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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Dec 07. 2023

파리의 술 취한 배(boat)

12. Le Bateau Ivre, Rimbaud






귀퉁이에서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는 남자가 있습니다.

울음소리를 삼키려는 듯했지만 숨겨지지 않았지요.

그곳은 슬픔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곳인데 말이죠.

그의 가슴이 조금이나마 후련해지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파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중의 한 곳, 노트르담(Paris' Notre-Dame Cathedral).

2019년 4월 15일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복원이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파리에는 노트르담 말고도 수많은 성당들이 있습니다.

외관과 내부는 하나 같이 다르지만 아름다움에 놀라고 성스러운 분위기에 옷깃을 여미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게 되지요.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땡그랑~

성모 마리아 앞에 촛불을 켭니다.

그리고 잊고 있던 성호를 그어봅니다.


그곳은 생 쉴피스( Eglise St. Sulpice)성당

첫 번 째는 근처의 룩셈부르크 정원에 갔다가 우연히 들어갔고,

오늘은 소르본 대학을 찾아갔다가 지나는 길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피스는 파리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입니다.

1646년부터 100년이 넘게 만들어졌어요.

6,700여 개의 파이프로 구성된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이 있습니다.

보들레르가 세례를 받았고, 빅토르 위고가 결혼한 장소이며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생 쉴피스( Eglise St. Sulpice) 성당
쟝 밥티스트 피갈(Jean-Baptiste Pigalle)의 '성모와 아기상'
들라크루아의 프레스코화
쟝 밥티스트 피갈(Jean-Baptiste Pigalle)의 성수 세례반
프랑스에서 제일 큰 파이프 오르간
카트로 포앵 카르디노 분수



성당에서 나와 길을 걷는데 주택가 작은 골목의 벽에 무슨 글씨가 잔뜩 쓰여있는 게 보였지요.

벌꿀색의 누르스름한 벽돌로 만든 담벼락 한 블록은 100m가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ARTHUR RIMBAUD(아르투르 랭보)


1854-CHARLEVILLE(1854년 샤를빌 출생)

1891-MARSELLE(1891년 마르세유 사망)


'LE BATEAU IVRE'


'bareau'(바토)가 배(船)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센강 유람선 중에 대표 회사 이름이 바토 무슈(Bateaux Mouches)거든요.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 수록된  시 '술 취한 배'였습니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운이 좋게 그 시를 발견한 겁니다.










프랑스 문학은, 아니 특히 시는 이해하기 어려워서 쉽게 즐기지 못하겠더군요.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좋아하고요.

장 그르니에와 미셸 투르에의 산문을 즐겨 읽는 정도지요.

랭보 역시 '지옥에서의 한 철'이라는 제목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취한 배는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르투르 랭보(1854-1891)와 폴 베를렌(1844-1896)의 관계는 알고 있었지요.


폴 베를렌(데이비드 툴리스 분)과 아르투르 랭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를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 <토털 이클립스>를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20년도 더 지난 영화지만 몰입감이 컸던 작품이라 기억이 생생합니다.

 

랭보는 열여섯 살 때 이 시를 썼습니다.

시의 길이는 무려 100행.

어린 나이에 몇 번의 가출을 감행했던 랭보는 유명 시인 몇몇에게 ‘견자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1871년 파리의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시인 베를렌(27세)에게도 편지 한 통이 배달됩니다.

겨우 열일곱 살 밖에 안 되는 랭보(17세) 시 8편이 들어있었지요.

베를렌은 직감으로 알았습니다.

'천재가 나타났어.'

베를렌은 당장 답장을 보냅니다.

'위대한 영혼 내게 오소서, 이는 운명의 부르심이니'.


파리의 기차역에 나타난 랭보는 짧은 바지,  발목까지 올라오는 구두에 흰 양말을 신은 앳된 소년이었습니다.

그의 바지 주머니에는'취한 배'가 들어있었지요.     

베를렌에게 랭보는 충격과 경탄이었습니다.

