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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n 12. 2023

올리브 나무 가득한  파티오에서의 식사

4. Agrigento





라 피네스트라 술 템플리(La Finestra sui Templi)는 18세기말 농가에 위치한 단독 주택입니다.

아그리젠토 고고학 공원의 한복판에 위치해 있으며 집에서 신전과 바다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지요.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고 전용 주차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2층은 더블 침실 4개로 그중 3개는 전용 욕실이 있고

1층의 넓은 거실과 주방, 파노라마 테라스, 정원이 있는 야외 식사,

2층의 거실과 테라스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그리젠토 숙소의 호스트인 마리오가 소개한 집에 대한 설명이다.

소개글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18세기 농가 주택이라는 점, 고고학 공원의 신전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사진상 집은 오래된 외관이 그대로 느껴졌지만 뭔가 푸근함이 있을 것 같았다.

망설임 없이 예약을 감행했다.

과연 어떤 집일까?



이번 시칠리아 여행 플랜은 섬의 외곽을 크게 한 바퀴 돌아보는 일정으로 계획했다.

구글맵이 안내하는 바에 의하면 팔레르모에서 아그리젠토 숙소까지는 약 2시간이 걸린다.

가는 도중에 잠깐 내륙에 있는 에냐 근처를 들리기로 했다.

물론 직접 아그리젠토로 가는 것보다 1시간 이상 더 소요된다.

그 이유는 아울렛 빌리지(outlet village)에 갈 목적이다.

이름 그대로 아울렛인데 구찌를 비롯해서 꽤 많은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


시칠리아는 일찍부터 더위가 시작되고 지중해성 햇살이 뜨겁다는 정보에 의해 여행 일정을 5월이 시작되자마자로 정했다.

그러나 아침저녁 기온이 10도~13도쯤?

그러므로 반소매 티셔츠와 반바지들을 주로 챙겨 온 친구들에게 편하게 걸쳐 입은 겉옷도 필요했던 터였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엔냐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결과는 매우 잘함.



내륙의 풍광은 팔레르모가 있는 북쪽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 있는 테이블 마운틴을 닮은 판판한 구릉과 제주의 오름을 닮은 올망졸망한 산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심심찮게 이름 모를 노랑 빨강 꽃들이 카펫처럼 펼쳐져 있고 윈도 바탕화면을 옮겨놓은 듯한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맨 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단 한순간도 눈을  수 없는 4K도 8K도 아닌 천연 그대로인 자연의 파노라마 영상을 공짜로 볼 수 있었다.

입맛, 손맛도 좋지만 최고는 단연 눈맛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했다.   



시칠리아 내륙 풍경
촬영 LJ



도로 곳곳에 공사 중이라는 팻말이 심심찮게 세워져 있다.

차선 하나를 줄여놓았지만 정작 인부들이 공사를 하고 있는 지역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이번 여행기 제목은 '시칠리는 공사 중'이라고 해야겠어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산이 많으니 터널 또한 많다.

그야말로 산을 뚫어 통행이 가능하도록 도로만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터널의 벽면을 단정하게 타일을 붙여 놓거나 미장으로 매끈하게 다듬어 놓지 않고 거의 날 것으로 울퉁불퉁한 곳도 많았다.

조명은 또 얼마나 미약한지 갑자기 덮쳐오는 어둠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자동차의 라이트에 의지해야 하는 야광봉만 드문드문 세워둔 곳도 있었다.

운전을 해보니 시력이 약한 친구 J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 싶은 생각에 많이 미안했다.


아울렛의 규모는 꽤 크고 동선이 좋았다.

방문객도 많지 않아 편하게 돌아보며 P*** RL에서 후디와 바지 등 몇 가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아그리젠토로 나섰다.


해외에서는 대부분 호스트들이나 예약한 업체와 whatsapp으로 소통을 한다.

Mario가 몇 시쯤 도착할 예정이냐는 메시지가 왔다.

시간을 알려주면 본인과 어떤 장소에서 만나 집으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하겠다는 것이다.

거의 10년 동안 약 100곳 정도의  airbnb를 이용했다.

하지만 중간에 호스트를 만나서 안내를 받는 일은 처음이다.

시골 한가운데 뚝 떨어져 있는 한적한 집이라 구글맵으로 찾기가 어려워서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렇게 마리오가 알려준 장소에서 그를 만났다.

안경 너머로 선한 눈빛이 그대로 느껴지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의 작은 승용차를 따라나섰다.

하지만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야 하는 주유소 옆의 좁은 길로진입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자동차가 크니까 크게 돌아야 하는데 차들이 오가는 도로 한 복판을 점거하기엔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마리오가 차를 세우고 우리가 골목에 들어가는 걸 지켜봐 주었다.

