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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31. 2022

8. 무스티에 생트 마리

Moustiers-Sainte-Marie





지금부터 약 1000년 전 이야기다.

한 기사가 예루살렘의 전쟁에 참전했다.

전쟁에서 패한 병사는 적군에게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날마다 성모 마리아께 기도했다.

만일 감옥에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만 된다면 감사의 마음을 담아 마을 절벽에 별을 달겠다고 말이다.

병사의 기도는 이루어졌고 고향으로 돌아온 병사는 약속대로 산 꼭대기의 절벽 사이에 별을 만들어 달았다고 한다.

 

5세기경부터 수도사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이 마을의 이름은 무스티에 트 마리(Moustiers-Sainte-Marie) '성모 마리아를 모시는 수도원'이라는 뜻이다.


그곳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당일로 다녀오기에는 불가능하다.

근처에는 베르동 협곡이 있는데 길이는 약 25km, 깊이는 최대 700m로 베르동 강에 의해 형성된 곳으로 청록색 물빛이 환상적이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보트를 타며 협곡을 즐기지만 우리는 들르지 않기로 했다.



베르동 협곡



그날 역시 운전은 J, 나는 내비게이션을 읽는다.

엑스에서 100km가 넘는 거리이고 토요일이라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수령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도로에 진입했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희부연 공기가 나무들을 휘감으며 신비스러운 광경을 연출했다.

재빠르게 카메라를 꺼내어 사진을 찍었는데 공기의 느낌이 희미하다.



 


'띠링띠링'


자동차에서 경고음이 들렸다.


'어제부터 계속 이 소리가 들리던데 뭐지?'

'글쎄, 가끔씩 계기판에 무슨 글씨가 나타났다 없어지네.'


그 후로도 자동차는 간헐적으로 경고음을 내며 어떤 문구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옆 좌석에 앉은 나나 뒷좌석의 친구가 보기에는 글씨가 너무 작고 2~3초쯤 나타났다가 사라지므로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프랑스어라 보인다 한들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


'경고문의 마지막에 숫자가 보이는데 그게 점점 줄어들고 있어.'


운전을 하고 있는 친구 J가 말했다.


'그래? 잠시 차를 세우고 알아봐야겠네.'


하지만 자동차는 집도 인적도 없는 시골 들판 한복판을 달리고 있었고 잠시 정차할만한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경고문이 간헐적으로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폰을 준비하고 있다가 경고문이 나타났을 때 사진을 찍는 방법밖에 없었다.

흔들리는 차에서 운전자 뒷좌석에 있는 사람이 계기판의 경고문을 선명하게 찍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가까스로 사진을 찍은 후 번역기를 사용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주유소에는 통상 주유 정산을 해주는 캐셔가 딸린 작은 편의점 같은 게 있기 마련이니까 거기서 물어보기로 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니 전방 10km쯤에 주유소가 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주유소는 주말이라서인지 영업을 하지 않아 사람이 없었다.

그때 연식이 아주 오래된 낡은 자동차 한 대가 주유소로 들어왔다.

남자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모르겠단다.

'일반적인 프랑스의 운전자가 자동차 계기판에 나타난 경고문 내용의 뜻을 모른다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미소를 장착하고 고마움의 인사를 전했다.

다른 주유소를 찾아보거나 아니면 가는 길에 사람이 있으면 물어보기로 하고 다시 출발했다.




계기판 왼쪽의 경고문이 76km를 나타내고 있다.



'유랑에 물어볼까?'

뒷좌석의 T가 말했다.

지금 한국은 한밤중인데 가능할까 싶었지만 그래보자고 했다.

잠시 후 T가 말했다.

'요소수 문제인 것 같다는데? 가까운 주유소를 찾아서 보충하래.'

그 말을 듣고 문장을 보니 어렴풋이 해석이 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경고문은 'AdBlue'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다.

내용인즉 '요소수를 보충하지 않으면 76km를 운행한 후에 엔진이 꺼질 수 있다.'라는 뜻으로 짐작되었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요소수 대란이 일어났을 때 처음 들어본 단어가 요소수였다.

우리가 렌트한 자동차는 디젤 엔진의 신형 Ford, 그러므로 요소수를 필요로 하는 자동차였지만 우리는 그걸 알 턱이 없었다.


'대체 요소수가 뭐지?'


요소수는 요소(urea)를 물에 녹인 물로 요소가 약 32.5 %, 물이 약 67.5% 가 되는 수용액이다.

흔히 디젤 배기가스 유체로 알려져 있으며, 요소수의 또 다른 이름은 AUS 32(aqueous urea solution 32)이며, AdBlue라는 상품이 대표적이다.


