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인스브루크, 비피테노
유럽 여행의 매력은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 쉽다는 점.
국경은 마치 허공에 그은 연필선처럼 가볍고,
기차를 타고 두어 시간만 가면 전혀 다른 언어와 음식, 풍경, 정서를 만나지요.
검문소 대신 고요한 산맥이나 강 하나가 두 나라의 경계를 이룰 뿐입니다.
그러니 유럽 여행은 하나의 나라가 아닌 대륙 전체를 걷는 듯한 경험이 되기도 해요.
특히 소도시들에 발을 디딜 때면, 밀도는 촘촘해지고 소박한 찬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곤 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는 오르티세이에서 약 110km,
하루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입니다.
원래 계획은 자동차로 이동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국경 통행세(Cross Border Fee)와 주차비 등을 고려할 때 기차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습니다.
게다가 비 예보도 한몫 거들었답니다.
* 오르티세이-비피테노(자동차로 1시간, 기차역 주차장 무료)
* 비피테노-브레네로(기차로 19분)
* 브레네로-인스브루크(기차로 36분)
* 인스브루크역-구시가지(도보 10분)
무거운 캐리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차가 띄엄띄엄 있는 것도 아니니 해볼 만한 방법입니다.
우선 온라인으로 기차 티켓을 예매했습니다.
그런데 인스브루크로 가는 기차는 A4용지로 프린트한 티켓이 필요하다는 문구가 쓰여있었지요.
큐알 코드만 있으면 상관없을 것 같지만 지레짐작하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데이비드(호스트)에게 부탁 메시지를 보냈고 밀카에게서 프린트된 티켓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유럽 대륙의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지구 육지의 약 6.8%, 내가 짐작했던 것 보다 훨씬 작습니다.
남아메리카보다 작고, 아프리카의 3분의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유럽에서 가장 넓은 러시아를 제외하면 유럽은 지구 대륙의 약 4.26%.
이걸 보면 지구의 육지 면적이 얼마나 큰 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작은 대륙 안에 무려 44개의 아름다운 나라들이 빼곡히 들어앉아 있어요.
바로 이 점이, 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프랑스의 루르마랭,
이탈리아의 모토분,
포르투갈의 오비두스,
영국의 코츠월드 같은 곳은 지도에 점으로 찍히지도 않을 만큼 작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소박한 감정의 층위들이 겹겹이 쌓여 있지요.
그러므로 작고 느린 마을에 귀 기울이는 일에 맛을 들이면 빠져나오기 힘들답니다.
비피테노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나니 브레네로로 가는 기차 출발 시간이 40분이나 남았어요.
게다가 전광판을 보니 내가 탈 기차가 20분이나 딜레이 된다고 쓰여있습니다.
거기서 다시 인스브루크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놓칠 수도 있겠다 싶었지요.
그전에 기차가 또 한 대 있더군요.
마침 승무원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지나가길래 물었지요.
내가 예약한 기차가 딜레이 된다는데 그 앞의 기차를 타도 되는지를요.
상관없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브레네로에 일찍 도착했고 인스브루크로 가는 기차 역시 빠른 걸로 갈아탔더니 예정보다 약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습니다.
여전히 잔잔한 비가 내렸습니다.
구시가까지는 멀지 않으니 걸어갑니다.
물기 어린 돌바닥을 따라 걷다 보니, 도시의 첫 문장처럼 개선문(Triumphpforte)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아들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문이지요.
하지만 아들의 결혼식 날, 남편 프란츠 1세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쁨은 비극으로 바뀌었죠.
그 후 마리아 테레지아가 평생 검은 옷만 입고 살았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래서 이 개선문은, 아들의 결혼을 기리는 문이자 동시에 사랑을 추모하는 문이 되었습니다.
개선문 앞으로 이어지는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Maria-Theresien-Straße)는 인스브루크의 등줄기 같은 곳입니다.
