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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an 26. 2024

파리지앵도 모르고 지나치는 파리의 상징들

35. Bouquiniste, Colonne Morris





이것들은 파리의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베르 바공(vert wagon)이라는 이름이 붙은 진한 초록색 조형물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용도로 쓰이는 것일까요?









파리의 길거리 어디서나 흔히 보이고 별로 중요한 유적도 아니니 무심코 지나치곤 하게 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누가 관심을 주지 않아도 짧게는 150년에서 길게는 450년이 넘도록 파리를 지켜온 상징들입니다.

어떤 기자가 파리지앵에게 이것들의 이름을 물어보았는데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하도 쏘다니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쳤던 이것들의 정체를 알아 보겠습니다.



첫 번째 사진은 모리스 기둥(colonne Morris)입니다.

1800년대 중반 파리에는 극장, 음악당, 카바레 등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온갖 게시물이 거리에 넘쳐 났는데요.

당시에는 당연히 광고가 규제되지 않았으므로 건물 벽, 울타리, 나무, 소변기 등 모든 곳에서 난무했지요.

1868년 파리에 처음 등장한 이 원통형 기둥은 광고판입니다.

파리시에서 개최한 광고판 대회에서 프랑스의 인쇄업자 가브리엘 모리스(Gabriel Morris)와 그의 아들 리처드 가브리엘(Richard Gabriel)이 우승을 했습니다.

당시 오스만이 추구하는 도시 환경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지요.

오스만 남작은 나폴레옹 3세가 주도한 파리 개조 사업에 공이 컸던 인물인데요.

처음에는 파리의 개조사업이 막대한 공사 비용으로 인해 국민들의 비난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영국 등 다른 나라들이 파리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우아하면서도 날씬한 주철 구조물은 도시의 나무가 늘어선 대로와 조화를 이루도록 짙은 녹색으로 칠해졌고 원형 광고판은 뾰족한 돔으로 마감되었습니다.

 

모리스 기둥은 주로 지자체 공지사항을 부착하는 용도로 사용했으나 곧 콘서트, 영화, 연극, 카바레를 광고하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주로 영화와 콘서트를 홍보합니다.

처음에는 기둥 내부를 빈 공간으로 만들어 장비를 보관하도록 만들었으므로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나 거리를 청소하는 자재와 도구를 보관하는 등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일부 기둥 내부에는 공중전화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휴대폰이 일반화되면서 전화 부스는 10년 전 사라졌다고 해요.



공중전화가 설치된 모리스 기둥

 






451개의 모리스 기둥은 이제 파리의 상징적인 장식 요소가 되어 거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종이 포스터로 뒤덮여 있었지만 지금은 조명이 켜지고 회전도 합니다.

비바람에 견디는 방풍 유리를 사용하기에 광고용 종이가 젖지 않을뿐더러 태풍이 불어도 간판이 떨어져 기물 파손될 염려도 없지요.

또한 이것은 벨 에포크 시대의 많은 그림과 소설에 등장했는데요.

150년 전의 모리스 기둥이 현대와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은 파리에 있는 건물들 또한 수백 년 된 것들이라 그렇겠지요.




Boulevard de la Madeleine 모리스 기둥, Fausto Giusto
Une place animée à Paris, Joaquín Pallarés y Allustante(1898)
Jean Béraud 1885의 파리 거리 풍경
La Colonne Morris, Jean Béraud(1885)




두 번째 사진은 월리스 분수(fontaine Wallace)입니다.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는 튈르리 정원 바로 옆, 콩코르드 광장에 있는 강의 분수와 바다의 분수입니다.

일반적으로 분수는  미관상의 아름다움을 위해 압력을 이용해 물을 뿜도록 만들어진 설비지만 월리스 분수는 그것과는 목적이 다릅니다.

월리스 분수는 쉽게 말해 무료 식수대입니다.

1872년 50개의 월리스 분수가 설치되었는데 주철 조각품 형태로 파리의 거리 풍경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짙은 녹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식수대를 만들어 보급한 사람 리처드 월리스는 프랑스인이 아니라 영국인인데요.

그는 인생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살았으며 파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불 전쟁이라고 무르는 프랑스와 프로이센 전쟁이 끝난 1871년, 도시는 황폐화되었고 식수를 공급하던 수로가 파괴되었습니다.

당연히 식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물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요.

