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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Aug 02. 2022

9. 미슐랭보다 미슉랭

Nice




'코트 다쥐르(Côte d'Azur)' 현지 발음으로는 꼬뜨다쥬흐, 그야말로 프랑스어의 진수를 느끼게 하는 깜찍한 이름이다.

'리비에라'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곳은 프랑스의 남동부 지중해 해안으로 툴롱(Toulon)에서 망통(Menton)까지 이어진다.

코트 다쥐르에 속하는 도시로 니스, 마르세이유, 등 익숙한 지명들이 많은데 그중 칸 (Canne)에서는 매년 세계 각국의 영화 스타들이 찾아오는 칸 영화제가 개최된다.

우리가 그곳에 머무는 기간 동안 2022 칸 영화제가 진행되었다.


여행 계획에서 숙소는 우리에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숙소는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이 아니라 생활을 하는 공간이다.

먹고 자고 쉬는 건 기본이고 에너지를 충전하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위치는 물론이요, 방이나 욕실 개수는 기본, 엘리베이터가 없는 고층은 피해야 하고 주방 설비의 수준도 중요하다.


우리는 2014년부터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이용한 도시가 56곳인데

그중 49곳의 호스트들이 우리를 '전 세계 호스트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게스트들'이라는 후기를 남겼다.


우리는 세계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도착하던 날과 거의 똑같이 완벽한 모습으로 정리를 한 후 숙소를 떠나곤 한다.

기본적인 매너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의 위상이 떨어지는 걸 배제시키려는 이유도 있다.

멤버들의 높은 의식과 사고. 배려와 이해가 따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믿는다.

우리는 호스트에게 작은 전물을 전한다.

보통은 전통 자수를 수놓은 작은 손거울을 준비하는데 그 소소한 선물에 그들은 감동하곤 한다.


니스는 엑스에서 가까워 체크인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였다.

숙소의 규모가 큰 만큼 청소를 하는 사람이 셋이나 되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나 집안 청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프랑스인이 아닌 아시아인(필리핀)들인 것이 왠지 안쓰러웠다.

러기지만 맡긴 후 열쇠를 챙겨 해변으로 나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으려니 싶었다.

니스의 해변은 '영국인의 산책로'가 유명하다.


매년 우기를 피해 니스로 휴양을 오는 영국 귀족들이 많았다.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1931년 영국 왕실에서는 니스의 해변가에 종려나무를 심었고 영국인의 산책로(Promenade des Anglais)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해안의 길이는 무려 7km인데 해변은 모래가 아닌 몽돌이다.

 


Promenade des Anglais



우리는 블로그나 여행 안내서에 소위 맛집으로 소개된 집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맛집을 찾을 때 일종의 촉이 좋은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친구 M과 LJ가 그렇다.

두 친구의 촉은 언제나 잘 맞아떨어지곤 했다.


숙소를 나와 바닷가로 향하는 길은 한적한 주택가였고 음식점이나 일반적인 상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발견한 'AMOUR'는 도무지 레스토랑 같은 외관이 아니었지만 출입문 옆 유리 박스에 메뉴가 안내되어 있었다.

메뉴와 가격이 적당해 보이니 들어가 보자는 M의 의견에 모두 동의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로비라고 하기에는 작고 리빙 룸이기에는 거실이 보였다.

유럽 고택의 서재에 놓여있을 법한 앤티크한 책상 위에 컴퓨터 모니터가 보였다.

그 앞에 앉아있던 마드모아젤이 미소로 반겼다.

런치를 먹을 수 있냐는 질문에 좌석을 알아보겠다는 그녀가 돌아와 우리를 안내했다.

계단을 내려갔으니 분명 지하일 텐데 하늘이 훤히 비치는 선룸(sunroom)으로 꾸며진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기다란 원목 테이블과 라탄 의자가 있는 좌석으로 안내를 받았다.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식사 중이라 조심조심 자리에 앉았다.

에그 베네딕트와 깔라마리 등, 과하지도 미흡하지도 않은 음식들이 모두 맛깔스러웠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한 그곳은 사실 Amour 호텔에 딸린 레스토랑이었다.



Hotel Amour Lobby
Hotel Amour Bar
그릭 샐러드와 에그 베네딕트



끝없이 펼쳐진 니스의 비치에는 해수욕과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의 원색적인 차림이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벌써 물놀이를 하네?'