인스부르크는 티롤의 중심 도시였고 티롤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통치 하에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녀는 티롤 지역에 애정과 관심을 많이 쏟았지요.
남편 프란츠 1세가 인스부르크에서 죽자(이 이야기는 아래에 나옵니다), 그를 기념하여 이 도시에 개선문(Triumphpforte)을 세우게 했습니다.
이 개선문은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의 남쪽 입구에 서 있죠.
그래서 이 거리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공헌과 그녀의 개인적인 인연을 기리며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로 명명되었어요.
이곳은 18세기부터 중심 상업가로 발전했고 지금은 인스부르크의 가장 활기찬 보행자 거리입니다.
여왕의 흔적은, 아니 그 흔한 동상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산을 들고 걷는 사람들,
카페 창가에 기대앉은 연인들,
거리의 철제 간판들까지 비에 젖은 거리의 모습은 우아하고 고풍스러워 보였지요.
다음 사진들은 모두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의 모습입니다.
성 안나 기념탑(Annasäule)은 티롤 사람들이 전염병과 침략을 물리친 기념으로 세운 탑입니다.
전 날, 광장에서 행사를 했는가 봅니다.
부근에는 바리케이드들과 각종 물품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그것들을 치우는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이 눈에 띄더군요.
그리고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시선이 멈추게되는 '황금지붕(Goldenes Dachl)'.
금박 동판이라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오기도 한 데다 비를 맞아서인지 황금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반짝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묵직한 시간의 무게가 조용히 느껴졌지요.
지금은 아주 작고 낮은 처마로 보이지만 그곳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1500년경, 신성 로마 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 황제(Maximilian I)가 자신의 두 번째 결혼을 기념하고 공식 행렬과 축제들을 내려다보기 위한 '왕실 관람석'으로 지은 것입니다.
황금지붕 아래쪽, 작은 아치 아래에는 마치 지금도 축제를 구경하는듯한 인형들이 있습니다.
당시의 환호성과 북소리를 상상하게 되더군요.
황제 막시밀리안 1세와 두 부인의 모습이 조각된 중앙에는 정치와 사랑, 권위와 연민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황금빛 발코니는 그 시절, 도시의 시선이 모이던 ‘왕실의 안락의자’였던 것입니다.
비가 제법 쏟아졌습니다.
근처 카페 Kroll로 들어갔어요.
아직 이른 시간인데 손님들이 북적북적한 걸 보니 맛집이 분명합니다.
내부엔 자리가 없어 외부의 파라솔 아래 앉았지요.
혼자라서 비를 가리기에 충분한 공간이었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어 오히려 좋았습니다.
빈의 카페 자허에서 먹었던 초콜릿 케이크가 떠올라 작은 미니 토르테를 주문했습니다.
의례히 마시던 아메리카노 대신 아인슈페너를 시켰지요.
오스트리아니까요.
하지만 실패입니다.
두 가지 모두 너무 달콤하다는 걸 잊은 탓이지요.
달달한 실수지만 쓴 것보단 낫다 싶습니다.
비가 잦아들기에 다시 걷습니다.
호프부르크는 합스부르크 황실의 작은 흔적을 간직한 궁전입니다.
빈의 웅장함보다는 단정하고, 화려하기보다 다정했습니다.
맞은편의 예수회 성당(Jesuitenkirche)에서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홀린 듯, 아니 거의 빨려 들어가듯 성당 문을 열었지요.
일요일이라 미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빈소년합창단의 공연장을 떠올렸습니다.
높은 천장과 파이프 오르간, 맑은 음색의 보이 소프라노가 눈물겹게 아름다웠어요.
여러 도시들의 성당에서 간간히 파이프 오르간 연주도 듣고 미사에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감동적인 성가는 처음입니다.
성가대는 보통 제대 양 옆의 높은 발코니나 벽면의 격자 안쪽에 배치되기도 합니다.
