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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Mar 11. 2019

책은 죽지 않는다.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롱 룸. 작가 박물관.




"J도 캐리어를 못 찾았다네"

M이 말했다.


이번 여행은 1차 4명 출발.

5일 후 J 더블린에서 합류,

7일 후 T명 런던에서 합류,

그렇게 총 여섯 명이 런던에서 만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돌아보는 일정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두 명은 각각 비행기를 타고 따로 와서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더블린에 도착한 J도 캐리어를 못 받았단다는 얘기다.

수하물 분실 사고는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나흘 전 우리 넷 중 셋의 수화물이 분실되었었다.

일정이 다른 일행의 수하물 역시 분실되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상하거나 좋지 않은 일이 계속되고 있다.

필시 좋은 징조가 아니다.

이미 경험이 있던 터라 어찌어찌 신고하고 숙소로 오라고 했다.

배낭 하나만 달랑 멘 J가 도착했다.

속내와 달리 그녀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도 캐리어가 분실되었는데 나중에 찾았어. 그러니 너무 걱정 말고 기다려보자.'

라고 위로의 말을 전했지만 내심 걱정되긴 마찬가지이다.

골웨이에서 돌아와 더블린에서 2박을 한 후  런던으로 건너가 요크와 코츠월즈를 거쳐 하워스, 글래스고, 에든버러까지 갈 예정이다.

그때마다 숙소가 계속 바뀔 수밖에 없고 공항 홈피 분실물 센터에 새 주소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블린은 뭐니 뭐니 해도 트리니티 칼리지가 중심이다.

트리니티는 유럽을 대표하는 명문 대학 중 하나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건립되었다.

그곳엔 9세기에 만들어진 '켈스의 서(Book of Kells)'와 롱 룸(long room)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도서관이 있다.

해리 포터가 촬영된 곳이라는데 내 관심은 그것과는 무관하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인터넷 예약을 했다.

비가 내렸다.

트리니티 칼리지는 더블린의 시내 한 복판에 왕처럼 앉아있다.

1592년,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선 임진왜란이 발발해 선조가 개성으로 파천했던 해에 개교한 학교이다.

아름답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게 역사다.

도서관은 아직 오픈 전이다.

시간 여유도 있고 비도 내리니 따뜻한 커피가 필요했다.

학생 회관쯤 여겨지는 카페를 찾아갔다.

등받이 없는 의자가 군데군데 놓여있다.

등을 곧추 세워야 하는 게 젊음이구나 싶었다.





'켈스의 서(Book of Kells)'를 보려고 들어가려는데 인상 깊은 문구가 쓰여있었다.


 "Turning Darkness into Light"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방'


저토록 멋지고 아름다운 글 한 줄 쓸 수 있다면...

잠시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켈스의 서는 라틴어로 쓰여있다.

색채가 놀라우리만큼 아름답다.

천 년을 건너온 책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활자가 그림 같다.

그림문자, 마치 요즘 유행하는 켈리그라피의 원조가 아닐까 생각했다.

켈리그라피는 그리스어 'kalligraphia'에서 유래했다.

아름다운 서체라는 뜻으로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쓴 감성적인 글씨이다.

'켈스의 서'는 예수의 가르침과 생애를 라틴어로 기록한 신약성서로 다양한 서문과 표가 실려 있다.  

아일랜드의 국보급 보물이라고 한다.

화려한 금붙이로 만든 왕관보다 수천 배 아름다웠다.

책을 둘러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침묵했다.



'켈스의 서'는 인슐라 아트(Insular Art)의 기법 가운데서도 뛰어난 기독교적 삽화와 소용돌이 장식이 적용돼있다. 사람, 동물은 물론 신화에 나오는 동물들이 켈트 매듭과 활기찬 색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장식적 요소들이 기독교적 상징에 스며들어 삽화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필체 등을 고려했을 때 적어도 3명 이상이 작업한 것으로 여겨진다.

글씨는 검은색, 빨간색, 보라색, 노란색의 잉크로 작성됐는데, 검은색은 철분 찰흙 잉크(Iron Gall Ink)를 사용했고, 다른 색들은 먼 곳에서 수입한 다양한 물질에서 얻은 물감을 사용했다.  