그들의 사고는 우리와 다르다.

오프 숄더 드레스, 탱크 탑, 가죽재킷, 트렌치 코트니 경량 패딩까지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사계절이 모두 들어있다.

우리처럼 해수욕은 7월이나 8월에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없다.




Nice Beach



간혹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

'혹시 친구들과 여행 중에 다투는 일은 없어요?'


'있죠. 왜 없겠어요.

서로 식사 준비하겠다고 다투고

설거지 서로 한다고 다투고

마트에 장 보러 가면 서로 물 한병이라도 더 들고 가겠다고 다투죠.'


질문자의 의도와 다른 대답이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늘 그렇다.


열일곱 살,  그러니까 세상 풋사과 같던 여고 1학년 때 만났다.

각자 다른 대학에 입학하고 일을 찾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고 하는 동안 한분, 두분 부모님들이 돌아가셨다.

올해로 45년 지기이지만 단 한 번도 싸워본 일이 없다.

함을 기본으로 갖고 있으며 이해와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친구들이다.

'어' 하면 '아' 할 수 있는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이다.


게다가 모두 손이 빠르고 솜씨도 좋다.

숙소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마트이다.

1.5리터 생수 6개는 필수.

치즈, 버터, 올리브, 달걀, 과일, 요구르트, 잼, 햄, 소시지, 새우, 감자 양파, 마늘 등 기본 요리 재료를 구입한다.

와인이나 맥주는 필수, 간간히 대표님이 좋아하는 위스키를 사기도 한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모두 음식 솜씨가 뛰어나다.

뚝딱은 기본이요.

최소한의 재료로 최고의 맛을 빚어낸다.

쉽게 할 수 있는 카레나 감자찌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누룽지 백숙에서 양갈비 구이, 배추전, 어린잎채소 비빔밥, 김밥도 뚝딱이다.

게다가 LJ의 플레이팅은 가히 예술이다.

음식마저도 아쉬울 게 없는 멤버십이다.

서로를 미슉랭. 정슉랭, 동슉랭. 태슉랭이라 칭하며 식사를 준비하고 맛있게 먹는다.

모두 빵을 좋아하는 것도 여행을 수월하게 하는데 일조한다.

프랑스는 동네 어딜 가나 빵집이 있고 웬만하면 다 맛있다.


영국인의 산책로를 거닐고 나니 체크인 시간이다.

이번 여행은 인원이 여섯이니 최소 3개의 방과 2개 이상의 욕실이 필요하다.

니스에서 닷새간 머물 집은 수영장과 늘씬한 야자수가 있는 저택.

욕실이 딸린 방 2개와 별도의 욕실을 사용하는 마스터 룸,

샹들리에가 걸린 10인용 식탁과 마치 수도원을 연상시키는 등받이가 1m는 될법한 의자 ,

크기와 집기들이 쿠킹 클래스를 열어도 손색없을 주방,

올 화이트의 접시와 보울.

샴페인, 와인, 코냑 등 다양한 주종을 따를 수 있는 글라스들, 게다가 커트러리는 모두 실버였다.

물론 오븐과 식기 세척기들은 기본이다.


리빙룸에 걸린 모노톤의 대형 추상화는 세련된 그레이 컬러의 카우치와의 매치가 찰떡이다.

르네상스 스타일의 천장화가 뜬금없이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믹스매치마저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소파 양옆에 배치한 대형 스탠드의 바디는 우리나라의 항아리 보다 큰 자기였는데 당장 옥션에 내놓아도 될 만큼 손색이 없다.

게다가 침대에 깨끗하게 세팅되어 있는 이불과 베개는 무려 polo 로고가 수놓아진 양털이다.


이만하면 7성급 호텔이 부럽지 않다.



living room
Dining room
silver cutlery
Master room



'어딜 안 가고 그냥 집에만 있어도 좋겠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옷장에 짐을 풀고 푹신한 침구에 풀썩 누워본다.

뽀송뽀송하고 부드러운 느낌에 스르르 잠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녁 식사준비하기 주방으로 모여든다.(나를 제외한 모두)

그렇게 우리는 미슐랭보다 미슉랭 레스토랑의 식사를 하곤 했다.

 



대부분의 아침 식사
디저트는 케이크와 커피
미슉랭. 정슉랭, 동슉랭. 태슉랭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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