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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우 아이즈(Sibiu Eyes)

8. 루마니아 시비우

by 전나무






새로운 여행지를 찾는 모든 시간은 두근두근, 셀렘으로 가득합니다.

고풍스러운 올드 타운의 풍경 속을 걸을 생각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지요.

이동 거리를 계산하고 숙소를 찾는 것은 일이 아니라 행복입니다.

노매드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지요.


시비우, 시기쇼아라, 카르티쇼아라, 라즈나리, 시비엘, 티미쇼아라, 클루지 나포카, 바이아마레, 시계투 마르마치에이, 사푼차, 브라쇼브, 바르샤나, 브란, 라슈노프, 시나이아, 루페아...


생소함 투성이인 낡고 소박한 마을들의 이름을 따라갑니다.

루마니아의 지명들은 받침이 없는 발음이 많아서 어감이 부드럽지요.

첫 만남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곳의 공기와 음식냄새들로 인해 여행자들의 감각은 민감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시비우(Sibiu)는 트란실바니아 중심부에 위치한 매력적이고 역사적인 도시인데요.

여기서 트란실바니아(Transylvania)란 루마니아 중서부의 역사적 지역을 말합니다.

특히 '브라쇼브, 시비우, 시기쇼아라'는 일명 트란실바니아 트라이앵글이라 불리는 루마니아 여행의 중심입니다.



트란실바니아 지도




자갈길 골목, 다채로운 모양의 오래된 주택으로 둘러싸인 큰 광장(Piata Mare), 붉은 제라늄으로 장식된 거짓말 다리, 파스텔컬러의 집들, 고딕 양식의 교회가 있는 시비우의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죠.

참고할만한 루마니아 여행 서적이 없기에 찾아가 볼만한 할 곳을 찾아 정리했습니다.



시비우 타워 Turnurile Sibiului
시비우 어퍼타운 Orașul de Sus
그레이트 스퀘어 대광장
로마 가톨릭 교회 Biserica Romano-Catolica
시의회 타워 Turnul Sfatului
스몰 스퀘어
후에트 광장 Piața Huet Huet Square
로어 타운 Orașul de Jos
브릿지 오브 라이즈 Podul Minciunilor
계단 통로 파사훌 스카릴로 Pasajul Scarilor



숙소를 나와 골목을 걷는 첫 발걸음부터 만족합니다.

'유럽은 바로 이맛이지.'

연두색 아치를 지나 단풍 든 나뭇잎이 줄지어 서있는 도로마저 예뻐요.

10월 중순이지만 영하 3도로 꽤 쌀쌀합니다.

그럴 걸 알고 비엔나에서 산 장갑을 챙겼지요.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독특한 지붕에 뚫린 창문,

일명 시비우의 눈(roof eyes)이라 불리는 이것은 'Seebiu'라는 별명이 있는데 대부분 사다리꼴 모양이고, 둥글거나 길쭉한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건물 지붕의 어둡고 움푹 들어간 창문 위로 드리워진 기괴한 눈꺼풀 같은데 깜박이지 않는 눈이 항상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요.

무엇이 숨어 있는지, 누가 숨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그 창문은 고기, 치즈, 곡물들을 보관하는 다락방의 환기를 위해 만든 창문입니다.

오늘날 시비우의 가장 유명한 상징이 된 독특한 지붕창은 브라쇼브 주에 위치한 다른 인근 지역에서도 발견되지만 시비우에 가장 많더군요.

새 기와로 한쪽만 수리를 한 지붕도 있습니다.


'얘는 한쪽 눈만 성형했네.'


광장 여기저기서 뭔가가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들, 분수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어디를 가든지, 그들의 시선은 우리를 따라갑니다.

















광장에 왔으니 친구의 부탁대로 그녀의 이름을 크게 외쳐야 하는 미션을 수행할 시간입니다.

숫기 없는 나는 입가에 손을 갖다 대고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ㄴ ㄱ ㅅ'


그러나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건 안 비밀?


광장의 한쪽 구석에 조그만 다리가 있습니다.

원래 나무로 만들어진 이 다리는 철제로 재건되었는데 이것은 기둥 없이 지어진 루마니아 최초의 철제다리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누워있는 다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독일어로 "누워있는"이라는 뜻의 '루겐마르헨'은 "거짓말"과 동의어이기도 해서 지역주민들은 '거짓말의 다리'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름 때문에 다양한 전설들이 생겨났기도 했다는데 거짓말을 하면 다리가 흔들릴 거라는 말도 있다고 해요.

