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첫 번째 이스탄불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믿음직한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재산인가요.
이번 여행은 세 개의 여정으로 나뉩니다.
시작은 둘이서, 메인은 넷이, 그리고 마무리는 나 홀로입니다.
그리스 여행이 메인이지만 아테네까지는 직항이 없으므로 어딘가를 경유해야 합니다.
친구와 둘이 스탑 오버 지점으로 이스탄불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 아부다비의 자이드 공항을 경유해서 오는 친구 두 명과 아테네 공항에서 만나는 것이죠.
그렇게 넷이서 그리스를 19일 동안 여행한 후, 친구 셋은 서울로 먼저 돌아가고 나는 혼자 밀라노로 갑니다.
거기서 자동차를 다시 빌려 돌로미티가 있는 오르티세이로 가서 9일 동안 머물고 돌아오는 여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여행은 만남과 이별이 이어지는 한 편의 드라마 같았습니다.
각 여정마다 색깔이 달랐고 하나하나 다른 감정이 남았으니까요.
유럽 땅, 수십 개 나라를 많이도 다녔습니다.
그중 튀르키예는 내 마음 깊은 곳에 닿지 못한 먼 별처럼 늘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어요.
여행에도 취향이 있듯, 그곳은 나의 호기심을 깨우지 못한 미지의 땅이었습니다.
그리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산토리니의 찬란한 빛과 그림 같은 풍경 영상은 수없이 봐온터라 식상한 이유도 있고요.
수많은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좁은 계단의 땡볕 아래 뒤섞이는 모습을 상상하면, 휴식이 아니라 소란과 열기로 가득한 무대처럼 다가왔거든요.
그래서 미루고 미루어왔습니다.
4월이나 5월, 조금은 더 조용한 시간에 그곳의 숨결을 만날 거라고요.
한편 이탈리아는 내게는 오래된 노래와 같습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대도시들은 물론이고 트리에스테에서 발도르차, 바리, 레체, 시칠리아까지, 쉼 없이 부르는 멜로디 속에서 나는 이미 50여 곳의 이야기를 내 발걸음에 담았으니까요.
앞으로도 제일 많이 또 갈 것이라 장담하는 나라가 이탈리아입니다.
그리움과 기억이 뒤섞인 여정 속에도, 돌로미티는 늘 손끝에 닿지 않는 먼 꿈처럼 남아 있었지요.
돌로미티는 한여름의 태양 아래 반짝이는 수정처럼, 빛과 그림자가 춤추는 곳입니다.
이번이야말로 그 빛나는 꿈을 붙잡을 순간이라 믿었습니다.
바쁜 세상의 소음과 먼지를 뒤로하고, 나는 그곳에서 고요한 산의 숨결과 하늘의 속삭임을 마주하려 합니다.
첫 여정, 이스탄불을 시작합니다.
공항에서 구시가지 술탄 아흐메트에 있는 숙소까지는 택시로 약 한 시간이 걸립니다.
호스트는 이스탄불의 택시는 워낙 바가지요금이 심하니 택시를 예약해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공항 픽업 택시 서비스 업체에 알아본 금액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었지요.
호스트에게 정중히 사양하며 택시 서비스에 예약했고 공항 출구에 마중 나온 기사의 친절한 에스코트를 받으며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 다섯 시.
모르는 도시의 어둠은 늘 조용했지만 이스탄불은 달랐습니다.
창문 너머 희뿌연 하늘로 울려 퍼지는 아잔(Adhan).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공기의 결이었지요.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폐 속으로 흘러들어와 나를 깨우고, 어젯밤 낯선 곳에 도착하여 묻어두었던 현실을 밀어냈습니다.
아잔은 무슬림에게 기도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입니다.
하루에 다섯 번, 이슬람 사원(모스크)에서 낭송되는데요.
해뜨기 전 여명이 시작될 때의 파즈르,
해가 중천에 이르렀다가 기울기 시작할 때의 정오 기도 주흐르.
물체의 그림자가 두 배가 되는 오후 기도 아스르,
해가 진 후 마그립,
완전히 어두워진 후 드리는 기도 이샤.
