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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23. 2016

5. 다섯 번째 계절, 겐트

유레일 4507Km의 끄적임 <브뤼겔, 겐트>




                                                                                                                       

이른 아침, 숙소를 나와 도시를 걷는다. 

셔터에 그려진 메트로놈으로 그곳이 악기점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상점을 지나고, 

70년대를 연상시키는 의자가 보이는 이발소를 지나 레이스 박물관에 도착했다.



수십, 아니 수 백 년 전에 만들어진 섬세한 레이스들이 빛바랜 자태로 유리 상자 속에 들어있다.

벨기에의 레이스는 섬세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레이스 짜는 원형틀


악기박물관엔 대체 이런 악기들을 어디서, 어떻게 가져왔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시대, 다양한 지역의 악기들이 전시돼 있었다. 2층 전시실에서는 가야금과 거문고, 아쟁, 해금, 퉁소, 장구 등 우리나라 민속 악기들도 전시되어 반가웠다. 그곳엔 8천여 점의 소장 악기가 있는데 약 1천여 점 씩 교대로 일반에 전시하고 나머지는 별도 공간에 보관하며 학술연구에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벨기에의 루브르’로 불리는 왕립박물관은 실제로 나폴레옹이 전 세계에서 수집(?)한 미술품들을 루브르에 채우고 남는 것들은 이곳에 보관했다고 한다(이때 벨기에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런데 나폴레옹이 갑자기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이곳의 미술품들은 그냥 눌러앉게 됐다고... 

나폴레옹이 총애했던 화가 다비드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마라의 죽음’을 비롯해 루벤스와 브뤼겔 등의 작품들이 즐비했다. 샤갈과 쇠라, 그리고 벨기에를 대표하는 화가인 마그리트의 그림까지 전시하고 있다.


마라의 죽음 , 다비드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는 작품들은 별로 없었다. 유명한 화가의 작품은 그게 누구든 전 세계 미술관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마그리트의 특별한 사고와 시각이 빚어낸 작품은 셜록홈스의 추리 소설을 보듯 뭔가 비밀스러움을 풀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깔끔한 구도와 다운된 컬러가 맘에 든다.

 

 




르네 마그리트를 보고 겐트로 가는 길에 만난 하늘은 마그리트를 닮아 있었다. 기차는 평일이라 그런지 무척 한산했다. 브뤼셀에서 기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겐트로 가는 동안 작은 시골역들과 목가적인 풍경이 창가를 스쳐 지나갔다. 중세의 느낌이 온 도시를 뒤덮는 조그마한 겐트 역에 도착해 트램을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파랗고 맑은 하늘, 회색 건물 그리고 울긋불긋한 박공지붕들. 조용히 흐르는 운하와 한적한 공원들이 인상주의  풍경화 같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도로에는 자전거와 트램, 자동차와 사람들이 한꺼번에 섞여 다녔다. 물론 부딪힘은 없었다. 



중심부에 내리니 겐트를 대표하는 성 니콜라스 교회와 바프 대성당이 모두 한 포인트에 담긴다. 파란 하늘 아래 뾰족하게 솟은 상징과 기호들. 겐트 사람들의 남다른  회화적 감각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조용한 도시를 흐르는 강이자 겐트의 또 다른 핵심인 레이에 강이 차분하게 흐르고 있다. 마치 겨울과 봄 사이의 다섯 번째 계절 같은 날씨가 펼쳐졌다. 수 백 년 전에 세워진 교회 옆으로 최신 전동 트램이 지나가는 풍경이 어색하게 보이지 않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바프 성당에는 플랑드르 회화의 거장인 후베르트 반 아이크(Hubert van Eyck, 1370~1426)가 세운 제단화가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높이 3m 50cm 너비 4m 61cm의 거대한 제단화는 평소엔 접어두었다가 미사 때 펼쳐놓는다.

바프 성당
제단화, 반 아이크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유럽 대부분을 정복하면서 히틀러의 광기가 하늘을 찔렀고, 퇴각 직전에 그는 유럽 전역에 소장된 예술품들을 독일로 빼돌리려 했다. 연합군 특수 부대인 ‘모뉴먼츠 맨’은 그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특수부대였다. 영화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The Monuments Men, 조지 클루니 감독, 극영화, 미국/독일, 2014년, 118분)은 부대가 처음 만들어지고 유럽의 예술품들을 히틀러의 손에서 구해내는 활약상을 그린 영화다. 그들은 비단 히틀러뿐만이 아니라 전쟁에서 파괴되어 손실되었을 수많은 예술작품을 구해냈다. 





겐트역으로 돌아오니 커피 시음을 하고 있다.  

판촉용 커피 까지 푸짐하게 얻으니 부자가 된듯하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브루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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