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에필로그
나는 시차로 인한 불편을 느끼지 않습니다.
나라가 어디든, 여행이 얼마나 길었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마치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현실 적응이 빠르지요.
아무 불편 없이 캄캄하면 잠들고, 날이 밝으면 저절로 눈이 떠지는 게 고맙고 다행한 일입니다.
하지만 몸의 시간이 그렇게 빠른 반면, 마음은 그렇지 못합니다.
조금 늦게,
조금은 더듬거리며,
견디듯 따라오곤 하지요.
체코로 떠나기 전,
해시계는 그저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그곳에 새겨진 선들은 시간을 ‘세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지나간 하루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요.
이 여행의 기억도 점점 모서리가 둥글어지겠지만,
가능하다면 해가 비추지 않는 해시계처럼 천천히 흐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곧 닫힐 이 페이지에도 해시계의 그림자가 머물러 있습니다.
이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니까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내가 건져 올린 따뜻한 조각들을 비쳐줄 테니까요.
여행에서 돌아오면 사람들은 묻습니다.
“가장 좋았던 게 뭐였느냐”고.
하지만 여행은 즉시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들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서야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요.
그것들이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여행은 목적지가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방식을 알아가는 시간입니다.
잠시 멈춰도 괜찮은 순간,
머뭇거려도 괜찮은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행은 시간을 건너는 가장 느린 방법입니다
이제 체코라는 지도는 접혔지만 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머지않아
또다시
낯 선 땅, 다른 시간을 건너고 있을 테니까요.
* 늘 따뜻한 마음으로 동행해 준 두 친구와 빠지지 않고 읽어주시는 독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