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반을 등에 지고 있는 남자
25. Verona
기차 출발 예정 시각은 아침 8시 18분, 역까지 도보 7분.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7시 50분에서 8시쯤 출발하면 된다.
그런데 내가 집을 나선 시각은 6시 44분.(구글 time line 기록)
누군가는 이런 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런 나를 까다롭고 피곤한 사람이라고도 할 것이다
'어쩌다 일찍?'이 아니라 나의 스타일이다.
빨간색 커피잔을 받아 들고 비스트로 산타루치아의 한쪽 테이블에 앉았다.
고소한 크루아상의 페이스트리를 한 겹 씩 벗겨 먹으며 커피를 즐기는 느긋한 시간이 좋다.
집을 일찍 나선 이유는 그런 여유를 위해서이다.
기차로 약 한 시간이 좀 더 걸리는 베로나에 다녀올 예정이다.
2003년에 갔었으니 정확히 20년 만이다.
베로나 포르타 누오바역에서 베로나의 중심인 브라 광장까지 1.5km,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걷다 보니 광장으로 들어가는 브라 문과 아레나가 살짝 보였다.
광장에는 체험학습을 하러 온 학생들과 단체 여행자들이 군데군데 무리 지어 설명을 듣고 있다.
아레나 티켓 매표소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포르타 누오바 성문 브라 문 브라 광장에서 검투사와 기념사진 찍는 여행자 브라광장 베로나 시청(바르비에리 궁전) 아레나 공연 100주년 기념 포스터 아레나
'아레나(Arena)는 원형 경기장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검투를 위해 바닥에 깔았던 모래를 의미한다.
베로나의 아레나는 로마 콜로세움이 건설되기 이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만들어진 원형경기장이다.
검투가 사라진 18세기에는 연극 공연을 하는 장소로 사용되다가 1913년에 최초로 야외 오페라 축제가 시작되었다.
1913년은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그리고 올해(2023년)로 100번째 시즌을 맞았다.
베로나 곳곳에는 6월부터 시작하는 아레나 오페라 시즌 100주년을 기념하는 포스터들이 축제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20년 전 그곳에서 보았던 오페라 '아이다'를 추억해 보려고 티켓을 구매했다.
왕의 자리
비교적 값이 저렴한 좌석은 의자가 아니라 돌로 된 계단석이다.
뜨겁게 달궈진 돌은 딱딱하기까지 하여 3시간이나 걸리는 오페라를 관람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므로 작은 방석을 판매하는 상인도 있다.
아레나 디 베로나는 지붕이 없고 외벽의 일부가 손상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음향 설비 없이 거의 모든 좌석까지 소리가 완벽하게 전달된다.
축제 기간에는 보통 5~7편의 오페라가 50회 이상 공연되는데 전통적으로 밤 9시에 시작한다.
공연은 자정이 넘어 새벽 1시쯤 끝나기 때문에 숙소를 구하지 못한 여행자들은 기차역에서 노숙을 하기도 한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관객들이 준비해 온 촛불을 들고 지휘자와 공연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좌석수는 약 3만여 개 정도, 올해 티켓 가격은 28유로부터 330유로까지 다양하다.
2~3개월 전에 예매를 해야 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오페라 페스티벌이다.
오페라 카르멘 (출처 : 베로나 오페라 축제 홈피) 오페라 리골레토 (출처 : 베로나 오페라 축제 홈피) 오페라 나비부인 (출처 : 베로나 오페라 축제 홈피) 아레나 좌석 배치도 (출처 : 베로나 오페라 축제 홈피)
아레나 오페라 축제 티켓 가격표 (출처 : 베로나 오페라 축제 홈피)
브라광장과 아레나 사이에 있는 작은 길로 들어서면 주세페 마치니 거리가 시작된다.
에르베 광장까지 약 500m, 내로라하는 명품샵들과 고급 가죽 제품 등 예쁜 샵이 많았다.
멋쟁이들이 꽤 많이 보였다.
'에르베'는 약초라는 뜻으로 과거에는 약초 시장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과일과 음료,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있었다.
광장 우측의 돌로 만들어진 코스타문을 지나가니 시뇨리 광장으로 연결되었다.
에르베 광장이 서민들의 시장 바닥 같은 활기가 있었던 것에 비해 시뇨리 광장은 차분하고 지성적인 분위기였다.
베로나의 대표 가문이었던 '스칼라가'의 건물과 베로나에서 피렌체의 외교 사절로 일했던 단테의 동상 때문인지도 모른다.
12세기의 시청사였던 곳에 람베르티 탑이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베로나 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는데 하필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 올라가지 못했다.
주세페 마치니 거리 이탈리아 시인 베르토 바라바르니 에르베 광장
코스타 문 시뇨리 광장의 단테 시뇨리 광장
구 시청사와 람베르티 탑
베로나는 오르막이 없고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서 다니기 수월했다.
유럽 여행은 성당이 8할이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나라, 어떤 도시든 성당을 한 곳이라도 들어가지 않는 스케줄은 거의 없다.
베로나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산타 아나스타시아 성당'.
시뇨리아 광장에서 벽 색깔이 아름다운 골목으로 들어서서 걷다 보니 정면에 붉은 벽돌로 만든 성당이 보였다.
산타 아나스타시아 성당
티켓을 구입하여 성당으로 들어섰다.
맨 먼저 눈에 띈 것은 특이한 성수반 (聖水盤)이다.
성수반은 성수를 담은 그릇으로 신자들은 수반에 담긴 물을 손에 찍어 성호를 긋고 성당으로 들어간다.
