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뉴욕 가이, Daniel
14. Firenze
친구들은 피우미치노 공항으로, 나는 피렌체로 떠나는 날이다.
오후 3시 반, 각각의 기차를 타야 한다.
로마 숙소의 체크 아웃 규정 타임은 오전 10시,
늦은 체크 아웃이 필요할 때 1시간 추가 금액은 20유로.
원래 계획은 10시에 체크 아웃하여 기차역에 있는 물품 보관소에 캐리어를 맡길 예정이었다.
그런 후 점심 식사와 쇼핑을 하면 시간이 어지간히 맞을 것이다.
하지만 캐리어 5개를 맡기는 비용은 30유로,
추가 비용을 내더라도 숙소에서 좀 더 쉬다 12시에 나가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호스트인 파올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흔쾌히 우리의 요청을 수락했다.
게다가 고맙게도 추가 요금도 받지 않았다.
선율도 없는 콧노래를 늘 흥얼거리며 빠르게 식사 준비를 하곤 했던 친구 D.
그녀는 아그리젠토의 넓은 거실과 다이닝룸을 오가며 패션쇼를 하여 우리를 즐겁게 했었다.
수영으로 단련된 늘씬한 바디는 기본이요, 자연스러운 워킹과 터닝은 프로 시니어 모델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
태극권 수련을 오래 한 이유인지 J는 유난히 몸놀림이 유연하다.
게다가 댄스는 범접불가이다.
1차는 영국 에든버러, 2차는 프랑스 니스, 그리고 시칠리아 타오르미나의 댄스 영상은 3차 레전드로 남았다.
J의 사진을 찍다 보면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녀의 재미있는 포즈 때문이다.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다양한 손과 발의 모양은 우리를 웃음 지옥에 빠트리곤 한다.
이번에 새로 붙은 별명이 있다.
이른바 '벽껴녀', 벽을 보면 껴안는 포즈를 자주 취하기 때문이다.
애교 만점에 완벽한 음식과 플레이팅, 멋스러운 스타일을 자랑하는 LJ는 여행의 마스코트.
언어천재로 어딜 가나 그녀만 있으면 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이다.
특히 스마트폰 사진을 잘 찍는다.
숙소로 돌아오면 그날의 사진을 전송하여 그때마다 즐거운 뒤풀이 시간이 이어지곤 했다.
혼자 여행을 한 경험은 몇 번 있다.
셋이 남고 셋이, 또는 둘이 먼저 돌아가거나 나중에 합류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여행 도중, 혼자 남게 된 것은 처음이다.
눈물이 났다.
혼자 남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다.
함께 여행을 계속하지 못하는 서운함도 아니다.
그냥 헤어짐이 아쉬웠다.
내가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면 곧 만나겠지만 허전함이 남았다.
7년 전 이탈리아를 한 바퀴 돌아보는 여행을 했었다.
그때 가장 아쉬웠던 곳이 피렌체였고 다시 오리라 맘먹었던 곳이다.
피렌체 근교에 있는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도시들을 찾아다닐 예정이다.
피렌체에서는 8박이 예정되어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호스트 스테파니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키가 작고 통통한 편인데 수더분한 인상이다.
그녀는 집안 곳곳을 안내하며 약 30분에 걸쳐 설명을 했다.
대부분 이미 다 아는 내용들이지만 너무나 친절하고 행복하게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말을 끊을 수가 없었다.
바깥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집의 내부로 통하는 출입문이 있다.
그곳을 따고 들어가면 주방과 식탁이 있다.
주방 옆에는 빨간 카우치가 있는 작은 거실이 있고, 거실을 지나면 욕실과 세탁실, 그곳을 지나면 제일 안쪽에 침실이 있다.
침실에는 연두색 그림이 그려진 멋스러운 옷장과 같은 디자인의 화장대와 서랍장이 있다.
스테파니아의 아버지가 결혼하실 때 직접 만드신 가구라고 한다.
낡긴 했지만 예스러운 멋이 느껴지는 근사한 가구였다.
