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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02. 2023

우여곡절 끝에 발 도르차

20. Pienza, val d'orcia






풍경은 멀리서 바라볼 때 아름답다.

가까이 가면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내가 곧 풍경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토스카나 여행에서 기대가 가장 컸던 곳 발 도르차 (Vald'Orcia),

발 도르차는 토스카나 남부의 넓고 아름다운 시골 지역으로 움브리아와 시에나를 따라 뻗어있는 대평원이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나온 막시무스의 집 촬영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영화 글레디에이터 막시무스의 집 (사진 출처:구글)



피렌체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이 소요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당일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지역 버스가 자주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몇 달 전에 렌터카를 예약해 두었다.


캐나다의 국립공원이 있는 밴프와 재스퍼에서 일주일, 퀘벡의 오를레앙 섬, 멕시코 칸쿤에서 유카탄 까지 혼자 렌터카여행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일인지 운전이 썩 내키지 않았다.

렌터카 사무실이 있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 앞을 지날 때마다 뭔가 안 좋은 예감이 스멀거렸다.

가슴은 '괜찮아'라고 하는데 머리는 '취소해'라고 말이다.


48시간 전에 취소하면 위약금이 없는 보험료를 지불했기 때문에 취소해도 금전적인 손해는 없다.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법을 다시 검색해 보니 오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해도 가능할 것 같았다.

구글에서 로컬 버스 시간표까지 꼼꼼하게 체크하여 파일을 만든 후 렌터카를 취소했다.

가슴속의 외침보다 머리의 권유를 따른 것이다.


계획은 이랬다.


* Firenze S.M.N. to Val d'Orcia Schedules (피렌체에서 발 도르차 스케줄)    08:10 ⇢11:55 3h 45min      


1. Firenze S.M.N.Florence(피렌체 SMN) 08:10  – Siena(씨에나) 09:38  1h 28 min (9.80유로)     

2. Siena 씨에나 10:10 – Buonconvento 부온콘벤토 10:45 35 min (1.90유로)     

3. Buonconvento 부온콘벤토 11:30 (Bus line 114 )

  -  Bivio Dell'asso Montalcino 비비오 델라쏘  몬탈치노 11:47  17 min     

4. Bivio Dell'asso Montalcino 비비오 델라쏘 몬탈치노 – 8 min walk, Val D'orcia 발도르차


* Val d'Orcia to Firenze S.M.N. (발 도르차에서 피렌체 SMN 스케줄) 18:33 – 21:39 3h 20m


1. Val D'orcia 발 도르차에서 도보 13min  Bivio Dell'asso Montalcino ,비비오 델라쏘 몬탈치노     

2. Bivio Dell'asso Montalcino 비비오 델라쏘 몬탈치노 (bus line 114) 18:33

  – Buonconvento  부온콘벤토 18:50 17분     

3. Buonconvento 부온콘벤토 19:06 – Empoli 엠폴리 20:54 1시간 48분  9.80 유로   

4. Empoli 엠폴리 21:07 - Firenze S.M.N. 피렌체 21:39                       4.80유로

                  


만일 계획대로 진행이 안되서 시간이 많이 늦어지면 아예 발 도르차 근교의 농가 B&B에서 하루 지낸 다음 여유있게 다음 날 돌아오자고 맘을 먹었다.


씨에나역은 이미 가본 곳이라 익숙했다.

씨에나에서 부온콘벤토로 가는 기차는 달랑 1량,

수십 년은 되었을법한 올드한 기차 한 량에 승객은 3명, 나 말고 각각의 여성 승객 2명이 탔다.

옛날 영화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벌써 아름다웠다.


'역시 포기하지 않고 오길 잘했어.'




기차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시에나-부온콘벤토)



부온콘벤토의 기차역은 건물이 있긴 하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게다가 기차에서 내려 철길을 그냥 건너야 되는 아주 작은 역이다.

기차에서 내린 세 명의 여인은 각각 흩어졌다.




씨에나에서 부온콘벤토까지 3명이 타고 온 기차 한 량



40대쯤의 나이로 뵈는 아시아계 여인은 길 건너편으로,

30대로 보이는 이태리 여인은 역 앞에 철퍼덕 앉아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114번 버스를 타야 하는 나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를 몰라 주변 탐색을 시작했다.

마침 지나가는 아저씨께 물어보니 길 건너 정류장이 있는 곳까지 데리고 가서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기차역 건너편에는 동네 구멍가게 겸 음식과 술, 커피를 파는 작은 바가 있고 앞 쪽으로는 그늘막 아래 기다란 나무 테이블이 있었다.

버스 시간까지는 약 한 시간이 남아있기에 일단 그곳으로 들어갔다.

