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나무 Dec 08. 2023

 5년의 안식년 맞는 퐁피두

13.  Pompidou Center

 





파리 중심부인 마레 지구를 걷다 보면 눈에 띄는 건물이 있습니다.

알록달록한 색칠을 한 공장 같기도 하고 완성되지 않은 건축물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유소'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건물의 바깥에 설치된 커다란 파이프들 때문인데요.

파이프 등 배관을 밖으로 빼놓은 이유는 건물 내부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 설계한 까닭입니다.

공기 공급 파이프는 흰색,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는 붉은색, 전기 배선은 노랑, 수도관은 녹색, 공기 조화 시스템과 관련된 파이프는 파란색의 단으로 구분을 했습니다.

파리에서 가장 파리답지 않은 곳이고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곳이기도 합니다.




퐁피두 센터 (2023.10.14)




퐁피두 센터는 1969년부터 1974년까지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조르주 퐁피두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그곳의 이름이 퐁피두 미술관이 아니라 퐁피두 센터인 것은 복합 문화시설이기 때문입니다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 미술관외에 공연장·극장·도서관·서점·카페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 있지요.

그동안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것은 일단 건물의 외관이 내키지 않고 현대 미술 작품이 주를 이룬다는 이유에서였어요.

이번에는 시간 여유도, 뮤지엄 패스도 있으니 가보기로 했습니다.  


1977년에 개관한 이곳은 파리 올림픽이 끝난 2025년부터 5년 동안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 기간 동안 퐁피두의 전시물은 서울, 말라가, 브뤼셀 세 곳에 지점을 두고 운영할 계획인데 서울은 63 빌딩으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바실리 칸딘스키, 파블로 피카소, 프란시스 베이컨, 앤디워홀 등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의 작품을 서울에서 관람할 수도 있게 된 거죠.

뮤지엄 패스 소지자는 주황색 라인에서 바로 입장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예약은 하지 않았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넓습니다.

어디가 어딘지, 어디부터 가야 할지 막막할 정도도 내부 공간이 뻥 트여있습니다.

그럴 때는 사람들이 많이 이동하는 쪽으로 따라가는 게 수죠.

일단 건물 외벽에 거대하고 투명한 파이프 속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6층 전망대로 갑니다.

퐁피두에 도착했을 때에는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떠있었는데 20여 분 사이에 먹구름이 몰려왔더군요.

한 달 내내 그랬습니다.

하루 종일 짱짱하게 맑은 날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날씨가 흐린 탓도 있지만 파리의 오래된 건축물들을 내려다보니 흑백영화를 보듯 우중충합니다.

굴뚝이 참 많네요.




퐁피두 6층에서 보이는 에펠탑
오른쪽 꼭대기 몽마르트르의 사크레쾨르 성당


건물 외부의 파이프 에스컬레이터



메인 전시실은 5층과 4층인데 내가 갔던 기간에는 샤갈이 1945년부터 1970년까지 작업했던 드로잉, 조각, 도자기 작품들을 전시하는 샤갈 앳 워크 특별전이 있었어요.

오페라 가르니에 공연장 무대의 천장에서 보았던 프레스코화 '꿈의 꽃다발'을 작업하기 전의 스케치와 모형,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발레 의상과 커튼 준비 스케치와 그의 대표작이 여럿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페라 가르니에 천장화 꿈의 꽃다발 스케치


불새 의상 스케치




팔에 깃털을 붙인 채 새처럼 날려고 했던 이카루스의 신화는 유명하지요.

러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한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이카루스의 몰락은 그의 생애 마지막 해에 그려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샤갈 그림에는 마법적인 요소에 만화 같은 유머가 섞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신화 속의 이카루스가 부딪히려고 하는 바다는 샤갈의 고향 벨라루스라고 하네요.

이카루스가 영광의 주황색 불꽃 속에서 추락하는 것은 전설보다 훨씬 더 나빴던 샤갈의 운명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샤갈 <이카루스의 추락>
샤갈 < To my wife>
샤갈 <붉은 지붕들>
샤갈 <The soul of the city>
샤갈 <Le Dimanche>
샤갈 <The couple of the Eiffel tower>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프리다 칼로의 아주 작은 그림이 한 점 걸려 있어요.

가로세로 30cm가 안 되는 작은 그림입니다.

하지만 프리다 칼로의 그 작은 그림 하나가 퐁피두 센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유가 있더군요.

그 그림은 유럽 전체에서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는 프리다 칼로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은 퐁피두 센터의 모나리자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멕시코시티에 있는 프리다 칼로의 푸른 집을 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지났군요.

프리다는 사회적 관습에 의해 좌우되는 여성으로부터 벗어나 타협하지 않는 작가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본인의 얼굴 주위에 꽃을 프레임처럼 그리고 날개도 달아주었습니다.

날개는 예술가의 고통이나 순교를 의미하는데 18세 때 거의 죽을 뻔한 교통사고를 당한 그녀 자신을 설명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프리다 칼로 <자화상>




길을 가다 보면 너무나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잘 생기거나 예뻐서가 아니라 그들이 있는 풍경이나 얼굴의 표정, 또는 옷차림새와 분위기 등 많은 게 그렇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을 때가 많지요.