철분 찰흙 잉크는 황산철(FeSO4)과 탄닌산을 섞어 만든 것으로 5세기 무렵부터 사용되기 시작해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황산철(FeSO4)과 탄닌산이 작용해 만든 탄닌산 철의 용해성 때문에 잉크가 종이에 침투하면 지우기가 어렵게 된다.  


히버노-색슨(Hiberno-Saxon) 예술이라고도 하는 인슐라 아트(Insular Art)는 로마시대 이후에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나타난 예술 양식으로 대륙과는 다른 형식으로 발전해갔다.

특히 켈트 기독교 수도원과 금속 세공에서 비롯됐는데 서기 600년 전후에 시작됐으며, 특히 인터레이스 장식이 독특하다.    (양기화의 영문학 기행에서 발췌)



켈스의 서는 촬영 금지,

아래 사진은 구글에서 다운로드했음.



"Turning Darkness into Light"






롱 룸은 아름다운 나무 방이다.

아치형 천장을 중심으로 양 쪽 서가에는 20만 권의 책들이 빼곡하다.

바닥과 천장은 물론이요, 도서관 내부는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책 또한 나무다.

도서관이 오래된 숲 같다.

도서관의 컬러가 전체적으로 짙은 갈색으로 통일되어 있어 안정감이 있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특유의 종이 냄새와 나무 향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그곳에는 내가 읽어보았을 책, 읽을 수 있는 책이 한 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머무는 잠깐 동안 내가 기품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양쪽 2층의 발코니에도 책들이 빼곡하다.

높은 곳의 책을 빼기 위한 사다리 조차 아름답다.

유명한 철학자와 작가들의 대리석 흉상이 64m나 되는 긴 도서관을 도열하고 있다.

군데군데 놓인 유리 상자 속에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인 사무엘 베케트나 오스카 와일드 들의 육필 원고와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요즘은 책 보다 전자 활자를 많이 본다.

신문 대신 컴퓨터나 스마트 폰으로 뉴스를 읽고 정보를 얻는다.

궁금한 것은 책 대신 검색을 택한다.

무거운 책을 갖고 다니며 읽지 않아도 된다.

E-book으로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거나 웹툰을 즐기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종이에 찍힌 활자가 더 좋다.

컴퓨터로 글을 쓰지만 종이에 프린트를 해서 활자로 확인해야 속이 시원하다.


천 년을 넘어온 책은 보석보다 더 값지다.

책은 죽지 않는다.    

내 생각이다.


롱 룸에는 두 대의 중세 하프가 있다.

그중 하나는 아일랜드의 왕 브라이언 보루의 소유였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하프의 사이즈보다 훨씬 작았다.

오랜 세월을 건너온 악기답게 온화함이 느껴졌다.

아일랜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악기를 국가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그 악기가 바로 하프다.

 

박물관이나 궁전, 미술관 등의 마지막 방은 만국 공통, 기프트 샵이다.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지나친 상술이 아닌가 싶어 씁쓸할 때도 있다.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하프
Ireland 국가 상징



아일랜드와 영국은  비가 잦은 곳이다.

2003년 여름, 유럽은 이상 고온이었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가는 곳마다 38도를 웃돌았다.

그런데 마지막 여행지였던 런던에 도착하니 17도,

춥다 소리가 나올 정도여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비가 내리면 서늘 정도가 아니라 싸늘하니 야상 같은 두툼한 겉옷을 챙기라고 친구들에게 귀띔했다.

하지만 추위를 잘 타지 않으니까..., 그래도 여름인데 춥기야 하겠어?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지 따뜻한 옷가지를 제대로 챙겨 오지 않은 모양이다.


도서관을 나오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아~~ 추워'

한국은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시달린다는 소식이 연일 날아들고 있었다.

춥다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쇼핑을 했다.

J는  발목이 시리단다.

양모 산업이 발달한 아일랜드니 만큼 양털로 만든 제품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양모 양말을 구입했다.

무려 만 원이 넘는 고가였지만 시린 발목따뜻해서 다고 헤헤거린다.

방울이 달린 빵모자도 샀다.

샌들과 운동화만 챙겨 온 D는 앵클부츠보다 발목이 긴 워커를 장만했다.

