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스트리아(Istria)
2024년 5월 13일
from ICN(인천) to FCO(로마 피우미치오)
KE 931
정확히 1년 만에 같은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한 달 후
from FCO to ICN
KE 932
from과 to가 바뀌었을 뿐인데 마음의 온도는 엄연히 다르다.
출발의 설렘이 밝은 파스텔 색조였다면 돌아옴의 아쉬움은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색을 닮았다.
떠남이 행복한 것은 일상이 그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름도 생경한 그로즈난(Groznagn)과 모토분(Motovun),
그곳의 좁은 돌길을 걸는 동안 2kg의 카메라 무게를 깃털처럼 여기며 10일이 지났다.
아직은 초록의 기운이 더했던 발 도르차(Val D'orcia) 평원이 누렇게 변해가는 것이 보일 정도로 머물렀던 토스카나에서의 2주일,
그리고 고대 도시 마테라(Matera)와 하얀 원뿔형 집 트롤리가 동화처럼 펼쳐진 알베로벨로(Alberobello)와 아드리아의 푸른 해변이 아직도 내 눈 어디쯤에선가 무시로 파도를 출렁거리며 드나들던 풀리아(Pulia)에서의 8일도 빠르게 지나갔다.
돌아옴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반추이다.
그러므로 복기하듯 다시 길을 떠난다.
로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환승 게이트를 찾아갔다.
게이트가 아직 오픈할 시간은 아니지만 이탈리아 항공사 직원 두 사람이 카운터에 나와 있었다.
-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나는 서울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로마에 왔는데요. 트리에스테로 가는 비행기로 환승을 하려고 해요. 우리의 수하물이 탑재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나는 인천을 떠날 때 공항 카운터에서 로마에서 트리에스테로 가는 이탈리아 항공으로의 수하물 연계를 요청했었다.
직원의 말로는 환승 시간이 1시간 30분 이상인 때 수하물 연계를 해 줄 수는 있지만 장담은 못한다고 했다.
그쪽에서 수하물을 실어줄지 않을지는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란다.
만일에 최종 목적지에서 수하물을 찾지 못하면 대한항공 책임이 아니 ITA로 문의하라고 했다.
'만일'이라는 불확실함이 있었지만 나는 수하물 연계를 요청했고 탑승권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천 공항에서 이륙이 30분이나 딜레이 되면서 슬금슬금 걱정이 되었다.
도착부터 수하물을 받지 못하면 불편함은 물론이요, 여행의 분위기가 망쳐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ITA 직원은 내 여권을 확인하더니 미소를 띠었다.
이미 답은 들은 셈이다.
그는 수하물이 분명하게 실렸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 그라찌에 밀레
다행이다.
아니 시작이 좋다.
그렇게 트리에스테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
숙소가 있는 중심가까지는 자동차로 약 40분,
렌터카는 다음 날 오전 기차역에서 픽업하기로 하였으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늦은 시각이라 택시를 예약하려고 했으나 택시비가 거의 200유로, Uber도 운행하지 않는 도시였다.
그에 비해 기차는 첸트랄레(중앙역)까지 30분이 걸리며 1인당 4유로로 저렴하다.
선택의 여지없이 공항에서 12시 15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예매했다.
그런데 앞 시간의 기차가 약 30분 딜레이 되어 11시 40분쯤 공항역에 도착했다.
역무원에게 나의 티켓 시간을 보여주며 물어보니 타라고 한다.
운 좋게 11시 10분에 출발했어야 할 기차를 타고 중앙역에 도착하니 밤 12시 10분,
예정대로라면 아직 공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시각에 벌써 중앙역에 도착한 것이다.
기차역에서 택시로 숙소에 도착하니 12시 30분,
유럽은 어디든 집을 떠난 지 거의 24시간이 넘어야 숙소에 도착한다.
여행에서 가장 힘든 게 첫 숙소 도착까지의 여정이다.
그날 역시 25시간이 걸렸다.
이 여행에는 어떤 스토리가 들어있을까?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