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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n 28. 2023

내 혈액은 여행형?

17. Duomo Cupola






전날 17km를 걷고 위스키까지 마신 후 잠자리에 누운 시간은 새벽 1시,

7시로 알람 설정을 해놓았지만 6시쯤 깼다.

오늘은 쿠폴라에 올라가는 날이다.

  

쿠폴라는 이탈리아어로 둥근 지붕을 뜻한다.

두오모는 피렌체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자,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이다.      

1296년에 건축하기 시작하여 1371년에 본당이 완공되었다.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돔이 완공된 것은 1437년이다.      

브루넬레스키는 철근이나 콘크리트의 도움 없이 벽돌만으로 돔을 쌓아 올렸는데 그 자세한 공정은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돔의 내부에는 바사리와 그의 제자들이 그린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으며,      

돔의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어 멋진 피렌체의 전경을 볼 수 있다.

문제는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463개의 계단이다.


피렌체는 티켓을 구매해야 입장 가능한 곳이 정말 많다.(대략 20곳)

그것들을 몇 개씩 모아서 패스로 만들어서 판매하는데 본인이 원하는 종류를 예매하면 된다.

첫날 갈 곳의 날짜와 시간을 예약한 후 다른 곳들은 3일 이내에 방문하면 된다.


1. 브루넬레스키 패스 : 30유로

피렌체 대성당 쿠폴라, 조토의 종탑, 피렌체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피렌체 산 조바니 세례당, 산타 레파라타 지하 예배당      

     

2. 지오토 패스 : 20유로

조토의 종탑, 피렌체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피렌체 산 조바니 세례당, 산타 레파라타 지하 예배당     

     

3. 기베르티 패스 : 15유로

피렌체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피렌체 산 조바니 세례당, 산타 레파라타 지하 예배당


나는 브루넬레스키 패스를 선택하여 쿠폴라 입장 시간은 9시로 예매했다.

피티 궁전을 지나 베키오 다리를 건너고 베키오 궁전을 지나 피렌체 두오모에 도착하니 8시, 

나만큼이나 부지런한 사람들이 벌써 줄을 지어 서있었다.

두오모의 풍경이나 초상화를 그려주는 길거리 화가들이 화판을 세우고 자리를 잡는 모습들이 분주하다.




아르노 강
베티오 궁전
피렌체 두오모


쿠폴라 입장 대기 줄



8시 15분쯤 입장이 시작되었다.

'사람이 많으니 일찍 들여보내는군' 생각했다.

검표원이 1차로 예약 바우처의 날짜를 확인한다.

그리고 성당으로 들어가 티켓의 바코드를 스캔하면 계단으로 올라가는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쿠폴라는 두 번째 올라가는 거다.

바사리의 천장화 '최후의 심판'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내 앞쪽으로 세 번째에 있는 여인이 동영상을 찍느라 자주 걸음을 멈추었다.

유튜버일 거라고 짐작했다.

뒷사람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멈추게 되고 그게 반복되다 보니 짜증이 났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는지 누군가 외쳤다 '빨리 좀 올라갑시다.'

하지만 그 여인의 비 매너는 꼭대기에 올라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마지막 계단 몇 개는 매우 가팔라서 힘이 들었다.




바사리의 천장화 '최후의 심판'
피렌체 두오모 성당



피렌체의 두오모 쿠폴라는 일본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로 더 유명세를 탔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두 남녀 작가인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실제로 연애하는 마음으로 쓴 릴레이 러브 스토리 장편소설이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사랑의 행방을 실제로 사랑을 앓는 마음으로 한 회씩 써 내려갔다. 10년 후 재회의 약속을 가슴에 묻어 둔 두 연인, 준세이와 아오이. 

이 소설의 무대 뒤에는 연애, 그 이상의 전율이 있다. 

여주인공 아오이는 금방이라도 스스로 깨져 흩어질 것 같고 준세이는 단단하지만 어느 순간 반으로 쩍 갈라질 것 같다. 

10년간의 틈이 실 낱같은 간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 사람의 우연이 아닌 우연의 시간이 찾아왔을 것이다. 