게다가 물장수들이 파는 물은 대부분 센 강에서 끌어올린 것이었는데 강물은 식수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파리의 거리와 하수구에서 나오는 모든 폐수가 강으로 직접 흘러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깨끗하지 않은 물을 먹느니 차라리 물값보다 가격이 싼 알코올음료인 맥주나 와인으로 수분을 공급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갔지요.


당시 에밀 졸라가 쓴 소설 목로주점에는 식량이 부족하여 인구가 굶주렸지만 포도주는 언제나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베르시에 있는 와인 및 증류주 저장소의 성벽 내에는 거대한 와인 저장고에는 160만 헥토리터가 넘는 값싼 와인이 저장되어 있으므로 당분간 물을 마셔야 할 걱정은 없다고 말이지요.

월리스는 가난한 시민들을 위한 야전 병원, 식량 지원, 연료 및 의복을 위한 자신의 돈을 기부했습니다.

그는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는 가난한 집의 어린이들이 포도주에 적신 빵을 먹고 배탈이 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월리스는 안전하게 마실 물이 없다는 이유로 소외 계층이 알코올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안전하게 마실 물을 공급하는 식수대를 설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월리스와 그의 아버지인 하트퍼드 후작은 미술 애호가이자 미술 수집가였습니다.

후작이 죽었을 때, 그는 자신의 예술품 컬렉션과 막대한 부를 혼외자로 태어나 주변인들에게 숨겨야 했던 아들 리처드 월리스에게 물려주었지요.

그가 물려받은 컬렉션에는 가구, 조각품, 갑옷, 중세 보물, 르네상스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수세기에 걸친 그림도 포함되었습니다.


월리스는 분수대가 멀리서도 보일 만큼 높아야 하지만 주변 풍경의 조화를 깨뜨릴 정도로 높아서는 안되며 사용하기 실용적이고 보기에도 좋아야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비바람에 강하고 유지 관리가 간편해야 하며 수십 개를 설치할 수 있을 만큼 가격이 저렴하기를 원했지요.

식수대는 아름다운 것 외에도 돔 꼭대기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물이 흐르게 하여 물의 순도를 보장하고 떠돌이 개들이 분수에서 물을 마실 수 없게 고안했습니다.

또한 두 개의 주석 컵을 고리에 연결된 사슬로 달아 두었는데 1952년에 위생상의 이유로 컵들을 모두 철거했다고 합니다.

현재 파리에는 106개의 월리스 분수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데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 겨울철에는 배관을 차단하고 3월 1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운영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월리스 분수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아름다운 파리 풍경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월리스 분수의 150년 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2022년 3월 파리의 역사를 기념하는 카르나발레 박물관 안뜰에도 월리스의 분수가 설치되었습니다.

  






분수를 받치고 있는 4인의 여성은 친절, 단순함, 자선, 절주의 네 가지 미덕을 나타냄
카르나발레 박물관의 월리스 분수



세 번째 사진은  부키니스트(Bouquinistes)입니다.

고서적 판매상을 일컫는 부키니스트는 파리 센 강 좌안의 퐁 마리 다리에서 루브르 박물관 건너편까지 늘어선 초록색 철제의 고서적 및 중고서적 판매상을 말합니다.

부키니스트는 프랑스어로 헌 책을 뜻하는 단어 부캥(bouquin)에서 유래했는데요.

오래된 책, 판화 또는 장신구를 가지고 센 강둑에 설립된 이 서점은 16세기부터 강을 따라 존재해 왔습니다. 약 50만 권의 책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판화, 잡지, 우표 및 수집가용 엽서들을 선보입니다.

1789-1795년 혁명기 당시 출판물의 현저한 감소에도 불구하고 부키니스트들은 이전까지 귀족 및 성직자의 전유물이었던 서적의 대중화에 힘입어 번성했으며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되었습니다.

당시 센 강변의 3Km나 되는 길에는 900개의 부키니스트가 있었지만 파리시에서 부키니스트에서의 기념품 판매를 규제한 이후 상당수의 부키니스트가 폐점하여 지금은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부키니스트의 녹색 상자가 열리면  종이 냄새와 낡은 선반의 향기가 쏟아져 나옵니다.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오래된 잡지의 누렇게 변한 페이지가 가을바람에 휘날리며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강물 냄새, 젖은 땅의 냄새, 보이지 않는 빵집에서 퍼져 나오는 갓 구운 빵의 냄새를 맡으며 느린 걸음으로 부키니스트들을 지나갑니다.     

변함없는 열정으로 수 세기 동안 희미하게 바랜 엽서와 흑백사진들은 과거로의 여행으로 여행자를 초대하지요.


