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트러플은 바로 여기
7. 모토분(motovun)
점심식사는 트러플 산지로 유명한 모토분에서 먹기로 하고 각자의 차를 출발시켰다.
까마득한 절벽 꼭대기에 자리 잡은 탓에 멀리서 보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델이 된 마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시비타 디 바뇨레초가 이 영화의 모델이 되었다고도 한다.
어떤 이유에서 누가 이런 얘기들을 시작하고 전해지는 건지는 모른다.
나는 다만 그 영화를 안 보았으며 그 영화와 무관하게 이곳에 왔다.
푸아그라, 캐비어와 함께 세계 3대 진미에 속하는 송로버섯(Truffle)은 인공재배가 되지 않고 생산량도 아주 적어 ‘식탁 위의 다이아몬드’로 불린다.
땅 속 40~80㎝의 깊은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채취하기 어려워 과거에는 후각이 예민한 돼지를 풀어 찾았으나 요즘은 사냥개를 앞세운다고 한다.
모토분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트러플 헌팅 프로그램도 있다.
이스트라 반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송로버섯 산지이다.
특히 모토분에서는 연평균 10톤 이상의 트러플이 생산된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트러플은 크게 블랙과 화이트로 나뉜다.
블랙 트러플은 크로아티아뿐 아니라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캐나다, 중국 등 세계 전역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화이트 트러플은 전 세계에서 딱 세 곳에서만 채취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곳 모토분이다.
블랙 트러플보다 화이트 트러플의 향이 더 깊고 진하며 가격도 훨씬 비싸다.
화이트 생 트러플은 1㎏에 1천만 원 가까이 거래된다니 과연 식탁 위의 다이아몬드라 할만하다.
여행 리포터들은 대부분 모토분의 레스토랑으로 코노다 몬도(Konoda Mondo)를 추천했다.
그러나 경험상 여행 책자나 트립 어드바이저에 소개된 레스토랑은 신뢰도가 떨어졌다.
게다가 늘 여행자로 붐비기 때문에 음식의 주문이나 서빙이 늦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구글 평점을 토대로 메뉴를 살펴보는 편이다.
4.7의 같은 평점을 받은 몬토나 갤러리(Montona Gallery)에 관심이 쏠렸다.
거기 한몫 더한 것은 바로 훌륭한 뷰를 가진 위치였다.
Konoda Mondo Montona Gallery
'우리는 모두 다섯 명인데 3명은 오는 중입니다. 점심식사를 할 수 있을까요?'
다행히 내가 원하던 바로 그곳, 산 아래 분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야말로 특급 좌석으로 안내받았다.
나와 달리 자매들은 1km 남짓한 모토분 초입의 주차장에 주차를 한 터에 걸어서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메인은 당연히 트러플이 들어간 수제 파스타지만 샐러드와 뇨끼, 리조토 등을 함께 주문했다.
수제 파스타 위에 슬라이스 된 화이트 트러플이 아낌없이 올려져 있다.
식전 빵과 같이 나온 트러플 페스토 역시 기 막히게 맛있다.
물론 블랙 트러플이 들어간 파스타와 다른 음식을 먹어본 적이 몇 번 있다.
대부분 유럽에서였다.
하지만 그날이 단연코 최고다.
당연히 파스타의 추가 주문이 필요했다.
레스토랑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건 뭐든 쉬운 일이 아니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행복한 식사였다.
게다가 서빙을 하는 웨이트리스는 중년의 아주머니인데 환하게 웃는 얼굴과 상냥하고 친절한 매너가 손님을 기분 좋게 만드는 분이었다.
'언니, 나는 매일매일 어제가 기억나지 않아. 만날 오늘이 최고인 거 있지?'
어제 어디를 갔고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다는 말은 최고의 기쁨을 전하는 말이리라.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내가 누군가를 도와줄 일이 있다는 것이다.
듣자 하니 우리가 식사한 레스토랑에 한국 여행자 세 분에 왔는데 메뉴 선택을 도와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트러플 수제 파스타를 비롯해 몇 가지를 추천해 드렸다.
그랬더니 당신들은 단체로 여행을 왔는데 이미 식사를 했고 가이드가 송로 버섯이 들어간 음식을 경험해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트러플이 바로 송로 버섯이에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요즘 단체 여행 프로그램이 무척 다양해졌나 보다.
이렇게 작은 산골 마을까지 올 수 있는다는 게 놀랍다.
커피 마실 곳을 찾아볼까 하니 뷰가 좋은 테라스나 광장에는 이미 단체 여행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마땅치 않았다.
다음 날, 자매들은 계획된 일정에는 없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숙소가 있는 풀라에서 자동차로 왕복 8시간은 걸릴 거리이다.
그중 SY가 플리트비체를 가본 적이 있었고 아직 못 가본 동생들과 함께 가고 싶은 생각이다.
물론 거리가 멀지만 나 역시 그곳을 가보았기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게 새 자매는 플리트비체, 나와 B는 일정표의 계획한 곳으로 가기로 했다.
셋은 모토분에서 더 시간을 보내며 국립공원의 티켓을 예매하고 가겠노라고 하여 나와 B는 숙소로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모토분은 트러플을 판매하는 샵이 많지만 어찌해도 오늘 먹은 파스타 맛을 낼 수는 없을 것이라 판단하여 패스, 숙소에서 먹을 올리브유 하나를 구입하여 주차장으로 향했다.
가끔씩 혀끝과 목구멍에서 트러플 향이 솔솔 풍기는 게 기분 좋다.
주차장에 거의 도착했을 때 한 노신사의 멋진 뒷모습이 보였다.
'저~ 실례지만 당신의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그러나 결과물은 그냥 뒷모습이 멋진 분!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래도록 제 몸을 내어주어 반들반들 빛나는 돌길이 더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