그 다섯 번의 기도 시간은 태양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매일 조금씩 바뀐다고 해요.
아잔은 보통 모스크의 무아진(Mu'adhin)이라는 사람이 부르며, 요즘은 대부분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습니다.
'알라후 아크바르(Allah-u Akbar)'라는 문장(알라는 위대하시다)으로 시작하는데요.
하루에 다섯 번, 세상의 시계를 멈춰 세우는 듯한 그 부름은 말이 아니라 기도이고 하늘을 향한 문이었습니다.
분명 사람의 언어인데 언어가 아닌 듯하고,
말이 아니라 주문 같고
노래가 아닌데 노래 같았지요.
낮게, 깊게, 마치 기억 속에서 길어 올리듯 '알라후 아크바르…'
그건 이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오래된 무언가를 깨우는 듯했습니다.
눈앞의 현실은 뿌옇게 흐려지고 마음은 이유 없이 조용해집니다.
정신을 뚫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영혼을 감싸며 스며들었지요.
처음엔 뭔가가 꿈틀대는 흐느낌 같이 들리던 그 소리가 웃음이 날 정도로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반복하여 듣다 보니 묘하게 몽환적이고 주술적인 듯하면서도 어쩐지 슬프고 아름다우면서 간절함이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소리도 중독이 되나 봅니다.
티르키에인들의 99%가 믿는 이슬람교는 유일신 알라(Allah)를 믿는 종교입니다.
전 세계 약 20억 명의 신자가 있으며 무슬림(Muslim)이라 부르지요.
이슬람교의 창시자는 무함마드(Muhammad)로 그의 계시를 모은 경전이 우리가 흔히 코란이라고 하는 꾸란(Qur'an)입니다.
이슬람의 핵심은 다섯 가지로 요약됩니다
1. 신앙 고백(샤하다) "알라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예언자이다."
2. 기도(살라) : 하루에 다섯 번 기도
3. 자선(자카트) :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의무적 기부.
4. 단식(사움) : 라마단 기간 동안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
5. 성지 순례 (하지) : 일생에 한 번 메카 순례(가능한 경우)
이 도시에 도착한 지 겨우 하루가 지났지만, 그 새벽의 숨결은 마치 오랜 시간 기다려준 연인처럼 낯설지 않았습니다.
침대 맡에는 전통 자수로 수 놓인 모자가 있고, 화려한 무늬의 스커트와 양말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숙소는 민속박물관의 한 폭 같고 옛날 할머니 집 벽에 잔뜩 걸려있던 사진 액자며 자수를 놓은 옷가리개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낡은 손거울 하나에도 수백 년의 이야기가 깃든 듯한 그 집은 낯설지만 따뜻했어요.
브런치를 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습니다.
좁은 길엔 무표정한 고양이들이 느린 걸음을 걷습니다.
오르막을 오르는 시밋치의 머리 위엔 깨가 잔뜩 붙어있는 둥그런 시미트들이 쌓여 있습니다.
옛날에 종을 울리며 리어카를 끌고 두부를 팔러 다니던 두부 장수가 생각나는 장면이었지요.
다음 날 같은 시각, 여전히 시미트들을 머리에 이고 같은 곳을 오르고 있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가장의 무게를 그냥 알 것만 같았습니다.
빨리 팔려서 그 무게를 덜게 되면 좋겠다 싶었지요.
목적한 레스토랑으로 향해 가는데 숙소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작은 카페가 보였습니다.
The Rabbit hall, 토끼굴이라는 이름의 그 카페는 소박하면서 정겨움이 물씬 풍겼지요.
'우리 그냥 여기로 가볼까?'
'그래 좋아 보여.'
메뉴에 튀르키에 가정식 조식이 있어 주문했습니다.
얼마 후 정갈한 쟁반 하나가 테이블 위에 놓입니다.
가장자리에는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종지 같은 작은 그릇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아 있습니다.
마치 소꿉놀이하는 것처럼 작고 깜찍하며 예쁘기까지 합니다.
