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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Dec 09. 2023

미라보에서 퐁네프까지

14. Seine River






비가 내립니다.

'오늘은 여유 있게 센 강을 따라 쭉 걸어볼까?'

우산을 받쳐 들고 센티멘털 또는 멜랑꼴리 하게 강변을 따라 걷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여유도 습관입니다.

늘 바쁘게 생활하는 사람은 여행할 때도 조급합니다.

벼락치기 시험공부하는 사람처럼 빨리빨리 이동하고 짧게 짧게 스쳐 지나가지요.

그런 여행은 남는 게 없습니다.

기간이 짧던 길던 여유가 필요합니다.

  

여행은 낯섦에서 시작됩니다.

조금씩 적응하다 보면 헤어짐의 시간에 다다르지요.

어김없이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추억할 시간이 늘어났고 시간은 또 주어지니까요.


몇 년 전에 읽은 책이 생각납니다.

프랑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나는 걷는다>입니다.

총 3권인데 한 권이 400페이지가 넘어요.

기자 출신인 올리비에는 은퇴 후 튀르키에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걷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혼자 걷고 또 걷습니다.

1099일 동안 6400km를 걷는 데 성공했지요.

책에는 그 흔한 사진 한 장도 없습니다.

그래도 술술 읽힙니다.

어느 날 강도를 피하기 위해 피치 못하게 차를 얻어 타고 일정 거리를 이동한 적이 있습니다.

다음 날 그는 차를 타고 온 거리만큼 되돌아가지요.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다시 걸어갑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구나 싶었지요.


"나는 다시 길을 떠났고 또 휴식을 취했다.

거북이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 친구야, 미리 말해두겠지만 나는 너와 경주하지 않을 거란다." <나는 걷는다 중>


 




센강에는 다리가 무척 많습니다.

퐁뇌프,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예술의 다리가 유명한데요.

37개나 되는 다리를 다 걷자면 9.6km,

욕심낼 게 아닙니다.

오늘은 반 만 걷기로 했지요.

출발할 곳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그 이름, 미라보 다리입니다.

구름이 에펠탑 꼭대기를 덮고 있네요.



파리 센 강의 다리 지도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는 기욤 아폴리네르가 사랑하는 여인 마리 로랑생과 헤어진 후 쓴 시로 유명한데요.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는 시인이며 소설가, 미술 평론가였습니다.

폴란드 귀족 출신의 어머니와 이태리 퇴역 장교인 아버지 사이에서 로마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파리에서 시인으로 활동했습니다.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은 몽마르트르에서 태어났는데 그녀 역시 사생아여서 어머니의 성을 따랐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파리의 저명한 인사였고 어머니는 그 집의 하녀였거든요.

여성 화가가 드물던 그 시절, 마리는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당시 피카소를 비롯해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몽마르트르의 세탁선을 드나들면서 입지를 다져갔지요.

그녀는 첫 개인전에서 피카소의 소개로 기욤 아폴리네르를 만나게 됩니다.

27세의 기욤과 24세의 마리는 첫눈에 반해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어요.

사생아로서의 외로움과 예술이라는 공통분모는 두 사람의 사랑을 확실하게 묶어주었습니다.


어느 날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가 깜쪽같이 사라진 겁니다.(1911년)

박물관은 일주일 동안 문을 닫았고 평소에 루브르 박물관을 좋지 않게 말하곤 했던 피카소와 기욤은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마리는 기욤과 결별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욤은 마리와 마지막 이별을 한 후 돌아가는 길에 '미라보의 다리'를 썼습니다.

당시 마리의 집이 미라보 다리 근처였거든요.


1차 대전 때 보병으로 입대한 기욤은 머리에 파편을 맞고 제대를 했으나 1918년 스페인 독감에 걸려 38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기욤과 헤어진 마리는 독일인과 결혼을 하여 독일인이 되었고 1차 대전이 터지자 두 사람은 도망치듯 스페인으로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알코올 중독과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고 그녀를 구원한 것은 오로지 그림과 문학이었습니다.

이혼 후 프랑스 국적을 되찾은 마리는 파리로 되돌아옵니다.

마리는 화가이면서 시인이었습니다.