격자무늬 너머에서 노래하면 소리는 퍼지되 시선은 차단되어 신비로운 울림이 생기죠.
그곳을 살펴보았지만 성가대는 보이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확인이 안 되는 곳은 뒤쪽 2층의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공간,
그러니까 성당의 후면 상단(입구 위쪽)에 성가대석(choral loft 또는 organ loft)이 있습니다.
이곳은 보통 격자무늬의 난간 또는 장식으로 가려져 있어 성가대가 잘 보이지 않지요.
성가가 울려 퍼질 때는 청각적 몰입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입니다.
"신비로운 울림"을 주기 위한 고전적 연출 방식이라고 할까요?
보이소프라노의 선창, 아니 보이지 않는 천사의 목소리가 성당 안에 홀연히 울려 퍼졌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음성이기보다는 이 세상의 바깥에서 흘러들어온 빛 같았어요.
인스브루크에도 전문 보이 소프라노 양성 프로그램이 있어, 특별한 날이면 소년 성가대가 미사에 참여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30분 정도 미동도 없이 서 있다가 살며시 성당을 빠져나왔습니다.
다시 구시가지로 발을 돌렸지요.
비가 그치기도 하고 12시가 가까우니 여행자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많았습니다.
새벽부터 나온지라 시장기도 느껴지고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점심 식사를 해야겠습니다.
스티프트켈러(Stiftkeller)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습니다.
식당 한쪽의 나무 문이 뭔가 예사롭지 않은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이었거든요.
오스트리아니까 당연히 '슈니첼'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텅텅 비어있던 테이블들이 순식간에 가득 찼습니다.
역시 일찍 자리잡길 잘했어요.
바삭하고 짭조름한 고기에 달콤한 크랜베리 잼을 올려 먹으니 제대로 된 단짠의 정석입니다.
화장실에 가려고 내부로 들어갔지요.
그런데 이 음식점, 처음부터 뭔가 있을법한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대단한 역사를 갖고 있는 듯 웅장합니다.
1층은 여러 개의 큰 홀, 그러니까 작은 방이 아니라 커다란 홀이 연결되어 있는데 어마어마한 크기입니다.
각각이 고딕 아치와 두꺼운 석벽, 목조 천장 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지요.
마치 작은 궁정에 들어선 듯한 느낌입니다.
아치형 천장과 두터운 석조 벽, 그리고 촛대처럼 생긴 샹들리에들.
황제의 방(Kaisersaal), 고딕 홀(Gotischer Saal)…,
이름만 들어도 묵직한 공간들이 압도적인 느낌입니다.
그 레스토랑은 원래 귀족 여성 재단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1765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프란츠 1세 황제는 아들 레오폴드의 결혼을 축하하며 현재의 레스토랑 건물에서 음악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호프부르크 궁전으로 돌아온 프란츠 1세는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로 쓰러져 그대로 숨을 거뒀지요.
그렇게 한 나라의 축제가 황제의 장례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내가 먹은 슈니첼 한 접시는 그저 음식이 아니라 역사와 기억을 담은 풍경이 된 것입니다.
장크트 야곱 성당(Dom zu St. Jakob)은 인스브루크 대성당으로도 불립니다.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을 정점까지 끌어올린 모습이었어요.
커다란 돔 아래, 천장을 수놓은 프레스코화는 색이 바랬다기보다 빛을 받아 부드러워진 듯 보였습니다.
금으로 장식된 제단과 섬세한 바로크 조각, 그리고 측면의 장미창에서 쏟아지던 빛,
‘성스러움’이라는 단어를 시각이 아닌 공기의 밀도로 느꼈다고 할까요?
사진을 찍는다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두 세장 찍고 돌아서니 사진을 찍으려면 기부를 하라는 문구와 작은 함이 놓여 있었습니다.
사진을 더 찍지는 않았지만 동전을 넣고 나왔지요.
