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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romen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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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15. 2016

1. 유레일 4,507 킬로미터의 끄적임

- 여행, 지울 수 없으나 다시 쓸 수 있는 시간의 기록 





마음의 뼈에 구멍이 하나 둘 생기고 바람이 들어와 앉는다.

여행은 그렇게 마음의 뼈를 비우면서 시작된다.

날기 위해 뼛속까지 비우는 새처럼…


여행은 새 것이다.

여행은 날 것이다. 

처음 걷는 길, 

낯선 지붕이나 창문 앞에 무심하게 놓인 화분 하나 바라보는 일, 

그저 스쳐 지나가거나 몇 마디 나누게 되는 사람, 

그 처음의 것들과 만나는 동안 

마음에 그어졌던 상처 같은 빗금들은 하나 둘 희미해진다. 

꽃 같은 위로가 바람처럼 지나간다. 

그러면 된 거다. 

여행은 그런 거다.      








ㅣ 그녀 


         

맨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언젠가 흑백 영화에서 보았던 여배우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머리핀을 꽂았지만 까만 고수머리가 이마 양쪽에서 꼬불거리고

큰 눈에 비교적 도톰한 눈꺼풀, 

아주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코가 도라지 꽃처럼 단정하다.

치아를 많이 드러나지 않게 웃는 모습에선 백자도 청자도 아닌 분청사기 같이 은은한 고아함이 묻어났다.

 

그녀는 수를 잘 놓았다. 

코바늘이건 대바늘이건 뜨개질도 잘 했다. 

예쁜 인형도 잘 만든다. 

바늘로 할 수 있는 건 다 잘한다. 

사군자 중 특히 난을 잘 쳤다. 

활짝 웃거나 크게 말하는 일이 많지 않고 몸놀림이 조신하다.

  

왠지 모르게 체구가 아담하리라 상상할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키가 크다. 

1977년, 여고생 키가 173cm이면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그녀가 교기를 들고 서있으면 군계일학이었다. 

그녀는 얌전하고 순하다. 

순하니 당연 이해심이 많다. 

그러니 곁의 사람이 편하다.


함께 쇼핑을 하다 보면 쌍둥이처럼 같은 걸 사기도 한다. 

심지어 각자 구입한 옷이나 스카프가 똑같은 우연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좋아하는 컬러가 같고 식성이 비슷하다. 

말없음표를 옆에 끼고 그림 보기를 좋아하며 고요함을 좋아한다. 

"우리 이거 할까?"

"좋아"

아~ 하면, 어~ 하는 친구,

어쩌면 친구라기보다 또 다른 나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만난 지 40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다. 

우리는 한 해의 여름과 겨울을 둘만의 여행을 했다. 

그 아름답고 행복했던 여정을 끄적이려고 한다.

그녀는 내 사랑하는 친구 M이다. 


            

몽생미셸,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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