부키니스트는 세금이나 집세를 내지 않지만 파리가 정한 규정을 꼼꼼하게 따라야 합니다.     

빈자리는 지자체가 할당하며 허가 기간은 5년이고 악천후를 제외하고 일주일에 최소 4일 동안 문을 열어야 합니다.

부키니스트는 기본적으로 서점이지만 골동품 및 중고 서적, 오래된 문서 및 인쇄물의 판매만 허용되지만 동전, 메달, 고대 우표, 엽서, 작은 중고품 또는 기념품도 판매할 수 있습니다.

오전 11시 30분에 오픈하고 일몰까지 영업을 합니다.


  

1910년대
1930년대
1940년대
1960년대
현재






부키니스트의 가판에서
부키니스트 지도


2024년 7월 26일,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경기장이 아닌 센강 유역에서 개막식을 치르기로 한 파리시는 부키니스트들을 이사시켜야 하는 상황에 처했지요.

서점문화협회 소속 대표 약 200명(전체의 88%)은 이사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센강 부국장은 행사 당일 시야를 방해할 부키니스트에 대해 설명했으나 그들은 이렇게 주장했지요.

'우리는 파리의 주요 상징입니다. 이곳에 온 지 450년이 되었습니다. 올림픽은 파리를 기념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우리를 풍경에서 지우려는 것은 좀 미친 짓 같습니다.' 며 아쉬움을 토로했는데요.

4시간의 개막식을 위해서 네 달 동안 철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시민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센 강에서 열리는 사상 최대의 개막식을 기대하는 관광객들은 어떤 걸 원할까요?









2024년 7월 26일, 20시 24분에 알람을 맞춰 놓자.

바로 그 순간, 그리스 대표단이 오스테를리츠 다리를 떠나 이에나 다리로 향하며 올림픽의 가장 화려한 개막식의 무대를 열 것이다.


역사상 최초로 야외에서 개최되는 이번 33회 올림픽 개막식은 배우이자 감독인 토마스 졸리의 연출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센 강변을 아름답게 수놓을 예정이다. 장르의 코드를 깬 독창적인 방식의 퍼레이드는 예술 공연과 선수단 입장을 결합하여 모든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전 세계에서 온 10,500명의 올림픽 선수들로 구성된 각 대표단은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보트 100여 척을 타고 차례대로 물 위에 오르게 된다. 관중들은 6km에 달하는 강변 상단과 하단 관람석 그리고 센 강의 다리들 위에서 곳곳에 설치된 80개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퍼레이드를 즐길 수 있다. 2024년 올림픽 개최국 프랑스 대표단의 마지막 보트가 오후 11시 50분경 이에나 다리에 도착할 예정이고 트로카데로에서 피날레를 장식할 것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학술원, 에펠탑, 그리고 유명한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포함한 10여 개의 다리까지, 수상 퍼레이드는 파리의 가장 상징적인 기념물들을 통과하는 꿈과 같은 여정으로 서커스, 댄스, 연극, 음악, 스포츠가 결합된 종합적인 쇼를 제공한다. 사상 최대 인원을 수용하는 이번 쇼의 관람객은 올림픽 경기장 수용 인원 6만 명의 10배에 달하는 60만 명으로 예상된다. (출처 : explore France)



수상 행진은 센강을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6km 구간에서 진행되는데요.

오스테를리츠 다리에서 시작해 도심에 위치한 2개의 섬(생 루이섬과 시테섬)을 지나 콩코르드 광장, 앵발리드, 그랑 팔레 등을 지나 마지막으로 디에나 다리에서 행진을 멈추게 되며, 트로카데로에서 개회식의 마지막 순서가 이어집니다.

올림픽 개막식 행진 경로는 파리의 노트르담, 루브르, 퐁데자르 (예술교), 퐁뇌프, 퐁 알렉상드르 III, 오르세 미술관을 지나가는 코스라니 얼마나 아름답고 흥미진진할까요?


전 세계의 기대와 이목이 집중된 파리 올림픽이지만 정작 파리지앵들은 걱정이 많다고 합니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파리 지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의 2명 중 1명은 올림픽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며 52%의 시민들은 올림픽 기간 동안 파리를 떠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데요.

평상시에도 관광객이 넘쳐나는 파리가 올림픽으로 인해 더 복잡하고 혼란해질 게 두려운 것입니다.

그들의 우려를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센강에서 펼쳐질 개막식은 기대가 큽니다.




파리 2024 마스코트 올림픽 프리지(Olympic Phry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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