벽의 곡선은 마치 머랭처럼 부드럽게 솟아올라 있습니다.
핑크빛 바탕 위에 하얀 회반죽 장식이 솜사탕처럼 소용돌이치는 게 로코코 양식의 정수라 할만했지요.
'헬블링의 집(Helblinghaus)'
헬블링은 당시 그곳에 살았던 상인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화려한 외관 덕에 지금은 인스브루크에서 가장 많은 사진을 찍는 장소가 되었다네요.
눈처럼 쌓인 석고 장식 사이로 작은 창문들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고 그 과장스러움마저 우아하게 보였습니다.
강이 보였습니다.
인스브루크라는 이름에서 어원이 된 강 인브뤼케(Innbrücke).
강가에 늘어선 알록달록한 집들은 아이들이 물감으로 칠해 놓은 동화책 같습니다.
강이 가로지르는 도시는 언제나 매력적입니다.
강은 공간감과 원근감을 선사하기 때문이죠.
네덜란드의 화가 페르메이르의 '창가에 선 여인'은 그냥 고요한 그림이 아니라 빛과 침묵으로 덮인 작은 서사시입니다.
말러 교향곡의 불협화음 속에 담긴 시대의 불안을 아는 순간 전율을 일으키는 음악이 되지요.
황금지붕의 작고 반짝이는 동판들도 그저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한 황제가 자신의 시대와 사랑을 기록한 방식이라는 걸 알면 뭔가 새로운 감동이 있습니다.
그냥 “본다”가 아니라 “들여다본다”가 될 때, 그 장소는 단순한 풍경이 아닌 기억과 이야기의 공간이 됩니다.
그러므로 인스브루크에서의 한나절은 꽤 밀도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창문마다 걸린 화분,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철제 간판들, 아기자기한 오스트리아의 소품들을 판매하는 쇼윈도, 뭐 하나 안 예쁜 게 없는 인스브루크에 오길 잘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다시 비피테노로 돌아왔습니다.
비구름에 덮여있던 산 아래 마을이 초록으로 빛나고 있었지요.
이미 그날 아침 구시가지를 한 바퀴 걸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비가 내려 아쉬움이 남았었지요.
그 아쉬움을 남겨두고 떠날 이유는 없습니다.
이번엔 차를 타고 구시가지 근처로 향했습니다.
마을 주차장들은 보편적으로 일요일은 무료인데 역시 그곳도 그랬습니다.
비피테노(Vipiteno)의 독일 이름은 슈테르칭(Sterzing).
남티롤에 속한 이 작은 마을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그야말로 작은 마을입니다.
좁은 거리에는 파스텔 톤과 오리엘 창문이 있는 다채로운 외관의 집들이 늘어서 있어요.
그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건 회색 돌로 지어진 12시 탑(Zwölferturm)입니다.
정오가 되면 사람들에게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12시 탑이라고 부른다고 해요.
12세기에 세워졌다고 하니, 거의 천년 동안 사람들의 점심시간을 알려준 시계입니다.
앙증맞은 해시계도 그려져 있어요.
벼룩시장이 열렸었나 봅니다.
물건들을 정리하는 상인들이 손길이 분주해요.
멋진 철제 간판, 작은 부티크, 그리고 어딘가에서 풍겨오는 빵 굽는 냄새.
그늘진 돌바닥도 소박하고 다정합니다.
한적한 거리의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셨지요.
비로 시작하여 햇살로 마무리된 소중한 시간입니다.
오늘 아침, 인스브루크의 한 쇼윈도에 발이 붙들렸습니다.
오직 한 글자만 보였습니다.
Be happy.
가방에도, 수건에도, 작은 쿠션에도.
그건 마치,
이 도시가 나에게 속삭이는 인사 같았어요.
여행길에서 그 말만큼
힘 있는 말도 드물지요.
이제 오르티세이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그래요. Be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