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풍경’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은 곳, 체스키 크룸로프.
이곳에서 마지막 나흘을 보냈습니다.
10년 전, 하얀 눈으로 뒤덮였던 모습 외에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붉은 지붕들은 여전히 한 장 한 장 책장이 포개지듯 이어지고, 자갈길은 수백 년의 문장을 매만지듯 부드럽게 깔려있었지요.
작은 미술관 같은 라트란 거리는 오래된 그림책 같습니다.
먼지 낀 캔버스 같은 벽 위로 스그라피토의 음영, 시간이 벗겨낸 프레스코의 흐릿한 붓질, 창문이 있는 듯 없는 듯 착시를 주는 트롱프뢰유까지, 불완전함과 풍화의 결이 따뜻한 숨을 품고 있습니다.
갈라진 틈과 벗겨진 색조는 사라짐이 아니라 남겨진 것들의 용기처럼 보입니다.
사람도 도시도 완전함보다, 시간에 닿아 조금씩 스러진 자리에서 더 깊은 아름다움을 드러내지요.
이곳의 색은 오래 머무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비투스 성당의 첨탑은 오랜 기도를 지켜온 손가락처럼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고, 그 안의 어둠과 빛은 반쯤 섞여 마음을 낮추는 향을 만들었습니다.
돌기둥 사이를 지나며 들려오는 잔잔한 울림은 중세의 어느 시간대가 아직도 머무르고 있는 듯합니다.
성을 향해 천천히 오르면 도시의 풍경이 책장을 넘기듯 접히고 펼쳐집니다.
동화 속 케이크 조각처럼 층층이 쌓인 성탑,
허공을 가로지르는 망토다리(클록 브리지)는 성에 드리운 옷자락 같습니다.
지금도 곰이 있을까? 하며 들여다본 해자에는 여전히 곰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건 로젠부르크 가문의 권위이자 침입자를 막기 위한 풍습이라고 하지만 좁은 공간에 갇혀있는 곰 두 마리가 안쓰러워 보였지요.
도시 곳곳에서 마주친 로젠베르크 가문의 장미 문장은 벽돌과 간판, 창틀과 문지방 위에 희미하게 남아 도시의 숨결처럼 이어졌습니다.
권력은 사라졌지만 문장은 그들의 기억을 붙잡는 못처럼 박혀 있었지요.
망토다리를 건너면 바로크 극장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금빛 장식과 바람처럼 움직이던 무대 장치, 색이 바래지 않은 천장화와 은은한 나무 냄새는 현실과 공연의 세계 사이에 생긴 작은 틈처럼 느껴집니다.
그곳은 단지 공연장이 아닙니다.
도시가 품어온 시간을 무대 위에 올려놓던 또 하나의 심장이었지요.
비수기에는 공연이 없으므로 내부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나선 계단을 한 걸음 한걸음 올라서 케이크 모양의 성탑에 도착하면 마침내 도시 전체가 파노라마 지도처럼 펼쳐집니다.
붉은 지붕과 푸른 블타바강, 골목의 굴곡, 햇빛을 머금은 집들의 경사, 다리 위의 사람들...
지붕의 높낮이는 오르간 건반처럼 리드미컬하고, 골목은 오래된 선율처럼 사라졌다 나타납니다.
물가에 늘어선 나무들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채도가 달라집니다.
마을은 거대한 팔레트와 느린 붓질로 풍경을 쌓아 올린 듯했습니다.
여행은 ‘어디에 도착하는가’가 보다,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마음으로 서는가’가 더 소중하지요.
새로움보다 오래된 아름다움이 더 따뜻합니다.
그래서 이곳이 사랑스럽습니다.
작은 목조 다리 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신병을 앓던 왕자와 이발사 딸의 비극적인 전설.
잔혹하지만 오래 남은 이야기일수록 풍경을 더 깊게 만든다는 걸 조용히 말해주었습니다.
다리 위의 얀 네포무츠키 신부 동상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부데요비체 성문의 노란 해시계에 오후의 금빛이 얇게 내려앉아 있습니다.
해가 한 뼘씩 움직이며 만드는 그림자,
시간은 숫자로만 흐르는 게 아니었지요.
'해 질 녘 만나', 또는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우리 집으로 와'
해가 있는 날은 태양의 리듬에 맞춰 생활하고,
흐리거나 비가 내리면 물시계나 모래시계를 이용하던 하루.
그 시절의 하루는 분초 단위로 움직이는 지금보다 훨씬 부드럽고 낭만적이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에곤 실레 미술관에서는 거칠고 날 선 선들이 도시의 부드러운 색감과 부딪혀 묘한 긴장을 만들었습니다.
완벽한 아름다움은 때로는 너무 매끄러워 생명이 없지만, 균열은 아름다움을 깨우는 작은 전류가 된다는 걸 실레는 알려주었습니다.
젊은 천재의 불안한 떨림을 마주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지요.
그래도 그의 그림이 담긴 엽서 몇 장을 골랐습니다.
체스키 크룸로프를 또다시 찾을 것 같지 않아서입니다.
블타바강을 따라 걷다 보면 붉은 지붕 아래 이끼 낀 벽, 창틀에 기대 졸고 있는 고양이, 바람에 흔들리는 간판이 소소하게 보입니다.
햇빛이 비스듬히 기울면 강물은 느린 금빛의 리본처럼 흔들리고, 집들의 그림자가 파도처럼 일렁입니다.
도시와 강이 서로 주고받는 은밀한 대화처럼요.
빠르게 흐르는 삶의 어딘가에서 잃어버렸던 감각 한 조각을 돌려받는 듯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강물 위로 길게 떨어지는 빛과 그림자는 도시와 강이 서로에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건네는 듯합니다.
아침엔 은빛, 오후엔 호박빛, 저녁엔 짙은 감색.
이 세 번의 빛을 모두 보고 나면 왜 이 도시가 여행자들을 끌어들이는지 알게 됩니다.
왜 유네스코가 도시 전체를 문화유산에 올렸는지도 이해가 되지요.
화려하지 않지만 쓸쓸함과 따뜻함이 겹쳐져 있어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예쁨에는 제곱을 붙이고 싶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스며드는 예쁨.
나이 든 색들이 하루의 끝에 조용한 기도처럼 가라앉습니다.
여행자들에게는 결국 떠나게 될 머무름이지만, 어떤 풍경은 떠난 후에 더 선명해지기도 합니다.
체스키 크룸로프의 나이 든 색들은 시간의 온기가 무엇인지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니 내게 찾아온 나이 든 색도 따뜻하게 품어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