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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Dec 27. 2023

갤러리 디올의 디오라마

24. 디올 갤러리, 사마리텐, 라파예트






루이뷔통, 샤넬, 디올, 생 로랑, 지방시, 셀린, 에르메스, 카르티에, 랑방, 끌로에, 티파니,

이것들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브랜드 이름입니다.

파리는 그야말로 럭셔리의 끝판왕이지요.

아름답고 예쁘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제품을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가질 수는 없는 이유는 아무래도 비싼 가격이기 때문일 겁니다.

나는 명품숍을 방문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위에 나열된 이름의 제품을 갖고 있을 리가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갤러리 디올 티켓을 예약한 이유는 디오라마(diorama, 프랑스어 디오라마는 미니어처라는 뜻)를 실제로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있었지요.


'뭘 입고 가야 하지?'


오픈 시간이 11시라 느긋하게 숙소를 나섰습니다.

메트로 1호선이나 9호선을 타고 프랭클린 디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역에 내리면 되는데요.

파리 역시 역 이름에 인명을 붙인 곳이 많습니다.

이곳의 거리 이름은 원래 빅터-엠마누엘 3세였는데 독일로부터 프랑스를 해방시킨 당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이름을 따서 역의 이름이 바뀐 것입니다.

샹젤리제 거리와 가까운 그곳은 온통 명품샵이 가득합니다.

디올 갤러리는 멀리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지요.



프랭클린 디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역
생 로랑
셀린
티파니 앤 코
디올 갤러리



늦가을의 선선함이 기분 좋은 아직은 맑은 하늘입니다.

우아하고 살짝 도도한 아가씨들, 특이한 옷을 입은 패션 블로거들,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패션학도들, 그리고 나처럼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의 관광객이 한데 모여 있었지요.

앞에 서 있는 중년 여성은 샤넬 트위드 재킷, 디올 백, 구두는 프라다를 신었습니다.

동양 여인 대여섯이 그룹으로 왔는데 그들 역시 모델이나 연예인 같은 아우라를 풍기더군요.

반면 나는 파리에서 교복처럼 거의 매일 입는 검정 트렌치코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가에서 샀던 천가방을 들었지요. 그리고 신발은 20km를 걸어도 끄떡없는 캠퍼의 투박한 워커입니다.

명품 갤러리를 문하는 사람의 차림새로는 조금 엉뚱하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패션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곳에 간 이유는 바로 호기심이었지요.

디올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을 보러 온 것이고 드레스 코드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건 역시 나선형 계단옆의 유리 케이스에 진열된 디오라마입니다.

1층에서부터 3층까지 전체 벽면에 전시되어 있는데 디올을 상징하는 핸드백, 구두, 향수, 모자, 드레스 등의 제품을 실제 크기의 40%로 축소하여 3D프린트로 제작했어요.

그 개수는 1847개로 약 10만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화이트를 시작으로 핑크, 레드, 오렌지, 옐로, 민트, 그린, 블루, 네이비, 퍼플, 그레이, 블랙의 순으로

나열해 놨는데 요즘 유행하는 인스타 사진 스폿으로 안성맞춤이겠더군요.

정말 어느 컬러 하나 빠짐없이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어릴 때 색종이를 잘라 만든 옷을 종이 인형에 입히며 놀던 기억이 났습니다.








안내하는 분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부터 관람을 하라고 알려주더군요.

3층에서는 75년 동안 디올 하우스의 컬렉션의 역사, 즉 현재 크리스천 디올과 그의 여섯 명의 후계자인 이브 생 로랑, 마르크 보앙, 지안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선구적인 대담함을 볼 수 있는 독창적인 전시 공간입니다.

왜 명품인가 짐작되는 공간들이 이어졌습니다.

부드러운 광택이 나는 실크, 은과 금으로 반짝이는 꿈을 꾸며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지요.

한 마디로 환상적입니다.
















크리스천 디올은 어렸을 때부터 별을 좋아해 그를 그의 뮤즈로 삼았습니다.

자신의 향수 라인 디오르 자도르(Dior J'adore) 광고에서도 자주 별을 사용했는데요.

그에게 별은 꿈과 희망, 창의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서랍니다.

중국 사람들이 8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디올 역시 8을 좋아했는데요.

