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포레토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어 좌석이 없어 선미(배의 뒷부분) 쪽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원경이긴 하지만 배를 타면 사진 찍기가 좋다.
방금 다녀온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두칼레 궁전들이 한눈에 보였다가 점점 작아졌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두칼레 궁전
리도 섬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명랑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다리 위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예쁜 색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릴 때 64색 크레파스를 갖는 게 소원이었다.
컬러에 대한 고픔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했는지 지금도 96색 파스텔과 128색 색연필을 보관하고 있다.
가끔씩 상자 뚜껑을 열고 명도와 채도별로 가지런히 놓여있는 색깔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고 벅차다.
색의 힘은 크다.
심리 치료나 스트레스 완화 목적으로 컬러 테라피를 받기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부라노 섬은 알록달록한 집들의 컬러로 유명하다.
젤리처럼 캔디처럼 상큼하고 고소하고 달콤하며 시원한 맛이 날 것 같다.
그렇게 다르고 선명한 색을 칠하게 된 이유가 있다.
안개가 수시로 끼는 바다에서 배를 타고 귀가하는 남자들을 돕고자 연유한 것이란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활자의 크기를 크게 하거나 컬러를 입히는 것과 같은 원리일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 허가를 받지 않고는 다른 색으로 칠할 수 없다고 한다.
분홍색과 파란색에서부터 부드러운 녹색과 노란색에 이르기까지 집의 벽 색깔로는 과하다.
그런데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한 집만 원색을 칠하면 튀어 보이겠지만 모든 집들이 캔디 박스에 들어있는 사탕처럼 알록달록하니 예쁘다.
좁은 공간에 벽을 맞대어 건축한 그곳은 마당이라고 할만한 공간이 없다.
창 밖에 매어놓은 빨랫줄에는 빨래들이 뽀송뽀송 마르고 있다.
마치 벽을 캔버스 삼아 빨래라는 오브제로 설치 미술을 해 놓은 양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요즘은 전 세계의 유명 관광지들이 오버 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는다.
베네치아는 특히 수상 도시이기 때문에 쓰레기 처리나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리라 생각된다.
부라노 섬은 아주 작다.
거주민보다 훨씬 많은 여행자들이 매일 그곳을 찾아가고 북새통을 이룬다.
관광수입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늘 소란스럽게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얼마나 불편할까 싶었다.
사람들이 없는 골목이나 외진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빨래를 널고 있는 아주머니 외에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좁은 수로에는 종이배처럼 작은 배들이 말뚝에 매어 있다.
그곳에도 삶을 꾸려가는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을 텐데 그들의 삶은 어떨까 궁금했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연상되는 집의 은은한 컬러가 맘에 들었다.
역시나 사람들로 북적여서 겨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밤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웨스 앤더슨이 감독한 영화이다.
그 영화가 특별한 것은 영화의 화면이 모두 대칭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선명한 컬러가 한 몫한다.
'우연히 웨스 앤더슨'이라는 책을 좋아한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서 착안하여 윌리 코발이 만들게 된 책이다.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내용이다.
이 책을 보며 여행하고픈 버킷 리스트가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웨스 앤더슨 월드로 안내하는 초감각 렌즈이자 단 하나의 초대장. 오감 충족 대리 만족 방구석 세계 여행 아카이빙 대작전!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인스타그램 트렌드”로 주목받는 @AccidentallyWesAnderson 계정의 내용을 엮은 책이 출간되었다. 월리 코발 저자가 우연히도 웨스 앤더슨의 영화와 비슷해 보이는 장소의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채널로, 코로나 이슈로 여행이 힘들어진 사람들에게 대리 만족과 흥미로운 참여를 유도해 현재 140만 팔로어를 넘어 일주일에 만 명 이상씩 실시간으로 늘고 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색감과 미학이 있다. 그의 감수성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 디자인, 인테리어 등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이 책은 웨스 앤더슨 터치를 전 세계에서 발견하도록 이끄는 유일한 프로젝트이자 여행 초대장이다. 영화에서 그대로 옮긴 듯한 장소를 2백 곳 이상 탐험하며 그에 얽힌 유래와 흥미로운 사연을 미니 백과사전처럼 펼쳐놓는다. 여행의 감각과 일상의 영감을 풍부하게 깨우는 이 책을 들고 지금 우리가 세계 일주를 떠날 수 있는 가장 현명하고 근사한 비행기에 탑승해 보자. (출처 : Yes24)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데 한 남자가 쭈뼛쭈뼛하며 내게 말을 걸었다.
나이는 40대쯤 되었을까?
억양이나 외모로 볼 때 인도인 같았다.
'안녕하세요, 제가 당신 사진을 찍었는데 보시겠어요?
하면서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내가 사진을 찍고 있는 뒷모습이 찍혀있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혹시 포토그래퍼신가요?'
'아뇨, 나는 그냥 여행자예요.'
'사진을 찍는 모습이 전문가처럼 보였어요. 혹시 사진을 보내드릴까요?지금 여기서는 와이파이를 쓸 수 없으니 호텔로 돌아가면 보내드릴게요.'
나 역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수없이 찍어왔다.
의도적이기도 했고 우연찮게 찍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람처럼 솔직하게 알려주거나 내게 알려준 사람은 없었다.
사진이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그는 인도에서 온 여행자 '로이 수크릿'
내가 인도에 2번 갔었다고 하자 대단히 놀라워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는 호텔에 돌아왔다면서 3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당신이 분명히 블로그나 어떤 플랫폼에든 여행 사진이나 글을 쓸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것이 보고 싶습니다.'
코다크롬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티셔츠와 볼캡에 워커, 게다가 요즘에는 보기 드문 DSLR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전문 포토그래퍼로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네~ , 글과 사진을 올리는 온라인 플랫폼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라 당신은 이해를 못 할 거예요.'
'Haha no problem art has no language.'
'예술에는 언어가 없다.'라는 그의 표현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인도 여행을 하고 돌아와 올렸던 브런치의 주소를 탭 하여 보내주었다.
그리고 약 1주일 후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내가 보내준 브런치를 번역해서 읽어보았단다.
'당신의 글은 매우 깊이가 있어요. 그리고 사진들은 글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줍니다. 나는 앞으로 계속 당신이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으며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