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는 2층 발코니의 선베드에 누워 별을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불 켜진 신전을 바라보기도 했다.
파티오에서 와인을 마시고 올리브 나무 밭을 걷는 시간들은 '신과 함께'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했다.
'여기는 유독 3박이 짧게 느껴지네, 좀 더 오래 머물러도 좋겠어.'
그렇게 영화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한 아그리젠토에서의 시간은 첫날부터 아쉬움이 손을 내밀었다.
함께 여행을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각각의 업무들이 정해지곤 한다.
이번 여행의 경우를 살펴보면,
여행의 계획과 예약, 호스트와의 연락 등 전반적인 일정을 총괄하는 이른바 대표인 나.
우리의 든든한 주치의 역할을 하는 의료부 J, 운전과 내비게이션 담당하는 교통부(J와 나), 숙소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전자 제품인 오븐, 세탁기, 인덕션 등 작동을 담당하는 설비부(LJ), 메뉴와 식사를 총괄하는 요리부(D, LJ), 외식, 장보기, 티켓 구매하기 등을 담당하는 총무부(D, LJ), 그 외에도 조명부(나), 통역부(영어는 기본, 예정된 여행지가 바뀔 때마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태리어를 단기 학습으로 해결사가 되어주는 LJ), 귀엽고 재미있는 포즈와 깨발랄한 댄스로 우리를 웃음 지옥에 빠트리는 친구 J.
스마트폰 촬영 담당 LJ, 카메라 사진 담당 나,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열쇠부가 있다.
유럽은 지금도 거의 대부분 열쇠를 사용하다.
지금까지 스마트록을 사용하는 집은 두 세 곳에 불과했다.
한 개도 아니고 두 개, 세 개를 따야 비로소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열쇠의 무게도 만만찮다.
게다가 아주 옛날에 만들어진 정교한 열쇠들이 많아서 한 번에 열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벨기에에 3년 동안 살았던 D는 어느 문이든가 척척 열어낸다.
우리의 듬직한 열쇠 담당이다.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새로 만드는 가격이 어마어마할 뿐 아니라 아주 오래된 만들어진 열쇠는 다시 만드는 게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여행자가 파리에서 장기체류를 하던 중 열쇠를 잃어버렸다.
여분의 열쇠가 없었고 열쇠 수리공이 딸 수도 없는 옛날 문이라 뜯어내고 들어가는 방법 밖에 없었다.
업자를 부르고 문을 뜯는다 쳐도 일주일을 족히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사다리차를 불러 창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경비가 들어간 건 말할 것도 없다.
이번 여행에 한 가지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다.
매일 요리담당이 메뉴를 정하고 준비하여 아침 식사를 했는데 그걸 없애기로 했다.
각자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메뉴로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스템에 모두 만족도가 높았다.
터키인의 계단(Scala dei Turchi)에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택시 기사는 까르메로, 전형적인 이태리 가이였다.
터키인의 계단에 갔다가 아그리젠토의 중심가에 들러 점심을 먹고 숙소까지 돌아오는 조건이다.
일반 승용차가 아닌 우리가 렌트한 차와 같은 9인승 밴이었다.
뭐~ 그건 괜찮다.
자동차 문이 닫히자마자 온몸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차 한 대 지나기도 비좁은 그 시골길을 우당탕탕 달리기 시작하더니 무슨 F4경주에 참가한 자동차처럼 질주를 시작했다.
아슬아슬한 추월은 물론이고 급 브레이크도 서슴지 않았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자동차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광경을 빠짐없이 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잦은 통화도 서슴지 않았다.
말은 또 얼마나 빠른지 마치 빨리 감기처럼 느껴진다.
'초초, 초초'
통화가 끝날 때마다 그는 초초라는 말을 반복했다.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인 차오차오를 빠르게 말하다 보니 '초초'로 들린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가 속도에 대해 두려워한다는 걸 눈치챘는지 이렇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나는 베스트 드라이버라고요.'
이윽고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언덕 위에 차가 멈췄다.
차에서 내리는데 몸이 경직되어 다리가 잘 펴지질 않았다.
약 14km 남짓한 거리를 달려왔을 뿐인데 말이다.
멀리 터키인의 계단이 내려다 보이는 뷰 포인트였다.
터키인의 계단은 레알몬테 해안에 있는 절벽이다.
안드레아 카밀레이의 탐정 소설 시리즈에 언급되면서 명소가 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이라 하얀색으로 보이며 계단 모양이다.
터키인의 계단에는 사람이 직접 올라갈 수 있었는데 2020년에 한 관광객이 석회암을 깨는 등 점점 훼손이 심해지자 폐쇄시켜서 지금은 들어갈 수 없다.
사진 몇 장을 찍은 후 다시 올라왔던 도로를 내려가 해변으로 통하는 길목에 내려 주었다.
그리고 한 시간 후에 만나 점심 식사할 곳으로 태워다 준다고 하곤 쌩 하니 가버렸다.
하얀 터키인의 계단이 가깝게 보였다.
그러나 그곳이 보이는 만큼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저기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여기서 놀자.'
푸른 바다, 하얀 구름, 맑은 햇살, 그 사이에 춤추는 우리들의 깔깔거림 그렇게 시간을 즐겼다.
사진을 찍다가 바위틈에 고인 물웅덩이에 J의 한쪽 발이 빠진 듯했다.
