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피치 스케치(관람 팁)
15. Firenze, Uffizi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명한 미술관이나 박물관 중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아예 들어갈 수 없는 곳도 많다.
날짜는 물론이고 시간까지 정해야 한다.
우피치 미술관의 첫 타임은 08:15~08:30
온라인에서 예약한 바우처를 보여주면 티켓으로 교환해 준다.
나는 당연히 첫 타임으로 예약했다.
어디든 일찍 가야 한가하다.
미술관은 특히 그렇다.
한가로울 때 그림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우피치(uffizi)는 사무실이라는 뜻이다.
피렌체 최고의 세도가였던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1세 메디치가 사법기관 관료들의 관청사 용도로 지은 건물이다.
두 개의 긴 건물이 복도로 이어진 'ㄷ'자형의 우피치 미술관은 화가이며 건축가이자 뛰어난 저술가인 조르조 바사리가 설계하고 내부 장식까지 총 감독 했다.
바사리는 코시모 1세의 명에 따라 우피치 건물과 아르노 강 건너 대공의 저택인 피티 궁전까지 잇는 약 800미터 길이의 통로도 만들었다.
이 통로는 바사리가 지었다 해서 바사리 회랑이라고도 부른다.
나는 시간 여유를 충분히 두고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숙소에서 우피치까지 도보로 20분이면 충분한데 7시도 안 돼서 집을 나섰다.
새벽 산책을 좋아하니까 사진도 찍을 겸 일찍 나선 것이다.
내가 묵는 숙소는 피렌체의 모든 명소들이 있는 곳과 동떨어진 아르노 강 건너편에 있다.
그러므로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가장 가까운 곳이 베키오 다리이다.
강을 따라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베키오 다리에 다다랐다.
원래 베키오 다리 위에는 푸줏간들이 즐비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1세가 피티 궁전으로 이어지는 회랑이 지나는 다리 위의 푸줏간을 모두 없애고, 보석 가게로 채웠고 현재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새벽 시간이라 오래된 나무 덧문들로 닫혀 있다.
내게는 그 나무 덧문들의 서로 다른 색깔과 나뭇결, 그리고 세월을 담고 있는 두툼한 자물쇠들이 번쩍이는 보석이나 금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실 베키오는 다른 다리에서 바라보는 게 더 아름답다.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처음 만난 베키오 다리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지금부터 700년 전이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평생 두 번 밖에 만나지 못했다.
단테는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영원한 구원의 여신상으로 쓰는 교두보로 여긴 것 같이 생각된다.
단테의 신곡은 천국, 연옥, 지옥의 세 편으로 나뉘는데 등장인물이 무려 900명이 넘는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인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단테의 신곡과 일맥상통한다.
그뿐 아니라 리스트는 단테 소나타를 작곡했고 많은 화가들이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만약 아버지가 나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베키오 다리에서 아르노 강으로 떨어져 죽고 말겠어요.'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에 나오는 아리아'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 중 한 대목이다.
극 중 여주인공 라우레타는 아버지 잔니 스키키에게 연인 리누치오와의 결혼을 허락받고자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한다.
절절한 노랫말에 감동한 관객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곤 한다.
'사는 게 뭐 다 그렇지'라고 치부하기엔 인생이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되는 장면이다.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도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베키오 다리를 건넜다.
'Oh Mio Bambino Caro~'
베키오 다리 우피치 미술관 벽에 남아있는 조각상, 조국의 아버지라 불린 코지모 메디치와 로렌초 일 마니피코
우피치에 도착하니 8시, 티켓을 교환해 주는 오피스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몇몇 사람 외에 주변은 한산하고 조용하다.
검색대에서 소지품 검사를 마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는 곧장 3층까지 계단으로 이어진다.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은 메디치 가문의 수집품을 소장한 곳이다.
즉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르네상스의 문을 연 조토부터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부터 새로운 화풍을 정립한 카라바조까지 당대 최고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인 아들들은 물론이요, 딸 안나 마리아 루이사 역시 끝내 자식을 낳지 못했다.
안나는 메디치 가가 소장하고 있던 모든 예술품을 '피렌체 밖으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피렌체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1743년에 사망했다.
이로써 메디치 가는 피렌체인들의 열렬한 애도 속에 긴 역사의 막을 내린다.
또한 우피치 미술관은 오늘날의 미술 작품 배치의 원칙을 세웠고, 관람객들을 위해 작품에 이름표를 단 최초의 미술관이기도 하다.
