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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n 24. 2023

마음으로 걷는 곳, 아씨시

13. Assici





사람의 인생만큼 다양한 역사도 없지 싶다.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 것과 같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만들고, 화가는 그의 일생을 28개의 벽화로 담았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Basilica di San Francesco)이 있는 아씨시로 가는 날이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원경



로마에서 아씨시까지는 기차로 2시간이 좀 넘게 걸린다.

아침 8시 2분 기차를 타기 위해 일찍 숙소를 나섰다.

여행자들에게 알려진 아씨시의 인지도에 비하면 역은 간이역 수준으로 아주 작다.

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우니타 디탈리아 광장에서 내렸다.

아직 오전인데도 벌써 사람들이 적잖다.

살짝 오르막길로 시작한다.


돌벽, 돌담, 돌길, 돌계단에 박힌 돌들은 크기도 모양도 색깔이 모두 다르다.

하나하나 눈길을 건네다 보니 발걸음은 더디게 디뎌질 수밖에 없다.

'돌이 너무 예뻐.'

차분한 마을의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는개 같은 비가 내리다 말다 하여 풍경의 깊이를 더하고 있었다.

5월인데 그곳은 온통 가을색이다.

나는 가을색을 좋아한다.

비가 내리고 있지만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드문 일이다.



  

버스에서 내려 초입의 오르막길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은 성 프란체스코 성인이 매장된 무덤 위에 세운 성당이다.

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원래 '죽음의 언덕'이라 불리는 공동묘지였다고 한다.

그곳에 묻어달라는 성 프란체스코의 유언에 따라 그가 안장된 3년 후인 1228년에 건축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기도문으로 유명한 성 프란체스코(1182~1226)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창시자이자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이다.

아씨시의 부유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체스코는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전쟁에서 1년간 포로로 잡혀 있으면서 고통을 받고 어렵게 고향으로 돌아온 후 여러 가지 종교적인 환시를 경험하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세속적인 부와 명예를 모두 버리고 청빈, 순결, 복종을 중시하는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창립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았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여러 기적을 행하여 마침내 성인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또한 아씨시의 성녀 키아라(클라라)에게 권유하여 여신도 수녀회인 키아라회를 설립케 했으며 만년에는 자신의 몸에 성흔을 맡기도 했다.


사진에서 익히 보았던 성당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부 성당으로 들어가서 상부 성당으로 나오는 구조이다.

이곳을 하부, 상부로 나누는 이유가 있다.

쉽게 말하면 2층 구조이다.

하부성당으로 들어가 안쪽을 관람하고 계단을 따라 밖으로 나가면 박물관 등이 있는 수도원 공간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 상부 성당으로 들어가 관람을 이어가게 된다.

성당이 지어진 위치가 경사면이기 때문이다.




하부 성당(촬영 금지라는 걸 깜빡 잊고 실수로 찍은 한 장의 사진)
상부 성당에서 계단을 올라가 밖으로 나가면 보이는 수도원



유럽은 나라와 상관없이 어디든 성당을 꼭 가게 된다.

1일 1 성당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숫자가 많다.

역사와 규모, 벽화, 천장화, 스테인드 글라스 등 비슷한 곳이 없는 것도 신기할 정도이다.


나는 성당 내부 촬영을 자제하는 편이다.

그런데 성 프란체스코 성당은 카메라에 들어있는 SD카드에 모조리 담아 가고 싶었다.

지금까지 숱하게 보아왔던 수 백개의 성당 중 가장 아름다웠다.

컬러와 스테인드 글라스와 디자인들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온화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보고 있어도 그립다는 말이 적절하달까?

눈에 담고 있지만 그 순간뿐이라는 게 초조하고 아쉬웠다.

안타깝게도 사진이나 동영상 등 모든 촬영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부 성당에는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담은 28점의 프레스코화가 벽을 감싸고 있다.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우리가 흔히 '조토'라고 부르는 바로 그 사람이다.

'조토가 누구냐고?'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 옆에 있는 종탑을 설계한 사람이다.

조토의 종탑이라 불리는 그 탑은 그가 살아있을 동안 겨우 1층이 완성되었다.

그가 죽고 22년이 지난 1359년에 완공되었다.



피렌체 조토의 종탑



1997년, 아씨시에 리히터 규모 5.5의 지진에 이어  6.1의 강진이 연달아 발생하였다.     

하부 성당은 무사했지만 상부 성당의 프레스코 벽화는 산산조각이 나서 벽면에서 떨어져 나갔다.     

전문가들은 잔해 더미에서 30만 개가 넘는 벽화의 파편들을 골라낸 후, 컴퓨터를 이용해 촬영해 놓았던 사진들을 복원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벽화는 복원 작업이 시작된 지 3년여 만인 지난 2000년, 세상에 다시 공개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8만 개 가까운 파편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복원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촬영을 금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장미창과 주변 벽화의 컬러는 대조적이면서 묘하게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도촬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잘 견뎌냈다.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기록한 28점의 벽화를 보고 밖으로 나오니 움브리아주의 평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비 맞은 산과 들, 나무들이 초록초록 평화롭다.





아씨시 성 프란체스코 성당 정면(상부 성당에서 나오면 보이는 모습)


길은 코무네 광장까지 이어진다.

소도시의 매력은 굳이 지도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디를 먼저 갈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천천히 길 따라, 이어지는 골목이 있으면 들어가 보고 그렇게 정처 없이 걸어도 어디서든 볼거리들을 만나게 된다.

프란체스카의 생가이자 그가 숨을 거둔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는 '새 성당'이라는 이름의 누오바 성당이 있다.

성녀 키아라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키아라 성당,

성 프란체스코와 성녀 키아라가 세례를 받은 산 루피노 성당 역시 걷다 보니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모든 성당이 한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이정표
산 루피노 성당(성 프란체스코와 성녀 키아라가 세례를 받은 성당)







추천 식당인 Trattoria degli Umbri를 찾아갔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음식점인 그곳은 벌써 손님들이 가득했다.

벽 쪽의 좁은 좌석이지만 웨이팅 없이 앉을 수 있었다.

우선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다음 날, 친구 셋은 나보다 먼저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다.


작년 5월에 함께 했던 프랑스의 알자스와 프로방스에 이어 노르망디까지는 거의 예술여행이었다.

10월의 스페인 여행 역시 피카소부터 프라도, 빌바오의 구겐하임까지 많은 미술관을 관람했다.

그런데 이번 시칠리아 여행에서는 단 한 곳의 미술관도 음악회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제한된 공간으로 구성된 미술관이 아닌 자연 박물관이라 할 시칠리아를 한 바퀴 돌아보았던 시간은 더 없이 황홀했다.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사고는 없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힌 적도 많지만 친구들이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고맙고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할 시간이 24시간 남짓 남았다.

벌써 맘이 짠하다.

아주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인지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너나 할 것 없이 말이 없어졌다.

비는 여전히 그만한 빠르기로 내리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아씨시 언덕길을 마음으로 걸어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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