올리브 몇 알, 삶은 달걀 한 개, 잘게 썬 살라미, 샐러드 조금, 버터..., 사과와 오렌지, 바나나 등 과일이 가장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중앙에는 딜을 얹은 두 가지의 치즈와 방울토마토, 그리고 각기 다른 미니 잼이 가득 채워져 있었지요.
그리고 갓 구운 빵이 담긴 바구니와 커피가 터키의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
눈이 즐겁습니다.
맛보기 전이지만 벌써 행복했지요.
이것은 '카흐발트'라고 부르는데 커피 전의 식사라는 뜻이랍니다.
그곳은 나에게 시간을 천천히 쓰는 법을 알려주는 것만 같습니다.
과연 맛도 훌륭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곳은 동네 맛집이더군요.
우리가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은 거의 손님들로 가득했으니까요.
게다가 가격도 저렴합니다.
대만족입니다.
우리는 사장님께 내일 아침에도 오겠노라 다짐을 하곤 블루 모스크로 향했습니다.
구시가지에는 흔히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아야 소피아 성당, 예레바탄 지하 저수지, 그랜드 바자르등이 모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디든 걸어서 다닐 수 있어서 좋았지요.
처음 도착한 곳은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입니다.
준비해 간 스카프를 머리에 쓰고 신발을 벗은 후 입장했습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19세기말~20세기 초 서구인들은 오스만 건축과 이슬람 예술에 이국적인 이미지를 덧입히며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을 붙였고, 블루는 그저 상징적인 이름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그들에게 푸른 타일은 오리엔탈 한 아름다움의 정수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와 무관하게 'Blue'라는 이름으로 고정한 거죠.
사실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 때문에 파란색을 상상했지만 실내를 장식한 이즈닉 타일은 파란색보다 노란색, 갈색, 초록색, 은은한 황금빛, 베이지, 노란빛 계열의 무늬가 대부분이라 따뜻한 느낌입니다.
수백 개의 작은 전등이 낮게 달려 있어 전체 공간에 따스한 노란빛이 번지듯 감돌고, 이는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한층 신비롭고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어요.
돔을 따라 퍼지는 타일과 문양은 마치 시간의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 같고, 검은 타원 위에 부드럽게 그려진 금빛 글자들은 이 세상 언어가 아니라 별과 별 사이를 떠도는 소리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심코 보면 글씨가 아니라 그림처럼 보이는 그것은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대부분 꾸란(코란)의 구절 또는 알라와 무함마드, 4대 칼리프의 이름이었습니다.
글씨는 전통적인 이슬람 서예인(아라빅 캘리그래피)으로 공간 전체가 하나의 기도이자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블루라는 이름을 안고 있지만 푸른 타일은 창 아래 낮게 깔려 있을 뿐, 공간을 채우는 건 햇살 같은 노란빛과 구름 같은 베이지색 무늬들.
벽을 타고 흐르는 금빛 글씨, 숨결처럼 낮게 드리운 조명, 그리고 그 아래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들의 그림자.
그 모스크의 색은 눈에 보이는 푸름이 아니라 마음에 스며드는 온기였습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야 소피아(Hagia Sophia) 성당이 있습니다.
아야 소피아는 현재 모스크(이슬람 사원)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성당으로 불리는 이유는 1500년 전 원래 그리스 정교회 성당으로 세워졌고 약 900년 동안 성당으로 사용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야 소피아는 그리스어로 거룩한 지혜(Sacred Wisdom), 즉 성스러운 개념을 신격화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대천사 가브리엘과 미카엘, 황제와 성인들의 모습이 벽면과 천장에 섬세한 모자이크로 남아 있고 건축 구조, 벽화 등이 모두 기독교 양식입니다.
이곳이 모스크가 된 이유는 1453년, 오스만 제국 술탄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며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꾼 것이죠.
건축물을 파괴하지 않고 대부분 보존하며 돔 구조를 보강하고, 아랍어 꾸란 구절 캘리그래피를 함께 병치시켜 세계에서도 드문 기독교와 이슬람 예술의 공존 공간으로 발전시켰습니다.