7년 전 우피치에 갔을 때는 소장된 작품에 대한 사전 준비가 부족하기도 했고 복원 중인 방도 있어서 못 보고 지나간 작품이 많아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
그러므로 이번엔 보고 싶은 그림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우피치 미술관은 총 45개의 방에 작품들이 나뉘어 있다.
일단 3층에 도착하면 기다란 복도와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 컬러의 천장화와 조각상들이 죽 늘어서있다.
그리고 복도의 한쪽으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 방들이 있다.
역시 이른 아침이라 한적하다.
내가 원하는 그림들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 나섰다.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서 사진을 찍기가 어렵거나 하는 불편함은 전혀 없다.
느긋하게 그림을 보고 싶은 만큼 서두르지 않고 볼 수 있어 만족했다.
비교적 많이 알려진 작품과 화가들의 그림이 있는 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번: 고문서.
2번: 조토와 13세기.
3번: 14세기 시에나 회화.
4번: 14세기 피렌체 회화.
5-6번: 고딕 양식 회화.
7번: 초기 르네상스.
8번: 프라 필리포 리피.
9번: 폴라이오로.
10-14번: 보티첼리.
15번: 레오나르도 다빈치.
16번: 지도.
18번: 트리뷰나
19번: 페루 지니, 시뇨렐리.
20번: 독일 르네상스 회화(뒤러).
21번: 15세기 베네치아 화가(벨리니, 조르조네, 카르파초).
23번: 코레조.
24번: 축소 모형.
25번: 미켈란젤로와 피렌체 파.
26번: 라파엘로.
28번: 티치아노.
31번: 베로네세.
32번: 틴토레토.
41번: 루벤스, 반다이크.
42번: 니오베.
43번: 카라바조와 17세기 이탈리아.
44번: 17세기 네덜란드(렘브란트).
45번: 18세기 유럽 회화.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화'(1448년) 단테 알리기에리 초상 -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
보티첼리가 신화를 주제로 그린 최초의 작품인 '라 프리마베라'(1482년)는 이탈리아어로 '봄'을 뜻한다.
미의 여신인 비너스를 중심으로 꽃의 여신이 플로라, 사랑의 신인 큐피드가 꽃이 활짝 핀 정원에서 즐겁게 노닐고 있는 장면이다.
보티첼리의 또 하나의 명작 중에 하나인 '비너스의 탄생'(1485년) 역시 미술책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미의 여신인 비너스가 바다에서 탄생해 육지에 도착하는 순간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바다의 신 넵튠이 내준 거대한 조개배를 타고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비너스, 오른쪽에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비너스를 가릴 옷을 들고 있고 왼쪽에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클로리스가 바람을 일으켜 비너스를 육지로 밀어내고 있다.
보티첼리 - '라 프리마베라'(1482년) 보티첼리 - '비너스의 탄생'(1485년)
조토 - 오니산티 마돈나
우피치를 완성한 건축가 부온탈렌티가 설계한 프리뷰나의 방은 들어갈 수는 없고 밖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치밀한 화려함이 작은 궁전 같다.
복원 후 대리석 바닥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18세기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 고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를 배워오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했었는데 그중 우피치 미술관은 반드시 들러야 하는 장소가 되었다.
수많은 전시실 중에서 이 트리뷰나는 우피치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을 모아두는 상징과 같은 공간이었다.
그때 그곳에 있던 작품들 대부분은 현재 다른 전시실로 옮겨졌지만 그 상징성은 여전하다.
공간 자체만으로도 여느 작품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천국과 가장 가까운 숫자 8을 모티브로 하여 방의 모양은 팔각형이고, 방의 요소들은 우주를 상징하고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바닥은 땅, 붉은 천으로 만든 벽은 불, 자개와 조가비 장식으로 이루어진 천장은 물, 외부에서만 볼 수 있는 돔 외부 공간은 바람을 상징한다고 한다.
'트리뷰나(Tribuna)의 방'
정면의 조각상은 메디치의 비너스(Venus de Medici)'라고 불린다.
기원전 2세기경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원작을 로마시대에 모각한 것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의 모델이라고 한다.
트리뷰나의 방 천장
복도의 한쪽은 유리창이기 때문에 간간히 밖을 내다볼 수 있다.
두오모의 쿠폴라, 아르노 강과 베키오 다리들이 보인다.
군데군데 의자가 있어서 다리가 아프면 잠시 앉아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방법이다.
단 한가한 시간이라야 가능하다.
우피치에 간다고 하니 대니얼이 리피를 아느냐고 물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리피는 본인이 좋아하는 화가라면서 기회가 되면 그의 그림을 꼭 찾아보라고 했다.
