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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16. 2016

2. 아름다운 흐느낌, 암스테르담

유레일 4,507km의 끄적임 <쳇 베이커, 반 고흐, 렘브란트>





글이 잘 써지는 날이면 글 속에 살고 싶고

술에 취하면 그 속에 죽어도 좋겠다 싶다가

음악에 젖으면 그래도 살아있는 게 행복이지 하다가

책에 빠지면 다른 책이 궁금해서 마음이 급하고

비가 내리면 그 속에서 미치고 싶고

영화 보면 시 쓰고 싶고

여행을 떠나면 행복하고

사진 속에 갇힌 시간을 꺼내 여행기를 쓰건 

모두가 하나 되는 시간,

행복 합집합!







l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은 원래 호수였다. 네덜란드의 많은 땅이 그랬던 것처럼 간척지로 만들어진 곳이다. 암스테르담은 암스텔 강 하구에 둑을 쌓아 만든 마흔 개의  운하가 아름다운 흐느낌처럼 흐른다.      


  유레일패스로 나라와 도시 간 이동할 계획이므로 숙소는 거의 중앙역 부근으로 예약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건물은 거대한 박물관 같은 위용이다. 렘브란트의 그림 아경이 느껴졌다.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도시의 저녁은 한층 어둡고 을씨년스럽다. 역에서 나와 20~30m 걸어가니 암스테르담의 첫 날을 지내게 될 빅토리아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호텔 로비엔 작은 카페가 붙어있다. 피아노와 더블 베이스, 기타가 안개처럼 떠다니고 여행자들의 맥주와 이야기가 엉켜있다. ‘트럼펫이 빠졌네~ ’ 암스테르담 중앙역 근처 호텔에서 떨어져 죽은 그가 떠올랐다. 영화 <Born to be blue>의 주인공,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음악에선 청춘의 냄새가 난다”고 했던 비운의 트럼펫터 쳇 베이커다.       


Chet Baker




  우리나라가 올림픽 준비로 한참 분주했던 1988년 5월 13일(금), 로이터 통신이 전 세계에 타전한 비보가 있었다. 새벽 3시 10분경, 암스테르담 중앙역 바로 옆 싸구려 호텔 3층 방에서 미국의 유명한 트럼펫터 겸 싱어였던 쳇 베이커가 창밖으로 떨어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추락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목격자도 없었다.  피범벅 된 얼굴에 두개골은 함몰 상태였고 입고 있던 옷가지에도 피가 엉겨 붙어있었다. 곁에는 안경과 창문을 열어놓을 때 지지하는 묵직한 강철 빗장이 떨어져 있었다. 호텔방엔 코카인과 헤로인을 합성한 주사제와 약간의 동전과 싸구려 라이터, 그리고 자신이 불던 트럼펫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로스엔젤리스에서 치러진 장례식의 경비는 사진가 브루스 웨버가 치렀고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켜본 이는 두 번째 부인과 세 번째 부인, 그리고 몇 명의 친구가 전부였다. 향년 59세, 하지만 그 무렵에 나온 그의 음반 재킷에 비친 쳇 베이커는 쭈글쭈글 20년은 더 늙어 보인다. 술과 마약, 여자들에 둘러싸여 방황한 결과였다. 그의 삶은 한 마디로 비극이었다. (호서문학 50호 필자의 글 : 쳇 베이커, 이렇게 사라졌다 중)     






  공창, 마약, 동성애는 물론 자살, 안락사... 다른 나라에선 금기시되고 있는 많은 것들이 합법적으로 보장되는 곳이라는 이미지 때문일까? 생수를 사러 가야 하는데 선뜻 나가 지지 않는다. 부슬부슬 비 내리는 암스테르담의 밤은 왠지 위험한 뭔가가 도사리고 있을 듯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호텔을 나오니 여전히 비말 같은 비가 내리고 있다. 호텔 출입문 옆에 뭔가에 잔뜩 취한 사람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앉아있다. 경찰차도 구급차도 아닌 어떤 시설? 의 자동차가 도착했다. 연두색과 오렌지 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약물치료감호소 직원?) 그에게 말을 걸거나 질문을 했지만 대답할 형편이 아니다. 그를 부축하여 차에 태웠다. 그를 데려간 곳이 어딘지 모르지만 안전하고 안락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친절하고 신사적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절었어(술이든, 마약이든)? 이 한심한 사람아~’ 하는 식의 경멸이나 무시의 태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의 첫인상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날짜와 요일에 무뎌진다. 공과금 납입일, 누구의 생일, 또는 모임 약속 같은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왕이면 내 이름이 뭔지, 내가 누구인지 하는 것도 잠시 벗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건물과 도로들이 아직 깨지 않은 도시, 간간히 동영상처럼 트램이 지나갈 뿐 사진 속을 걷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거리엔 움직임이 없다. 적막한 담락 거리를 10분 정도 걸어가니 담 광장이 보인다. 왕궁, 신교회, 마담투소 등이 모인 중심가이다. 그러나 눈으로 스캔하듯 지나친다. 여행은 목적지로의 도착이 중요한 게 아니다. 때때로 지나감의 소소함을 즐기는 맛도 쏠쏠하다.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하이네켄 박물관을 지나니 국립 미술관이 보인다. 레드와 화이트의 구조물인 I Am Amsterdam 이란 글씨가 보인고 그 뒤로 고풍스럽고 웅장하여 한눈에 국립미술관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건축물이 서 있다. 건물 외벽에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프린트된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으니 확신할 수 있다. 앞쪽으론 실외 스케이트장이 있다. 여름엔 분수가 있던 곳을 빙상장으로 만들어 놓은 듯하다. 주변엔 빙 둘러가며 명화가 그려진 스탠드가 세워져 있다. 박물관 광장다운 발상이다. 