사막은 아니지만 마을의 삭막한 분위기와 시골스런 분위기가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떠올리게 했다.



동양 여인은 그새 어디론가 가버리고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던 여인도 뒤따라 카페로 들어왔다.

스마트 폰을 충전하며 커피를 주문했다.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약 30분가량 지났을 짐작대로  남자가 허름한 자동차를 갖고 그녀를 태우러 왔다.

이제 그녀도 떠나고 나만 남았다.




부온콘벤토 역사
부온콘벤토 역 앞의 카페
카페 창으로 보이는 풍경



그러나 내가 타고자 했던 몬탈치노행 버스는 40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카페에 물어보니 버스가 다니기는 하는데 그게 매번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잘 모른단다.

그렇게 부온콘벤토에 발이 묶인 채로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기가 막혔다.

보도 듣지도 못한 토스카나의 시골 간이역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무대뽀로 앉아 있는 상황이 말이다.

팔리지 않는 3류 소설의 한 대목 같기도 하고, 독립 영화 시나리오의 한 장면인 것도 같다.


기차역 담벼락에 붙어 있던 전화번호가 생각났다.

'할 수 없지 이 방법을 써보자.'

쪽지에는 택시가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그 번호로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피렌체에서 온 여행자입니다. 발 도르차의 포토 스폿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데요. 왕복 요금을 알고 싶습니다. 지금 부온콘벤토 기차역 앞에 있습니다.'


메시지의 답장 대신 전화가 걸려왔다.

'요금은 50유로이고요, 지금은 다른 손님이 있어서 어렵고 12시 30분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조금 깎아달라고 했더니 원래는 70유로인데 싸게 해주는 거라며 40유로에 해주겠단다.

괜찮은 흥정이었다.


드디어 그곳을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이 생긴 것이다.

12시가 조금 넘자 흰색 Jeep이 역 앞으로 와서 섰다.

운전자가 유리창을 내리고는 내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다니엘로?'라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 대신 내게 '킴?'이냐고 물었다.

다니엘로가 바빠서 대신 왔다는 그는 다니엘로의 형 마테오였다.

그는 영어를 못한다면서 번역기를 사용하여 내게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물었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니 알았다면서 자동차 문을 열어주었다.


사실 나는 궁금한 게 많았다.

계획형인 사람들의 특징이다.

무턱대고 차를 타는 건 좀 내키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차를 이용할 수 있는지, 어디로 갈 건지, 어디에서 내려주고 언제 데리러 올 건지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다짜고짜 차를 출발시켰다.

번역기로 그런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버스를 타려던 계획에서 전용 기사를 대동한 프라이빗 투어로 변경된 것이니 나쁘지 않다.

온통 초록초록한 들판 위에 싸이프러스들이 드문드문 서 있는 풍경이 나타났다.

동글동글한 나무들이 키재기를 하듯 나란히 서 있고,

미인 대회에 참가한 미녀들처럼 늘씬한 키를 뽐내는 나무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사라져 갔다.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무조건 아름답고 너무 예뻐서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비경들이지만 무턱대고 차를 세워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조붓한 시골길은 구불구불했고 도로변에는 마땅히 정차할만한 갓길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셔터 소리만 찰칵찰칵 이어졌다.










몬탈치노



크고 작은 싸이프러스가 모둠으로 심어져 있는 부근에 차가 멈췄다.

그가 보여준 스마트폰에는 그곳의 사진이 발 도르차를 소개하는 책에 실렸다고 쓰여 있었다.

그 후로도 그는 차를 세울 공간이 있는 곳마다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광활한 평야에 드문드문 서 있는 싸이프러스를 담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때처럼 망원 렌즈가 아쉬웠던 적은 없었다.

그 어떤 명화도 그 풍경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펼쳐진 밀밭, 포도밭, 올리브나무들, 유채꽃, 싸이프러스들이 따로 또 같이 평원을 수놓고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없는 색깔로 말이다.

분명 같은 날 찍었는데 사진에 담긴 초록빛은 다른 날 다른 시간에 찍은 듯 조금씩 달라 보인다.

거리와 방향의 따라 빛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테오가 물었다.


'피엔차에 가볼래요?'


피엔차는 발 도르차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로컬 버스로는 갈 수 없는 곳이라 포기하고 있던 곳이다. 그러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좋아요, 피엔차에 데려다주세요.'


그는 나를 피엔차에 태워다 주었다. 그리고 몇 시에 태우러 오면 좋겠냐고 물었고 오후 4시에 그 장소에 만나자고 했다.

그는 흔쾌히 그 시간에 다시 오겠다면서 본인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떠났다.