2020년 이후 공식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야 소피아는 층층의 시간을 가진 성전이라는 게 느껴졌는데요.
우선 황금빛 돔과 모자이크화, 작은 전구들로 만든 둥글고 화려한 샹들리에들이 낮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신비스러운 기운이 전해지는 진한 초록의 카펫이 깔린 1층은 신도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인 듯 한산해 보입니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한 공간에서 눈에 띄는 게 있습니다.
아야 소피아의 돔 아래 네 방향 기둥 상단에 직경이 약 5m도 넘어 보이는 거대한 원형 목판(메달리온)이 걸려 있습니다.
세어보니 총 8개입니다.
그곳에는 이슬람 공동체의 첫 네 지도자인 4대 정통 칼리프들의 이름과 무함마드와 그의 두 딸, 무함마드의 손자 이름이 적혀있지요.
숙소 부근이나 이스탄불 어디에서나 모스크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모양이 대부분 비슷합니다.
매인 건축물인 중앙 돔을 중심으로 네 군데 뾰족한 첨탑 네 개가 서 있는데요.
이 탑은 미나렛(minaret)으로 실제로 사람이 탑에 올라가 아잔을 외치던 곳입니다.
요즘은 스피커를 사용하니 첨탑에 올라갈 일이 없지만요.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가장 공을 들이고 사랑과 정성으로 만든 건축물들은 아마 신들을 위한 집일 겁니다.
왜 사람들은 신을 위한 집에 그렇게 공을 들였을까요?
그것은 단순한 종교적 의무를 넘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려는 인간의 절실함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신에 대한 경외를 건축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기도와 예배가 모이는 장소를 가능한 한 아름답고 온전하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벽 하나, 창 하나, 기둥 하나에도 사람들의 헌신과 사랑이 새겨져 있지요.
성 베드로 성당, 앙코르와트, 알람브라 궁전, 파르테논 신전 등은 기술보다 신념, 권위보다 경건함이 먼저입니다.
기둥과 돔은 무너질 수 있어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무너지지 않지요.
비록 한 사람의 여행자로서 그 자리에 서게 되지만 누군가의 기도 속에 들어가는 것 같고, 누군가의 시간과 사랑이 섞인 공간을 조용히 건너는 사람이 됩니다.
가장 사랑을 들여 만든 건축물은 신을 위한 것이고, 그것을 마주한 우리의 마음 또한 조용히, 그러나 깊이 감응하게 됩니다.
밖으로 나오니 그새 햇살이 뜨겁습니다.
공원에는 여행자들이 북적거리고 아이스크림, 군밤, 시미트를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살 수가 없었어요.
단 기간 머물 거라 튀르키에 화폐인 리라를 환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서 군밤을 사 먹지 못하는 애석함이라니...
아쉽지만 그랜드 바자르에서 조금 환전하기로 하고 예레바탄 저수지로 향했습니다.
그나저나 이스탄불 명소들의 입장료가 턱없이 비싸서 깜짝 놀랐습니다.
술탄 아흐메트는 무료지만 아야 소피아는 25유로, 예레바탄 사라이(지하 저수지)는 30유로입니다.
바티칸이나 파리 루브르 오르세 미술관도 20유로를 넘지 않는 것에 비교하면 정말 높은 금액이 아닐 수 없지요.
예레바탄 사라이는 영화 인페르노와 007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터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꽤 길었습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어두운 지하로 조심조심 내려갑니다.
시끌벅적한 거리의 소음은 갑자기 멎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물비린내와 서늘한 기운이 감쌌지요.
땅 아래의 궁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지하 저수지, 예레바탄 사라이(Yerebatan Sarnıcı),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6세기에 만든 이 저수지는, 콘스탄티노플의 궁전과 도시를 위한 비상용 물 저장고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그 기능적 역할은 잊히고 마치 신화의 세계 속을 걷는 듯한 기묘한 감각만이 온몸을 감싸더군요.
336개의 대리석 기둥이 서늘한 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물결은 조용히 흔들리며, 천장에 투영된 기둥의 그림자를 일렁입니다.