캐나다의 밴프와 제스퍼는 7월에도 아침에는 3~4도로 춥다.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비가 내리면 오싹오싹 한기를 느끼게 되는 곳이 아일랜드와 영국이다.



더블린에는 매월 마지막 주말에 한  벼룩시장이 열린다.

우리 일정에 마침 그 날이 끼어있었고 당연히 그곳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무리 둘러봐도 상인도 물건도 구경꾼은 물론이요, 벼룩 한 마리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근처에 Teeling Whiskey Distillery (틸링 위스키 양조장)가 있었다.

틸링이라는 위스키는 처음 보는 브랜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임슨과 더불어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위스키였다.

틸링 위스키 증류소는 더블린에서 처음 생긴 증류소로 전통적인 증류 방식을 이용하여 아이리쉬 위스키를 만들고 있으며 125년 이나 된 곳이다.


그곳 사무실에 들어가 물어보니 벼룩시장은 지난달부터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 더 이상 그곳에서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왜 이리 매번 엇나가는지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양조장 한쪽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와 케이크로 씁쓸한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며칠 후, 슈퍼 마켓에서 틸링이 보여 한 병 구입했다.

알코올 도수 47도, 40도인 일반 위스키보다 훨씬 높다.

기분 좋을 정도로 아주 미세하고 은은한 과일 향이 났다.

일반적인 위스키의 맛과 향과는 차이가 있다.

독한데 부드럽다고 하다는 표현이 맞는 말일까?

첫 모금에 그만 틸링에 매혹되어 버렸다.

귀국하던 날, 런던 공항 면세점에서 틸링 판매점을 찾아가고 말았다.

그날의 벼룩시장에서 건진 것은 위스키 틸링이었다.




Teeling Whiskey Distillery Cafe




작가 박물관으로 향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조지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케트, 세이머스 히니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의 작가들이다.

적은 수가 아니다.

1901년부터 2018년까지 110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국가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수를 알아보니,

프랑스 15명, 미국 12명, 영국 10명, 독일 8명, 스웨덴 8명, 스페인 6명, 이탈리아 6명, 폴란드 4명, 아일랜드 4명으로 유럽이 지배적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나단 스위프트,

극작가이자 정치가였던 리처드 셰리든,

피그말리온을 쓴 조지 버나드 쇼,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쓴 오스카 와일드,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율리시즈의 제임스 조이스,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무엘 베케트 등이 아일랜드 출신이다.

 

그곳에는 작가들이 남긴 대표작의 초판본을 비롯해 타자기, 만년필 등의 개인 소장품, 육필 원고, 초상화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제임스 조이스가 사용하던 피아노였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을 살펴보니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의 위용과 가치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작가박물관 James Joyce 피아노
더블린 시내의 제임스 조이스 동상


고등학교 다닐 때 한 번쯤은 빠져들었던 이니스프리,

예이츠가 어릴 때 놀던 기억을 시로 옮겨 쓴 것이라고 한다.

실상 이니스프리를 가면 특별히 볼거리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가서 보면 실망스러워 시에 대한 환상을 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정에 넣지 않았다.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나 이제 일어나 가련다 이니스프리로,
그곳에 흙과 욋가지 엮어
작은 오두막집 하나 짓고,
아홉이랑 콩밭 갈고 꿀벌 치면서,
꿀벌 소리 요란한 골짜기에 홀로 살리라.

그러면 다소간의 평화를 누리겠지,
평화가 아침의 장막으로부터
귀뚜라미 울어대는 곳까지
살포시 방울져 내릴 테니까.
그곳의 한낮은 자줏빛 광채,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 짓 소리 그득하고,
밤에는 온통 희미한 빛이어라.

나 이제 일어나 가련다,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찰싹이는
물결소리 들리는 곳으로.
지금도 한길가나 포도 위에 서 있노라면
내 마음 깊은 곳에
그 소리 들리나니.              







그래프턴 거리를 걷는데 요란한 음악 소리와 함께 독특한 차량이 지나간다.

모양은 배인데 작은 버스 크기의 자동차였다.

 Viking splash tours라고 쓰여있는 걸 보니 투어 차량이다.

사람들은 도깨비 뿔 모양의 바이킹 모자를 쓰고 있는데 모두들 흥분되고 즐거운 표정이다.

on land & water라고 써있는 걸 보니 수륙 양용, 그러니까 자동차이면서 배도 되는 자동차 배였다.