    

 




 


CHAPEL OF THE MADONNA DI VITALETA (산 퀴리코 도르차) San Quirico d’Orcia


   

드라이버 마테오(안타깝게도 눈을 감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곳은 피엔차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피엔차는 그렇지 않았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는 고상하면서 품위가 있었다.

벌꿀색의 노르스름한 돌로 만들어진 건물들은 잘 가꾸어놓은 화초들과 어울려 고급스러우면서도 평화로워 보였다.

성벽 바깥에서 보는 발 도르차 대 평원의 모습이 장관이다.

당장 내려가 그곳을 거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든 생각이 첫머리에 쓴 그대로다.


'내가 저 속으로 들어가면 풍경은 안 보이고 내가 풍경의 일부가 되겠지?'


모든 것은 적당한 거리를 두었을 때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엔자 주택가
피엔차 주차장
성벽 안으로 들어가는 문


피엔차 성벽 밖에서 보이는 발 도르차 풍경


성벽 밖 도로






<싸이프러스>

속명의 Cupressus는 라틴명으로 원산지인 키프로스 섬의 지명에서 유래.

높이는 40~45m 정도까지 자라는 상록 침엽수로 곧추 자라며 따뜻하고 건조한 곳에서 잘 자란다.

수피는 회갈색이며 잎은 암녹색으로 향기가 있다.

열매는 둥글며, 수 열매는 황색을 띠고, 암 열매는 녹색이나 둘 다 익으면 갈색으로 된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키가 크고 날씬한 싸이프러스는 수나무이고 암나무는 키가 작고 둥근 모양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평원의 싸이프러스를 볼수록 궁금증이 더해지는 게 있었다.

토스카나의 싸이프러스들이 늘어서 있는 곳에는 거의 집이 있다.

울타리처럼 집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거나 집으로 가는 길목에 줄맞춰 심어져 있다.

뭔가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구글에게 물어보니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과거 페니키아 사람들은 싸이프러스가 영원한 불꽃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또한 에트루리아 인들은 그들의 무덤을 싸이프러스로 장식했는데, 그 이유는 향긋한 수지가 불쾌한 냄새를 감추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뿌리가 아래로 자라기 때문에 도로와 묘지 주변에 심어도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새들을 유혹하는 장점이 있어 집 근처에 심기도 한단다.

무엇보다 내가 모르고 있던 중요한 게 있었는데 편백나무도 싸이프러스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피엔차 시청



성벽으로 이어지는 골목 레스토랑










잠시 돌계단에 앉았다.

간식으로 먹으려고 만들어간 샌드위치는 늦은 점심 식사를 대신했다.

보온병의 둥굴레차는 아직 따뜻했다.

커피 한 잔 마실 새도 없이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고 다니다가 한 상점 앞에서 발이 멈췄다.

린넨과 코튼으로 만든 식탁보, 쿠션, 타월부터 모자, 스카프 가방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리빙 샵이다.

그중 피엔차의 집 색깔을 닮은 벌꿀색 가죽 가방이 내 시선을 잡아챘다.

가방의 테두리는 초록색 스티치로 마감이 되어 있고 앞 면에는 핸드페인팅으로 보이는 싸이프러스 나무 세 그루가 무심하게 툭 그려져 있다.

점심시간이라 문은 잠겨있고 오픈 시간은 2시 반이라고 적혀 있었다.

당연히 그 시각에 다시 갔다.

하지만 웬일인지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 순간 옆 가게에서 어떤 부인이 나오더니 곧장 그곳 문을 열었다.

나는 그녀를 쪼르르 따라 들어갔다.







살짝 무거운 점이 아쉬웠지만 구입하기로 했다.

포장을 하던 주인이 발도르차의 풍경 사진을 한 장 건네며 물었다.


'이 아름다운 샤펠에 가보셨나요?'

'아뇨, 못 가봤어요. 정말 아름답네요.'


그곳은 산 퀴리코 도르차(San Quirico d’Orcia)에 있는 마돈나 디 비탈레타 교회(CHAPEL OF THE MADONNA DI VITALETA)였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보다가 그곳을 발견했다.

멀어서 샤펠이 작게보이지 분명히 그곳 사진이었다.

마테오가 잠시 세워준 곳에서 망원 렌즈의 아쉬움을 느꼈던 바로 그곳이었다.

 




CHAPEL OF THE MADONNA DI VITALETA (산 퀴리코 도르차) San Quirico d’Orcia



10분 전 4시에 마테오와 약속한 장소로 갔다.

4시가 조금 지났을 때 돌아온 그는 기차 시간이 몇 시인지 물어보았다.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돌아가는 길에도 잠깐씩 차를 세워주었다.

