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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30. 2022

7. 까뮈 만나러 가던 날이 장날?

lourmarin




'여기는 순전히 내 사심에서 선택한 곳이야.

산골에 있는 중세 마을인데 어느 프랑스의 아름다운 소도시로 정한 곳이라고 .

실망할 수도 있으니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겠어.

참, 그 마을에는 까뮈 묘지가 있어'


여행을 하다 보면 그곳이 프랑스에서 아름다운 소도시(Les Plus Beaux Villages de France)로 선정되었다는 문구를 보게 된다.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들’으로 선정되기 위해서 기본 조건이 있는데

① 마을 주민이 2천 명이 넘지 않는 소도시.

② 뛰어난 경관이나 역사적 가치를 지닌 랜드마크를 2개 이상 보유한 곳.
③ 공개 토론을 거쳐 지역 주민들의 동의와 지지를 얻은 마을.

2022년 현재 159개의 마을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사실 나는 까뮈보다 장 그르니에를 좋아한다.

본디 소설보다는 산문을 좋아하지만 특히 장 그르니에는 최애 작가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책은 '섬'

뭐랄까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한 편안함과 깊이 있는 사유를 담담하게 풀어낸 것이 인상 깊었다.

 

불문학자 김화영은 까뮈와 장 그르니에 전문 번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김화영의 글도 그르니에와 분위기가 비슷한 느낌이다.

고로 그의 산문집도 즐겨 읽는다.


'선생님!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는 마음에 꼭 드는 집을 샀습니다'.


카뮈와 장 그르니에의 서간집에 나오는 구절이다.

편지를 받은 장 그르니에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정말 기쁜 소식이군요. '루르마랭'은 내가 사는 이곳 '시미안'에서 불과 40킬로미터도 안 떨어져 있지요.

그 집이 대체 어디인지 궁금하네요.'


루르마랭은 장 그르니에가 결혼식을 올렸고 공부를 하던 곳이기도 하다.

카뮈가 노벨상을 타면서 받은 상금으로 루르마랭에 집을 마련하자 그르니에는 기쁜 맘을 감추지 못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한다.


철학자 장 그르니에(1898~1971)는 까뮈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편지를 나누던  스승이자 동반자였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간 편지는 알려진 것만 해도 무려 235통에 이른다.

까뮈가 죽기 전  살았고 묻힌 곳이 바로 이곳 루르마랭(현지 발음은 루흐마항)이다.



서한집



여행 중에 기회가 되면 묘지를 찾곤 한다.

무덤 앞에 서면 그 지역에서 살았던 작가나 음악가의 삶이 어떠했을까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가고 싶었던 곳이 한 곳 더 있었다.

폴 발레리(Paul Valery 1871-1945)가 묻혀 있는 해변의 묘지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거대한 대기는 내 책을 펼쳤다 또다시 닫는다.

가루가 된 파도는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단배들이 먹이를 찾아다니는 이 잠잠한 지붕을!"


      - 폴 발레리(1871~1945) 해변의 묘지 중 24연




SETE 해변의 묘지(폴 발레리의 무덤이 있다)



해변의 묘지는  남프랑스의 바닷가 마을 세트(SETE)에 있는데 엑스에서 다녀오자면 꼬박 하루를 투자해야 한다.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혼자 하루를 이탈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일찍이 포기했다.

하지만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루르마랭은 꼭 가보고 싶었다.


루르마랭을 선택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지금은 절판된 김영주의 머무는 여행 시리즈 때문이다.

작가는 여행지에서 보통 2~3개월씩 머무른다.

여행이라기보다 '살아보다'라는 개념에 더 가깝다.

그중 네 번째 출간된 <프로방스>를 읽고 오래도록 꿈꿔왔던 곳이 루르마랭이 속한 뤼베롱 지역이었다.



여전히 간간히 즐겨보는 김영주의 책



스웨덴 한림원은 '우리 시대 인간의 정의를 탁월한 통찰과 진지함으로 밝힌 작가'라는 수상 이유를 들어 알베르 카뮈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나이 마흔네 살이었다.