'우리 무스티에 상트 마리 갔다 오는 길에 카르푸에 들려 장보기로 했었잖아. 카르푸에 가면 요소수가 있지 않을까?'


검색을 해보니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카르푸가 있었다.

76km를 가리키던 계기판의 경고문의 숫자는 어느덧 줄어들어 53km를 가리키고 있었다.

경고문의 뜻을 알고 나니 초조하기 시작했다.

도시 한복판도 아니고 인적도 드문 허허벌판 시골에서 자동차가 멈춘다면 대략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카르푸로 가보자.'


주유소를 찾아오는 바람에 우리의 경로는 이미 무스티에 상트 마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6월이면 보라 물결이 넘실대는 라벤더 가도, 발랑솔 근처까지 오게되었다.




carrefour



드디어 까르푸에 도착했다.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규모의 까르푸 익스프레스가 아닌 무척 큰 창고형 대형 마트였고 주유소가 함께 있었다.

다행인 것은 그 주유소는 현재 영업 중.

이제 됐다 싶었다.

주유소에 정차를 하고 그 문제의 애드블루를 보충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곳은 애드 블루를 취급하지 않는 주유소이며 더구나 그 큰 카르푸 역시 보충용 애드블루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유소 여직원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고 사무실 직원들에게 물어보며 근처에 애드블루를 취급하는 곳을 찾으려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었다.

어찌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본인과 상관없는 문제인데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정말 고마웠다.


그때 우리를 지나치던 한 남자가 여직원과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애드블루를 찾으세요? 이곳에 가보세요.'

하며 알려준다.

'확실해요?'

'네 그러믄요.  장담합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요.'


하며 내 폰의 구글맵에 문제의 그 애드블루를 취급한다는 곳의 주소를 입력해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절벽 사이에 떠 있다는 별은 잊은 지 오래다.

우리들의 목표는 오직 AdBlue 보충이다.

주행 가능한 거리를 나타내는 km의 숫자는 자꾸 줄어들고 있다.

띠링띠링 경고음이 울릴 때마다

'이제 몇 킬로 남았어?'


남자가 알려준 곳은 HYPER U라는 또 다른 대형 슈퍼마켓이었고 물론 주유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HYPER U 대형 슈퍼마켓



남자의 말대로 그곳의 주유기 중 한 곳에 파란색 글씨로 AdBlue라고 쓰여 있었다.

'할렐루야'

드디어 찾았다.

자동차 주유 투입구를 여니 경유를 넣는 구멍과 AdBlue를 넣는 투입구가 각각 있었다.

'가득가득~~'




경유 차에는 디젤과 파란색 AdBlue를 넣는 투입구가 각각 있다.



인간의 정신력은 대단하다.

긴장이 풀어지자 잊고있덨던 생리 현장이 찾아왔다. 

갑자기 심한 갈증과 요의가 동시에 찾아온 것이다.

우르르 마트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낮에도 지지 않는 별을 찾아가던 길이 갑자기 요소수 찾아 삼만리 한 것이다.

유럽은 렌터카도 가솔린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승용차량은  디젤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 역시 우리처럼 최근 사용하게 된 요소수를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이고 판매처도 많지 않았던 것이다.


요소수 빵빵하게 급수했으니 이제 진짜 별 찾으러 출발~


우리는 이미 무스티에 상트 마리로 향하는 경로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똑똑하고 친절한 구글 맵은 새로운 길을 찾아 안내하기 시작했다.


'어머나, 여기가 모두 라벤더 아냐?'


발랑솔은 라벤더로 유명하다.

개화기가 6월에서 7월이라 우리의 여행 시기와 맞지 않기에 계획에 넣지 않은 지역이다.

그런데 요소수 덕에 그 옆을 지나게 된 것이다.

커다란 나무 아래 넓은 공간이 있어 잠시 차를 세웠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끝없이 펼쳐진 라벤더 밭과 언덕 아래로 펼쳐진 프로방스 오베르뉴 론 알프(Auvergne-Rhône-Alpes)주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이것도 행운이네, 요소수 덕에 라벤더 가도를 달려보게 되었잖아.'

하며 불안해했던 두어 시간은 벌써 잊은 듯 하하호호 즐거워했다.

새삼 망각도 참 고맙고 필요한 것이구나 싶었다.


  


Provence lavender fields
Provence lavender fields
발랑솔 15km 이정표


 

무스티에 상트마리는 절벽에 위치한 마을이라 주차장 역시 고갯마루 위에 있다.