움푹 파이고 단단하게 굳어진 좁다란 흙길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우리가 탄 차 한 대가 가까스로 지나갈 정도의 조붓한 오솔길이다.

얼마를 갔을까?

커다란 철문이 리모트 컨트롤에 의해 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리고 작은 운동장만 한 주차장이 나타났다.


'이분은 우리 아빠 도메니코예요.'


우리 나이쯤 돼 보이는 남자가 만면에 역시 선하고 순한 얼굴로 인사를 전했다.

그리곤 두 사람은 우리가 러기지 옮기는 걸 신속하게 도와주었다.



숙소로 들어가는 입구의 나이든 올리브 나무
남쪽 테라스
1층 거실
2층 거실
1층 파티오
2층 발코니에서 보이는 신전



그동안 여행을 하며 많은 집을 경험했다.

각각의 아름답고 럭셔리하고 앤틱 하며 품위가 있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그리젠토는 달랐다.

집은 3000평이 넘는 올리브 밭 한가운데에 있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가꾸고 지켜온 소중한 터전이었다.

거실에는 박물관에서나 볼법한 토기 조각들과 오래된 흑백 사진이 진열되어 있고 오래된 타일이 붙여진 주방에는 이 빠진 접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무엇보다 주방 문을 열고 나가면 올리브 나무 밭이 보이는 전경으로 6인용 테이블이 있는 파티오가 정말 맘에 들었다.

2층 테라스에서는 멀리 신들의 신전과 바다가 보였다.

침실이며 욕실 또한 18세기의 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어느 한 군데 나무랄 수 없을 정도로 리모델링을 해 놓아 완벽했다.


마리오는 집에 대한 안내를 열심히 전했다.

하지만 도메니코는 뭔가 미진한 듯 아들에게 계속 뭔가를 전달했다.

이태리어라 뜻은 모르지만 짐작컨데

'마리오, 이 얘기도 해줘야지?'

하는 듯하다.

아마도 마리오는 집의 관리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부자의 친근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도메니코는 그들의 집이 5분 거리에 있으니 뭐든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이야기를 거듭 당부하며 떠났다.

그날 저녁부터 그곳을 떠나는 날까지 우리는 항상 올리브 나무 밭이 보이는 파티오에서 식사를 하고 와인과 커피를 마셨다.




아그리젠토 고고지구(Archaeological Area of Agrigento) 중 Valle dei Templi는 신들의 계곡, 또는 신전의 계곡이다 불린다.


대부분의 고대 도시 건축물들과 공공 문화유산은 신전의 계곡(Valle dei Templi)에 있다. 이 계곡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아니라 신전들이 모여 있는 고대의 성전 역할을 한 지역으로, 바다와 평행하게 이어진 산등성이가 가로막혀 있다. 아크로폴리스와 신전 사이에 있는 지역은 기원전 5세기 초에 전통적인 극장식 격자 문양으로 조성되었다. 성지가 조성된 때는 기원전 6세기 후반이며, 이는 등사면 서쪽 끝의 초기 신전들이 입증해 주고 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유적들은 테로 치하에 지어진 헤라클레스와 제우스, 헤라, 불카누스, 콩코르드의 신전 유적들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주요 제단인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은 거대한 그리스 신전 중의 하나로, 일반적인 개방형인 주주식(周柱式) 대신 바깥의 도리아 양식 원주와 내부의 벽기둥에 따라 다른 벽으로 둘러싸인 흔치 않은 특징을 갖고 있다. 내부 벽 대신 두 줄로 만들어진 거대한 사각형 기둥이 신전을 떠받치고 있으며 천장은 뚫려 있다.     

콩코르드 신전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의 뒤를 이어 그리스에 현존하는 가장 인상적인 도리아 양식 신전이다. 4층짜리 받침돌(stylobate), 34개의 원주로 이루어진 이 신전은 서기 6세기, 교회로 쓰인 덕분에 최상의 보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헤라 라치니아 신전은 같은 시기에 지어져 콩코르드 신전과 유사한 양식을 갖고 있으며, 옛 그리스 요새의 자취를 아직 살펴볼 수 있는 언덕의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카르타고 인들이 기원전 405년에 불태웠고, 아직도 당시 화재의 흔적이 남아 있다. 헤라클레스 사원은 언덕에 있는 다른 도리아 양식 신전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지하의 신들인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그리고 디오스쿠로이 신전은 기원전 6세기에 지어졌다가 기원전 480년~기원전 460년에 개축되었다.     