그토록 이른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거머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20대부터 노벨 문학상 후보에 거론되기 시작했던 유일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1913년 11월 7일 ~ 1960년 1월 4일)는, 파리로 가던 중 루르마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빌르블레방(Villeblevin)에서 차량이 빙판에 미끄러지는 사고로 그 자리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운전자인 그의 친구 갈리마르 역시 며칠 후 사망했다.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까뮈


2009년 프랑스의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는 프랑스인의 가장 위대한 영혼인 알베르 카뮈의 영광을 위해서 국가 영웅들이 묻히는 파리 '판테온(Pantheon)에 모셔져야 마땅하다며 이장을 권유했다.

하지만 카뮈의 딸 캐서린 까뮈(76세)는 아마도 부친이 살아있었다면 그 제안을 거절했을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까뮈가 루르마랭에 마련한 집은 현재 그 딸이 살고 있다고 한다.

영화 '어느 멋진 날'과 '나의 프로방스'를 쓴 작가 피터 메일(Peter Mayle)이 루르마랭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알베르 까뮈
까뮈의 장례식(좌)  까뮈의 딸 캐서린 까뮈가 살고 있는 루르마랭의 까뮈 집(우)



루르마랭에 도착하여 마을의 센터는 아니지만 운 좋게 무료 공영주차장을 만나 어려움 없이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진짜 프랑스 시골은 이렇구나 싶은 소로를 걷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 아래 오늘도 흰구름들은 예쁜 자태를 뽐내며 열 일 중이다.

'와~ 하늘 좀 봐'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거듭하곤 했다.

작은 새들이 지저귀고 장미 덩굴 담장 너머로 보이는 소박한 정원이 평화로웠다.

친구들은 조용한 시골 마을이 맘에 든다며 마치 동네 주민들이 산책하듯 길을 천천히 걸었다.


'좋은데...'



빛과 그늘이 빚어낸 아름다움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 길 끝에 작은 카페와 몇몇 상점들이 보였다.

이른 아침이지만  아직 펼쳐지지 않은 파라솔 주변에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를 마시는 주민들이 간간이 보였다.

화려한 콜롱바주 양식의 건축물에 파스텔 톤 칠을 해놓은 알자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투박하고 거친 돌 벽과 나무 본연의 색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스러움이 노인의 젊잖은 표정 같았다.


 

소박한 중세 마을 루르마랭
나이 든 장미나무
데려오고 싶었던 한 그루 나무 그림
커튼과 담장의 웨이브가 닮은 집
기념품 샵의 사진엽서



까뮈가 영원한 안식처로 향하여 운구되었을 그 길의 가로수들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 아름드리 고목이 되어 듬직하게 버티고 있었다.

고흐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늘씬한 사이프러스 나무도 보였다.

아련하면서도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머지않은 곳에 묘지 팻말이 보였다.

유럽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소박한 그냥 동네 공동묘지이다.

입구에 까뮈와 앙리 보스코의 묘지 위치를 알려주는 팻말이 보였다.


이미 사진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의 무덤 앞에 서니 기분이 묘했다.

소박한 묘석 위에 새겨진 이름이 세월에 닳고 닳아 희미했다.

옛사람의 이야기와 삶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는 여행은 좀 더 의미 있고 뿌듯한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고인을 기리는 묵념을 했다.


  

묘지 안내
루르마랭 묘지 입구
묘지 안내도
알베르 까뮈 묘석
까뮈의 부인 마담 알베르 까뮈, 프렌신 포레(좌)


까뮈의 묘지 옆에 그의 두 번째 부인 프렌신 포레(Francine Faure1914-1979)의 묘지가 보였다.

프렌신은 바흐를 전문으로 하는 프랑스의 피아니스트이자 수학자였다.

그녀는 알제에서 만난 알베르 카뮈의 두 번째 부인이었는데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고 1945년에 쌍둥이 남매를 출산하였다.

그리고 1979년에 사망하여 까뮈 곁에 묻혔다.



까뮈의 두 번째 부인 프랜신 포레(좌) 까뮈의 딸 캐서린 포레(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마을로 돌아오니 어느새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대부분의 카페와 상점들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행의 즐거움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쇼핑.