몇몇 사람들이 어깨에 비닐을 두르고 있는 걸 보니 물로 들어갈 모양이다.

그들이 어떻게 환호할지 상상이 되었다.









얼굴엔 똑같은 마스크를 쓰고 열심히 페달을 밟는 차가 지나간다.

더블린 페달 투어라고 쓰여있다.

거기 탄 사람들이 페달을 밟아서 움직이는 무동력 자동차? 였다.

맨 앞사람이 핸들로 방향을 잡고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페달을 밟아서 움직이는 방식이다.

대부분 젊은이들인 그들 역시 환호와 함께 춤을 추며 열심히 발을 움직였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보았던 똑같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뭔가를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그들의 손에 들린 태블릿에는 죽은 동물들의 사진들이 보이고 있었다.

동물 학대 반대 내지 채식주의자들이 벌이는 시위였다.

내겐 그 모든 것이 처음이라 신기하지만 그들에겐 일상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신기한 것들이 많을 것이다.

여행은 그렇게 경험하지 못한 것을 보고 듣고 먹고 느끼는 것이다.







맥주의 공정을 엿보고 맛볼 수 있는 기네스 팩토리는 두둑한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

시간 여유도 많지 않고 입장료도 꽤 비싸서 가지 않기로 했다.

나는 맥주를 거의 마시지 않는다.

맥주를 마셔야만 할 때가 있다.

그때 선택하는 게 기네스다.

초콜릿 빛깔에 거품이 넘실대는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면 액체라기보다 아주 미세한 크림처럼 부드럽다.

기네스 맥주가 갖고 있는 그 특유의 밀도가 맘에 든다.

더블린에는 1000개가 넘는 펍들이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아니라 먹고 마시고 노래하는 도시가 아닌가 싶다.

아일랜드의 펍은 대낮부터 영업을 한다.

가장 대표적인 펍은 템플 바(Temple Bar)인데 템플 바는 더블린의 어떤 구역 이름이기도 했다.

그래프턴 거리에는 유난히 버스커들이 많다.

영화 원스를 그곳에서 촬영한 이유도 그런 이유일지 모른다.

아이리쉬들은 책과 술, 음악을 좋아한다.





영화 once 중 'If you want me'
더블린의 대표적인 펍 Temple Bar



리피강 오코넬 다리를 건너다보니 1794년에 만들었다는 표찰이 보였다.

오코넬 다리는 다리의 길이보다 폭이 더 넓은 다리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잘 느끼지 못하고 건넜다.

멀리 하페니 다리가 보인다.

하페니는 사람들만 다닐 수 있는 보행자 전용 다리이다.

이 다리의 공식 명칭은 '리피 브리지'였다.

하지만  통행료로 'half penny'를 내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붙여진 이름이라도 한다.

1919년부터 통행료가 폐지됐음에도 여전히 하페니 다리로 불리고 있다.




하페니 다리


아일랜드는 12세기부터 영국인들의 이주와 침략으로 식민화되기 시작했다.

17세기에 들어서 국력은 더욱 약화되었고 영국의 정치적, 종교적 탄압으로 노골화되었다.

1916년 부활절에 공화주의자들이 더블린 시내를 장악하고 아일랜드 공화국 선포를 하며 봉기했다.

1919년 의회가 결성되고, 의용군은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으로 개칭하여 영국군을 공격하면서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무렵 제임스 오코넬이 독립선언을 발표했다.     

1921년 12월, <영국 - 아일랜드 조약>으로 영국군이 철수하면서 전쟁이 끝나고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이란 이름의 자치령이 되었다.

하지만 북아일랜드의 여섯 개 주는 아직 영국령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아일랜드는 분단국가이다.           


1947년 Republic of Irland의 명칭으로 영국 연방에서 독립,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었다.

2019년, 유럽 연합의 1인당 GDP 평균이 30,000 유로 (약 34,000 달러)인데, 더블린을 비롯한 중부 지역은 64,000 유로 (약  73,000 달러)로 영국을 훨씬 능가한다.


오코넬 다리에서 더블린 항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얼핏 보기에 뼈밖에 남지 않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행렬이 보인다.