희미한 주황빛 조명 속에서 기둥 하나하나가 시간의 지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위를 걷는 내 발자국도, 이 오래된 벽에 흔적을 남기는 것 같았지요.
기둥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니 구석에 메두사의 머리가 보입니다.
하나는 옆으로 누워 있고, 다른 하나는 완전히 거꾸로 있습니다.
왜 그렇게 놓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제각각이지요.
로마의 신화를 이슬람의 땅에서 만난다는 건 이상하면서도 매혹적인 체험입니다.
마치 시간이 교차로에서 엇갈리다, 우연히 한 점에서 만난 것처럼 말이지요.
고인 물에는 잉어가 헤엄칩니다.
무심하게 움직이는 그 물고기들도 어쩌면 천 년을 살아온 유령일까 싶어 한참을 바라봅니다.
위로는 천장이 있지만, 그 아래 풍경은 어떤 하늘보다 더 깊고 멀었지요.
돌기둥 사이로 반사되는 물빛은 어두운 성전의 촛불처럼 반짝였고,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됐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도시의 아래에 숨겨진 또 하나의 이스탄불, 소리 없이 존재하는 시간을 간직한 장소입니다.
다시 계단을 올라 바깥세상으로 나왔을 때 사람들의 말소리, 햇살, 자동차 소음이 쏟아졌지만 내 안엔 여전히 차분한 물의 기운이 흘렀습니다.
잠시 시간 밖으로 미끄러졌다가 돌아온 느낌이었어요.
단지 시시각각 바뀌는 주황, 보라, 청색의 조명이 그곳의 영험한 분위기를 해치는 느낌이라 아쉬웠습니다.
먼 길을 걸은 것도 아닌데 아침 식사가 부실한 것도 아닌데 시장합니다.
뭔가 처음 접하는 것에 시선을 두고 생각을 하다 보면 에너지가 더 많이 쓰이는 가 봅니다.
이제 그랜드 바자르 근처에 있는 스테이크 하우스 누스렛 솔트 배 (Nusr-Et Salt Bae)로 향할 시간입니다.
평이 좋아 여행을 떠나기 전 미리 예약해 두었지요.
모스크가 많다 보니 곳곳에서 사원이라는 단어인 Camii가 보였습니다.
그 글씨를 볼 때마다 우리 둘은 이번 여행에 함께 하지 못한 친구 까미를 떠올리곤 했지요.
알고 보니 튀르키에서는 C가 영어의 J처럼 발음되어 자미라고 읽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눈에는 까미로 보였습니다.
'까미 친구! 다음엔 꼭 함께 하자~'
솔트 배(Salt Bae)라는 이름, 독특하지요?
Salt: 소금, Bae: 영어 속어로 baby 또는 before anyone else의 줄임말로 “자기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유행어입니다.
즉, “소금을 뿌리는 매력남” 정도로 번역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 이름은 실제 의미보다 퍼포먼스에서 비롯된 밈(meme)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셰프인 누스렛 괵체는 2017년, 고기를 썰고 팔을 꺾은 채 손끝으로 소금을 ‘툭툭’ 뿌리는 동작으로 인터넷에서 대히트를 쳤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우아하고 희한해서 전 세계가 폭소했고, 그는 곧 #SaltBae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이후 그는 세계적인 스타 셰프가 되었고, 그의 레스토랑(Nusr-Et)은 고급 스테이크하우스로 성공을 거두었지요.
한 손으로 고기를 썰고 팔꿈치를 치켜세운 채 손끝으로 소금을 소고기 위에 흩뿌리는 퍼포먼스는 예술과 조롱, 패션과 풍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밈이 되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최현석 셰프의 시그니처 포즈가 연상되지요?
그런데 시기적으로 볼 때 괵체보다 최현석이 먼저인 걸 보면 그가 최현석을 따라한 게 아닐까 싶네요.
과연 스테이크를 가져오더니 칼로 쓱쓱 자르고 나서 팔꿈치를 세워 소금을 뿌려주더군요.
스테이크 위에는 잘게 갈린 소금이 마치 눈처럼 내려앉았습니다.