비록 많은 대화는 하지 못했지만 마음이 순박하고 따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믿음이 가는 그런 사람 말이다.












40유로에 다녀오기로 했지만 너무 고마워서 10유로를 보태 50유로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갑에 50유로 한 장을 따로 꺼내 놓았다.

그리고 선물할 작은 거울 하나도 꺼내기 좋게 찾아놓았다.

부온콘벤토 역에 도착하여 나는 감사의 말을 전하며 50유로를 건넸다.

그랬더니 마테오가 말하길 40유로씩 왕복 80유로라는 거다.

나는 분명 다니엘로가 왕복 요금이라고 했고 50유로인데 40유로 해주기로 했다 라는 말을 전했다.

그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내가 잘못 들은 건지 그가 잘못 들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지갑을 열어 보이며 50유로와 동전 몇 개, 그리고 피렌체 버스 티켓 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 다른 지갑에 100유로 지폐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걸 선뜻 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마테오는 하는 수 없다는 듯 50유로를 받았다.

거울이라도 드릴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서로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그는 떠났다.




마테오



여전히 역의 건물은 문이 잠겨 있다.

기차에서 내렸던 플랫폼으로 들어가니 벤치에 청년 한 명이 앉아있었다.

달리 갈 곳도 없고 하여 멀치감치 떨어져 앉았다.

기차가 올 시간까지는 약 20분이 남아 있었다.

갑자기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다.

로마나 피렌체 같은 경우는 영어 방송도 함께 해주는데 그곳은 간이역이라 그런지 이태리어 한 번으로 끝이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이런 간이역에서 방송이 나온다는 건 뭔가 변경사항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혹시 기차가 캔슬되었다는 말이면 어쩌나 싶어 역사에 붙어있는 작은 전광판 앞으로 갔다.

내가 타려고 하는 시에나 행 기차 시간표 옆에 뭔가 빨간 글씨가 쓰여있는데 영어 cancel과 비슷했다.







청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실례합니다만 저기 저 글씨가 cancel이라는 뜻인가요?'


청년은 전광판을 바라보더니


'그러네요, 시에나로 가는 기차가 취소되었어요.'


그러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아침에 달랑 한 량 짜리 기차에 승객 3명 태우고 올 때부터 뭔가 불안했다.

역을 나와 두리번거렸지만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아침에 문을 열었던 카페마저 굳게 닫혀있었다.


'마테오에게 다시 연락을 해야 하나?' 하던 중

저만치에서 커다란 배낭을 멘 아가씨 두 명이 역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역 바깥에 있는 전광판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온 그녀들은 도로변에 철퍼덕 앉아 폰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묻는 날이다.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혹시 어디로 가세요?'

'시에나로 가려고 하는데 기차가 취소되었네요.'

'네 맞아요. 그럼 다음 기차는 정상적으로 운행하는지 아세요?'

'검색해보니 오늘 이곳의 기차는 모두 취소되었다고 해요.'

'나도 시에나로 가야 하는데 어떡하죠?'

'뭐 버스라도 타고 가면 되겠죠? 우리가 저기 가서 물어보고 알려줄게요.'


하며 대수롭지 않은 듯 조금 떨어진 타바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알아온 정보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일단 몬테 풀치노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간 다음 거기서 다시 시에나로 가는 버스로 바꿔 타야 하면 된다는 거다.

영국에서 온 두 친구는 워킹 홀리데이로 근처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3일 동안 휴가를 얻어 여행을 가는 길이란다.

그때가 금요일 오후니까 이해가 되었다.


'저도 시에나까지 가는데 함께 가도 될까요?'

'그럼요, 좋아요.'


지갑에는 100유로짜리 지폐 밖에 없다.

버스를 타려면 잔돈이 필요하니 타바키에서 물을 샀다.

100유로를 건네며 미안하다고 하니 얼굴에 싫은 내색이 가득하다.


그렇게 영국 아가씨 둘과 함께 몬테 풀치노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시에나행 버스로 갈아탔다.

두 사람은 숙소 근처에서 버스를 내렸다.

나는 또 다시 앞 좌석에 앉은 부인에게 물었다.


'이 버스가 기차역에 가나요?'

'씨'


역에 도착하니 마침 피렌체로 가는 기차가 바로 있어서 기다림 없이 승차했다.

계획한 바와 다르게 흘러간 하루였다.

하지만 가고 싶은 곳에 잘 다녀왔고 보고 싶은 평원도 맘껏 보았고 사진도 찍었다.

뿌듯하고 아름다운 하루였다.


피렌체에 도착하니 붉은 노을이 아르노 강을 물들이고 있었다.

다리위에 서서 한참동안 하늘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때 대니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How are you, Do you want have dinner with me?, or just a dr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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