부드러운 빵과 커피를 마시면 되니까요. 

마침 그날은 일요일이었어요.

마라톤 경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중 특이한 차림들이 간간히 보였습니다. 

여자 아기들의 모자인 레이스로 만든 보닛(머리 전체를 싸듯이 가리고 얼굴과 이마만 드러낸 모자)을 쓰고 기저귀를 입은 아저씨,

벌룬처럼 만든 옷을 입어 뚱보처럼 보이는 남자 등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중 우리들을 한 바탕 웃게 한 사람은 바로 J.

한쪽으로 넘겨 빗은 얌전한 헤어, 연한 카키색 린넨 재킷에 감색 롱스커트, 한쪽 팔에는 카멜색 가죽 가방이 조신하게 들려 있습니다.     

J가 장착한 의상과 백은 이번 여행 중 앤티크 샵에서 산 것들입니다.     

누가 봐도 여행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영락없이 교회 가는 집사님 룩이었지요.     

여행자의 옷이라고 별 다를 이유는 없습니다만 현지인으로 빙의한 친구 덕에 유쾌하게 웃고 또 웃을 수 있었습니다.           








    

요크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섕블스(Shambles)라는 골목이었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그림 같은 골목길로 뽑혔다는 길,

14세기부터 때 지어진 목재 건물이 있다는 섕블스는 티 룸, 앤틱 상점, 기념품 상점 등 옛 정취가 남아 있다니, 얼마나 예쁠까 상상만 해도 즐거웠지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은 맞습니다.

사랑스럽고 예쁜 골목들을 너무 많이 봐온 이유도 있을 겁니다.

섕블스는 생각보다 규모가 너무 작은 정말 조그만 골목일 뿐이었어요.

해리포터 기념품 샵은 그곳에도 어김없이 성황이더군요.

부드럽고 고소한 빵 몇 개를 샀습니다.                                   

Shambles는 도살장이나 정육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살벌한 단어가 왜 이 골목의 이름이 되었을까요?

알고 보니 그 골목은 예전에 도축한 고기들을 걸어두고 팔던 정육 거리였더군요.

건물의 위층으로 갈수록 아래층보다 처마가 길게 튀어나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햇빛이 조금이나마 덜 들게 해서 고기가 빨리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한 선인들의 지혜였습니다.                         






한 상점에 눈길을 잡아끄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When it rains, Look for the rainbow.

When it darks, Look for the stars.     

여행을 하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좋은 문구들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거리곤 하지요.  

        

섕블스 거리 옆에 뉴게이트 마켓이 있습니다.

천막을 쳐놓은 재래시장으로 옷이나 가방, 과일, 잼 등을 늘어놓고 장사를 하더군요.

공항에서는 여태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캐리어를 찾지 못하고 여행을 이어가는 작은 J는 베이지 컬러의 꽃무늬 모자를 샀습니다.

작은 J?  궁금하시죠?

이번 여행 멤버 중 두 명의 이름이 같아요.

그래서 친구는 J, 친구 동생은 작은 J라고 부르는 겁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야 느껴지는 고상함은 일부러 만들 수 없지요.

블랙 앤 화이트의 독특한 영국식 전통건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Gert  & Henry's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데 요크셔푸딩 전문 레스토랑이더군요.

그 집처럼 고상하게 늙으면 좋겠습니다.          






요크에는 대성당이 있습니다. 

약 250년이 걸려 완성된 영국 최대의 고딕 건축입니다. 

요크셔의 하트와 장미전쟁의 종결을 기념해서 만든 장미 창이 유명합니다. 

동쪽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그 높이가 약 23m, 폭이 약 9m나 됩니다. 

유럽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든 성당 한 두 곳은 들르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대성당은 카테드랄(Cathedral)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왜 요크는 민스터(Minster)라고 부를까요?

런던에 있는 웨스트 민스터도 마찬가지이죠.     

민스터(Minster)는 교구의 중심 교회를 의미하는 앵글리언 말. 

대성당(Cathedral)은 교회 중에서 주 교좌(Cathedra)가 있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민스터가 대성당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교구의 중심 교회로서 교구를 관할하고 있지만 주교 좌가 없을 경우에도 민스터라고 부를 수 있으며, 반대로 주교 좌가 있는 대성당이지만 가끔 교구의 중심 교회가 아닌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요크의 민스터는 주교 좌(Cathedra)를 갖고 있기 때문에 카테드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요크 민스터라고 자주 부르기 때문에 그냥 쓸 뿐이라고 하네요.        





       


요크(York)라는 지명이 'Jorvik'이라는 바이킹 말에서 왔다고 합니다.

로마 시대부터 중세, 19세기 산업 혁명까지 영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그러므로 700년 전 도시를 감싸고 있던 성벽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성벽의 일부 구간을 걸어봤지요.

최초로 이 도시에 성벽을 쌓은 것은 로마인입니다.

하지만 남아있는 성벽의 대부분은 1327년에서 1377년에 걸쳐 노르만 인에 의해서 쌓아진 것이라 합니다.

약 5km의 성벽을 걸으며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현대식 건축물들이 보이는 터라 색다른 아름다움을 찾기 어려웠지요.

성벽 투어는 뭐니 뭐니 해도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가 최고인 듯합니다.

붉은 감을 널어놓은 듯한 지붕들과 햇빛에 반짝이는 아드리아해의 케미가 더할 수 없었지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오래도록 잊히질 않습니다.              



 


영국은 애프터 눈 티가 유명합니다.

Bettys는 1919년에 설립된 찻집으로 요크셔 티를 비롯한 다양한 차와 비스킷 등을 팔지요.

티를 즐기려는 대기자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요.

우리는 글래스고에서 애프터 눈티를 예약해두었기에 패스,

컵 모으는 취미가 있는 작은 J가 컵 하나를 구입하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군데군데 버스커들이 공연을 합니다.     

열 살 남짓한 소년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은발의 할머니들이 소녀처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소년의 노래를 듣습니다.











피아노의 페달을 밟는 피아니스트의 양말에 유니언 잭이 그려져 있습니다.

내 시선이 왜 그 양말로 향하는 걸까요?

미국의 성조기나 유니언 잭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물건에든 프린트된 걸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태극기를 저들처럼 양말에 프린트하면 왠지 야단맞을 것 같습니다.                 

영국 국기는 유니언 잭(Union Jack)이라고 불리는 연합기를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이 연합기는 United Kingdom 이전의 잉글랜드(England), 스코틀랜드(Scotland), 북 아일랜드 

3국의 국기를 조합해서 만든 것이더군요. 

아래 사진을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유니언 잭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걸어 다니다보면 우체국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세계 어디든 우체국이 있으니까요.

우체국을 보면 왜 그리 마음이 푸근해지는지요.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집니다.

그리움, 기다림, 그리고 반가운 소식, 새로 발행된 우표, 우체부 아저씨의 자전거와 커다란 가죽 백,

그 모든 것이 고소한 추억이 되어 다가옵니다.

앞으로는 그림 엽서 한 장씩 써야겠습니다.    

그 엽서의 수신인이 내가 되어도 좋을 것 같아요.  


우체국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읊조리는 시가 있습니다.

이수익의 우울한 샹송입니다.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 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 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지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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