베를렌은 이미 결혼을 한 27세의 성인, 랭보는 아직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 남아있는 17세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랭보는 베를렌을 선배 시인이라거나 선배, 혹은 형님으로 대하지 않고 본인과 동격으로 대했습니다.

건방질 정도로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지요.


1871년 9월 30일, 열일곱 살의 랭보는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술 취한 배>를 낭송했습니다.

그곳은 지금의 시가 쓰여있는 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모퉁이 카페였지요.     

황량한 거리에는 짓궂은 바람이 불고 있었고 나뭇잎들은 먼지와 함께 굴러다녔습니다.


이곳에 시가 써지게 된 것은 2012년 파리 주재 네덜란드 대사관과 200명 이상의 기부자들이 자금을 지원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시는 벽의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왼쪽으로 이어지는데요.

글씨를 쓴 Jan Willem Bruins이 그날 밤 바람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불었을 거라 여기고 그에 따라 쓴 것이라는 설명이 벽마지막에 쓰여있었습니다.

글씨를 쓰는 사람의 마음도 시인 못지않구나 싶어요.

한땀 한땀 수놓듯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간 Jan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왜? 이 시는 오른쪽에서 시작하는지 설명
글씨를 쓰는 Jan Willem Bruins



베를렌과 랭보는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걸 단박에 알았습니다.

역에서 만난 지 며칠 만에 두 사람은 한순간에 금기의 벽을 깨부수고 서로의 몸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랭보의 아버지는 랭보가 6살 때 집을 나갔습니다.

생계를 책임지며 엄격했던 어머니는 랭보를 옭아매는 그물과 같았고 랭보는 그 깊은 우물에서 빠져나오고자 발버둥쳤지요.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며 위태롭게 흔들리던 랭보는 베를렌이라는 아버지를 만난듯 한 순간에 스며들게 됩니다.


반면 베를렌은 너무도 귀하게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은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훈장을 받은 군인이었고, 어머니는 농부의 딸이었지요.

오랫동안 아기가 없던 부부에게 베를렌은 신의 선물과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에게 이렇게 맹세했습니다.

'이 아이는 성모 마리아의 아이가 될 것입니다. 이름은 폴 마리라 할 것이며, 7세가 될 때까지 푸른색 옷을 입히겠습니다.' 베를렌은 랭보와 달리 귀하고 귀한 자식으로 컸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커다란 축복이었습니다.

훗날 어떤 저주가 다가올 지는 전혀 알지 못했고 기쁨의 현재를 탐닉했습니다.

베를렌은 임신 중인 아내를 폭행했고 출산하는 것조차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아들 조르주를 끝내 만나지 못했고, 아들은 훗날 기억상실증에 걸려 아버지를 잊어버렸습니다.




베를렌(왼쪽), 랭보(오른쪽)
왼쪽 첫 번째 베를렌, 왼쪽 두 번째 랭보, Henri Fantin-Latour (1836-1904) by the table



두 사람의 거침없는 사랑은 베를렌의 부인은 물론이요, 주변 사람들의 의심을 사기 시작하지요.

당시 동성애는 도덕적으로만이 아니라 법률적으로도 금지된 시대였습니다.

두 사람은 브뤼셀로 여행을 떠나지만 랭보는 모든 전통과 관습을 거부하며 제멋대로의 살았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보낸 지 약 2년이 되지 않아 랭보는 베를렌에게 절교를 선언하고 이에 흥분한 베를렌은 랭보를 향해 총을 쏘지요.


손에 총을 맞은 랭보는 고향으로 향하고 베를렌은 체포되어 2년의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랭보는 그의 대표작이 되는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써서 출간했으나, 그 책은  문단과 독자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습니다.

2년 후 출감한 베를렌은 랭보를 찾아갔으나, 랭보의 마음은 완전히 끝난 후였지요.

베를렌은 한때 시골 사립중학교의 교사가 되었으나 제자와 부적절한 관계, 술주정으로 면직당하고 맙니다.

사창가를 전전하면서도 많은 시집을 냈고 프랑스 문단의 대표적인 시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시인의 왕’이라는 영예로운 호칭이 있었습니다.

