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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쇼비체의 Domov

21. 훌라쇼비체

by 전나무


여행의 끝날, 훌라쇼비체에 닿았습니다.

스무 채 남짓한 집.

백여 명의 주민이 사는 곳.

놀랍게도 이 작은 마을이 유네스코 유산입니다.

남보헤미아 농가 양식을 훼손 없이 지켜온 ‘진짜 시간’

마을은 복원된 과거가 아니라, 살아 있는 과거였습니다.




높이가 비슷한 집들은 단순했고,

세모 지붕과 작은 창문들에는 연한 테두리가 둘러져 있었지요.

소박한 마을 분위기는 청렴한 선비의 두루마기처럼 단아했습니다.









마을 한가운데 연못이 있습니다.

물은 거울처럼 소리가 잠든 풍경을 담아내고 있었지요.

붉은 지붕과 파사드가 물 위에 떠있고 물속을 지나가는 빨간 물고기들이 나뭇가지에 핀 꽃 같았습니다,

이리저리 오가며 사진을 찍었지만, 렌즈에 담기는 이미지는 눈에 보이는 만큼 깊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사진은 기억을 더듬는 시간의 조각칼일 뿐이니까요.









오가는 주민도, 문을 연 카페나 식당도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문을 연 곳은 도자기를 파는 작은 상점 한 곳.

조심스럽게 문을 열며 체코어로 인사를 건넸지요.


“도브리덴(Dobrý den, 안녕하세요).”


물레를 돌리는 남자.

옆에서 조용히 돕는 여인.

빛이 닿아 은근히 윤이 도는 그릇들.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붙잡은 것은 마른 자작나무 가지에 매달린 다섯 개의 세라믹 알파벳 조각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죠?"

“Domov는 Home이에요.”


순간 마음이 저릿합니다.

따뜻함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단어,

'집'.

내일이면 돌아가야 할 그 집이 하나의 기호처럼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나는 그 아름다운 장식품을 망설임 없이 샀지요.


오래 묵은 색이 천천히 스며드는 마을을 한 바퀴 더 걸었습니다.

그렇게 훌라쇼비체에서 만난 ‘Domov’는,

여행의 마지막 장면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첫 장면을 만들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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