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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20. 2016

4. 구름 한 잔 하실래요, 마그리트?

유레일 4,507km의 끄적임  <브뤼셀 왕립 미술관, 르네 마그리트>







비는 내리지 않고 다만 깊은 청색 하늘 아래 구름이 무거운 듯 매달려있다.

푸른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나목들이   

구름 속에 빠진 듯,

바다에 서 있듯,

촘촘한 안개 그물 속에 행복한 감금이다.  


보도블록 사이에 둥지를 튼 이끼,

늘어진 전선의 자유로운 휨,

각이 다른 지붕의 각들,

싱싱한 배추처럼 푸른 나뭇잎 위로 살짝 뿌려진 하얀 .


로텐부르크, 로젠달, 안트워프를 지나 브뤼셀로 가는 동안

기차를 타고 간다기보다 3시간 반 동안 상영되는 영화를 즐기듯 한 번도 같은 풍경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모든 어깨의 무게와 고통이 일시에 사라지면서 행복했다.


브뤼셀 미디 역에서 메트로를 타고 도착한 숙소는 그랜드 센트럴 아파트,

이름과 딱 어울리는 곳, 함께 못 온 친구 셋을 당장 불러오고 싶을 정도로 넓고 쾌적하며 고급스럽다.

친구와 나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폴짝폴짝 뛰며 환호했다.


프랑스도 네덜란드도 아닌, 그러면서 두 문화를 포용한 벨기에세계에서 유일하게 맥주를 우유처럼 집 앞까지 배달해주는 나라,  자기 나라 맥주를 매일 다른 종류로 마셔도 450일이 걸리는 나라, 그 많은 맥주 수만큼이나 많은 글라스까지도 예쁜 나.

뿐인가? 오드리 헵번, 고디바 초콜릿, 그랑플라스, 오즘싸개 동상, 와플, 벨지언 프라이 등등 찾아갈 이유는 많다. 하지만 우리가 브뤼셀을 찾은 이유 1순위는 바로 이 사람, 르네 마그리트 때문이다.



 





수년전 덕수궁 시립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만났다. 다음은 그날의 느낌을 쓴 글이다.

                                                                                                                                                                                                                                                                                                          


계절에도 여왕이 있다죠?

학위 없는 철학자들인 봄꽃이, 출석부를 덮는 5월입니다.

그땐 이랬어요.

거무튀튀한 나뭇가지만 보고 “무슨 나무지?”

잎눈도 꽃눈도 없었거든요.

순간 덕수궁 돌담과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인 풍경이 오버랩되더군요.

 “아! 은행나무…”

잎이나 꽃은 나무의 이름표나 마찬가집니다.

가지만 남은 나무의 이름을 알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시립미술관으로 가는 3월 중순은 그랬습니다.

돌담과 빈 가지의 나무가 무채의 언어로 무슨 대화를 했는지 모를 일이죠.

수천수만 개 부화된 벚꽃 알들이 조랑조랑 떠드는 4월도 잠시,

밤을 밝히던 꽃등 목련은 녹슨 함석 조각처럼 떨어져 그 예쁜 꽃을 잔 삼아 술 한 잔 마실 수 없게 되었죠.


 같은 비에 어떤 꽃은 피고 또 어떤 꽃은 집니다.


 “꽃이 피기는 어려워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하는 최영미의 시처럼 지는 꽃에의 아쉬움은 우리네 삶과 닮았지 싶습니다.


먼 곳으로부터 쿠쾅뚜따 삘릴리~~ 하는 소리가 가까워짐을 느꼈습니다.

머리엔 전립을 쓰고 누런 빛깔의 천익에 남전대 띠를 두르고 미투리를 신은 취타대가 덕수궁을 향하더군요. 1898년 태어난 르네 마그리뜨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연히 부닥친 대취타의 교차가 흥미로웠습니다.

 

전시를 시작한 지 100일 가까운 시점이라 그런지 내부는 한가했습니다.

한 무리의 관람객들이 도슨트를 따라 움직였고 저는 예와 다르지 않게 홀로 전시실을 돌았지요.

‘왜 미술관엔 남자보다 여자가 많을까?’

가끔씩 들르는 미술관에서 늘 하게 되는 생각입니다.


르네 마그리트 그림 중 새의 날개에 구름이 담긴 ‘회귀’라는 제목의 그림을 좋아했죠.

Heartstrings (the deepest emotions) : 심금(心琴)이란 제목의 그림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투명한 글라스에 담긴 구름 한 조각,

그날 오래도록 저를 잡아끌던 그림이었습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Heartstrings이라니...

그걸 본 후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을 볼 때면 구름 아래에 글라스를 그려 넣으며 웃는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림에 가장 적절한 제목은 시적인 것이다.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다소 생생한 감정에 비교될 수 있는 제목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적인 제목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마법에 빠져들게 한다.”


라는 그의 어록이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가끔 <무제>라고 쓰여 있는 그림을 볼 때마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막막하거나 무성의함을 느끼거든요.


언제나 화가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던 그는 말년인 1960년대의 작품에는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그의 철학적 회화관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파이프와 구름, 나무와 나뭇잎, 중절모 등을 즐겨 그렸고 <대화의 기술>이나 <신뢰>라는 작품은 그의 생각과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도슨트를 따르던 관람객도 모두 떠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미술관에 딸린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물론 제 손엔 그의 도록이 들려있었습니다.

 메뉴엔 각종 커피와 홍차, 허브티들의 이름이 기분 좋게 나열되어 있어요.