샐러드를 한 입 물자, 레몬과 올리브 오일, 그리고 섬세하게 썰린 채소들이 혀끝에서 부서졌습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은 건 마치 꽃처럼 피어 있던, 양파튀김이었지요.
노릇한 결 사이로 바삭한 소리가 고요하게 흘러나왔고, 그 안엔 낮 동안 내가 겪은 이스탄불의 무게감마저 부드럽게 감싸안는 맛이었습니다.
육즙이 주시하면서도 부드러운 스테이크는 물론이고 곁들임으로 주문한 오스만 샐러드와 꽃 모양의 양파 튀김도 맛깔스럽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발걸음은 자연스레 그랜드 바자르로 향했습니다.
그곳은 노천 시장이 아니었습니다.
이름만큼이나 거대한 규모에 깜짝 놀랄 정도로 거대했지요.
길을 잃기 십상이겠구나 했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향신료들, 익숙한 브랜드의 로고가 새겨진 옷과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방들이 진품처럼 당당하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나는 마치 고대의 미로에 빠진 여행자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나 그 모든 혼잡과 소음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어딜 가도 빠지지 않고 붙어 있던 푸른색의 눈 하나.
나자르 본주(Nazar Boncuğu)였습니다.
터키에서는 이 눈이 질투와 악의로부터 사람을 지켜준다고 믿는다고 해요.
그 작은 파란 눈은 복잡한 시장 한복판 어디서나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왠지 하나의 파란 눈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지요.
그것에 대한 안 좋은 일이 그날 아침에 있었거든요.
브런치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주문을 하고 난 후 나는 혼자 일어나 카페의 앤틱 한 장식품들을 사진 찍고 있었어요.
그곳에도 나자르 본주가 진열되어 있었지요.
이미 몇 년 전 튀르키에 여행을 했던 친구가 나자르 본주가 사람들을 지켜주는 눈이라는 설명을 해주고 있었어요.
그때 갑자기 그 친구가 갑자기 비명을 질러 돌아보니 큼지막한 잿빛 고양이 한 마리가 그녀의 무릎에 떡 하니 올라앉아 있고 친구는 기절할 듯 꼼짝도 못 하고 얼어붙어 있었지요.
그 상황에도 도망갈 생각도 안 하고 당당하게 앉아있는 고양이가 더 놀라웠습니다.
급하게 카메라를 내려놓고 고양이를 쫓았지만 이미 많이 놀란 친구는 호흡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한참을 진정하고 약까지 먹어야 했으니까요.
다음 날, 어느새 단골이 된 카페 토끼 굴에서 식사를 하였지요.
그 카페의 오너는 딸과 누이가 서울에 살고 있어서 내년쯤 서울을 가보려고 한다고 하더군요.
딸이 서른 살이라고 하여 나이를 물으니 63세랍니다.
겉보기엔 50대 중반쯤 되어 보였는데 말이죠.
젊어 보인다고 하니 내 나이를 묻습니다.
대답을 들은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가 정말이냐며 당신은 더 젊어 보인다 라며 서로 웃었지요.
식사를 마치고 우버를 불러 타고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궁전 앞에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펼쳐져 있고 품위 있는 사각형의 시계탑이 서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며 흐르는 이 물줄기는 경계이자 연결이고, 나눔이자 포옹입니다.
이 궁전의 입장료 역시 약 5만 원, 게다가 궁전 내부는 사진 촬영이 안된다고 하니 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보스푸르스 해협을 돌아보는 유람선 선착장이 바로 곁에 있습니다.
뱃멀미와 물 공포증이 있는지라 유람선은 언제나 예외입니다.
다시 우버를 타고 발랏으로 갔지요.
노랑, 주황, 보라, 민트색, 자홍빛, 다홍, 각각의 색들을 입고 있는 작고 낡은 집들은 어디 하나 겹치지 않고, 그러나 어딘가 조화롭게 배치된 모습입니다.
이 골목의 색은 외향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기쁨을 오래 품은 사람처럼 다정했습니다.
