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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n 27. 2023

90초를 위한 1년의 기다림

16. Siena







오르비에초, 아씨시, 시에나, 피엔차, 아레초

이름이 부드럽고 정겨운 도시들이  많다.

기차를 타고 시에나로 갈 예정이다.

그곳에 가면 분명 하루 종일 걷게 될 것을 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역까지 버스를 타려고 타바키에서 1.5유로짜리 버스표 2장을 샀다.



피렌체 버스 티켓



버스가 익숙한 성당 옆을 지나가고 있다.

이제 내려야 한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신성한 마리아의 새로운 성당이라는 뜻이다.

키가 작으니 꽃송이도 작을 수밖에 없는 분홍색 아기 장미꽃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른 아침의 성당 앞 광장은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처럼 휑하다.

그린과 화이트의 대리석 조각으로 만들어진 성당의 파사드가 데칼코마니처럼 아름다웠다.

아무도 없는 벤치에 앉아 성당을 바라보다가 길을 건넜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두오모에 잠깐 다녀와도 되지 싶었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 앞에는 2개 노선의 트램이 다닌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흔히 두오모라고 부르는 피렌체 성당의 정식 이름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로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다.

대부분 도시마다 여러 개의 성당이 있는데, 두오모는 그중 가장 대표적인 성당에 붙는 이름이다.


피렌체의 두오모를 처음 보러 가던 날의 내 발걸음은 무척이나 빨랐다.

그날의 기록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심장 박동은 자꾸만 박자를 잃고 헛디뎠다.

나의 정신이 알 수 없는 또 다른 음계로 올라가고 있었다.

어떤 신도 두오모를 껴안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색과 분홍색의 대리석이 순한 짐승처럼 서로 깍지를 끼고 생의 한 일정을 지나왔을 터였다.

돌과 돌 사이에 끼어 한 없이 견뎌온 세월이 성당의 숨소리처럼 느껴졌다.

두오모는 조토의 종탑과, 산 조반니 세례당을 아들과 딸처럼 껴안고 있었다.           

동상의 어깨 위로 동상의 어깨 위로, 광장의 돌 위로 떨어지는 비는 공기를 흔들며 적시고 있다.

사르륵사르륵 끊임없이 들리는 희미한 빗소리에 시간도 장소도 형태를 빼앗기고 있었다.

그 풍경이 아름다웠다.



피렌체 두오모





두오모 주변 역시 여행자들은 거의 없었다.

영업을 준비하는 주변 레스토랑 앞에는 배달 트럭들이 서있고 청소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아직 햇살이 비추지 않아 거대한 두오모는 본연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당당한 풍채가 멋스러웠다.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이 열린 카페로 들어갔다.

크루아상과 커피를 마시며 창밖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다.

더없이 한가하고 더없이 평화로운 시간이다.

 





거울 보며 찍은 필자



10시 30분, 시에나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행처럼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으로 물 흐르듯 움직였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냥 따라가면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길을 건너 맞은편에 있는 쇼핑몰로 들어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그렇게 에스컬레이터는 계속 이어졌다.

쇼핑몰의 건물 밖으로 나가니 또다시 에스컬레이터와 오토 워크가 또 계속 이어진다.

홍콩의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연상시켰다.

그렇게 약 10분 정도 오른 듯하다.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자연스레 왼쪽 길로 걸어갔다.

그들을 따라 얼마쯤 걷다 보니 성벽의 문이 보였다.


여행서에는 시에나의 역에서 구시가까지 거리가 멀고 오르막이라 버스를 타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우연찮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시에나 역


에스컬레이터가 끝나는 곳까지 계속 타고 올라간다.
성문


여러 중세 도시들을 다녀봤지만 시에나는 유난히 적벽돌로 지은 집들이 많아 전체적으로 붉은 기운이 돈다.

상점들의 유리창으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상품들만 없었으면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 들겠다 싶다.

그도 그럴법한 것이 16세기 이후에 성벽 안쪽으로 그 어떠한 건축물도 새로 들어선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성벽 안쪽의 건물은 적어도 500년이 넘었다는 뜻이다.


