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도착, 두 시간 만에 생긴 일'

3. 아테네 자카란다

by 전나무




그리스 여행을 처음 계획했을 땐, 다섯 명이 함께할 예정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9인승 밴을 예약했지요.

3명까진 7인승으로도 충분하지만, 4명이 넘어가면 러기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크로아티아, 남프랑스, 시칠리아에서도 9인승 밴을 이용했으니 그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출발을 앞두고 한 친구가 사정상 빠지게 되어 아쉽지만 넷이 출발하게 되었지요.

아테네 공항에서 밴을 받아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들도 모두 무료 주차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테네의 숙소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7인승까지만 겨우 진입할 수 있는 크기라 우리는 불가능했지요.

호스트는 우리에게 미리 700m 떨어진 유료 주차장을 알려주었습니다.

숙소 앞은 일방통행 도로.

잠시 세울 수 있는 자리를 찾던 중, 마침 비어 있던 공간이 눈에 띄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차를 세우고 러기지를 내렸습니다.

숙소까지는 남은 거리는200m라 두 친구는 숙소로 향했고, 나와 LJ는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지하 주차장은 널찍한 공간에 비해 주차선은 비교적 좁았고 그에 비해 밴은 다소 버거운 덩치였습니다.

한 자리 한 자리가 마치 '턱걸이'였으니까요.

FM 스타일의 LJ는 내려서 주변을 살피더니 벽 쪽 구석이 조금 더 넓어 보인다고 했습니다.

나는 친구의 의견에 따라 그쪽으로 천천히 후진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려왔지요.

‘와장창 우지끈 빠지직—’


지하 주차장 특유의 울림 때문이었을까요,

소리는 상상 이상으로 컸고 우리의 심장도 그만큼 빠르게 뛰었습니다.

리정은 수신호를 보내던 손을 내리고 멍해졌고 나는 뒤통수에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무언가 커다란 것에 부딪혔음이 분명했습니다.

급히 후진하던 차를 다시 앞으로 조금 전진시켜 놓고 내려서 뒤로 가보니, 그 정체는 주차장 천장에 붙어있던 은색 알루미늄 배기 덕트.

그것에 밴의 후면 상단이 살짝 걸린 것입니다.

일단 차체가 높고, 렌터카는 후방 카메라도 없고, 추돌 경보음도 울리지 않는 기본 옵션이었습니다.

경보음에 익숙해진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주차선만 보고 살살 후진한 거죠.

결과는?

후면 상단의 브레이크등 플라스틱 일부가 파손되었지만 다행히 배기 덕트는 멀쩡했습니다.

마치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듯이요.


내가 부딪힌 배기 덕트(사고 후 촬영)
후면 상단의 브레이크 등 일부 파손


우리는 서로 미안하다고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LJ는 본인이 못 본 게 잘못이라고며, 나는 잘못 운전한 내 책임이라며 말이죠.

그래도 소리에 비해 파손된 것이 미미하고 무엇보다 공공 기물인 배기 덕트가 무사한 것이 다행이었지요.

다행히 풀커버 보험이 들어 있어 걱정은 덜했습니다.

차를 다시 처음 주차했던 자리로 옮기고 숙소로 향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주변이 보였습니다.

길 양쪽으로 펼쳐진 자카란다 나무들.

소복이 피어 있는 보라색 꽃잎들은 마치 우리가 사고로 와장창 깨어버린 여행의 첫 장을 조용히 덮어주는 듯했습니다.

나는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자카란다를 기억했습니다.

그 꽃을 보기 위해 아르헨티나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팔레르모에서, 그리고 지금 아테네에서 그 꽃을 마주하게 되었어요.

‘상처로 시작했지만, 꽃이 피어 있던 아테네’

이토록 아이러니하고, 이토록 아름다운 시작이 또 있을까요?


숙소는 그동안의 피곤함과, 짧은 시간이지만 놀랐던 맘을 달래주기에 차고 넘칠 정도로 맘에 들었습니다.

우선 렌터카 회사에 메시지와 상황 사진을 보냈지요.

그들은 과연 어떤 답장을 보내올까요?

시작도 안한 우리의 그리스 여행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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