빅토르 위고에 이어 그 호칭을 물려받은 르콩트 드 릴이 세상을 떠나자 시인들은 새로운 ‘시인의 왕’을 뽑아야 했습니다.

400명의 문인들 중 189명이 투표를 했고 그중 베를렌은 77표를 얻어 ‘시인의 왕’이 되기도 했습니다.


베를렌이 랭보에게 붙여준 별명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를 마치 증명이라도 해보이겠다는 듯 끊임없이 방랑을 거듭하며 자신에게 시련을 가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영혼을 기괴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방랑은 곧 반항이었고 안정된 정착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나약한 정신에 대한 거부였습니다.


바람구두라는 별명처럼 랭보는 많은 곳을 돌아다니다가 아프리카에서 다리에 병을 얻은 채 프랑스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다리의 암이 전신에 퍼져 다리를 절단하게 되고 결국 1891년, 37세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베를렌 역시 시인으로서의 영광에도 불구하고 1896년 알콜중독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52세)



'취한 배'의 시 전문이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뜻을 모르는 까막눈이니 그냥 눈만 껌뻑거리며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길이 떨어지질 않더군요.

남의 집 벽에 기대어 필사자가 한 글자씩 써 내려갔을 심경을 상상해 봤습니다.

뜻을 알지 못하는 내게는 그 시가 써진 벽이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보였지요.

바람구두 랭보처럼 그의 시도 이렇게 벽에 새겨진 채로 바람을 맞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아쉬움에 동영상을 찍는데 발걸음이 흔들립니다.

취한 배처럼요.



 

'LE BATEAU IVRE'



취한 배/랭보


무정한 강물을 따라 내려갈 때,

사공에게 끌려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네.

색색의 기둥에 발가벗겨 못 박아 놓고서

인디언은 소란스레 사공들 공격했지.


플랑드르 산 밀이나 영국 산 목화를 나르는

선원 따위 관심 없었지.

내 사공들과 더불어, 떠들썩한 소란 끝나자

난 강물 따라가고 싶은 곳으로 내려갔지.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에, 지난겨울

뛰어난 아이들보다 더 둔한 나는

달려갔지. 떨어져 나간 반도는

그처럼 의기양양한 소란을 겪은 적이 없었지.


폭풍우 축복했네, 바다에서 눈뜨는 나를.

병마개보다 더 가벼이, 희생자 영원히

흔들리는 배의 물결에 휩쓸려 난 춤추었네.

열흘 밤, 초롱불의 희미한 눈동자도 그리워하지 않았지!


아이들이 쥔 시큼한 사과 속살보다 더 달콤한

초록 물은 푸른 포도주와 토해낸 찌꺼기 묻은

내 전나무 선체에 스며 들어와

키와 닻을 훑으면서 날 씻어주었네.


그때부터 나는 시의 바다에서 헤엄쳤네.

젖빛 나는 별들이 잠기고, 푸른 창공을 삼킨 바다,

거기 창백하고 황홀하게 떠도는,

생각에 잠긴 익사자가 이따금 내려왔지.


거기, 갑자기 푸르름 물들이며, 태양 빛 아래

느릿한 리듬과 열정으로 물들어,

알코올보다 더 독하게, 비파보다 더 멀리

쓰디쓴 사랑의 붉은 얼룩이 술렁이며 익어가네!


난 알고 있네, 번개로 터질 듯한 하늘, 솟구치는 물기둥,

되밀려 오는 파도, 해류를, 난 알고 있네, 저녁을,

비둘기 떼처럼 강렬한 새벽을.

사람이 보았다고 믿은 것을 난 이따금 보았지!


난 보았네, 긴 보랏빛 응결체를 비추는

낯선 공포로 얼룩진 낮은 태양을,

아주 오랜 고대 비극 배우처럼

저 멀리 수면 위로 떨리는 물결을!


난 꿈꾸었네, 눈부신 눈 쌓인 초록 밤이

느리게 바다 위로 올라와 입 맞추는 것을,

놀라운 수액의 순환을,

노래하며 반짝이는 것의 노랗고 푸른 깨어남을!