'어머, 어떡해. 빠진 거지?'
'아, 빠졌나?, 그러네 빠졌네.'
이 대화가 크게 웃을 만큼 재미있거나 웃기는 내용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위에 쪼르르 앉아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묘하게 천진난만하면서 어리숙한 느낌이 나는 J의 억양과 말투 때문이다.
60세가 훌쩍 넘었지만 나이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마음은 아직도 청춘' 이런 식상한 표현도 맘에 들지 않는다 .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애석해하거나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두려움이나 아쉬움도 없다.
나이는 물리적인 시간의 길이일 뿐이라 여기면 편하다.
그저 내 생각이다.
터키인의 계단으로 가는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
해변 카페
지금은 터키인의 계단으로 들어갈 수 없다.
다시 카르메로의 차를 타고 아그리젠토 중심가를 향해 달렸다.
그곳 역시 지형이 특이한 고지대라 도로는 대부분 교각을 세워 만든 고가도로였다.
그날은 마침 일요일이라 상가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
레스토랑 역시 그렇다는 걸 알기에 미리 숙소에서 검색하여 영업하는 곳 중 평점이 괜찮은 곳을 찜해 두었다.
레스토랑 앞에 우리를 내려준 후 기사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에 메시지를 보내면 다시 오겠다면서 또다시 급히 어디론가 떠났다.
아그리젠토 고가도로
아그리젠토
한쪽 발코니가 바다를 향하고 있는 레스토랑 Matra는 아직 오픈 전이었다.
예약을 할까 하다가 시가지를 둘러보다가 마땅치 않으면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
보통의 여행자들은 신들의 계곡과 터키인의 계단만 들르기 때문에 거리에 여행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픈한 상점이 없어 거리는 한산했고 특별할 것 없는 시가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문을 연 음식점이 군데군데 있었지만 우리의 관심을 받을만한 곳은 없었다.
그러다가 오래되었을법한 작은 빵집을 발견했다.
내부가 협소해 보여서 J와 LJ 둘이 들어가 디저트를 사가지고 왔다.
앙증맞은 라즈베리와 클랜 베리가 올려진 타르트와 피스타치오 크림이 들어있는 작은 빵은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예쁘다.
'길가에 앉아서 얼굴 마주보며 지나가는 사람들 우릴 쳐다보네'
옛날노래처럼 그야말로 길가에 앉아서 달콤한 디저트를 먹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이 딱 맞았다.
그렇게 거리에 앉아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데 지나가던 중년 부부인듯한 남녀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불쑥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자처하셨다.
부인은 흐뭇한 미소로 곁에서 바라보셨다.
아저씨는 나름 가로로, 세로로 폰의 위치를 바꾸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 주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괜찮은 레스토랑을 찾지 못하고 다시 Matra로 돌아갔을 때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깔라마리 등 해산물 위주로 주문을 하여 화이트 와인 작은 병을 주문했는데 풍미가 좋아서 아주 만족했다.
그 후 마트에 갈 때마다 시칠리아 지도가 그려진 그 와인을 사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찾지 못했다.
시칠리아를 떠나던 날, 팔레르모 공항에서 찾을 수 있었다.
Marta lunch
마리오 가족이 농사지어 만든 올리브유가 주방 한편에 놓여있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판매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몇 병이고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게다가 가격도 무척 저렴했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여정이 길기에 포기해야만 했다.
아그리젠토를 떠나는 날,
아쉬움이 클수록 다시 돌아갈 이유도 커지는 법이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언제나처럼 집안 구석구석 말끔히 정리하고 마치 그곳에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을 없앴다.
첫날 그곳에 도착할 때 그렇게도 좁고 힘들던 흙길은 더 이상 좁지도 울퉁거리지 않았다.
그 길이 이렇게 짧았던가 싶게 어느새 매끈한 아스팔트 위를 달리고 있었다.
Marco 농장 올리브유
정겨운 농가 주방
그날의 목적지는 시라쿠사의 오르티지아 섬,
가는 도중에 라구사에 들러가기로 했다.
주유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잠시 휴식을 한 후에 주유를 하고 있었다.
얼굴이 작고 동그란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허름한 점퍼를 입었고 키는 150cm가 채 되어 보이지 않는다.
체격은 작지만 다부져보였다.
그는 수줍게 미소지으며 본인의 머리통만한 동그란 멜론이 들려있는 두 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순간 나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노 땡큐'
멜론을 사라는 뜻으로 여긴 것이다.
그리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니 LJ가 그 멜론 두 개를 들고 있는 게 아닌가?
'글쎄 저 아저씨가 이걸 선물로 주셨어.'
순간 그를 멜론 장사로 오해한 나 자신이 민망했다.
그가 내게 한마디 말을 건넨 것도 아닌데
그저 멜론을 주겠다는 몸짓을 한 것 뿐이었는데...
순수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자책할 겨를도 없이 가방을 뒤졌다.
그리고 작고 앙증맞은 분홍색 버선이 매달려 있는 전통 매듭 고리를 하나 찾아서 아저씨께 건넸다.
멜론 아저씨는 여전히 순하고 수줍은 얼굴로 사양하셔서 겨우 드릴 수 있었다.
그 지역이 멜론 주산지인지 길거리에는 멜론을 판매하는 차량이나 가판대를 흔히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