멀리서도 눈에 탁 들어오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저 여인은 독일인 같아'


추측이 맞았습니다.

독일 표현주의 화가 오토 딕스(Otto Dix)가 언론인 실비아 본 하덴을 만났을 때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요?

정말 개성이 넘치다 못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이었습니다.

탁자 위의 물건들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물건들을 구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안경주위의 검은 원은 그녀가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녀의 성격이 강인하고 직설적일 것 같다는 인상이 강하더군요.

오토 딕스 <실비아 본 하덴>




꽤 단순해 보이는 이 그림은 결코 평범하지 않아서 매력적입니다.

예술가는 조용한 명상과 거친 인간의 열정이라는 다소 반대되는 두 가지 아이디어의 대조를 만들려고 시도했습니다.

파란색은 잔잔한 바다 같습니다.

검은 점들이 정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거대한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붉은색의 거친 사선이 나타납니다.

호안 미로가 그린 세 장의 블루 시리즈는 추상적인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크기가 무척 커서 놀라웠지요.






호안 미로 <세 장의 블루 시리즈>




몬드리안의 그림은 대부분 공간을 직선 분할하기 때문에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만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지요.

일반회화라기보다 디자인 아트에 가까워 보입니다.

제목을 보니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직선은 1940년대 초 활기 넘치는 뉴욕의 빌딩을 블록으로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몬드리안 <뉴욕 1942>




온갖 다양한 추상화들이 복합적으로 전시된 가운데 그래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림이 있었으니 마티스입니다.

퐁피두가 소장하고 있는 마티스의 작품 중에서는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이 유독 아름답고 맘에 들었습니다.




마티스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
마티스 <interieur bocal de poissons rouges>
마티스 <알제리 여인>
마티스 <Marguerite with a black cat>
마티스 <흰색과 핑크색의 두상>




완전히 망가진 그랜드 피아노가 커다란 널빤지에 붙어 있습니다.

쇼팽의 워털루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아르망의 입체적인 콜라주 작품인데요.

피아노를 해머로 부순 다음 파편을 끌어모아 붙였습니다.

화가 나서 그런 게 아니라 작품을 위한 계획적인 파괴죠.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네요.




Arman <쇼팽의 워털루>




러시아 화가 카지미르 세베리노비치 말레비치(1879-1935)의 작품이 꽤 많았는데요.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출생하였고 인상파 및 포비즘화충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나 파리로 온 후  큐비즘을 접하면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약간 피카소 그림의 요소가 보이지만 훨씬 단순한 구성이 맘에 들었지요.




Le Cheval blanc



한 남자가 창문이 없는 두 채의 집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집은 스탈린 시대의 감옥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피로 얼룩진 칼날은 예술가들을 부당하게 위협하고 있음을 강조했던 것이죠.




Sensation du danger



독일에서 태어난 디에츠는 어렸을 때 표현주의에 기반을 두었으나 파리로 건너왔을 때에는 인상주의 식 그림의 판매가 더 쉽다는 것을 알고 그림의 기반을 바꾸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 방식보다는 좀 더 편하게 살아가는 쪽을 택한 게 아닌가 싶네요.

어찌 보면 순정만화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붓터치 방식이 새롭습니다.

인물화의 구성은 마네의 그림을 닮았고 정물화는 르누아르나 세잔의 그림이 느껴졌습니다.

각자 보는 눈이 다르고 해석이 다르니 맞다 틀리다 할 수는 없지요.

그냥 제 느낌입니다.




디에츠 에드자드(edzard dietz,1893독일-1963 프랑스)




퐁피두 센터에는 20세기와 21세기의 미술 작품이 10만 점 이상 소유하고 있습니다.

워낙 방대한 작품들이 오픈된 공간에 걸려있거나 설치되어 있어서인지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더군요.

앤디 워홀, 피카소, 칸딘스키,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있었지만 집중력이 떨어졌습니다.

그야말로 보고 싶은 것만, 아니 알만한 작품만 골라서 볼 수밖에 없었지요.




앤디 워홀 <10 Lizes>
Hernandez miguel
Verner Panton <Sofa living Sculpture>
Josef Alders (Glove stretchers)




예술가들은 누구나 고유의 스타일을 갖고 있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FM 라디오를 켜면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처음부터 듣지 않았어도 그게 바흐인지 모차르트인지 말러인지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그들만의 음악풍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가수의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목소리가 갖고 있는 음색이 모두 다르니까요.

그림도 그렇습니다.

멀리서 봐도 마티스인지, 피카소인지, 고흐인지 구분할 수 있는 것 역시 화가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화풍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겠죠.

각자 갖고 있는 외모와 말투, 걸음걸이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그 사람의 분위기를 만드는 겁니다.

아마도 사람은 빛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인상파 그림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네요.


이제 로댕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요.

메트로를 환승하러 가는데 정말 아름다운 키보드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는 계단의 좁은 모퉁이에서 연주하고 있었어요.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멈추어서 계속 듣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지 뭐예요.

연주자 앞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공간이 너무 좁았기에 순간적으로 지나간 거죠.

한 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소리는 작아졌고 나는 어느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10초 남짓한 그 찰나가 그 어떤 대단한 연주를 들었던 시간보다 값졌습니다.

두고두고 아쉬운 기억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의 술 취한 배(boa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