“카모마일 한 잔 주세요.”


찻잔이 테이블에 놓이는 순간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피까진 몰라도 얼 그레이며 다즐링, 그리고 내가 주문한 카모마일 종이컵에 주다니요.

놀이공원도 영화관도 아닌 미술관에서 말입니다.


아쉬운 대로 볕 좋은 창가에서 도록을 뒤적이며 차를 마시는데 어느 영화의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꿈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또한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가끔 위험하기 때문에 더 멋진 거란다.”


과연 나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위험하기에 더 멋진 꿈을 가지고 있는가? 에 대한 생각을 마음 한편에 말아 쥐고 돌담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오늘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찾아들어야겠군…'


했던 그 저녁 프롬나드가 흐르는 방에서 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마그리뜨! 구름 한 잔 하실래요?”







점심을 만들어 먹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러나 ' 휴관'

여행자는 요일을 자주 잊기 마련이라 월요일이라는 걸 생각 못한 것이다. 내일 다시 가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악기박물관과 장식(수예) 박물관 역시 다음 날 보기로 하고 느릿느릿 걸었다. 지대가 높아 브뤼셀의 전경을 감상하기에 좋은 예술의 언덕을 지나게 되었다. 국제회의장과 왕립도서관 사이에 펼쳐진 공원으로 곳곳에 나무와 분수가 있어 겨울이 아니었다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을듯하다.        

    

 작은 광장이 나타났다. 개를 데리고 앉아 책을 든 남자의 동상이 보였다. 누구지?


 그는 그랑플라스를 보고 나서 이렇게 일기를 썼다.


"The Town Hall of Brussels is a jewel, a dazzling fantasy dreamed up by a poet,

and realized by an architect, and the square around it is a miracle."


보석이라고, 기적이라고... 그렇게 그랑 팔레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닉네임을 얻게 된 건 바로 이 사람 빅토르 위고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 브장송에서 태어났지만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이를 반대하다가 벨기에에서 망명생활을 했었다. 그의 역작 <노트르담 드 파리>가 바로 브뤼셀에서 완성되었다. 1999년 파리에서 초연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원년 멤버인 캐나다 가수 갸루(Garou)가 에스메랄다의 시신을 꿀어안고 통곡하며 부르던 마지막 노래,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가 생각난다.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는 호연이다.  



르리 화얄 생 휘베라는 이 아케이드는 흡사 밀라노의 갈레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를 연상시켰다. 1847년에 오픈했는데 모든 사람을 위한 모든 것( everything for everybody)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는데 벨기에의 모든 유명 브랜드 샵이 모여있는둣했다. 심지어 마카롱이나 초콜릿까지 명품처럼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1850년경에는 지식인들의 산책장소와 모임 장소였다고 한다.




아케이드를 지나가니 부셰라는 이름의 먹자골목이 나왔다. 유명세처럼 음식점마다 홍합 요리 사진이 많다. M과 노르웨이 베르겐에 갔을 때다.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옆의 사람들이 홍합탕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홍합이 뭔지 모르던 때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달라고 했던 때가 생각나서 얘기를 하며 웃었다. 이젠 안다. 홍합요리는 뮬(Moules)이라는 것을~

  

약 파는 곳도 오페라 극장도 아닌 레스토랑


'어! 폴이다~ ' 친구가 말했다.


 1889년 북부 프랑스에서 작은 베이커리로 시작한 PAUL은 12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곳으로 런던, 워싱턴, 도쿄, 싱가포르, 모스코우, 서울 등에 오픈했으며, 서울에서는 엄청난 줄을 서가며 오랜 시간을 기다릴 정도로 소문이 난 곳이다. 빵순이들인 우리는 반가운 맘에 거침없이 들어갔다. 이날부터 우리의 Paul 사랑은 이번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쭈욱~ 계속되었다.


 


이번엔 와플이다. 대체 먹을 것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와플의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가장 단순해 보이는 딸기와 초코시럽이 뿌려진 와플을 길거리 테이블에서 먹었다. 달콤 감칠맛이 그만이다.



와플을 먹고 그랑 팔레스 쪽으로 걸어가는데 감자튀김으로 유명한 집 '마네킨 피스(Manneken Pis)'가 보였다. 이 또한 먹어봐야지 않은가? 마네킨 피스는 현지어로 오줌싸개 소년이니 브뤼셀의 상징물을 가게 이름으로 정한 것이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된다. 배도 부르고 하여 한 개만 주문했는데 손가락만 한 굵은 감자튀김이 한 바구니~. 우리는 둘 다 조금씩 자주 먹는 스타일이라 다 먹지 못하고 포장을 해야만 했다.


걷다 보니 그랑 팔레스에 도착했다. 브뤼셀의 중심이 되는 광장으로 17세기에 설립된 공공건물과 사적 건물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으로 시청사와 왕의 집, 길드하우스 등이 있으며 다양한 박물관도 있다. 그랑플라스에 위치한 시청사는 1402년경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건물로 시청사 탑의 높이는 96m인데 17세기 말 프랑스의 침공으로 그랑플라스가 파괴되었을 때도 시청사는 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아이들의 웃음엔 짭짤함이나 찝찔함이 없다. 오직 달콤할 뿐이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 아름다운 광장과 건축물을 많이 봤나?, 아니면 너무 기대라 컸나? '

야경이 아름답다고 하니 저녁 먹고 다시 나와보기로 하고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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