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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02. 2023

조심해, 저 사람 수상해

21. Firenze






며칠 전 내가 스테이크를 샀던 것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대니얼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가 단골 레스토랑으로 갔다.

겉에서 보았을 때 그곳이 레스토랑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겉치레가 전혀 없는 레스토랑이다.

우리나라의 노포 느낌이랄까?

중정이 있는 작은 뜰에 테이블이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빈 좌석이 거의 없었다.


꾸덕한 치즈의 풍미가 깊은 라자냐는 꽤 두툼했다.

맛은 있었지만 양이 너무 많아 반도 먹지 못했다.







대니얼은 북한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북한에 대한 책도 읽고 김일성부터 김정일, 김정은의 체계까지 알고 있었다.

그는 특히 북한 방송에서 한복을 입은 아나운서가 뉴스를 진행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말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면서 아나운서의 흉내를 냈다.

웃음이 나올 정도로 비슷했다.


'그곳은 정말 특이한 나라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슬퍼. 한국 사람들은 통일을 원해?'


내가 알기로는 대부분의 올드맨들은 통일을 간절히 바라지만 젊은 세대들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간단한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달, 별, 해, 바다... 그런 것들을 알려주다가 요일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하나씩 따라 하던 대니얼이 갑자기 '김정일'의 그 '일'과 발음이 같다는 걸 말했다.

'맞아, '요일' 할 때 그 '일'과 발음이 같아.'


그렇게 안 되는 발음을 열심히 따라 말했다.

와인을 마시다가 옆 좌석에 있는 여자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내게 인사를 건넸다.


'Hi, You look great.'

'Oh really? Thank you.'


20대로 보이는 두 친구는 영어가 유창했다.

타이완에서 태어났고 캐나다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대니얼이 통화를 하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갔을 때 그녀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대뜸 나에게 물었다.


'Are you OK?'


너무 뜬금없는 질문이라 당황스러웠다.


'Yah, I'm OK, Is something wrong?'


그녀는 연이어 대니얼과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물었다.

나를 무슨 불륜녀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싶었다.


'그는 내 이웃에 사는 사람이야.'


라고 했더니 나보고 피렌체에 사느냐고 물었다.


'나는 여행자이고 대니얼은 윗집에 사는 사람이라 알게 되었어.'


그녀는 내게 또다시 겁나는 말을 했다.  


'Be careful, He's suspicious.'


대니얼이 수상해 보인다며 조심하란다.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긴장이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혹시 대니얼이 피렌체에서 유명한 범죄자나 마피아라도 되나?

내가 물었다.


'Do you know who he is?'


모르는 사람이란다.

오늘 처음 봤는데 북한의 김정일, 김정은 이야기를 하며 웃는 게 수상하다는 거다.

혹시 북한을 위해 일을 하는 정보원이 아닐까 염려된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염려해 주고 말해줘서 고마워, 조심할게.'


대니얼이 자리로 돌아왔지만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전하지는 않았다.

피렌체의 금요일 역시 우리들이 말하는 불금 같은 문화가 있는 듯했다.

밤늦은 거리엔 드레스업 한 젊은이들이 오고 갔다.

오래된 성벽 안쪽의 레스토랑에서는 파티가 열리는지 시끌벅적하다.

젤라토 집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니 대니얼이 위스키를 마시지 않겠냐고 물었다.

내가 갖고 있던 위스키를 들고 그의 집으로 갔다.


그는 최근에 '더 웨일'이라는 영화를 봤다고 한다.

본인이 좋아하는 책인 '모비딕'을 연상시켜서 좋았다면서 기회가 되면 볼 것을 권했다.

그리고 벼룩시장에서 운 좋게 구입한 아주 오래된 중국 실크들을 보여주며 흐뭇해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벼룩시장을 찾아다니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여러 가지 책과 영화, 그리고 팝송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거실 한쪽에 어쿠스틱 기타가 두 대 놓여있었다.

음악을 듣자고 했다.


대니얼은 유튜브를 찾아서 니코와 잭슨 브라운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독일의 싱어 송 라이터, 모델, 영화배우였던 니코가 부른 곡이지만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이 만든 곡이란다.