국립미술관 앞 스케이트장


  고흐 미술관으로 가는데 잔디 광장 저 편에 내 눈을 잡아끄는 게 있다. 로열 콘서트 허바우 (Royal Concertgebouw)이다. 베를린 필과 빈 필하모닉이 세계에서 가장 실력 있는 오케스트라로 알려져 있지만 언젠가 클래식 전문잡지 그라모폰의 조사에서 로열 콘서트 허바우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명문 오케스트라가 바로 로열 콘서트 허바우이다.      


로열 콘서트 허바우 (Royal Concertgebouw)


  하이팅크(1963-1988), 리카르도 샤이(1988-2004), 그리고 최근까지 마리스 얀손스(2004-2015)가 이끌었다. 로열 콘서트 허바우가 세계 정상에 설 수 있었던 건 역대 상임지휘자를 보면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콘서트 허바우(Concertgebouw)는 본래 "집"이라는 뜻으로 1888년 암스테르담 중심가에 건립된 연주홀의 이름이다. 당시에도 암스테르담에는 몇 개의 오케스트라가 있었으나 국제적인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것을 아쉽게 생각한 암스테르담의 인사들이 콘서트 허바우라는 국제적인 홀을 짓고 오케스트라를 창단시켰다. 그것이 오늘날의 콘서트 허바우가 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콘서트홀이나 오페라 홀은 매년 7,8월 바캉스 시즌과 1,2월엔 연주가 없다. 이번 여행 동안 역시 공연이 없어 아쉬웠다. 그리운 사람을 멀리서 훔쳐보다가 쓸쓸히 발길을 돌리는 사람처럼 고흐 미술관으로 향했다.      


  

반 고흐 미술관


  1890년,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후 동생 테오에게 상속되었던 700여 점의 그림을 시에서 기증받아 1973년에 세워진 반 고흐 미술관은 0층부터 3층까지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고흐 미술관이지만 테오가 수집했던 고흐, 밀레, 로트렉 등의 작품도 다수 전시되어 있다.       




아몬드꽃 

  

  겨울의 끝을 알리며 피는 아몬드 꽃은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작품이다. 파란 배경에 하얀 아몬드 꽃이 고흐의 기쁨과 감사가 고스란히 묻어난 듯해 보는 이의 마음도 따뜻해진다.      






감자먹는 사람들

  천장엔 낡은 램프가 켜있지만 사위는 어둡다. 소박한 나무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이 감자를 먹는다. 칼로리와 격식과 외교와 허영으로 가득한 현대의 밥상과 비교되는 정경이다.   


노란집
아이리스
우유 따르는 여인, 요하네스 베르메르 
야간 순찰, 렘브란트

  고흐의 자화상 속에서 들고 있던 팔레트가 유리 상자 속에 놓여있다. 오래도록 그 앞에 서 있었다. 라익스 국립 미술관에서는 역시 네덜란드의 대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 렘브란트 <야간 순찰>등   익숙한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그림을 보는 동안 옛날 영화를 보듯, 시간 여행을 하듯 시공간을 뛰어넘는 착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마치 그림 속의 사람이 되는 공감, 멋진 경험이다. 


자화상, 고흐
고흐의 팔레트






  안네 프랑크 하우스 박물관은 안네 프랑크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기를 썼던 실제 장소로 안네의 일기, 사진, 필름, 당시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안녕 헤이즐>이라는 영화 속에서 헤이즐은 산소통을 들고 힘겹게 안네의 집 꼭대기까지 오르는 장면이 생각났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

 

  산소통을 캐리어처럼 끌고 호흡기를 생명줄처럼 차고 있는 헤이즐. 집에 틀어박혀 리얼리티 쇼나 보며 하루를 축내는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에게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참석한 암 환자 모임에서 꽃 미소가 매력적인 어거스터스를 만난다. 담배를 입에 물었지만 불은 붙이지 않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헤이즐의 맹비난을 재치 있게 받아넘긴 어거스터스는 시크하고 우울증마저 겪는 헤이즐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두 사람은 소설책을 나눠 읽으며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어거스터스는 헤이즐이 그토록 좋아하는 네덜란드의 작가를 만나게 해주기 위해 ‘지니의 소원’을 빌어 암스테르담 여행을 제안한다. 가족과 주변의 걱정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생애 처음으로 여행길에 오른 두 사람. 자신을 시한폭탄이라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들과 선을 그었던 그녀와, 거절당할까 두려워 진실을 감춰왔던 어거스터스는 서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네이버 영화 중)





  커피숍은 커피 마시러 가는 곳이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커피숍'은 마약을 파는 곳", 즉 판매가 허용된 대마초 등의 소프트 드러그를 허용된 양만큼 판매하는 곳이다. 사실상 커피숍을 찾는 사람은 네덜란드 사람보다 외국인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일부 지역은 대마초 패스 소지자만 출입이 가능하다. 대마초를 합법화한 이유는 엑스터시나 코카인 같은 중독성이 심한 마약의 수요를 억제하고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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