그렇게 기억에 두고 있긴 했었다.
그런데 내가 찾고 있던 그림을 발견하고 화가 이름을 확인하니 그게 바로 리피의 작품이었다.
내가 궁금해했던 작품은 우피치 미술관 티켓에 새겨져 있던 그림이다.
반갑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참회자 제롬'이라는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리피는 대니얼 덕에 뜻밖에 얻는 소득이었다.
티켓에 있던 그림, 프라 필리포 리피 - 성모자상 프라 필리포 리피 - 참회자 제롬 참회자 제롬을 세부적으로 찍은 사진 프라 필리포 리피 - 아기의 숭배 프라 필리포 리피 - 마기의 숭배
'수태고지'라는 제목의 그림은 전 세계 어느 미술관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그만큼 수태고지를 그린 화가들이 많다는 뜻이다.
수태고지는 "알리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아눈티아렌(annuntisre)에서 유래한 고유명사이다.
신약성서의 예수 탄생의 일화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그리스도 잉태를 예고한 것을 가리키는 뜻이다.
쉽게 말해서 수태를 고지하다. 즉 '임신을 알리다'라는 뜻이다.
우피치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가 있다.
보통의 수태고지 속 마리아는 어리둥절하고 두려움 섞인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속의 마리아는 너무도 당당하고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다.
심지어 태연하게 성경을 넘기고 있는 손짓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성경 속 글씨가 놀랍도록 디테일하게 그려놓았다.
그런데 이는 실제 성경 속 수태고지에 관련한 말씀을 기록한 누가복음 1장 26∼38절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놀라운 건 또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52년에 태어났는데 이 그림이 그려진 것은 1472년, 즉 그가 스무 살 때 그렸다는 거다.
반면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의 마리아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이미 머리 주위로 펼쳐진 원광이 마리아가 예수를 수태했음을 알리고 있지만 마리아의 표정과 몸짓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수태고지'(1472년) 오른손이 짚고 있는 성경의 내용이 디테일하게 보이는 그림 마리아가 짚고 있는 성경 문구의 디테일 시모네 마르티니 - 수태고지(1333년) 레오나르도 다빈치 - 동방박사의 경배(미완성 작품) (좌) 한스 발동의 '아담과 이브', (우)르카 크라나흐의 '아담과 이브'
커피 한 잔이 생각날 무렵, 3층 끝에서 카페를 발견했다.
카페의 이름은 카페테리아 바르톨리니(Caffetteria Bartolini), 조각가인 바르톨리니의 이름을 쓰고 있었다.
건물 안쪽에는 바가 있고 테라스로 나가면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카페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테라스로 나가는 문을 막 오픈하는 찰나였다.
우연히 내가 그곳에 도착한 시간이 곧 오픈 시간인 9시 30분이었다.
역시 럭키...
베키오궁과 두오모, 조토의 종탑이 좀 더 높은 위치에서 보이기 때문에 뷰가 좋다.
아직은 다정한 햇살과 적당한 바람이 싱그러운 오전이었다.
좋은 그림을 보고 르네상스의 꽃을 피워준 메디치 가문의 사무실 한쪽에 앉아 고소한 크루아상을 한 겹씩 뜯어먹으며 마시는 카푸치노 한 잔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내가 카페를 나올 무렵에는 테라스의 좌석이 거의 가득 찼다.
카페테라스 테라스에서 보이는 베키오 궁
두오모의 쿠폴라와 조토의 종탑도 보인다. 파르미자니노 - 목이 긴 성모
티치아노 - '우르비노의 비너스'
25번 방에는 현존하는 미켈란젤로의 유일한 회화 작품인 '톤도 도니(Tondo Doni)'를 볼 수 있다.
둥근 원형의 금속 틀 안에 그려진 이 작품은 피렌체의 거상 아뇰로 도니와 그의 아내가 딸 마리아의 출생 기념으로 주문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6번 방에는 라파엘로(Raphael)의 '도요새와 있는 성모(Madonna of the Goldfinch)', 28번 전시실에서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Venus of Urbino)] 등 16세기의 대작들을 만날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유일한 회화 - 도니 톤도(성 가족) 라파엘로 - 오색방울새의 성모
많은 화가들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라는 제목의 그림을 남겼다.
그중 아르케미시아 젠틀리스키와 카라바조의 작품이 유명하다.
유디트는 이스라엘 베툴리아 마을의 과부로 적진에 뛰어들어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인, 그 목을 잘라가지고 돌아온 이스라엘 구국의 영웅이다.