한 번쯤 읽어봤을 법한 <잊힌 여인, 원제는 진정제라는 뜻의 The Sedative>을 쓴 사람이 바로 마리 로랑생입니다.





미라보 다리에 새겨진 기욤의 시 첫 구절
마리 로랑생과 기욤 아폴리네르(앙리 루소)
예술가의 뮤즈(마리 로랑생)



미라보 다리(1912) -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을

나는 회상해야 하네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 뒤에 왔었지      

밤이 오고 종이 울리고

나날은 가버리고 나는 남는다

손을 맞잡고 마주 보고 있자     

영원한 시선들에

지쳐버린 물결이 우리 팔의

다리 아래로 지나가는 동안

밤이 오고 종이 올리고

나날은 가버리고 나만 남는다.     

사랑은 가버린다 저 흐르는 물처럼

사랑은 가버리고

삶은 얼마나 느린가

희망은 또 얼마나 사나운가     


밤이 오고 종이 울리고

나날은 가버리고 나는 남는다.      

나날들이 가버리고 주일들이 지나가

지나간 시간도

사랑들도 되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른다      

밤이 오고 종이 울리고

나날은 가버리고 나는 남는다






잊힌 여인(1917)  - 마리 로랑생


권태로운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슬픔에 젖은 여인입니다.   


슬픔에 젖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불행을 겪고 있는 여인입니다.  


불행을 겪고 있는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병을 앓는 여인입니다.    


병을 앓는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버림받은 여인입니다.     


버림받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쫓겨난 여인입니다.      


쫓겨난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죽은 여인입니다.     


그러나

죽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잊힌 여인입니다.    






비가 제법 내려서 시야가 좋지는 않지만 멀리 희미하게 자유의 여신상이 보입니다.

미국이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에 기증한 것인데요.

뉴욕 쪽을 바라보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곳은 백조섬이라고 불리는 작은 섬입니다.

그리고 그 옆이 그르넬(Grenelle) 다리입니다.

걷다 보니 라디오 프랑스 방송국도 보입니다.

정명훈이 파리에 거주할 때 바스티유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라디오 프랑스필의 상임 지휘자를 맡았었지요.


 


백조섬에 설치된 자유의 여신상
그르넬(Grenelle) 다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진이 찍히는 장소는 아마도 에펠탑이 아닐까 싶습니다.

에펠탑의 높이는 약 300m로 너무 크기에 가까이 가면 전체를 찍을 수 없습니다.

물론 파리의 많은 곳에서 에펠탑이 보이긴 하지만 거리가 먼 만큼 크기가 작게 찍히죠.

에펠탑을 가까이 찍을 있는 명소가 군데 있는데요.

그중 한 곳이 이 비르하켐 다리입니다.


1942년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군이 비르하켐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표식이 있습니다.

이 다리는 2층의 구조로 1층은 자동차도로와 보행자도로가 있고 2층에는 메트로가 다녀요.

그곳을 지나는 메트로 6호선을 타면 에펠탑을 볼 수 있는데요.

비르하켐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다시 메트로를 타거나 걸어서 트로카데로 역에 내리면 그야말로 에펠탑을 정면에서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웨딩 촬영을 하는 커플들을 많이 보았는데요.

인셉션 등 많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비르하켐 다리
1층 자동차와 보행자 이용(2023.10.30)
2층 메트로 6호선
2차 세계대전 아프리카 리비아에서 벌어진 비르하켐 전투 1942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
2023.10.24 비르하켐
2023.10.24 비르하켐에서 촬영
2023.10.30 비르하켐에서 촬영
2023.10.24 비르하켐에서 촬영
2023.10.24 비르하켐에서 촬영


이어지는 다리는 나폴레옹이 1806년 예나 전투에서 승리한 후 건설해서 붙여진 이름 예나(Pont d'Iéna, 퐁 디예나:프랑스어로 pont는 다리라는 뜻)입니다.



이정표 Pont d'Iéna
Pont d'Iéna 버스 정류장
Pont d'Iéna



센 강에서는 보기 드문 아치형 다리가 보이네요.

이것은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참석하는 방문객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리로 예나 전투에서 사망한 장군의 이름을 붙여서 파서렐 데빌리(Passerelle Debilly)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돌 교각 위에 금속 뼈대를 이어 만든 이 다리는 에펠탑과 함께 그 시대의 공학적 성과를 입증하는 두 번째 금속 구조물이라고 합니다.