가사 내용은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미래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이었다.

대중가요가 그렇듯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 이야기이며 동시에 네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그런...



니코
잭슨 브라운



'혹시 연주해 줄 수 있어?'

'그럼 할 수 있지.'


대니얼은 익숙하게 기타를 조율을 시작했다.

부드럽고 낭랑한 기타 전주에 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These days'




I've been out walking

밖을 걷고 있어     

I don't do too much talking these days

요즘 말을 많이 안 해     

These days, these days I seem to think a lot

요즘, 요즘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     

About the things that I forgot to do

내가 할 걸 잊었던 일들에 대해     

And all the times I had the chance to

그리고 내게 그럴 기회가 있었던 시간에 대해

.

.

.

These days

요즘은     

And if I seem to be afraid to live the life

삶을 사는 걸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that I have made in song

내가 노래에서 만든 삶을 사는 걸     

It's just that I've been losing so long

그건 그냥 내가 아주 오랫동안 잃고 있던 거야




Jackson Browne These days



노래를 끝낸 대니얼이 기타를 내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I don't play any more.'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니얼과 식사나 위스키를 같이 한 건 오늘까지 네 번,

그동안 그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하나뿐인 형이 마약으로 사망한 이야기,

본인과 생일이 같은 어머니와의 갈등,

건강을 위해서 매일 새벽 요가를 하는 것,

그동안 애인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고 자유롭게 사는 게 좋아서 결혼은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나의 영어 실력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리스닝은 되지만 술술 말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못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화자, 나는 청자가 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의 표정에는 내면의 쓸쓸함과 삶에 대한 의욕이 별로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의 틈 사이로 한 순간이 스치고 지나갔다.


대니얼은 한식이 먹고 싶다고 했다.

뉴욕에 살 때에는 한식을 좋아해서 종종 먹었는데 피렌체에 온 후 먹어보지 못했다는 거다.


내가 한식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하니 기꺼이 반겼다.

다음 날 점심에 대니얼을 초대했다.


당근, 소시지, 달걀, 시금치를 넣은 김밥이 메인,

찰기가 떨어지는 이탈리아 쌀로 밥을 했더니 김밥이 자꾸 풀어져서 애를 먹었다.

동결 건조시킨 된장 큐브에 시금치 남은 것을 넣어 국을 끓이고 샐러드용 모둠 채소로 겉절이를 만들었다.

대니얼의 특별 요청대로 마늘은 어디에도 넣지 않았다.

위스키를 매번 얻어먹은 게 미안하여 괜찮은 와인도 한 병 샀다.

다행히 대니얼은 시금치 국을 두 그릇이나 비우며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피렌체에서 만든 소소한 한식



그리고 대니얼은 본인의 CD를 선물로 건네고 돌아갔다.

그의 사인이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내게 대니얼이 수상하니 조심하라고 말했던 아가씨들이 생각났다.

대니얼은 단 한순간도 내가 긴장할만한 언행을 하지 않았다.

그냥 우연히 알게 된 여행자와 며칠 친구가 되어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피렌체에서 여덟 밤을 보냈다.

떠나는 날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그것이 짧던 길던 아쉬움은 남기 마련이다.

마지막 새벽 산책을 나갔다.

피티 궁전을 지나고 베키오 다리를 건너 메디치 궁전이 있는 시뇨리아 광장을 지나 두오모까지 다다랐다.

어제 그제와 다를 바 없이 아름다웠다.









스테파니아가 예약해 준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출발할 무렵 대니얼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침 일찍 벼룩시장에 왔다면서 기차 출발 시간을 물었다.

그리고 남은 여행도 즐겁길 바란다는 안부를 전했다.


'Thank you Daniel.'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 가면 늘 가던 카페가 있다.

커피도 맛있지만 크루아상과 시나몬 롤, 애플파이가 맛있어서 자주 갔던 곳이다.

마지막으로 파이를 사가지고 기차에 올랐다.


기차는 이 여행의 끝인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을 향해 천천히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앞 좌석에 앉은 남녀 커플, 여성의 독특한 화장과 남성의 화려한 매니큐어
바다를 건너 베네치아 본 섬의 산타루치아 역으로 향하는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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