그런 이름이 없다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칠법한 평범한 다리지만 그곳에서 광장을 바라보는 전망이 아름다워서 많은 여행자들이 사진을 찍는 포토 스폿이기도 합니다.






거짓말 다리



광장에는 옛날 궁전 같은 건물이 있는데 그 앞에 기괴한 모양의 조형물이 떡하니 놓여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기린이 물을 마시는 것처럼 보이나 가까이 다가가 보면 여섯 개의 발, 아니 일곱 개의 발 모양의 알 수 없는 작품입니다.

주변에는 작품 제목도 작가 이름도 없이 덩그러니 놓여있는데 시비우의 광장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 못마땅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다음 날 광장을 지나다 보니 그 괴상한 작품이 궁전 안쪽으로 옮겨져 있더군요.

그곳은 브루켄탈이라는 궁전인데 현재 시비우 국립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타데우시 칸토르라는 작가의 '항상 그리고 어디서나 예술가'라는 전시를 준비하는 중이었습니다.





광장의 옛 우물


브루켄탈 동상과 브루겐탈 미술관



거짓말 다리를 건너 길을 따라가면 보이는 성당은 시비우 루터 대성당인데요.

외부와 내부의 디자인이나 컬러가 정제되고 고상한 품위가 느껴집니다.

특히 바로크 스타일의 대형 오르간이 눈에 띄는데 78개의 레지스터를 갖춘 자우어 오르간으로 트란실바니아에서 가장 큰 악기라고 해요.


누군가 오르간을 연습 중입니다.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걷는데 2층 한쪽 벽면의 작은 거울에 연주자의 옆모습이 비쳐 보였지요.

성당 오르간 연주자들은 성격이 차분하고 화도 없을 것만 같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아름다운 음악이 손끝에서 수놓아지니까요.

대성당에는 많은 비문과 대형 프레스코화 등 볼거리도 많고 서유럽의 성당과는 다른 분위기지만 느낌이 좋았던 곳입니다.

















그 성당의 종탑에 올라가면 시비우의 전망이 모두 내려다보인다 하는데 계단수를 불어보니 192개라 합니다.

300개 400개가 넘는 종탑에도 올라갔었으니 그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지요.

힘들지만 나선형의 돌계단을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겠다 싶은데 마지막에 복병이 있었지요.

약 40~50개의 뚫린 철제 직선 계단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발이 쑥 빠져 떨어진 것만 같아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지난 5월에 크로아티아의 로비니에 갔을 때 성 유페미아 성당의 종탑 역시 오픈형 계단이라 포기했었지요.

우물쭈물하며 망설이는 사이에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이 우리 곁에 도착했습니다.

게다가 그들 중 한 분은 시력이 안 좋으신지 부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아 고지를 코 앞에 두고 그냥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종탑으로 가는 계단 벽




루마니아는 상점마다 디퓨저를 많이 쓰는데 그 향기라는 게 너무 독해서 들어가자마자 서둘러 나와야 할 정도였습니다.

금방 나왔을 뿐인데도 옷에 냄새가 밸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뭐랄까 손님을 내쫓는 효과였지요.

관광지면 어디든 쉽게 볼 수 있는 기념품샵도 없고 옷이나 액세서리, 가방이나 구두를 판매하는 곳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서 신기할 정도였어요.

어디든 그 지역의 유명한 건물이나 상징들을 프린트해서 만든 흔해빠진 티셔츠 하나 없어요.

시비우의 눈을 테마로 디자인한 상품들도 특색 있고 좋으련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쇼핑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 예쁜 걸 구경하면 에너지가 생기는데 그렇질 못하니 아쉽습니다.


간간히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곳이 있어 다가가보면 빵집인데요.

혹시나 쿠키나 케이크 같은 디저트거리가 있을까 하고 살펴보면 역시나 없습니다.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 좋은 피자나 루마니아식 프리첼인 코브리지(covrigi), 그리고 만두 같이 커다란 반달 모양의 튀김 도넛들이고 주민들은 그걸 사서 걸어 다니며 먹었습니다.