8의 모양이 인간의 몸과 비슷한 형태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디올 갤러리는 파리 8구에 있으며, 8층짜리의 건물이자, 총 8개의 아틀리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05년 노르망드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자란 크리스천 디올은 비료 사업으로 성공한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정치학을 전공하고 외교관이 되길 바랐지만 명문 정치과학대학(시앙스폴리티크)에서 공부를 마치지 않고 패션 부티크를 오픈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1931년 부티크를 닫은 뒤  디자인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로베르 피게 Robert Piguet 밑에서 일했다. 군 복무를 마친 후에는 디자이너 보조로 복귀해 뤼시앵 를롱 Lucien Lelong 밑에서 일했다 


디올의 재능을 눈여겨본 직물 제조업자 마르셀 부삭 Marcel Boussac은 1946년 필립&가슈통 Philippe et Gaston 브랜드의 부활을 위해 디올에게 접근했다. 부삭은 단순히 전쟁으로 문을 닫은 부티크를 재개한다는 계획이었지만 디올의 생각은 달랐다.


“전쟁 전에 시작한 패션 하우스를 다시 열고 싶겠지만, 이제 그것은 그다지 의미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1946년입니다. 전쟁이 끝났어요. 전후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어필해야 합니다.”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두 사람은 몽테뉴가 30번지에 크리스천 디올 사무실과 공방을 열었고 1947년 2월 12일 그곳에서 첫 번째 컬렉션 ‘모래시계 모양 실루엣의 크림 재킷과 플리츠 A라인 스커트를 비롯한 룩 95점’을 선보였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후 새로움을 갈구하던 파리지엔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그의 '뉴룩 New Look'은 세계적 관심으로 이어졌다. 디올은 1953년 해외에서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였으며 할리우드 스타들의 영화의상을 디자인했으며 뉴욕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부티크를 오픈했다.


크리스천 디올의 뉴룩은 여성의 인체를 꽃에 비유해 부드러운 곡선의 여성스러운 스타일이 특징이었다. 우아하고 귀족적이며 여성의 인체미를 강조한 디자인은 독립성과 자아에 눈을 뜨기 시작한 그 시대의 여성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동경의 대상이 됐다. 디올은 1957년 10월 23일 52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후임자들이 계속해서 디올이 번창할 수 있는 기틀을 다져놓았던 덕분에 지금도 럭셔리 브랜드의 대명사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 후 이브생 로랑, 마르크 보앙, 지앙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와 라프 시몬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했고 2016년부터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디올을 이끌고 있다. (출처 : 아트 & 컬처 뉴스)




크리스천 디올
디올이 사용하던 책상






하이패션을 입거나 사용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아주 흥미로운 공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곳은 크리스천 디올이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와 꿈과 창조를 발견하는 여정이었지요.

누구도 무관심하지 않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가득한 장인의 이야기가 꽤나 의미 있었습니다.

2층은 카페와 레스토랑입니다.

계단은 계속 디오라마를 지나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덕에 하나하나 눈에 담아봤지만 예쁘지 않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디올 카페
2층 디올 카페








갤러리를 나오니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났는데요.

놀라운 건 내가 들어갈 때 맨 앞에 서있던 사람이 아직도 입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 줄은 예매하지 않고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줄이었지요.

1시간도 넘게 들어가지 못하고 기다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오늘은 내친김에 화려함의 세계로 빠져볼까 합니다.

앞서 마레 지구의 공짜 박물관을 소개할 때 코냑 제이가 있었지요.

그 코냑 제이가 처음으로 만든 백화점 사마리텐입니다.

지금은 LVMH(모엣 헤네시 루이뷔통) 그룹이 인수하였지만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역사적 문화유산이지요.

LVMH는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인데요.

이 회사는 1987년 루이뷔통 패션하우스와 모엣 헤네시의 합병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코냑 브랜드로 유명한 모엣 헤네시는 1971년 모엣 샹동과 헤네시사의 합병으로 이루어진 회사죠.

자회사들의 브랜드를 보고 LVMH가 얼마나 큰 규모의 그룹인지 짐작이 되더군요.

루이뷔통, 크리스천 디올, 세포라, 모엣 샹동, 티파니, 헤네시, 펜디, 도나 카란, 에밀리오 푸치, 지방시, 겐조,  

마크 제이콥스, 셀린느, 태그 호이어, 제니스, 위블로(Hublot), 쇼메(Chaumet), 불가리, 로로 피아나 등입니다.



LVMH는 이 백화점을 인수한 후 15년이라는 엄청난 기간에 걸쳐 파리 최대규모 리모델링 공사를 해서 2년 전 다시 오픈했습니다.

이 백화점 앞에는 루이뷔통 본사가 있어서 LV Dream도 함께 방문하는 것도 좋은 팁입니다.

단 루이비통의 LV Dream은 무료지만 예약이 필요합니다.




사마리텐 쇼윈도




사마리텐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꼭대기 층의 유리 천장입니다.

아르누보 양식을 대표하는 명작으로 손꼽히는 공작새 프레스코 장식이지요.