하얀 대리석 건물이 있는 작은 광장에 이르니 어떤 동상 앞에서 단체 여행자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동상의 주인공은 세계 최초로 자유 경제 이론을 만들었던 살루티우스로 현대 은행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뒤쪽에 있는 건물이 세계 최초의 은행이란다.


그 옆 건물 앞에 독특한 동상이 있다.  

아기 둘이 어떤 동물의 젖을 빨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즉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 쌍둥이가 늑대 젖을 먹고 자랐음을 기리는 동상이라고 한다.


시에나는 로마제국을 건국한 로물루스의 조카가 세운 도시이자 피렌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강한 도시국가였다.

'작은 로마'라고 불릴 정도로 민주주의와 행정조직이 발달했던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서려 있다.

그 후로도 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늑대의 젖을 빨고 있는 아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림베니 광장, 살루스티오 반디니 동상
아기 둘이 늑대 젖을 빨고 있는 동상






나는 기념품 샵에서 판매하는 엽서들의 사진을 유심히 보는 습관이 있다.

최고의 솜씨로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면 그 지역을 대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구도로 찍으면 좋은지 들을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엽서가 아니더라도 벽에 붙은 낡은 사진이나 뜯겨나간 벽보들도 좋은 아이템들이 되곤 한다.


한 잡화점 옆에 내 시선을 붙잡는 낡은 사진이 있었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는 캄포 광장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인데 무척 역동적이다.

시에나를 대표하는 곳인 캄포 광장과 두오모는 이미 책에서 보았기에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마 전통적으로 매년 열리는 행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캄포 광장에 도착했다.








한눈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큰 규모의 캄포 광장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광장은 붉은 벽돌의 건축물인 푸블리코 궁전과 만자의 탑이 중심을 잡고 있다.

햇살은 선글라스를 뚫고 들어올 기세로 맹렬하다.

한 바퀴를 돌아보고 아치가 있는 곳의 그늘 계단으로 가서 털썩 앉았다.


캄포 광장은 어찌 보면 조개껍데기 모양이고 어찌 보면 부챗살 같기도 하다.

바닥에 9개로 나뉜 구역은 광장을 조성한 의회를 상징하며 부채꼴 모양은 마리아의 망토처럼 관용을 뜻한다. 종루와 마주 보는 가이아 분수에서는 500년 동안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했다.

캄포 광장의 바닥은 평평하지 않고 가리비처럼 기울어져 있다.

비가 오면 기울어진 바닥을 타고 부채꼴 중심에 있는 하수도로 처리된다.

광장은 투우 경기를 금지한 이후 경마 경주를 하거나 행사장 또는 사형장으로 사용되었다.


계단에 앉아 사진에서 본 캄포 광장의 경마가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그것은 매년 벌어지는 시에나의 가장 큰 축제 행사인 팔리오(Palio)였다.


팔리오는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깃발을 의미하며, 이는 자줏빛 비단 망토를 가리키는 중세 라틴어 팔리움(Pallium)에서 유래했다.

중세 자치구 시대에는 황제나 영주들이 하급 신분의 사람들에게 권한을 넘겨줄 때 망토를 양도했다.

축제에서는 우승 자치구에 승리의 영광을 상징하는 깃발을 포상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이것이 축제를 대표하는 명칭으로 굳어져 팔리오 축제 또는 팔리오 경주라고 불리게 됐다.

팔리오 축제는 경마 경기뿐 아니라 경기 전 준비 과정과 대회 기간 동안 열리는 거리 행렬 등 부대 행사를 포함하면서 점차 큰 축제로 발전했다.     


축제 때는 팔리오 경마 대회에 출전하는 기수는 물론, 이들을 응원하는 관람객과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 자기가 속한 콘트라다의 색깔로 옷을 입고 고유 문양이 그려진 깃발을 든다.


1656년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 방문(Visitation) 축일’ 축제 기간인 7월 2일에 개최된 대회에서 오늘날처럼 D자 모양의 캄포 광장을 세 바퀴 도는 원형 경주(Palio alla tonda, 팔리오 알라 톤다)로 바뀌었다.    

 

1701년에는 성모승천 대축일 축제의 일환으로 8월 16일 팔리오 경주가 추가됐다.

