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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03. 2016

‘제 나이는 461세입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 , 파비오 루이지 

  





“나는 1548년,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태어났습니다. 빈 필이 1842년생이고 베를린 필이 1882년생이니 현존하는 오케스트라 중 단연 최장수 중입니다” 


  오래된 나무가 뿌리 깊다 하지요.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고 최고(最古)면서 최고(最高) 임을 인정하게 했습니다. 다른 오케스트라와 달리, 악장이 선두로 들어와서 세팅되어있는 자리에 일제히 앉는 모습이 독일 병정 같은 절도감이랄까? 뭐 그런 게 느껴졌지요. 2000년 주세페 시노폴리와 내한했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이하 드레스덴). 이듬해 시노폴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심장마비)은 대단한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겐 파비오 루이지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를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프로그램은 첫날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제외하곤 모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였습니다. 기존의 음악회 프로그램 편성과는 사뭇 달랐지요. 제가 만난 프로그램은(2009.5.10 세종문화회관)틸 오일렌 슈피겔의 유쾌한 장난(Till Eulenspiegels Iustige Streiche, Op.28),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부를레스케(Burleske in D minor for Piano and Orchestra),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입니다. 같은 작곡가의 작품이지만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낯선 음악의 즐거움은 처음 먹어본 음식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약 40년 전, 작은 아버지가 명동 사보이 호텔에서 사주신 칭기즈칸 샤부샤부가 그랬습니다.  




파비오 루이지


  멋쟁이 이태리 신사를 연상시키는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는 인상과 다르지 않은 연주를 보여주었습니다. 첫 곡, ‘틸 오일렌 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은 절도 있고 깔끔하면서 아름다운 소리를 냈어요. "옛날 옛날에 오일렌 슈피겔이라는 장난꾸러기가 살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하듯 친밀한 느낌의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해 유머러스한 주제가 혼에 의해 반복됩니다. 경쾌함과 유려함을 오가는 오케스트라의 순발력은 뛰어났습니다. 이야기를 설명하기보다 음향을 입체적으로 조합시키는 흥미로움이 듣는 이들을 이끌었고요. 특히 나무 조각이 달린 연필깎이처럼 생긴 악기 크레셀이 내는 따르르르륵 하는 소리는 유쾌한 장난이라는 제목과 잘 어울렸습니다. 음악회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서곡으로 문을 여는데 비해 세련되고 적절한 선택이라고 여겨집니다. 특히 드레스덴은 현악반, 목관반, 금관반, 타악기반 할 것 없이 모두 우등생이었습니다. 여기가 세종문화회관 맞아?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들의 사운드는 완벽했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호른 솔로가 나오는 부분에선 늘 불안해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드레스덴의 호른 수석은 수액을 빨아 마시듯 시원하고 부드러웠습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부를레스케’의 피아노는 에마누엘 액스였습니다. 테크닉의 표현력이 극한으로 치솟는 이 작품은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선망하면서도 손을 내젓는 어려운 곡이라지만 ‘떡 주무르듯 한다’라는 말처럼 그의 손가락에선 실크를 뽑듯 쉽고 부드럽게 술술 잘도 흘러갔습니다. DVD나 CD로만 접했다가 실연은 처음이었는데 사람 좋아 보이는 그는 드레스덴의 전속 협연자, 또는 식구처럼 ‘아’ 하면 ‘어’ 소리로 화답할 줄 알더 군요. 지휘를 겸하듯 오케스트라와 주고받는 포스가 너무 아름다워서 규칙적인 호흡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팀파니와 대전하는듯한 독특한 멜로디와 리듬이 바람과 고목의 연애담처럼 자연스러운 멋을 풍겼습니다. 두 번의 커튼콜에 이어 뛰듯이 나와 앙코르로 슈베르트 소나타를 연주했습니다, 그리곤 악장에게 그만 퇴장하자고 조르는 듯했지만 악장은 고개를 가로로 저었습니다. 그도 액스의 피아노를 더 듣고 싶었던 게지요. 아닌 게 아니라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도 오케스트라의 빈 좌석에 앉아 그의 앙코르 연주를 듣고 있었거든요. 에마누엘 액스는 다시 쇼팽의 마주르카를 앙코르 연주했습니다. 겉돌고 따로 노는 협연이 있습니다. 즐거운 감상이 아니라 불안한 청취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아니었습니다. 궁합이 맞는 음식과 와인이라 할 수 있었지요. 



에마누엘 액스

  

  마지막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습니다. 더블베이스의 트레몰로와 오르간의 저음에 이어 트럼펫이 등장하면서 찬란한 태양이 떠오릅니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배경음악으로 더 유명하게 알려진 프롤로그에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날 세종에 발걸음을 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바라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4대의 트럼펫 서주에 이어 1 바이올린 뒤편에 위치한 오르간이 가세하여 세종의 벽에 붙박이 파이프에서 울리던 마지막 여음은 문자로 표현 불가합니다. 그건 마치 제가 작곡을 공부할 때 바다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음악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것과 같은 이치일 겁니다. 난쟁이가 쏘아 올린 공처럼 3층 한편에 앉은 저는 최고를 만남으로 해서 느껴지는 상대적인 작아짐이 있었지요. 늘 B석을 찾는 마니아임을 자부하지만요. 주섬주섬 대충 챙겨 떠나는 여행이 있고 집사가 챙겨주는 둥근 모자 케이스까지 갖고 떠나는 여행이 있습니다. 그들의 연주는 후자였습니다. 명품이었지요. 짧은 프롤로그 뒤에 있는 8개의 섹션에는 니체의 텍스트에서 유래한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인간은 아직 혼돈 속에 살아야 한다’는 자라투스트라의 말을 떠올리게 되더군요. 바다 속으로, 산 아래로 미끄러지는 해 같은 사라짐의 미학으로 음악은 끝났습니다. 모든 예술은 장르를 불문하고 관통하는 맥이 있습니다. 음악가와 작가와 화가의 연관성을 연구해봄도 흥미 있는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곡 모두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맛은 달랐지요. 461살이나 되는 나무 등걸의 휘어짐에서 보이는 운치와 앤틱 한 멋이 있었습니다. 제가 접한 세종문화회관의 연주 중 단연 최고였지요. 오케스트라도 하나의 우주입니다. 좋은 수석을 갖고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가요? 호른 수석과 클라리넷 솔로, 악장과 팀파니스트… 게다가 마에스트로 파비오 루이지까지 힘을 더한 드레스덴의 항로는 여전히 밝습니다. 앙코르는 베버의 오베론 서곡이었습니다.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는 맘이었다는 어떤 기자의 말에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니체는 “우리의 삶을 견디게 하기 위해 예술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당케 쉔, 파비오 루이지 그리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할 일입니다. 40년 후, 누군가 ‘제 나이 이제 500살이 되었습니다’ 하는 제목의 리뷰를 쓰게 되길 바라지만 그글을 쓰는 사람이 저라면 더욱 좋겠다 소망했습니다.   (2009.5.10  세종문화회관)        


바그너 오페라 린치 서곡 - 틸레만 지휘
staatskapelle dresden
2016년 1월 독일 여행  드레스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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