조각가 로완 길레스피(Rowan Gillespie)가 1997년에 완성한  청동 작품 <Great Famine>이다.

이 작품은 1845년에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대기근을 주제로 하고 있다.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강변에 놓인 청동 조형물인 <Shoes on the Danube>만큼 가슴 아프다.

<Shoes  on the Danube>는 독일군이 유대인을 강변에 세워놓고 총살시킨 것을 추모하는 작품이다.


아시아의 쌀, 유럽의 밀, 남미의 옥수수는 인류의 배고픔을 해결해준 3대 작물이다.

뒤늦게 4대 식량 반열에 오른 건 감자는 스페인의 남미 식민지 개척 이후 유럽에 전해져 귀한 식용작물로 각광을 받았다.

소출량이 많고 대충 심어놓으면 어지간한 땅에서 잘 자란다.

보관도 쉽고 다양한 요리가 가능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이미 200년 전 유럽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주인공이 되었다.

       

그런데 옛 영국의 귀족들은 땅에서 나는 작물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땅속에서 캐내는 것들을 저급하게 여겼음이다.

나무에서 열리는 포도나 토마토, 밀이 주식이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로 배고픔을 때웠다.

별도의 씨앗도 필요 없이 땅에 던져두면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었다.

토질이 척박한 아일랜드는 늘 궁핍했지만 감자가 전파되면서 식량이 풍부해지고 인구도 급증했다.

고맙고 든든한 먹거리였다.       

하지만 신은 가난한 이들의 평화를 그리 오래 허락하지 않았다.

긴 장마로 인한 감자 잎마름병이 전국을 덮쳤다.

대기근이 시작되었다.

지척의 영국은 모르는 척 등을 돌렸고 100만 명이 죽어나갔다.

1845년 당시 약 800만 명이었던 아일랜드 인구는 대기근 기간 대략 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고 백만 명이 북미대륙으로 이주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조상도 이 시기에 미국으로 건너온 아일랜드인이다.

지진이나 해일, 전쟁도 이렇게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지 못한다.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은 현대 인류사의 수수께끼다.



당시 아일랜드를 취재한 영국의 한 기자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이 세상에 식민지와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고 있는 나라는 수도 없이 많다. 또한 가난한 나라도 많다. 그 나라에는 거지들이 득실거린다. 그러나 한 명도 빠짐없이 전 국민이 거지들인 나라는 아일랜드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인간의 살이 어떻게 뼈와 분리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밤마다 공포에 떨었다. 쥐들이 그들의 살을 파먹었고 다음날 아침이면 많은 수의 사람들의 살점이 떨어져 나간 채로 죽어있었다."


대 기근
                                         <shoes on the Danube>                      



아일랜드 감자는 맛있다.

골웨이 슈퍼 마켓에서 산 감자에 양파와 마늘을 넣고 고추장을 풀어 찌개를 끓였다.

달큼하고 포근포근한 식감에 밥 한 공기 뚝딱이다.

값도 싸고 만들기 쉬워서 여러 번 만들어 먹었다.

그 옛날 조상들이 기근에 들어 죽음에 이르게 한 감자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의 감자 사랑은 여전하다.

이제 그들은 유럽에서 가장 윤택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나라가 되었다.


"오 사랑하는 아들 데니야.      

목동의 피리소리가 널 부르는구나     

산기슭 골짜기 아래에서도      

여름은 가고 꽃은 시드는데     

이제 너는 떠나야만 하고     

우리는 여기 남아 널 기다리고 있구나"


<오 대니 보이>는 아일랜드의 아리랑이다.

배고픔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은 죽어나간 사람들 속에 남아있을 수 없었다.

호주, 캐나다, 미국 등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내맡겼다.

사랑하는 가족, 친지, 연인들과 부둥켜안고 흐느껴 울면서 불렀던 노래가 바로 '대니 보이(Danny Boy)'였다.

전쟁터에 아들을 떠나보내며 불렀던 그 노래는 고향을 떠나며 부르는 망향가이기도 했다.

살아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는 구슬픈 노래였다.


Danny boy - 아일랜드 민요


그나저나 공항에서는 수하물을 찾았다는 소식이 없다.

다음 날, 런던으로 가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될 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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