시에나 팔리오 경주는 이탈리아 전역으로 생중계된다.     


경주 나흘 전, 캄포 광장에는 흙을 두껍게 깔아서 경주용 트랙을 마련한다.

트랙 주위와 광장 주변의 건물, 상점 등의 창가, 발코니, 로지아 등에 설치되는 관람석은 모두 3만 3천 석 정도로, 이들 좌석은 사전에 예약이 끝나버린다.

광장 중앙에 2만 8천여 명이 서서 경주를 구경할 수 있지만, 이들을 모두 합쳐도 경주를 보러 몰려드는 사람들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경주 당일이 되면 광장이 바라다보이는 집과 건물의 지붕, 탑, 옥상 등에도 관람객이 빼곡히 들어찬다.


과연 팔리오가 열리는 캄포 광장의 티켓은 얼마일까 궁금하여 2023년 7월 2일 열리는 팔리오를 검색했다.

티켓은 좌석이 있는 발코니와 스탠딩 등 등급이 여러 가지였는데 그 금액이 상상을 초월한다.

가장 비싼 좌석은 스타트 라인이 보이는 발코니석으로 620유로, 한화로 88만 원이 넘는다.

중요한 건 경주는 단 90초면 끝난다는 것이다.

 

경주가 끝나면 우승한 기수는 직사각형 모양의 천에 성모 마리아 상이 장식된 우승 깃발을 받는다.

드라팔로네(Drappellone)로 불리는 우승 깃발은 해마다 다른 예술가들이 깃발을 디자인한다고 한다.

그 기수가 속한 콘트라다의 주민들은 아기 우유병에 포도주를 넣어 마시면서 성모 마리아에게 축복을 기원하며 시가행진을 벌인다.


우승한 콘트라다는 다른 콘트라다에게 위로금을 나누어주고, 우승하지 못한 콘트라다의 주민들은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승리한 콘트라다 주민에게 선물을 건넨다.

500년간 건물을 신축하지 않은 채 올드 타운을 지켜온 시에나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일이구나 싶다.



우연히 찍은 사진이 알고 보니 팔리오 우승 깃발 모음


   

경주는 다소 공격적이어도 묵인되며, 안장 없이 말을 타고 달리기 때문에 기수가 낙마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광장의 경주로를 세 바퀴 돌고 기수와 상관없이 말이 결승선을 들어오는 것을 기준으로 우승이 결정되며, 기수를 잃고 말이 혼자 돌아와도 우승을 인정한다고 한다.


일단 말이 달리기 시작하면 광장은 한순간에 폭발하는 사람들의 열기와 환호로 절정에 이른다.

지나친 흥분 때문에 경주 후에 콘트라다끼리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경찰은 개입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이러한 난장 또한 축제의 오랜 전통이기 때문이다.     



잠시 눈을 감고 그 광경을 상상해 보았다.

만자의 탑에서 종이 울리면 경주에 참가하는 콘트라다의 기수들과 중세풍 복장을 한 행렬이 깃발을 앞세우고 등장한다.

나팔수, 북 치는 사람, 군악대, 팔리오를 덮은 말과 기수들이 행진을 시작한다.

경주가 시작된다.

말이 달림과 동시에 광장의 열기는 절정에 이른다.

깃발을 들고 돌진하듯 트랙을 도는 말과 기수들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각 콘트라다의 깃발이 휘날리고, 말이 트랙을 세 바퀴 도는 90초 동안 울려 퍼지는 함성은 광장의 하늘을 뒤덮는다.


    

골목골목에 팔리오를 상징하는 사진들이 붙어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

팔리오 경주에 출전할 튼튼한 명마를 10마리 선정한 후 그 말은 각 콘트라다에 추첨 방식으로 할당을 한다는 것이다.     

즉 콘트라다는 자신들의 기수만을 선정할 수 있고 말을 직접 고를 수는 없다.

각각의 기수는 어떤 말이 선정될지 모르는 일이다.


아래 영상에서 경기가 시작되기 전 기수들의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과 경기가 이루어지는 90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17년 팔리오 (출처 : Youtube)
팔리오 홍보 영상(출처 : Youtube)



캄포 광장을 벗어나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갑자기 웅장한 건축물이 나타난다.