아오이가 그랬듯, 준세이 또한 한 순간도 그녀가 곁에 없는 순간이 없었다. 

늘 기억하고, 항상 느끼고, 언제나 함께였다. 

그러나 저릿한 사랑은 끝끝내 아프고 만다. 

그 애매한 속도만큼이나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 허하게 나풀거린다. 

삶의 한 자락에서 쓸쓸한 구석을 함께 지켜왔던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랑일 거다. 

그리움은 뭔가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쿠폴라에 올라 피렌체를 내려다보면 도시의 지붕은 온통 붉은빛으로 그득하다. 

피렌체의 집 지붕은 그 지역에서 나는 흙으로 구운 기와만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만들어 놓은 건 그들의 조상이지만 지키는 것은 후손들의 몫이다. 

좁은 길의 불편함을 마다하지 않는다. 

1인용 자동차를 타며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들을 오르내린다.

여전히 붉은 기와를 찍어내는 일 같은 사소한 불편을 기꺼이 감싸 안는다. 

그것이 행복한 일임을 알고 있음이다.     






산타 크로체 성당
조토의 종탑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
쿠폴라에서 내려가는 계단



7년 전에는 비가 내려 운치는 있었지만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 보상이라도 받듯 날씨는 쾌청하고 맑았다.

시간별로 제한된 인원만 오르기 때문에 많이 복잡하지도 않다.

쿠폴라를 한 바퀴 여유 있게 돌았을 때 안내직원이 내려갈 시간임을 알렸다.


쿠폴라에서 내려와 두오모 바로 옆에 있는 오페라 두오모 박물관으로 향했다.

예약 바우처를 보여주니 직원이 내게 말했다.


'쿠폴라에 먼저 올라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로 오세요.'

'쿠폴라는 벌써 올라갔다 왔어요.'

'벌써요?'


그가 놀랄 법도 하다.

왜냐하면 그때가 아침 9시, 내가 쿠폴라에 오르기로 예약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냥 일찍 나온 김에 줄을 섰는데 들여보내줘서 올라갔다 올 수 있던 것이다.

직원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입장을 시켜주었다.




오페라 두오모 박물관
박물관 입구
성가대를 위한 제단 칸토리아
'기베르티' 산 조반니 세례당 청동문 진품 '천국의 문' (예수의 일대기 조각)


도나텔로 '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미켈란젤로 피에타




로마 판테온의 방식을 본떠 만든 쿠폴라는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1437년 완공되었다.      

그렇게 큰 돔을 철근이나 콘크리트의 버팀목 없이 돌과 벽돌만으로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팔각형의 구조물인 쿠폴라는 내부 높이만 100m에 달한다.


피렌체 대성당 돔 공모전에 제출한 돔의 모형 진품과 여러 자재들을 올렸을 도구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과학적 근거에 의해서 돔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주며 영상도 볼 수 있었다.

     

반 세기 이상 돔이 지어지지 않은 채로 있던 대성당은 돔 건축을 위한 공모에 들어간다. 

돔의 모형을 가지고 결승에 오른 사람은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였다. 

두 사람은 일찍이 세례당 '천국의 문' 제작 공모에서 맞붙었었다. 

탈락한 브루넬레스키는 심한 좌절감을 앉고 로마로 떠나고, 기베르티는 심혈을 기울여 산 조반니 세례당 동문(천국의 문)을 완성하였다. 

재대결이었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1337~1446년)는 금 세공인이자 조각가이다.

그는 여러 차례 로마를 방문하여 로마의 고대 유적, 특히 판테온의 거대한 돔 지붕의 건축 구조를 연구한 바 있었다. 

그는 자신이 돔을 짓는 방법을 안다고 윗사람들을 설득했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모형과 설계도를 감춘 채, 로마의 판테온보다 큰 돔을 대성당 위에 세울 수 있다고 의뢰인들을 설득했다. 

그는 달걀의 밑부분을 살짝 깨뜨려 대리석 바닥 위에 세웠다. 