L.J는 보라색 레터링이 멋스러운 왁싱 코튼 백을, T는 브라운 컬러의 라피아 했을, 그리고 J는 부드러운 카키색  재킷을 구입했다.


쇼핑도 했으니 차 한 잔 마시며 잠시 쉬기로 했다.

초록의 담쟁이덩굴이 돌담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 오래된 분수대 옆,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한 남자가 알토 색소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공간을 부드럽게 채워주는 힘이 있다.

이름도 예쁜 루르마랭이라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의 카페에 앉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더없이 좋은 공기와 기분 좋은 햇살 아래 달콤한 재즈를 들으며 찻잔을 기울이고 있는 그 시간 속에서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모든 게 완벽한 듯 만족했다.

정면엔 시크한 올 블랙의 중년 부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앉아있다.

커다란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햇빛을 닮은 주황색 원피스를 입은 멋쟁이,

하얀 파나마햇을 쓴 올 화이트의 중년 남자 등 지나치는 행인들은 파리지앵들보다 더 멋스러워 보였다.

작은 시골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라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곳이 여행자들이 몰리는 특별한 관광지도 아닌데 말이다.  

'여긴 부자들이 많이 사는가 봐'  

이따금 컬러풀하고 커다란 왕골 바구니나 라탄 가방을 든 사람들도 지나갔다.

특히 푸짐하고 탐스런 꽃 뭉치를 한아름씩 들고 가는 사람이 많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꽃을 참 좋아해. 그런데 이 작은 마을에 꽃집이 있을까? 과연 멋지군' 생각했다.





'무슨 행사가 있나?


그때까지도 몰랐다.

루르마랭은 매주 금요일에 제법 큰 장터가 열리는 것을.

대도시처럼 체인으로 운영하는 큰 마트나 슈퍼가 없는 마을들이 모여 있다 보니 정기적으로 주말 마켓이 열리고 인근 마을 주민들도 장을 보러 오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던 날이 장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몇 개의 천막이 보였다.

야트막한 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기자니 갈림길 사이로 하얗고 빨간 천막이 빼곡하게 그러나 말끔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수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웃 동네잔치에 초대받은 느낌?

예기치 않은 장 구경에 그저 신이 났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각종 잼과 각양각색의 치즈, 군침 넘어가는 비주얼의 갖가지 프랑스 빵,

옷가지, 장바구니, 와인, 그림, 짭조름한 올리브, 모양과 색깔이 다양한 토마토와 깔끔하게 손질한 채소, 각각 다른 재료로 만든 소시지와 치킨까지 규모가 아주 큰 시장이었다.



시크한 흑백 사진 속의 주인공은 아직 살아있을까>




'우리 여기서 이것저것, 맛있는 것들을 사서 먹어보는 건 어떨까?'

'좋지'


순간 잭 니콜슨이 주연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라는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거친 호밀이 매력적인 고소한 캉파뉴 한 덩어리와 노르스름하고 뽀얀 치즈가 들어있는 기다란 바게트, 어릴 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전기구이 치킨, 절임 올리브, 맛보기로 우리를 유혹한 상인에게서 산 이름 모를 잼, 그리고 맥주와 에비앙, 뚝딱 점심 식사가 준비되었다.


마침 장이 늘어선 곳에서 머지않은 곳에 주차장이 있는데 그 한쪽이 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음식을 늘어놓고 빙 둘러앉으니 그야말로 그 이름도 유명한 '풀밭 위의 점심 식사'(마네 그림 제목)다.

미술랭 5 스타 레스토랑도 부럽지 않았다.


처음 마을 길에 들어설 때 생각했었다.

이런 곳에 살면 근심도, 욕심도, 시기도 없이 그저 평화롭게만 할까?

그 의문이 사라졌다.

그 순간 내 마음은 소소한 기쁨으로 평화가 가득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행복은 간단하고 쉬운 것이기도 하다.


루르마랭 성공!

메르씨, 까뮈~



아름다운 마을 LOURMA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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