고고시(gogosi)라는 이름의 간식은 반죽 속에 치즈, 살구 잼, 초콜릿 등을 넣어 납작하게 접어만든 도넛으로 그 크기가 손바닥보다 큽니다.

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플레인도 있는데 값은 약 1000원 정도로 매우 저렴하지만 소식좌들인 우리가 간식으로 먹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크기라 선뜻 내키질 않았지요.






고고시(gogosi)
코브리지(covrigi)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전통 디저트로 빠빠나쉬(papanasi)라는 케이크가 있습니다.

치즈를 사용한 도넛 모양의 케이크로 샤워크림과 블루베리 같은 작은 과일들이 올려져 있는데 그 역시 사이즈가 너무 크고 기름져 보여 매번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날도 중심가에서 꽤 고급인 시푸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디저트가 있는 카페를 찾아다녔지만 역시나 쉽지 않더군요.

아침에 커피를 마실 때 간식으로 사두었던 피스타치오 파이와 맥 카페로 대신해야 했습니다.




빠빠나쉬(papanasi)




14세기에 지어진 계단 통로는 시비우 시에 있는 돌과 벽돌로 만든 통로로 어퍼 타운과 로어 타운을 연결해 줍니다.

대부분의 명소들은 어퍼 타운에 있고 로어 타운은 주로 주거 지역인데요.

로어 타운에 세컨드 샵, 그러니까 빈티지 샵이 있어서 잠깐 들어갔는데 낡고 허름한 옷들을 팔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헌 옷 수거함에 벼려지는 옷들보다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요.

그 후로도 여러 도시에서 그런 상점을 많이 볼 수 있었고 루마니아의 생활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을 짐작했습니다.



로어 타운을 걷는데 난데없이 '양념치킨'이라는 한글이 보였습니다.

'바삭'이라는 이름의 치킨 집인데 평점이 무려 4.8이고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흘만 영업을 하더군요.

아마도 그 음식점의 오너는 워라밸을 추구하는 한국의 젊은이가 아닐까 했는데 그 짐작이 맞았습니다.

그곳은 한국의 젊은 자매가 7년 전부터 운영을 하는데 한국식 배달 시스템까지 이용하며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식당이더군요.

메뉴는 치킨부터, 컵밥, 김치볶음밥, 만두까지 다양했습니다.

자랑스러운 젊은이들을 지지하는 마음으로 방문하고 싶었지만 쉬는 날이라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왼쪽이 언니, 오른쪽이 동생 (출처 : 레스토랑 바삭 홈페이지)


바삭 메뉴 (출처 : 레스토랑 바삭 홈페이지)



모양이 우리나라 쌀과 비슷한 루마니아 쌀을 사봤는데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습니다.

유럽의 큰 마트에는 대부분 초밥용 쌀을 판매하는데 루마니아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어요.

숙소 근처에 코리안 마켓이 있다기에 들어가 봤지요.

라면부터 각종 양념, 과자 들은 다 있는데 쌀은 없더군요.

햇반은 한 개 4000원 정도로 너무 비싸서 점원에게 물어보니 앞에 있는 까르푸에 있다고 합니다.

편의점 정도로 규모가 작은 까르푸 익스프레스에서 스시용 쌀을 발견했는데요.

500g에 약 14000원?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하면 약 3배가 비싸지만 우선 한 개 사서 루마니아 쌀과 섞어 먹기로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아침에 봐놓았던 작은 상점에 갔습니다.

출입문 유리창에 연필 스케치가 비치도록 희미하게 파스텔로 칠한 작은 그림이 붙어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시비우 광장의 성당 스케치인데 단순한 선과 화려하지 않은 컬러가 맘에 들어서 구매했습니다.

광장에서 이름을 불러달라던 친구가 그런 작은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주인 할머니는 파스텔이 묻어나지 않게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주셨어요.

단돈 만원도 되지 않는 작은 선물이지만 흐뭇했습니다.

어떤 사물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저녁은 파근파근한 감자를 넣고 고추장찌개를 끓이기로 했습니다.

비교적 짠맛이 덜한 어린이용 소시지와 양파도 볶을 겁니다.

스시용 쌀을 섞으면 밥도 한결 차지겠지요.

세탁기도 돌리고 책도 몇 줄 읽으며 에너지 충전을 해야겠습니다.




계단 통로 파사훌 스카릴로 Pasajul Scarilor


시비우 성벽
대장장이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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