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턴의 실낙원, 바흐 관현악 모음곡 3번 Air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 수법이 너무나 치밀하고 잔혹하며 계획적이다.
은퇴를 7일 앞두고 있던 강력계 노형사 윌리엄 서머셋(모건 프리먼)은 연쇄 살인이 시작되었음을 직감한다. 메트로놈의 규칙적인 박자 소리를 들으며(안단테의 편한 속도) 잠자리에 드는 서머셋은 범인보다 더 집요하고 치밀한 사람이다. 영화는 자막으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요일을 알리며 이어가지만 사실상 영화의 제목 세븐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인류의 일곱 가지 대 죄악인 탐식, 탐욕, 나태, 분노, 교만, 욕정, 시기를 의미한다. 범인은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한 일곱 가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차례로 살해하는데 극 중 살인마인 존 도(케빈 스페이시)는 하나님의 대리인을 자청하며 사건을 맡고 있는 두 형사 중의 한 사람인 젊고 자신만만한 데이비드 밀즈(브래드 피트)를 지목한다.
비만증인 사람은 탐식의 대가로 위가 터져서 죽고, 성매매 여성은 음란의 대가로 살해당한다. 영화의 분위기는 어둡다. 전체적인 조명이나 음악 등이 초반부터 음산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퍼붓는 비의 음울함이 적절했고 영화〈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감독 데이비드 핀쳐, 다리우스 콘지의 촬영, 하워드 쇼어의 음악, 악명 높은 앤드류 케빈 워커의 각본, 그리고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까지 멋진 조화를 이룬 영화였다. 단순한 형태의 시나리오로 존재하는 2명의 형사 밀즈(브레드 피트)와 서머셋(모건 프리먼), 그리고 정신병적인 살인자 존 도(케빈 스페이시)가 게임을 만들고 푸는 과정이 영화의 흐름을 주도한다. 도시는 불합리한 무관심들로 뒤섞여있다. 회색의 그것들은 구름을 만들고, 칙칙한 빗방울을 콘크리트 위에 뿌리며 지우기 힘든 녹처럼 여기저기 부스러지며 영역을 넓혀간다. 바로 도시의 단면이 되고야 말았던 어떤 슬픔, 증오, 분노, 단절 등이 지속적으로 펼쳐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은퇴를 며칠 앞둔 서머셋이 밀즈에게 사건을 맡기라고 하곤 시립도서관에 가는 장면이다. 범인이 남긴 글의 내용들이 단테의 신곡과 초오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를 근거로 한 것임을 알지만 더 정확한 단서를 찾기 위함이다. 그때 카드 게임을 하는 도서관 경비원들을 올려다보면서 서머셋은 나지막한 소리로 말한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네, 이렇게 책들로 둘러싸인 지식의 세계에서 카드 게임만 하다니…” 그들은 웃으며 무미건조하게 외친다. “이게 우리들 나름대로의 문화생활이라고…” 그때 한 경비원이 “이건 어떠세요” 하면서 들려주는 음악이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 중 2악장 (“Air On The G-String” from Orchestral Suite No.3 in D Major BWV.1068, 독일 슈투트가르트 실내관현악단 연주, 칼 뮌헨거 지휘)이다. 폐관한 도서관, 고요해야 할 장서의 숲 사이를 흐르던 음악은 지금껏 수없이 들어왔던 그 어떤 G선상의 아리아와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서며 영화의 거칠고 끔찍한 장면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했다.
또한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엔딩이다. 핀처의 연출력을 볼 수 있다고 할까? 존 도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체 두 구가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면서 서머셋과 밀즈가 동행할 것을 요구한다. 헬기의 지원을 받으며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 광야를 지나 어떤 지점에 도착한 그들에게 박스 하나가 배달된다. 서머셋은 존 도가 뭔가 이미 일을 꾸몄다는 것을 직감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 상자엔 임신 중이었던 밀즈의 아내 트리이시(귀네스 팰트로)의 잘린 목이 들어있던 것이다. 데이비드 밀즈 형사는 7번째 죄악인 ‘분노’에 사로잡혀 존 도를 죽이게 되고, 가해자 존 도는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어느덧 해는 지고 어두워진 현장에서 은퇴할 서머셋에게 어디로 갈 거냐는 반장의 질문에 그는 말한다. “그냥 머물 겁니다. 멀리 안 가요,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어요.「세상은 아름답고, 싸워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후자에 전적으로 동감이오.” 그건 은퇴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이 영화에는 재미있는 팁이 몇 가지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또한 첫 번째 시신으로 나온 사람은 이 영화의 작가인 앤디 워커이며 지문 감식관으로 나온 알폰소 프리먼은 모건 프리먼의 아들이다. 오프닝 씬에서 등장하는 모든 빌딩의 번호는 7로 시작하며 존 도우의 아파트에서 밀즈가 전화를 받을 때 상대방의 목소리는 감독 데이비드 핀처의 음성이다. 바흐의 G선 상의 아리아가 돋보이는 영화 세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