성수반의 모양이 성당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그곳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성당의 양쪽 기둥에 두 사람이 성수반을 등에 지고 앉아있는 돌조각이 있다.
그 무게가 고스란히 내게 전해지는 느낌이다.
'삶은 이토록 힘겨운 것이야, 무거운 죄의 짐을 지은자들 모두 이곳에서 용서받으라'
하는 느낌이랄까?
왠지 그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한 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성당은 크지 않으나 본당의 바닥은 컬러 대리석을 화려하게 조각해 놓았다.
이탈리아에서는 보기 드문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천장의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무늬에서 기시감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우피치 미술관의 복도 천장과 비슷했다.
그곳에는 꼭 놓치지 말고 봐야 할 그림이 있으니 꼭 찾아보라는 여행서의 문구가 있었다.
피사넬로가 그린 '성 조르조와 공주'
성당 내부를 두 바퀴나 돌며 벽화를 꼼꼼하게 살폈으나 꼭 봐야 한다는 그 그림이 보이지 않았다.
티켓을 판매소 옆에서 안내를 도와주시는 분께 다가가 물었다.
'이 그림은 어디 있나요?'
'제가 알려드릴 테니 따라오세요.'
성당입구로 들어가 정면의 십자가가 있는 중앙 제대를 보고 섰을 때 오른쪽에 있는 통로를 따라갔다.
그리고 끄트머리 벽의 한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 그 그림이 보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위치라 묻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못 찾았을 것이다.
산타 아나스타시아 성당
피사넬로가 그린 '성 조르조와 공주'
몇 년 전, 해외에서 가수들이 버스킹을 하는 TV프로그램이 있었다.
베로나에서 촬영한 방송에서 강변과 다리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서 의아했었다.
'저런 곳이 있다고?, 베로나에 다시 가면 꼭 가봐야겠네.'라고 생각한 곳이다.
아디제 강이 흐르는 피에트라 다리에 이르렀다.
강변 주변 벤치에는 주민들이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강 건너 편에는 싸이프러스가 늘어선 언덕 마을이 보였다.
그곳에는 기원전 1세기에 만든 로마 극장이 있다지만 가볼 생각은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강물 위에서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TV에서 보았던 그 다리와는 영 다른 모습이다.
분철한 여행책자를 뒤적여보니 그곳은 카스텔베키오 박물관 옆에 있는 다른 다리였다.
시장기가 돌았다.
혼자 먹는 점심은 만만한 게 피자나 스파게티다.
그날 또한 마르게리타 피자와 콜라를 주문했다.
역시나 그날도 피자는 반이 남았다.
웨이터가 남은 피자를 박스에 포장을 해주겠단다.
카메라에 피자 상자까지 들 손이 없기에 정중히 사양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웬만한 피자는 10유로를 넘지 않는다.
그날 피자는 7유로인데 콜라는 5유로, 자릿세가 2유로,
상대적으로 비싼 콜라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 쪽쪽 소리가 날 때까지 다 마셔버리고 나서야 일어섰다.
아디제 강변에 지어진 베키오는 베로나의 영주였던 스칼리제리가의 권위를 상징하여 만든 성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그 옆으로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다리가 있다.
박물관 내부는 별로 내키지 않아 중정만 한 바퀴 휘~ 돌아보고 곧장 다리로 향했다.
스칼리제 다리 역시 베키오 성처럼 붉은 벽돌로 만들어져 있는데 다리라기보다 요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베키오성과 맞닿게 만든 이유는 적의 갑작스러운 습격을 피해 빠르게 도피할 목적이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니 넓은 공원이 있다.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기에게 이유식을 먹이는 엄마의 손길에 사랑이 가득하다.
나무 밑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노인, 풀밭에 나란히 누워있는 친구, 두 딸의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너는 아빠
그 모두가 평화롭고 한가롭게 보였다.
베로나에서 빠질 수 없는 명소가 줄리엣의 집이다.
셰익스피어는 사실 베로나를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베로나시에서 1905년 13세기 저택을 개조해 줄리엣의 집으로 꾸민 곳이다.
실제 줄리엣의 집처럼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그곳에서 5분 거리에 로미오의 집도 있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다.
실제 13세기 베로나에는 소설처럼 가문의 권력다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줄리엣의 집은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지나는 길이라 잠깐 들러보기로 했다.
입구 바깥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있고 안쪽에는 사람들이 빡빡하게 들어차있다.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거나,
그곳에 왔다는 기념샷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그녀의 가슴은 언젠가 구멍이 나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하며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떤 건물 입구에 세워놓은 흉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라피다리오 마페이아노'라는 박물관이다.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 '혹시 셰익스피어인가?'
직감이 들어맞았을 때의 희열이 있다.
그의 흉상 옆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3막 중 장면 3에 나오는 로미오의 대사가 적혀 있었다.
"There is no world without Verona walls,
But purgatory, torture, hell itself.
Hence banishèd is banished from the world,
And world's exile is death. Then 'banishèd'
Is death mistermed. Calling death 'banishèd, '
Thou cutt'st my head off with a golden axe,
And smilest upon the stroke that murders me."
이탈리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맥도널드가 보였다.
맥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받아서 바깥 테이블로 나와 앉았다.
한 모금을 마시자마자
'커피맛이 왜 이렇지?'
어느새 이탈리아의 진한 커피에 길들여진 입맛이 미국 스타일의 커피를 낯설게 만들고 있었다.
한 달 사이에 거의 이탈리아나가 다 되었구나 하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베로나 포르타 누오바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