태양은 이미 머리 꼭대기를 비추고 주차 티켓 머신에서 주차증을 발급받으려는 여행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

도무지 5월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태양이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오며 기운이 빠진다.


'별이 여기서 보일까?'


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거짓말처럼 허공에 작은 별 하나가 반짝인다.




주차장에서 찍은 별



비탈에 형성된 마을은 크지 않았다.

온통 보랏빛 라벤더 상품을 진열한 샵과 도자기로 빚어 놓은 별, 그리고 왕실에 납품되어 유명하게 된 도자기들을 판매하는 샵들이 오가는 이의 발길을 잡아끌었다.


루이 14세는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위해 왕실의 은식기들을 모두 녹여서 사용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질 좋은 무스티에 상트마리의 도자기를 왕실에 납품받아 사용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식사를 먼저 하고 난 후 언덕 위의 성당에 오르기로 했다.

절벽이 내려다보이는 유니크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노천이 좌석은 이미 만석이라 실내에 마련된 자리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꽃무늬 암체어가 돋보이는 실내장식이 프랑스다웠다.

 

우리의 시장함을 짐작했다는 듯 주문한 버거가 바로 서빙되었다.

그런데 차갑다.

식당에 들어설 때 입구에 놓여있던 냉장 푸드 케이스에 들어있던 걸 꺼내온 모양이다.

레인지에 돌렸는지 군데군데 빵과 패티는 미지근하고 퍽퍽해서 별로 내키질 않았다.

음료만 마시고 반도 먹지 못한 채 나오게 되었다.

여행 중 실패한 음식이 없었는데 그곳이 최악이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잠시 쉬는 동안 어느 정도 허기를 면했고 여기저기 너무나 예쁜 마을의 비주얼에 정신이 팔려 기분이 살아났다.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언덕 끝에 보부아르 예배당이 있다.

아름다운 전망이라는 뜻이다.


모두들 겉옷을 벗어 허리에 질끈 묶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경사가 완만한 편이지만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작은 돌을 쌓아 올려 만든 아치 모양의 돌다리를 건너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구간을 걷게 된다.


몇 걸음 걷다가 하늘에 걸린 별 한 번 쳐다보고, 또 몇 걸음 걷다가 아랫마을 쳐다보고, 곳곳에 세워진 기도 처소의 십자가앞에선 고개 한 번 조아리고 하다 보니 성당에 다다랐다.


   


 

성당은 작고 소박했지만 성스러운 분위기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름다운 전망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누 예배당이다.

우리나라의 유명 사찰들도 그렇지 않은가.

소위 명당자리라 칭하는 어디랄 것도 없이 모두 좋은 전망에 위치하여 감탄하곤 하는데 보부아르 예배당이 그랬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돌계단에 잠시 걸터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의 땀을 식혀주었다.

언덕에 오르면 별이 좀 가까이 보이겠지 기대했건만 여전히 별은 저 멀리 절벽 사이에서 반짝인다.

그 옛날에 대체 어떤 방법으로 저 별을 매달 수 있었는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날아가는 비행기가 종이비행기처럼 작아 보인다.


 



언제든 오르막에서 드는 생각은 '내려갈 때는 수월하겠지.'

하지만 실상 내리막이 더 어렵다.

차가운 버거 반 조각의 에너지는 이미 소진이 되었고 다리가 후들후들하다.

하지만 평균 신장 167인 우리는 걷기에 가견이 있다.

언덕을 내려가면 달콤한 디저트와 커피를 마시고 서로가 예쁨 예쁨 하는 마을을 샅샅이 구경할 터였다.

D가 사주는 피스타치오 젤라토도 먹을 것이다.

그리고 예쁜 포토존 앞에선 인생 샷을 위한 미소도 지을 것이다.

그렇게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씩씩하게 언덕을 내려왔다.


비록 요소수 찾아 삼만리 하느라 어려움을 겪었지만 무사히 해결했고 별도 보았으니 오늘도 성공!


뿌듯한 하루였다.

내일이면 엑스를 떠나게 된다.

다음 여정이 남아 있는데, 뭘 놓치고 안해본 것도 아닌데 그냥 아쉽다.


그게 바로 달콤쌉싸름한 여행의 맛이다.




말린 라벤더 꽃묶음
담쟁이덩굴의 마른 가지
돌담과 돌길
올리브 나무 이파리의 컬러는 볼 때마다 정겹고 푸근하다.
마을 어디서나 잘 보이는 별
별 모양이 10각
현재 걸려 있는 별은 무스티에 상트마리의 마지막 대장장이였던 Aime Bourjac(1899-1963)이 1937년에 만든 것이라는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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