에펠탑은 계속 구름 모자를 벗었다 썼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파서렐 데빌리(Passerelle Debilly) 다리
구름에 가린 에펠탑



강을 따라 걸어가는데 라흐마니노프 음악원(conservatoire rachmaninoff)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건물이 보였습니다.

그곳은 전문 음악 학교로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로 음악 과정을 진행한다는데요.

그렇다면 왜 라흐마니노프 음악원이 파리에 있을까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을 때 지식인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철학자, 작가, 음악가들이 해외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파리는 세계의 문화 수도로 여겨졌고 러시아 이민자들이 파리로 왔던 겁니다.

사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다음 해에 미국으로 망명했기 때문에 라흐마니노프와는 상관이 없지요.

피아니스트 호로비츠 역시 이때 베를린으로 갔다가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 음악원(conservatoire rachmaninoff)



며칠 후에 오게 될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도 지나가게 되는군요.

입구는 반대편에 있고 센 강이 보이는 쪽은 미술관의 뒤편입니다.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은 팔레 드 도쿄 건물의 동쪽 건물에 있습니다.

1937년 만국박람회 당시 전시를 위해 건축되었는데 8000점 이상의 컬렉션이 연도별로 구분되어 있고 관람은 무료입니다.

단 특별전은 따로 티켓을 예매해야 하는데요.

특별전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가보아도 좋은 공간입니다.




사진의 왼쪽은 팔레 드 도쿄, 오른쪽은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


알마 다리는 크림 전쟁의 알마 전투에서 이름을 따온 겁니다.

사실 이 다리는 1997년 8월 31일 이후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많아졌습니다.

알마 다리는 영국의 전 황태자비이며 웨일스 공작부인 다이애나가 탄 자동차 사고가 발생한 알마 터널 바로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터널 입구의 바로 위에는 뉴욕 자유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것과 모양과 사이즈가 똑같은 불꽃 조형물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신문이 파리에서 영문 일간 신문을 발행한 지 100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여 미국이 선물한 것인데요.(1989년 5월 10일에 설치)

하지만 다이애나가 이 근처에서 사망한 후 그녀를 위한 비공식 기념비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9년부터 이 광장의 공식 이름을 디아나(다이애나는 프랑스식으로 디아나로 읽음) 광장으로 명명했습니다.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꽃과 사진들이 놓여 있더군요.




알마 다리 이정표
알마 다리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를 당한 알마 다리 옆 터널(2023.11.4)
자유의 불꽃(디아나 광장)(2023.11.4)
디아나 광장의 다이애나 추모 사진과 꽃(2023.11.4)



만추의 나뭇잎들이 비에 젖에 더욱 진한 색이 되었어요.

강변 따라 나처럼 쭉 걸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비가 내려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유람선 바토 무슈 선착장을 지나서 걷고 또 걷습니다.



센 강 좌안
유람선 바토 무슈 선착장



앵발리드 다리 (Pont des Invalides)는 센강을 가로지르는 가장 낮은 다리입니다.

앵발리드는 군사박물관으로 나폴레옹의 관이 있습니다.

앵발리드에서 알렉상드르 3세 다리 건너 콩코르드 광장, 샹젤리제, 개선문까지 도로가 직선으로 이어지지요.

사실 위치로 볼 때 앵발리드 다리라는 이름은 그곳에 있어야 걸맞지만 알렉상드르 3세 다리에 밀린 게 아닌가 싶네요.



앵발리드 다리
멀리 보이는 지붕은 쁘띠 팔레와 그랑 팔레



드디어 금빛 찬란한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re Ⅲ) 앞에 왔습니다.

이제 거의 파리의 중심에 다다른 거죠.

알렉상드르 3세는 러시아의 군주입니다.

러시아와 프랑스 간의 친교를 표현하는 의미로 붙여졌는데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라는 뜻) 시대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리입니다.

에펠탑과 더불어 1900년 프랑스 만국박람회 당시 축하 행사의 일환으로 다리가 완공되었고 쁘띠 팔레와 그랑 팔레 역시 그 시기에 지어진 전시장입니다.

