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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18. 2016

3.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유레일 4,507km의 끄적임  <덴 헤이그, 요하네스 베르메르>



l 덴 헤이그     

 


양파 안 쪽의 마지막 껍질이 벗겨진다.

무슨 색이라고 해야 할지 표현할 재간이 없다.

그냥 양파 껍질인데 아름다웠다.

투명한 껍질을 여러 겹 벗으니 그제야 매끈한 양파 속살이 드러난다.

보라색 페스츄리 파이같이 겹겹인 양배추 써는 소리 사사삭~,

수분이 빠져나간 무가 칼에 잘리며 나무 도마와 부딪히는 소리 딱~딱~,

단단한 비트가 칼 옆으로 쓰러지며 세상에서 가장 선명하고 맛있는 붉은 물을 쏟아낸다.


사람 모습 다르듯 채소들의 크기와 모양도 다르다.

채소들도 목소리를 갖고 있다.

양파나 당근이 생물이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시작되고 1분 30초,

컬러와 모양, 두께가 다른 채소들이 도마 위에서 잘리는 모습이 차례로 지나가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광경인데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채소가 잘리면서 내는 소리가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

천연의 색과 각각의 소리에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아름다운 음악이 더해진 플래시보 효과였다. 

영화 색계와 대니쉬 걸 역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영화의 모든 장면 장면이 회화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면 보자기 머릿수건과 투박한 무쇠 칼, 합성 섬유가 무명옷과 나무 가구들, 

그리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베르메르의 그림들이 친숙하게 전해졌다.  





          


우리가 덴 헤이그에 가기로 한 건 오직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다.

그의 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단 한 번도 해외로 나간 적이 없다.

그러니 그녀를 만나려면 그곳에 가야 한다. 


기차가 시골길을 지나간다. 

바람의 손을 빌어 붓이 된 비가 유리창에 그림을 그린다. 

철길 옆으로 물길이 나란히 지나가니 기차가 물길로 달리는 착각이 든다. 

간간히 풍차도 보인다. 

작은 보트들이 정물처럼 서 있다. 

샌드위치와 보온병의 커피, 삶은 달걀 한 개, 요구르트와 파란 사과 한 알인 우리의 점심도 한 폭의 그림 같다.



트램이 초록색 잔디 위를 달린다     

나무에도, 수로의 물에도 저녁 같은 조도가 내려와 앉았다.

적요한 느낌이 좋다.  

 

마우리츠 하이스라는 이름은 미술관이 되기 전, 그 집의 주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미술관이 너무 크면 미리 질린다. 그런데 규모가 적당하다.  

겨울 같은 나이의 노인들이 그림을 본다. 

그 모습이 따뜻하고 정겹다.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 ~ 1675)는 네덜란드의 화가로 남아있는 작품은 35점에 불과하다.  

그의 작품들은 여성의 일상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데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여성들의 옷이 대부분 노란색이라는 것, 그리고 당시엔 황금보다 비싸다는 파란 물감을 많이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는 덴 헤이그에서 10분 거리의 델프트에서 태어났다. 그가 그린 <델프트 풍경> 역시 마우리츠 하이스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푸른 하늘 아래 정지한듯한 마을의 조용한 평온이 느껴진다. 그의 성품이 아마도 이 그림 같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델프트 풍경, 요하네스 메르메르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소녀의 표정이 오묘하고 신비로운 작품이다.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 불릴 만큼 대중적으로 유명하지만, 그림의 배경 설명이 거의 없는 것도 특징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공백은 상상력으로 채워져 소설로, 뒤이어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피터 웨버 감독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마치 베르메르의 화집을 보고 있는 듯한 화면 구성과 극도로 절제된 감정선으로 고요한 긴장감을 준다

 


  그리트(스칼렛 요한슨)는 1660년 네덜란드 델프트에 살고 있는 16세 소녀이다. 자기에 그림을 그리던 아버지가 시력을 잃게 되자 가족의 생계가 곤란해진다. 그리트는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 (콜린 퍼스)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베르메르는 그리트가 그림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며, 색에 대한 이해와 예술적인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베르메르는 그리트가 물감을 섞거나 그림 작업을 돕도록 가르치며 조용하게 전개된다.                                                                                                                 

  

그리트가 그의 화실에서 가장 먼저 감지한 것은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빛’이다. 예민한 감각을 지닌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빛이라고 즉각 이해한다. 때문에 그녀는 창문을 닦으면 빛이 달라질 수 있음을 우려한다. 그녀의 세심한 손길에 따라 베르메르는 실내 정경을 익숙하게 때로는 엄숙하게 연출하고 재현한다. 


     

  베르메르는 렌즈를 통과한 빛으로 이미지를 투사하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그리트에게 소개한다. 실제로 베르메르는 사진기의 시초가 된 이 장치를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빛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색을 포착해 담아내는데 도움을 받았을 뿐 그의 그림에서 비현실적인 구도도 상당하다고 전해진다. 이는 베르메르가 단지 정교한 포토 리얼리즘을 추구한 화가가 아니라 뚜렷한 자신만의 예술 세계로 매혹적인 작품을 그린 화가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리트는 베르메르가 그린 그림 속 의자를 손으로 가려 본다. 그리고 의자를 치운다. 베르메르는 그녀의 선택이 반영된 구도로 그림을 수정한다. 화실의 빛, 색채, 분위기 그리고 그림의 구성까지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그리트에게 베르메르는 의자를 왜 치웠는지 묻는다. 그러자 그리트는 그림 속 여자가 갇힌 것처럼 보여서라고 답한다. 수많은 자녀들을 거두어야 하는 생계의 무게를 지고 장모의 주도 하에 후원자들의 만족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베르메르. 그리트의 대답은 주체적으로 살 수 없는 베르메르의 처지를 위로해 준다.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베르메르의 심정을 간파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베르메르는 집으로 돌아 간 그리트에게 마지막 선물을 보낸다. 바로 초상화를 위해 착용했던 진주 귀걸이다. 이 장면은 베르메르가 그리트에게 하늘 위 구름의 색이 빛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깨달음을 일깨워 준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트 본인도 알지 못했던 내재된 잠재력에 숨을 불어넣은 베르메르의 가르침은 하늘색 터번에 싸여 있던 진주의 빛깔에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화려하지 않고 은은하게 빛나는 진주는 은밀했던 그들의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든다.


샤갈 그림을 연상시키던 미술관 천장
마우리츠 하이스 미술관 / 렘브란트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네덜란드의 수도는 암스테르담이지만 정치의 중심지는 헤이그로 실질적인 수도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듯 멀리 고층 빌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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