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슬플 때면 시골길을 걸어요."
1914년, 파리 북동쪽에 위치한 ‘상리스’는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화면 가득한 자연의 영상미와 세라핀(Séraphine Louis 1864~1942) 역을 맡은 여배우(욜랭드 모로)의 집요하고 투박하며 고집스러운 연기, 그녀의 독특한 색채의 그림, 그리고 일관되게 흐르는 현악기 음악은 그 어떤 영화가 주는 메시지보다 강렬했다.
하층 계급 출신의 세라핀은 그녀가 어릴 때 부모 모두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는 수녀원의 잡부로 있다가 성장한 후엔 상리스에서 생의 대부분을 하녀로 보냈다.
남의 집 허드렛일로 받은 품삯으로 먹을 것과 땔감 대신 흰색 물감을 사고 들판의 꽃과 수초에서 염료를 채취한다.
푸줏간에서 얻은 동물의 피나 색깔 있는 초의 파라핀을 물감 삼아 자신만의 색채를 만들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은 몇 달째 집세를 밀리면서 골방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린다.
사람들은 세라핀에게 멸시와 조롱을 보내지만 그녀는 그림 그리기가 신이 부여한 소명이라 믿는다.
변변한 붓 하나 없이 캔버스에 손가락으로 쓱쓱, 살아있는 생명을 채워가는 세라핀의 그림엔 배경이 없다.
화폭엔 나무와 꽃, 과일들만 가득하다.
영감의 원천은 신이지만 그녀 그림의 스승은 자연이다.
세라핀은 예쁘지 않다.
남자처럼 큰 덩치와 손톱에 낀 검은 때, 상투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정수리로 틀어 올린 머리칼, 맨발로 청소를 하거나 강가에서 빨래를 해 주고 동전을 받는다.
다 해진 옷에 커다란 앞치마를 두르고 군화 같이 투박하고 큰 구두를 철거덕거리며, 빛 바래고 닳아빠진 밀짚모자를 쓰고 다닌다.
늘 들고 다니는 등나무 바구니에는 언제나 우산이 놓여있다.
그러나 영화 내내 비는 내리지 않았고 당연히 우산이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우산이 젖는 게 아까워 비를 맞으면서도 옆구리에 항상 우산을 끼고 다니던 에릭 사티처럼 그녀도 우산을 좋아한 걸까? 생각했다.
어느 날 상리스에 휴양 차 온 독일인 빌헬름 우데가 우연히 그녀의 그림을 보게 된다.
피카소와 루소를 발굴한 유명 미술 평론가이자 콜렉터인 우데는 그녀의 그림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밀하게 그린 과일과 나무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강렬한 신기(神技)를 느끼게 했다.
수녀원에서 자란 세라핀은 미술 교육은커녕 거의 어떤 교육도 받지 못한 어두운 내면을 그림에 녹여냈다.
그녀가 표현한 꽃, 나무, 들판 등의 자연은 무언가에 홀린 듯 강렬했고 그 안에는 기괴하면서도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한 아름다움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재능은 빌헬름 우데가 발굴할 때까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하녀 주제에 무슨 그림을 그린다는 거야 하는 식으로 최하층 계급이 예술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질시와 냉대가 이어질 뿐이었다.
그녀는 좋은 것이나 많은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큼의 노동을 원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성실히 행했을 뿐이다.
그림이 팔리면서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남의 집 청소와 개울가에서 이불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평생 품삯으로 받은 동전만으로 물감을 사던 그녀의 손에 지폐가 쥐어졌다.
그러던 중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우데는 여동생과 함께 도망을 간다.
우데가 프랑스 거주 독일인인 데다 탈영했던 과거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세라핀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림을 계속 그린다.
그리고 13년 후인 1927년 상리스를 다시 찾아온 우데와 극적으로 재회하며 마침내 화가로써 빛을 보게 된다. 우데는 파리에서 세라핀의 개인전을 열어주기로 약속하지만 당시 유럽을 강타한 경제 공황으로 전시회는 또다시 미뤄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세라핀은 성당의 마리아상에 온통 분홍색 칠을 하고 잠이 든다.
세라핀에게 서서히 정신병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순백의 드레스에 면사포까지 쓰고 자신이 사들였던 촛대와 은 식기들을 동네 집집마다 문 앞에 놓고 돌아다닌다.
천사들이 자기 전시회를 보러 올 거라고 하며 온 동네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다.
불안과 초조가 더해진 세라핀은 결국 정신착란증으로 정신 병원에 강제로 감금된다.
그녀 역시 천재의 광기로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등지게 된 비운의 화가가 된 것이다.
세라핀이 죽고 3년 후, 우데의 노력으로 파리와 전 세계에서 그녀의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고 한다.
그런데 세라핀(1864-1942)과 같은 프랑스 출신의 여류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1864~1943)의 생몰 시기가 거의 같은 것이 신기했다.
영화 <세라핀>의 영상은 화가를 다룬 영화답게 한 폭의 수채화요, 움직이는 갤러리였다.
손에 닿을 듯 펼쳐진 들녘과 울창한 숲, 가로수를 흔드는 바람, 극 중반부터 하나씩 드러나는 독특한 색채의 그림들을 보는 내내 행복했다.
한 예술가의 비극적 삶을 조명하듯 현을 긁거나 뜯는 비장한 소리로 극의 밀도를 더해주는 마이클 갈라소(영화 화양연화 음악)의 음악도 기막혔다.
하찮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준 의자를 들고 천천히 언덕에 올라 나무 아래 앉는 마지막 롱 테이크에서 바람 소리처럼 그녀의 말이 들렸다.
“난 슬플 때면 시골길을 걸어요.
그리고 나무를 만지죠.
새, 꽃들, 벌레들에게 말을 걸어요.
그러다 보면 슬픔이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