침실에서 밖으로 이어지는 출입문으로 나가니 꽃 향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담장 가득 하얗고 작은 꽃무리들이 쏟아지듯 피어있었다.
'재스민'
꽃과 향기가 있는 안뜰 하나만으로도 이미 그곳이 맘에 들었다.
선물을 건네주니 함박웃음으로 반긴다.
두 묶음의 묵직한 열쇠를 전해준 스테파니아는 드디어 '차오'를 외치며 떠나갔다.
일단 물을 사야 한다.
일단 슈퍼마켓을 검색하니 120m 거리에 까르푸 익스프레스가 있다.
몇 가지 필요한 식품을 사 갖고 와서 저녁상을 차렸다.
D가 아침에 싸준 김밥과 너구리 반 봉지를 끓였다.
그리고 위스키 한 잔.
유럽의 마트에서 가장 흔히 구할 수 있는 위스키는 잭 다니엘이나 조니 워커 정도이다.
친구들은 공항에 도착해서 택스 리펀을 마치고 체크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가 왔다.
혼자 식사를 하려니 조금 쓸쓸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외롭지는 않았다.
피렌체의 첫 식사
식사를 마치고 안뜰로 나갔다.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더없이 편안하고 평화로운 시간이다.
그때 어디선가 'Hello'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굴같이 깊고 낮은 목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2층 발코니에서 한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Hello'
'How are you?'
'I'm great.'
'I'm Daniel.'
'Oh Nice to meet you. I'm Kim, But just call me Silvia.'
그렇게 인사로 시작한 대화는 일상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즉 어느 나라에서 왔니? 피렌체에는 얼마동안 있을 거니?
대니얼은 내게 와인 한 잔 마시겠냐고 물었다.
나는 사실 와인보다 위스키를 좋아한다고 했다.
본인 역시 위스키도 좋아한다며 본인의 집과 내가 묵는 곳 중 좋은 곳을 선택하라고 했다.
망설임 없이 내가 그쪽으로 가겠다고 했다.
까르푸에서 사 온 감자칩 한 봉지와 후레시 모짜렐라 치즈 한 덩어리를 챙겨 문을 열었다.
내가 묵고 있는 1층의 출입문을 열고 나가니 대니얼의 집으로 통하는 또 다른 출입문이 있었다.
그는 내려와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으로 올라가니 거실 중앙에 아이보리 컬러의 패브릭 카우치가 보였다.
그가 아이리쉬 위스키 Jameson과 잔 두 개를 가져왔다.
그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보스턴과 버클리를 다녔고 본인이 작곡한 곡이 200곡이 넘는 싱어송 라이터였단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연주와 노래를 하지 않는단다.
이탈리아에 와서 살게 된 것은 10년이 좀 넘는단다.
지금은 피렌체에 거주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온라인으로 앤틱 물건을 판매하는 사업도 하고 있단다.
피렌체에 살게 된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는 911 테러를 직접 목격했고 그 충격이 너무나 커서 더 이상 미국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조부는 루마니아 태생이고 아버지는 이탈리아 태생, 그리고 어머니는 오리지널 뉴요커.
피렌체에 전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이 있어 자연스럽게 그곳에 왔고 지금까지 살고 있단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일은 어디에 갈 예정이냐고 물었다.
우피치 미술관을 예약해서 그곳에 갈 거라고 했다.
그는 산책도 할 겸 지름길을 알려주겠다며 밖으로 나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미 어두워진 밤거리지만 여기저기 젊은이들이 많았다.
아르노 강에 있는 다리 중 제일 유명한 베키오 다리를 건넜다.
로컬 카페에서 현지인들처럼 바 스탠드에 서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그리고 골목길을 걷다 보니 우피치 미술관에 도착했다.
우피치는 전에 가보았던 기억이 있어 낯설지 않았다.
대화나 행동을 살펴볼 때 대니얼은 매너가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피렌체에 도착하자마자 나와 대니얼은 친구가 되었다.
Daniel Good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