난 쫓아다녔네, 몇 달 내내, 발정 난 암소 떼처럼

넘실넘실 암초를 덮치는 거친 물결을.

성모 마리아의 빛나는 발도

숨 가쁘게 헐떡이는 대양을 뚫고 나갈 생각 못했네!


아시겠지만, 난 엄청난 플로리다와 부딪쳤네.

거기 사람 살갗의 표범 눈과 꽃이 뒤섞이고,

말굴레처럼 팽팽한 무지개와

바다의 수평선 아래 청록색 양 떼 어우러진 곳!


난 보았네, 덫인 엄청난 늪이 들끓는 것을,

거기 골풀 사이 거대한 바다 괴물 썩어가고!

잔잔한 가운데 물이 쏟아져 내리고,

폭포처럼 흘러 심연을 향해 아득해지는 것을!


빙하, 은빛 태양, 진주빛 파도, 이글거리는 하늘!

거무스름한 만 깊숙이 끔찍한 좌초,

거기 빈대 들끓는 거대한 뱀이

검은 향내를 풍기며 비틀린 나무처럼 넘어졌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네,

푸른 물결의 농어와 금빛 물고기와 노래하는 물고기들,

- 꽃 핀 파도 나의 출항을 다독이고

황홀한 바람 가끔 내게 날개를 달아주었네.


때로 극지와 변두리 오가며 지친 순교자처럼,

바다는 흐느끼듯 내 몸 부드러이 흔들어대며

노란 빨판 달린 어둠의 꽃을 내게 올려 보냈지.

난 거기 무릎 꿇은 여인처럼 그대로 있었네.


섬인 듯, 뱃전에 흔들리며,

지저귀는 갈색 눈빛 새의 똥을 가르며 힘겹게

나는 떠내려갔네. 내 옆을 덧없이 스쳐가는 익사자들

뒷걸음질 쳐 잠자러 내려갔지!


작은 만 가장자리에 길 잃은 배 되어,

폭풍으로 새도 없는 창공으로 던져진 나.

소형 장갑함도 한스 범선도

물에 취한 몸뚱이 건져 올리지 못했을 나.


보랏빛 안개를 타고, 자유로이 피어올라

난 붉은 하늘에 구멍 뚫었네, 벽을 뚫듯,

훌륭한 시인에게 바치는 맛있는 과일 잼처럼,

태양의 이끼와 창공의 콧물 달고서.


반달 전구 박혀, 미쳐 날뛰는 판자처럼,

검은 해마 호송받으며 달아났네,

불타는 깔때기 모양의 짙푸른 하늘을

7월이 몽둥이로 쳐 무너뜨릴 때,


오십 리 밖에서, 베헤못의 암내와 엄청난 소용돌이가

울부짖는 소리 느끼며 난 떨고 있었네.

푸르고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영원히 실 잣는 자, 나는

옛 난간에 기대어 유럽을 그리워하네!


난 보았네, 별처럼 떠 있는 섬을,

열광하는 하늘이 항해자에게 열려 있는 섬을,

- 이 끝도 없는 밤에 그대 잠들어 달아나는 건가?

오, 수많은 황금 새여, 오, 미래의 활력이여!


정말로, 난 너무나도 눈물 흘렸네! 새벽은 비통하고

달은 온통 잔혹하고 해는 온통 씁쓸해라.

쓰디쓴 사랑은 마비된 취기로 날 가득 채우네.

오, 나의 용골이 갈라지기를! 오, 내가 바다에 이르기를!


내가 유럽의 물 원한다면, 그건

검고 차가운 웅덩이, 향기로운 황혼 녘

슬픔 가득하여 쪼그리고 앉은 아이

5월의 나비처럼 가벼운 배 한 척 떠나보내네.


오, 물결이여, 난 그대 무기력함에 잠겨서,

목화 짐꾼의 그 흔적 없애지 못하네,

오만한 깃발과 불길 가로지를 수도,

떠 있는 다리의 험악한 눈 빛에서 헤엄칠 수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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