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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의 클레이 캐슬

9. 페어리 밸리 클레이 캐슬

by 전나무






깜짝 놀랄 정도로 예쁜 사진을 발견했어요.

'어머나 여긴 어디지?'

하며 위치부터 찾아보았던 그곳은 페어리 밸리 클레이 캐슬 (또는 발레아 자넬로르 점토성 Castelul De Lut Valea Zânelor), 시비우에서 약 40km로 멀지 않았어요.

동화나 요정은 비단 어린아이들만 좋아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굴참나무껍질로 만들어서 굴피집이라고도 불리는 너와 지붕이 언뜻 보면 새 집 같기도 하고 모형으로 만든 성 같기도 한 그곳에 가보고 싶었지요.

홈페이지에서 건축을 하게 된 배경과 집을 만든 재료, 그리고 티켓을 구매하면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레스토랑도 이용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루마니아 하면 드라큘라의 배경이 된 브란 성이 손꼽히지만 사실 그곳보다 더 가보고 싶은 곳이었죠.




이 성은 부쿠레슈티에서 태어난 라즈반(Răzvan)과 가브리엘라(Gabriela) 부부가 여섯 살 난 아들을 위해 만들었는데 2014년 초석이 놓이고 2017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천연자재만을 사용한 그곳은 그 지역의 철근에 자연석과 모래, 강자갈을 혼합한 콘크리트로 만들고 전체적인 구조는 자작나무, 벽은 점토에 짚과 물, 모래를 섞은 후 석고와 수경성 석회 페인트를 더했고 지붕은 널빤지를 얹었습니다.

페인트는 자연친화적인 밀봉 성질이 있어 통풍은 되지만 습기는 침투하지 못하게 했다는군요.

이 점토로 만든 성에는 2개 층, 10개의 방, 2개의 탑, 50개의 창문이 있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오직 곡선으로만 디자인했습니다.

또한 대칭이 전혀 없으므로 마치 동화 속 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창문이나 문, 문턱의 크기와 모양은 똑같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침대와 계단, 난간과 테이블, 선반과 벽난로 등 모든 장식품을 손수 만들었고 접시, 컵, 냅킨은 지역 주민들이 만든 것을 사용합니다.


이 건물은 본채, 게스트하우스, 헛간, 지하실, 사우나, 테라스와 주방이 딸린 레스토랑과 정원으로 이루어진 단지로 피크닉, 휴식 공간, 집라인, 어린이를 위한 특별 놀이터 등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음식은 현지 생산자로부터 신중하게 선정된 재료로 만든 채식 요리를 포함하며 특선 요리도 있습니다.

계절마다 풍경이 바뀌므로, 시기에 따라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지는데 크리스마스, 부활절, 핼러윈 등 다양한 테마의 이벤트도 진행됩니다.

이 성이 어떤 이야기를 영감으로 삼았는지는 비밀입니다.

누군가는 "백설공주"일 거라고 말하고, "반지의 제왕"에서 따온 몇 가지 아이디어도 보이고 호빗과 그림 형제에서 따온 아이디어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곳은 독특한 사진을 찍기에 이상적인 장소이므로 결혼식, 세례식, 기념일의 이벤트를 개최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 : 구글 발췌 요약)



사진 출처 : 구글 홈페이지
사진 출처 : 구글 홈페이지
사진 출처 : 구글 홈페이지




구글 맵스는 친절하고 똑똑한 마술사처럼 어디든 정확하게 데려다줍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곳에 내려보니 왠 어설픈 놀이동산?같은 게 보이는 거에요.

내가 보았던 동화 속 나라와는 분위기가 영 다른 게 당황스럽더군요.

'12개 달력의 이야기(Povestea Calendarului)'라는 이름을 가진 소박한 테마 파크였습니다.


그곳은 12개월을 의미하는 미니어처 집 12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서로 다른 재료 다른 모양으로 디자인된 집들은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연결되어 있으며 루마니아의 각 달에 맞는 옛 이름, 즉 1월은 달콤한 생강집, 6월은 체리블라썸이 집, 12월은 산타 크리스마스의 집이란 이름이 붙여 있습니다.



12개 달력의 이야기(Povestea Calendarului)
테마파크
테마파크 입구




한 소년이 공원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호두를 팔고 있습니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마른 빵 한쪽에 고기 튀김 조각을 올리고 있었어요.

우리나라의 70년대의 느낌이랄까?

소년에게 초콜릿 몇 개를 건너니 수줍게 웃는데 세상 순박하고 착한 표정입니다.

다른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테마 파크 안에서 놀이 기구도 타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시간에 소년은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호두를 늘어놓고 팔리길 기다립니다.

깐 호두가 아니라 선뜻 사주지도 못했는데 하나도 못 팔 것 같아 괜히 맘이 짠합니다.