37m x 20m의 직각 지붕은 유리로 만들어졌는데 세심한 작업을 통해 최초의 형태와 색감을 그대로 복원하는 데에 성공하였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기술적 혁신이 적용된 분야는 빛에 따라 창의 색깔이 변화하는 전기 변색 기능이라고 하네요.   





자사 제품 헤네시가 곳곳에 전시되어 있음




카지노와 백화점이 전략적으로 설치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카지노에는 시계, 창문, 거울이 없습니다.

시계가 없는 이유는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하기 위함이고, 거울이 없는 이유는 탐욕과 절망에 찌들어 초췌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창문이 없는 이유는 밤을 지나 새벽이 오고 동이 터오는 모습을 인지하지 못하고 카지노에 빠져들게 하는 이유랍니다.


백화점 역시 시계와 창문이 없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에 집중하게 하려는 의도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으로 인해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오직 상품에만 집중하도록 말이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화장실입니다.

어느 백화점이든 1층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

화장실로 가기 위해 다른 층으로 가다가 진열된 상품을 한 가지라도 더 보게 하려는 전략이지요.

그러니까 철저하게 상품에만 시선이 가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파리의 백화점은 달랐습니다.

오직 백화점의 천장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그건 내 생각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계단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층계참 아래의 아르누보 세라믹 장식과 금장 나뭇잎으로 장식한 오크 원목 계단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지요.

그곳은 모든 층이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브랜드들이 가득합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버버리 매장은 화장실로 들어가는 통로 옆에 있더군요.

파리에서는 버버리도 홀대를 받는구나 싶었습니다.




사마리텐 백화점 계단
아르누보 스타일의 황금 공작
유리 천장


아름다운 계단의 디테일




꼭대기층에는 바와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또한 거대한 스크린으로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루도비치 바론(Ludovic Baron,1986년~ )의 작품입니다.

그는 30대의 젊은 나이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사진작가, 그리고 감독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아티스트입니다.

그는 이미 파리 오페라 하우스, 에펠탑, 뉴욕의 타임스퀘어, 그리고 스위스의 몽트뢰 궁전과 같은 세계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들에 상징들로 가득 찬 그의 작품들을 전시한 이력이 있더군요.

그의 작품에는 현대적이고 기괴한 것들도 많지만 사마리텐의 스크린에는 흑백의 감성적인 사진으로 가득하여 한참 동안 구경했습니다.

슬라이드화면으로 움직여서 사진을 찍기는 어려웠어요.




루도비치 바론(Ludovic Baron) 사진











아르누보 양식으로 치장된 아름다운 계단과 장식들 그리고 철제와 유리로 만들어진 화려한 초대형 돔이 있는 백화점도 있습니다.

그곳은 생 라자레 역 근처에 있는 갤러리 라파예트 하우스만(Galeries Lafayette Haussmann)인데요.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고개는 자연스럽게 천장으로 향합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이 흡사 궁전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더군요.

높이가 약 33m에 달하는 돔은 금속 세공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화려하다고 다 아름다운 건 아니지요.

하지만 프랑스는 예로부터 이어진 미적 감성이 뛰어난 곳 아니겠어요?

돔은 장식 요소일 뿐만 아니라 자연 채광의 역할도 크기 때문에 백화점의 중앙 공간을 경쾌하고 우아한 분위기로 만들어 주더군요.     



라파예트의 스테인드 글라스 돔





옥상 테라스에 올라가면 오페라 가르니에의 뒷모습이 제일 먼저 보이고 저 멀리 에펠탑까지 보입니다.

두 곳의 백화점에 갔지만 진열된 상품은 하나도 둘러보지 않고 천장만 구경하고 나오는 게 살짝 미안한 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저기 매장에는 한국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니 나 같은 사람이 있어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Paris Je T'aime 사랑해 파리
라파예트 옥상에서 보이는 에펠탑
오페라 가르니에 후경




화려하고 예쁜 것을 잔뜩 보았는데 어쩐지 마음이 허하고 가슴에 남는 게 없습니다.

역시 백화점보다는 미술관이 더 체질에 맞나 봅니다.


숙소 근처에 수요일과 일요일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장이 열리는 마켓이 있어요.

과일, 채소, 달걀, 치즈, 잼, 올리브, 생선, 소시지, 육류까지 먹거리는 물론이고 간단한 생필품이나 저렴한 옷을 팔지요.

마침 장이 서는 날이라 아침에 새우와 과일, 달걀 몇 개를 샀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디어 마이 프렌드를 보면서 키득키득합니다.

누군가는 혼밥은 외롭고 쓸쓸해서 잘 먹히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런 거 없는 나는 오늘도 씩씩하식사를 했습니다.


다음 날은 당일치기로 런던에 다녀올 예정이라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요.





조촐하지만 균형 있는 혼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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