사람들이 비웃자 그는 '내가 모형과 설계도를 공개하면 여러분도 그걸 보고 돔을 세울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설계는 채택되었고, 1420년 작업이 시작되었다.     

브루넬레스키는 구조물의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바깥쪽 층이 덮은 안쪽에 가벼운 내부 돔을 건축하고, 건축 자재를 올려 보내기 위해 정교한 기계를 설계했다. 

그리고 벽돌과 석재를 헤링본 무늬로 배열했다. 

이는 그가 고대 로마 건물을 연구하면서 터득한 기술이었다. 

라이벌들은 그의 기술을 흉내 내 보고는 실패할 거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이런 조롱에도 불구하고 돔은 차근차근 높아졌고, 1436년에는 피렌체 대성당 위편에 106m 높이로 우뚝 솟았다.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 단테 알리기에리의 초상화
그레고리안 찬트 악보


  


박물관에서 나오니 10시,

쿠폴라에 올라가기 위한 사람들의 줄은 여전하고 두오모 근처는 또다시 여행자들의 활기로 넘쳐났다.

시뇨리아 광장으로 향하다가 메디치 가문의 성당으로 브루넬스키가 설계한 로렌초 성당에 다다랐다.

브루넬스키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성당의 정면이 완성되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티켓 오피스 입구 오른쪽 동상이 브루넬레스키(쿠폴라를 바라보는 듯하다), 왼쪽은 아르놀포 디 캄비오
산 로렌초 성당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정복을 입은 경찰들 눈에 띄었다.

그들의 허락을 얻고 사진을 찍고 나니 바로 북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쿵 쿵 / 쿵 쿵 쿵쿵 쿵

비트를 볼 때 무슨 행진이 있을 거라는 짐작을 했다.

이윽고 말을 탄 경찰을 선두로 중세 복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의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대부분 나이가 들어 뵈는 사람들이고 의상은 화려했다.

퍼레이드는 길게 이어졌다.


아마도 메디치 가문과 관련 있지 않을까 짐작했다.

역시 그랬다.


이것은 매년 2월 18일,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 (Anna Maria Luisa de' Medici, 1667년-1743년)의 서거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의 일부이다.

18세기 전통 의상을 입은 피렌체의 행렬은 오전 10시 45분에 그녀의 무덤에서 열리는 의식에 참가하기 위해 팔라지오 디 파르테 구엘파에서 메디치 성당까지 행진한다. 

그날은 안나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피렌체 전역의 박물관을 무료로 개장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날은 안나 마리아의 기일이 아니라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우연히 만나 퍼레이드가 신나고 흥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퍼레이드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자유롭고 신나는 표정으로 즐기고 있었다.

원색의 복장이 화려하면서도 활기차고 아름다웠다.

한쪽은 빨강, 다른 한쪽은 노랑 그런 식으로 각각 다른 색깔의 스타킹과 신발을 신었는데 전혀 유치해 보이지 않는다.

서커스단을 쫓아가는 어린아이처럼 그들을 뒤따라갔다.   




    












메디치 퍼레이드



퍼레이드가 끝나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이상했다.

마치 몸에 쇳덩어리를 주렁주렁 걸어놓은 듯 무겁다.


전날 17km를 걸었다.

그리고 새벽같이 일어나 쿠폴라의 463개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왔으니 탈이 날만도 하다.

근처에 슈퍼마켓 코나드가 보였다.

과일과 채소를 사 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한 발자국을 떼기가 힘들 정도로 걸음이 무거웠다.


집에 도착하니 전신이 쑤시고 아프다.

아무래도 몸살이 단단히 난 것 같다.

근육이완제와 진통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


한두 시간 잤을까?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아팠던 게 거짓말처럼 나았다.

평소에 약을 잘 먹지 않아서인지 어쩌다 간혹 약을 먹으면 효과가 잘 나타난다.

집에서 쉬어도 그만이련만 검색해 두었던 빈티지 샵의 영업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다시 길을 나섰다.


언젠가 L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김선생님 혈액형은 분명히 여행형일 겁니다.'




빈티지 샵의 오래된 타이프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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