유디트는 용모가 아름다웠고 먼저 사망한 남편은 그녀에게 많은 재산을 남겼다.
아시리아의 대장군 '홀로페르네스'는 유다(Judae)를 정복하려고 보병 12만 명과 궁병 1만 2천 명을 이끌고 원정에 나서 바빌론 인근 평야 전체와 부족들을 정복하고 베툴리아를 공격한다.
홀로페르네스가 물 공급을 차단하여 34일 동안 포위당한 이스라엘인들은 기근과 갈증으로 항복의 위기로 치달았다.
그때 유디트는 시녀와 적진으로 가서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였다.
포도주로 만취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유디트는 그의 목을 성벽에 걸어 놓았다.
아시리아 군대는 혼란에 빠져 모두 달아나고 유디트는 베툴리아에서 존경을 받으며 105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우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
바쿠스는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의 오랜 후원자였던 추기경이 그의 친구인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에게 선물할 목적으로 주문한 작품이다.
카라바조는 이상화된 신의 모습을 거부하고, 실제 인물을 모델로 그려 새로운 바쿠스의 모습을 나타냈다.
어깨에 드레이퍼를 걸치고 포도와 잎사귀로 엮은 왕관을 쓴 바쿠스는 영락없는 여린 소년의 모습이다.
술을 얼근하게 마셨는지 얼굴이 발그스레하다.
그림의 전경에 놓인 포도주병과 포도와 과일이 가득 담긴 바구니는 바쿠스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전통적인 모티브이다.
카라바조 - 바쿠스
메두사는 뱀을 상징하며 여왕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 혹은 괴물로, 고르고네스 3 자매 중 하나이다.
메두사의 얼굴은 너무나 무시무시해 사람들이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돌로 변해버린다는 전설이 있다.
메디치 가의 로마 대리인이었던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 추기경이 의식용 방패로 <메두사의 머리>를 주문했다.
그리고 1601년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드 1세 데 메디치에게 선물로 증정되었다.
이 그림에서 독특한 점을 발견했다.
정면에서 보던 왼쪽, 오른쪽,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날카롭게 소리치나 들리지 않는 잘린 머리의 침묵,
죽었으되 아직 완전히 사하지 않고, 썩어가며 부풀어 오르는 푸르스름한 살갗과 눈동자.
메두사의 머리에는 지나간 죽음의 사건, 머리가 잘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들리지 않는' 날카로운 비명을 통해 형상화돼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의 메두사는 작가인 카라바조 자신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카라바조 - 메두사
거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44번 방에서는 렘브란트의 여러 자화상을 볼 수 있다.
모든 게 만족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공간에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싶은 만큼 보았다.
밖으로 나오니 극장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쏟아지는 빛 같은 어색한 풍경이 펼쳐졌다.
우피치 주변은 물론이고 베키오 궁전이 있는 시뇨리아 광장, 산타 마리아 크로체 성당 앞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천막에 고무로 만들어진 풍선 가드레일 등은 주변의 아름다운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이 있는 풍경을 제대로 망치고 있었다.
게다가 어떤 행사가 벌어지는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가슴에는 2023 Dee Jay라고 쓰여있었다.
그것은 라디오 방송국인 라디오 디제이가 주최하는 매우 기대되는 스포츠 행사였다.
아침 9시에 Lungarno della Zecca Vecchia를 출발하여 Magliabechian을 경유하여 도착하는데
5km는 산타 크로체 광장으로, 10km는 두오모 광장으로 도착하는 거였다.
그러니까 달리기를 마친 사람들이 아직 광장을 떠나지 않고 있어 더욱 혼잡함이 빚어진 것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스탕달은 피렌체를 여행하던 중 산타 크로체 성당에 들어갔다
그곳의 위대한 예술 작품에 감동한 나머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의 현기증을 느꼈다고 한다.
거기서 유래한 말이 바로 '스탕달 신드롬'이라 한다.
마치 스탕달 신드롬이 일어난듯 어지러웠다
우피치라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듯 머리가 복잡했다.
나의 에너지가 슬금슬금 빠져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면서 생각이 정지했다.
'도망가자'
발걸음은 이미 집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베키오 다리 역시 사람들로 빼곡하다.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했다.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있는 피티 궁전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니 비로소 한적했다.
저 멀리 재스민 꽃이 피어있는 149번지 내 숙소의 담장이 보였다.
비로소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산타 클로체 성당 앞 천막과 사람들 DEE JAY에 참가한 사람들 사람들이 가득 찬 베키오 다리 피티 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