시에나의 두오모이다.

시에나 대성당은 12세기부터 200여 년에 걸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혼합된 성당이다.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라순타로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힌다.

화려한 모자이크 문양이 장식된 대리석 바닥과 흰색, 분홍색, 회색의 대리석 줄무늬 모양이 화려한 성당 앞에 이른다.

성당 정면의 둥근 창을 감싸고 있는 40인의 성인과 초록색 문 위에 걸려 있는 태양을 상징하는 조각이 인상적이다.

대성당의 종탑은 마치 스트라이트 티셔츠를 입은 것처럼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인데 시에나의 문장을 상징한다고 한다.





시에나 두오모









골목에 주차된 자동차가 없고 의상만 중세 복장으로 바꿔 입으면 영락없이 몇 백 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아주 작고 소박한 카페가 보였다.

피렌체 숙소의 안뜰에 있는 나무 의자와 테이블과 똑같은 의자였다.

셀프로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고 앉았다.

1.3유로의 저렴한 커피 맛은 최상급이었다.

문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니 꽤 여러 해 동안 추천 카페로 등록된 곳이었다.










피렌체로 돌아가는 기차는 마주 보는 좌석이었다.

내 앞에 부부로 보이는 70대 남녀가 앉았다.

사탕을 꺼내 건네니 정중하게 거절을 하셨다.

혼자 오물오물 먹다가 이번에는 레모나를 드렸다.

역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거절하셨다.

단지 비타민이고 피로해소에 좋다라고 말씀드리니 그래도 영어를 조금 낫게 하시는 부인이 설명하셨다.

스페인의 발렌시아에 거주하시는 두 분은 모두 채식주의자란다.

음식과 과일 이외의 건강식품이나 약, 사탕 등 군것질은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서 만족하신단다.

두 분은 마치 남매처럼 닮았는데 군살이 없고 강단이 있어 보였다.

순박해보이는 외모와 달리 삶의 확고한 방식을 갖고 실천하는 두 분이 존경스러웠다.

서로 즐거운 여행을 하라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 내려 버스를 타러 가니 전광판에 11번 버스가 13분 후에 도착한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그 11분이 지났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잠시 후 전광판에는 11번 버스가 25분 후에 도착한다는 새로운 알림이 떴다.

그 시간이면 걸어가는 게 빠르지 싶어 걷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11번 버스가 내 옆을 지나갔다.

피렌체는 그 이후에도 종종 버스 시간이 지켜지지 않았고 걷는 일이 많아졌다.


피렌체는 티본스테이크가 유명하다.

하지만 티본은 크기가 크기 때문에 혼자 주문하는 건 무리다.

그러므로 나는 대니얼에게 질문을 했었다.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음식점이 아닌 로컬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함께 먹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는 스테이크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8시 반쯤 수업이 끝날 예정이니 그때쯤 whatsapp으로 연락을 하겠다고 했었다.

그게 바로 오늘이다.


일 구씨오 (IL GUSCIO)는 이탈리아어로 껍데기라는 뜻이다.

외관에서 볼 때 아주 허름하고 작은 음식점이다.

하지만 출입문에는 미슐랭부터 여러 곳에서 받은 추천 식당이었음을 알리는 표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Il Guscio


9시가 다 되었지만 안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과연 스테이크는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올리브유에 볶은 시금치와 구운 감자, 그리고 페어링 한 와인 맛도 적절했다.

내가 계산을 하고 있는데 대니얼이 50유로 지폐를 내놓았다.

식사비가 약 100유로쯤 나와서 본인의 것을 페이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요청한 식사니 만큼 내가 계산하겠다고 하니 다음에 본인이 저녁을 사겠다고 한다.


대니얼은 식사를 했으니 산책을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사실 나는 아침부터 피렌체 역에서 두오모까지 걸었고, 시에나를 도보로 한 바퀴 걸은 데다가 역에서 집까지 걸은 터라 피곤했다.

하지만 제안에 거절을 하지 못하고 산책을 나섰다.

여행자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오래된 궁전의 담벼락을 지나고 작은 공원을 지나서 아르노 강변길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와 어플을 확인하니 그날 걸은 거리가 무려 17km.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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