발랏은 과거 유대인과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들이 함께 살던 다문화 지구였다고 하는데요.
이 거리에는 어느 하나도 일정한 것이 없습니다.
간판의 글자도, 창문틀의 높이도, 문지방의 너비도 모두 조금씩 달랐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편안했어요.
길거리 한 상점에서 시음용 주스를 내어주는 여인의 손이 미안할까 봐 덥석 마셔보았지요.
적당한 달콤함과 새콤함이 어울린 자연의 맛이 나쁘지 않았어요.
두 잔을 주문했지요.
석류와 오렌지를 갈아 만든 생과일주스였는데 한 잔에 거의 만원이었습니다.
그냥 종이컵에 받아 들고 앉을자리도 없이 서서 마실 뿐인데 말이죠.
눈 뜨고 코 베일 곳이로구나 싶습니다.
알록달록한 칠을 해놓은 계단 앞에는 단체 여행자들이 사진을 찍느라 그야말로 북새통입니다.
그 공간에 칠해진 수많은 컬러보다 더 정신없는 소음과 움직임을 피하다 보니 금세 지쳐버렸습니다.
다음 날 아네테 공항에서 만나게 될 두 친구를 위한 환영 선물로 팔찌를 샀지요.
사람들이 뜸한 골목을 걷는데 미동도 없이 책에 시선을 둔 남자가 보였습니다.
'마네킹이지?'
'아닌 것 같은데, 손가락 사이의 담배 연기가 보여.'
조심스럽게 도촬을 하고 못 본 척 지나갔지요.
돌아올 때 보니 사람은 온 데 간데없고 책과 안경이 그대로 놓여 있었지요.
그는 마네킹이 아니었습니다.
점심식사를 하려고 근사한 루프탑 레스토랑으로 갔습니다.
2,3,4층의 내부 인테리어는 꽤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웠지요.
하지만 루프탑의 낭만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바닷바람이 어찌나 심하던지요.
스카프로 머리카락을 감싸고 피자와 시저 샐러드를 어찌어찌 먹었지만 커피까지는 무리였지요.
그곳을 내려와 1층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십니다.
오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길거리 댄스를 하며 영상을 찍는 유튜버도 봅니다.
치미트를 이고 가는 아저씨도 보입니다.
발랏의 골목 끝,
모든 게 완벽하지 않아도 기막힌 아름다움이 없어도 그 순간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러면 된 겁니다.
저녁엔 숙소 옆의 정원이 딸린 호텔 레스토랑 Garden 1987에 갔습니다.
우아한 테이블 세팅, 부드러운 조명, 그리고 이국적인 향이 배어든 식전 빵 등 모든 게 맘에 들었지요.
라구 소스를 곁들인 가지 그라탱과 농어 구이가 근사하게 차려졌습니다.
밤의 정원에는 작은 훼방꾼인 날벌레들이 고소한 향기를 따라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식사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조차도 여행의 일부입니다.
'우리 내일 아침에는 라면 하나 끓이고 햇반 하나 덥혀 먹으면 어떨까?'
'어머나, 나도 그 생각했는데...'
다음 날, 예약한 밴을 타고 이스탄불 공항으로 간 다음 아테네로 날아갔습니다.
호스트와 브런치 카페 래빗 홀의 사장님, 두 분은 우리가 밴을 타고 떠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배웅을 해주셨습니다.
따뜻했지요.
이스탄불에서 아테네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립니다.
그곳엔 먼저 도착한 친구 J와 T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친구들은 무려 15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아테네 공항 입국장의 자동문이 스르르 열리자, 낯선 땅의 공기가 우리를 감쌌습니다.
그리고 마중 나온 사람들 사이에서 환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지요.
친구가 들고 있는 테블릿에는 LED로 또렷이 적힌 우리의 이름 옆에 “환영해!”라는 문구가 반짝였고 작은 하트들이 파도처럼 떠다녔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기다린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즐거운데 장난기와 사랑 가득한 서프라이즈에 눈물이 핑 돌았지요.
우리는 그 순간 그리스가 아니라 친구들의 마음 속으로 입국하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