이와 같은 탁월한 유산뿐만 아니라 아그리젠토의 헬레니즘 및 로마식 주거 지역이 상당수 발굴되었는데, 얼마간의 주택들에는 잘 보존된 모자이크 형으로 포장된 곳이 있다. 또 언덕과 남쪽 지역에는 방대한 고대 묘지 및 이교도와 기독교 시대의 무덤과 기념물들이 있다. 이른바 테론의 무덤(Tomb of Theron)은 초기 로마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소규모 이오니아식 연단과 같이 그 형식은 소아시아에 뿌리를 둔 그리스 아시아 양식이다. 이 밖에 고지대와 저지대의 아고라, 복잡한 지하 수로망도 특징적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아그리젠토 고고 지구 [Archaeological Area of Agrigento] (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센터(영/불어 원문))



숙소에서 신전의 계곡까지 도보로는 1.5km, 자동차로는 3.2km

우리는 구글맵을 따라 걸어가기로 했다.

지천에 핀 꽃과 올리브 나무들을 따라 걷다 보니 생각보다 빠르게 매표소에 도착했다.

사진으로 보던 도리아식 신전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그곳 역시 아주 나이가 많은 올리브 고목들이 즐비했고 꽤 굵은 선인장과 싸이프러스 나무들도 있었다.




아그리젠토


그곳의 면적은 꽤나 넓고 햇살이 눈부셨지만 더위를 느낄 정도는 아니라 걷는데 별 무리는 없었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

아그리젠토 시가지의 아파트들도 보였다.

올리브밭 사이 어딘가에 있을 우리 집도 찾아보았다.


헤라 신전, 제우스 신전, 콩코르디아 신전들이 차례로 나타날 때마다 사진을 찍고 카페에서 젤라토도 먹으며 천천히 신전을 즐기다 보니 반대 편 출구에 도착했다.




헤라 신전
콩코르디아 신전



콩코르디아는 기원전 440년쯤 지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세계에서 가장 온전하게 남아있는 그리스 신전이라고 한다.

이 신전 앞에는 커다란 청동 조각상이 누워있는데 신전만큼 인기 포토존이다.


'이카루스의 추락'이라는 이 작품은 폴란드의 이고르 미토라이(Igor Mitoraj)가 2011년에 만든 작품이다.

그런데 기원전에 만들어진 신전과 묘하게 어울린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함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시칠리아가 주산지인 피스타치오 젤라토



숙소로 돌아가려면 온 길을 되짚어 다시 걸어가거나 그곳에서 택시를 타야 했다.

되짚어가기엔 너무 무리라 싶어 택시를 기다려보았지만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얼마를 기다리다가 마리오에게 우리가 있는 위치의 사진을 첨부하여 메시지를 보냈다.


'마리오, 부탁이 있어요. 우리는 집에 자동차를 두고 신들의 신전에 왔어요. 이제 돌아가야 하는데 택시가 없네요. 우리가 있는 곳으로 택시를 한 대 보내줄 수 있을까요? 사진은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예요.'






마리오는 득달같이 답장을 보내왔다.


'걱정 말아요. 아빠가 마침 그 지역에 계셔요. 도미니코가 5분 안에 그곳으로 갈 거예요.'


'할렐루야'

이게 웬 행운이야 하며 우리 넷은 주차장 옆 벤치에 쪼르르 앉아있었다.

그리고 채 1분도 되지 않아 어디서 많이 보던 남자가 웃는 얼굴로 우리에게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도미니코였다.

마치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말이다.

구세주 같은 그의 차에 올라탔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도메니코가 물었다.


'신전에 갈 때는 뭐 타고 갔어요?'

'걸어갔지요.'

'아~ 비밀 통로를 발견했군요. 그 길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용케 잘 찾아갔네요.'


우리는 슈퍼 마켓에 가야 하니 그곳에 내려주고 택시 기사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택시를 불러 집으로 가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천천히 장을 보고 나오라며 기다려준 후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와인을 사는 김에 한 병 더 사서 그에게 주었더니 손사래를 치며 쑥스러워하신다.

그리도 누가 봐도 농부의 자동차로 보이는 차 트렁크에서 레몬과 살구를 마구마구 꺼내 주셨다.

살구 껍질을 까서 먹는 방법을 자상하게 보여주면서 씨는 먹으면 안 된다는 당부까지 전했다.


그날 저녁 파티오에서 근사한 저녁 식사를 했다.

고기를 굽고 쌈채소에 와인을 곁들인 풍성한 식사는 별이 뜨도록 이어졌다.

우리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는 올리브 나무 이파리들위에 아름답게 새겨졌으리라 믿는다.


그날의  천사 마리오와 도메니코, '그라찌에 밀레'


파티오에서의 저녁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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