초콜릿을 손에 쥐고 수줍게 웃는 소년



소년과 헤어져 몇 발자국 더 걸으니 왼쪽 싸이프러스 나무 담장 위로 뾰족뾰족한 지붕의 일부가 보였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구글맵이 제대로 알려주었군'

반가운 마음에 담장을 돌다가 도로변에서 커다란 나무 대문을 발견했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게다가 무슨 이유로 문을 닫았는지 언제부터 영업을 재개하는지 하는 안내문도 없었지요.

구글에는 영업 중이라고 떡 하니 소개되어 있는데 말이죠.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아쉬운 대로 나무 울타리 사이로, 대문 틈으로 까치발을 들고 렌즈를 들이밀고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게 숨을 참아가며 어떻게든 찍어보겠다고 애써봤습니다.

흡사 도촬 전문 파파라치같아 보였을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 L은 깔깔대고 웃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결과물은 영 탐탁지 않지만 도리가 없습니다.


나중에 홈페이지 리뷰를 읽어보니 우리처럼 허탕을 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더군요.

아주 멀리서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이 당황스러웠다는 이야기들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임시 폐쇄 안내만 했더라도 그런 수고로움은 없었을 텐데 아쉬웠지요.













개울이 흐르고 팜 스테이하는 여행자들이 간간이 보이는 근처 오솔길을 산책했습니다.

루마니아의 도로변이나 주택의 울타리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이 있었는데 그곳 담장에도 있어 가까이 살펴보았는데요.

길쭉한 이파리가 초록, 노랑, 빨강의 색깔로 그러데이션 된 것 같아 무척 화려한 그 나무의 이름은 루스 투피나(Rhus typhina), 번역하면 사슴뿔 옻나무, 식초나무라고도 불린다는 걸 알았어요.







루스 투피나(Rhus typhina)




'이제 어디로 가볼까나?'

잔뜩 기대하고 온 곳이라 맥이 풀렸지만 자동차가 있으니 어디든 가면 되니 걱정 없습니다.

지도에서 멀리 않은 곳인 시스나디에(Cisnadie)로 가보기로 합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자동차들만 주르르 주차되어 있고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요.

아기자기하게 들어선 파스텔컬러의 집들이 맘에 들었습니다.

주차를 하고 성당 종탑이 보이는 올드 타운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결혼식을 마친 신랑 신부가 밖으로 나오더군요.

정장을 차려입은 하객들의 손에는 너나 할 것 없이 꽃다발이 들려 있었는데요.

신랑 신부에게 건네지 않고 들고 있는 게 궁금했습니다.

그것은 루마니아의 전통 혼례의 전통으로 예식이 끝난 신혼부부가 식장을 떠날 때 하객들은 각자 준비해 온 꽃다발을 들어 올려 '사랑의 터널'을 만들어주고 두 사람이 그 꽃아치를 통과하여 걸어간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의미겠지요.




루마니아 전통 혼례 장면 (사진 출처 : 구글)
시스나디에 시청




시스나디에의 중심부에 있는 요새 교회는 루마니아의 25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로 그곳의 종탑은 1425년에 세워졌는데 1868년에 설치된 시계는 작동한 이래 단 한 번도 고장이 없었다고 해요.

관광지는 아니어서일까 테이크 아웃 피자 아니면 규모가 아주 큰 단체 식당 같은 곳외에 식사를 할만한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시가지를 따라 쭉 걷다가 평점이 좀 괜찮은 음식점으로 들어가니 테이블마다 컬러풀한 냅킨을 꽂아둔 글라스들을 가득 세워 놓은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에요.

다행히 주문한 음식이 나쁘지 않아 늦은 식사를 잘 마쳤지요.

시비우에서 샀던 냅킨은 질이 나빠 물기가 닿으면 펄프가 묻어나는 터에 불편했는데 마침 근처에 슈퍼마켓 PENNY가 있어 들어갔더니 질감이 좋아 보이는 냅킨이 있었습니다.

화이트와 옐로 2팩을 샀는데 어찌나 톡톡한지 여행 내내 유용하게 썼답니다.





시스나디에 시가지
시스나디에의 요새 교회





이제 커피를 마셔야겠는데 그 또한 마땅치 않아요.

다시 차를 타고 근처 라쉬나리(Rasinari)라는 마을에 있다는 두 형제 카페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작은 마켓과 채소와 과일을 판매하는 상점이 하나 있을 뿐 도무지 커피를 판매할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지요.

이렇게 매번 식사와 커피를 마시는 게 어렵다보니 언제 어디서나 걱정 없이 맛있는 음식과 커피,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그립습니다.

시골의 허름한 다방 같은 것도 제법 운치있으련만 그마저 없어 아쉬워요.

근처에는 민속학 박물관과 소박한 문화센터가 있었는데 사람 하나 없이 휑~

벤치에 앉아 S자 모양의 시냇물이 파란 수초 사이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지요.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이 함께 흘러갔지요.


그렇게 또 하나의 새로운 추억의 한 편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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