그러고 보면 1900년 파리의 만국박람회는 그 시절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지요.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알렉상드르 3세 다리 건너편 황금 돔이 앵발리드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다음에 이어지는 콩코르드 다리(Pont de la Concorde)를 건너면 부르봉 왕가가 살았던 부르봉 궁전입니다.


.

콩코르드 다리
부르봉 왕궁



오르세 미술관과 튈르리 정원을 연결해 주는 다리는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 인도교(passerelle leopold sedar senghor) 세네갈 초대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다리 역시 보행자 전용 다리입니다.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 인도교(passerelle leopold sedar senghor)
오르세 미술관

퐁 루아얄(pont Royale)은 루이 14세 때 만들어진 다리로 퐁네프(Pont Neuf)와 퐁 마리(Pont Marie)에 이어 파리에서 세 번째로 오래되었습니다.

오래된 돌다리가 빗물을 머금고 검은색을 띠니 운치 있네요.



퐁 루아얄
퐁 루아얄
퐁 루아얄(루이 14세 1685-1689)



카루젤 다리(pont du carrosel)





퐁 뒤 카루젤 동상(루이 프티토)
카루젤 다리
루브르 박물관



퐁 데자르(Pont des Arts), 일명 예술의 다리로 불리는 이곳은 오늘날 파리의 가장 로맨틱한 관광지 중 하나로 손꼽히며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입니다.

이곳 역시 도보전용 다리로, 버스킹이나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접할 수 있는 곳이죠.

파리를 찾은 연인들이 다리에 일명 사랑의 자물쇠를 걸고 열쇠는 센 강에 던져버림으로써 사랑의 서약을 하는 곳으로도 유명해진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갈수록 자물쇠는 늘어가고 그 무게를 다리가 지탱하지 못할 경우 무너질 우려도 있으므로 파리 당국은 2015년부터 자물쇠 철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기저기 자물쇠들이 걸려 있더군요.

과연 그곳에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버린 연인들은 사랑이 이루어졌을까요?

다리 건너편에 있는 건물이 무엇인지 늘 지날 때마다 궁금했었지요.

드디어 알아냈습니다.

그곳은 프랑스 학사원(institut de France), 며칠 후 방문할 수 있었지요.




퐁 데 자르(예술의 다리)
퐁 데 자르(Pont des Arts)
퐁 데 자르를 건너면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파리 학사원




퐁 뇌프는 파리 최초의 다리로 당연히 가장 오래된 다리입니다.

그만큼 제일 많이 알려진 이름이기도 하지요.

<퐁뇌프의 연인들>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더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다리 바로 옆에 퐁 뇌프 메트로역이 있고 사마리탱 백화점과 루이뷔통 본사가 있습니다.

시떼 섬을 사이에 두고 있기 때문에 파리 시청, 노트르담 성당, 생 샤펠 성당 등 주변에 찾아다닐 곳이 아주 많지요.

그러므로 명실공히 파리 여행을 하다 보면 그 근처를 가장 많이 지나다니게 되는 핫 스폿이기도 합니다.

다리를 건너면 헨리 4세의 기마상이 있습니다.



퐁 뇌프
퐁 뇌프
퐁 뇌프(Pont Neuf)

 

                     

카메라는 아예 집에 두고 왔습니다.

우산을 들고 스마트 폰으로 찍는 일이 쉽지 않더군요.

사진도 영 마땅찮고요.

우산을 가방에 집어넣었다가 또 비가 세차게 내리면 꺼내 썼다가를 반복했습니다.

비가 내리니 벤치에 앉을 수도 없고 강변에는 커피 한 잔 마실 카페도 변변찮았지요.

우선 급한 대로 사마리탱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은 이번 여행 중 오가다 자주 들리는 단골 화장실이거든요.

파리에서 최고 럭셔리한 백화점을 전용으로 쓰는 기분이 어떤지 모르실 겁니다.

머리와 가슴을 비우고 흐르는 강물처럼 타박타박 걸었던 한 나절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여행은 세계를 읽는 행위,

그러니까 세계에 대한 독서이므로 취미가 아니라 습관이다.

페이지를 넘기듯 길을 가고 밑줄을 긋듯 사진을 찍고, 책갈피를 끼우듯 길 위에 머문다.'


여행 작가 최갑수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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