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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Dec 24. 2016

톨스토이와 차이코프스키의 안나 카레니나

'사랑을 모르는 채 죽는다는 게 죽음보다 더한 공포였다'



한 달 동안 100여 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는 시대와 배경, 또는 주제가 다르지만 같은 게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의 인생에도 안전그물은 없다는 것이지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각각 다르다.”

이 말은 잘 되는 집안은 화목하고 넉넉하고 걱정이 없는 등 모두 비슷하지만, 안 되는 집안은 돈도 없고 탈도 천차만별이라는 뜻의 <안나 카레니나 법칙>입니다.

진화 생물학자인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톨스토이의 문장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시킨 용어지요.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책들 중 많은 작품이 시나리오로 각색되어 영화로 만들어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가 원작만큼의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말을 하지요.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책이 주지 못하는 걸 영화에서 얻는 것도 있습니다.

톨스토이 문학을 영화로 만나는 내내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으로 인해 더욱 절절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톨스토이(1828-1910)
차이코프스키(1840-1893)


톨스토이(1828-1910)와 차이코프스키(1840-1893)는 동시대를 살았던 러시아의 대표 예술가입니다.

차이코프스키는 톨스토이를 대단히 존경하였습니다.

1876년 12월, 톨스토이가 모스크바 음악원을 방문했고,

당시 음악원 교수로 있었던 차이코프스키는 톨스토이에게 경의를 표시하기 위하여 음악회를 열었지요.

프로그램엔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4중주 제1번 D장조 작품 11(1870년)이 들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음악을 들었습니다.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에 이르자 톨스토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차이코프스키가 일기에 쓴 내용입니다.


차이코프스키의 현악4중주 제1번 D장조 작품11, 2악장(안단테 칸타빌레)



톨스토이는 자택으로 돌아온 후 차이코프스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를 감동시킨 것에 대해서 당신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듣기만 해서 미안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날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나의 문학상의 노고에 대해서, 그때의 훌륭한 연주보다 더 아름다운 보답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82세를 살았던 톨스토이는 그 무렵 이미「전쟁과 평화」를 썼고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 중인 48세였고, 53세로 세상을 뜬 차이코프스키는 <백조의 호수>와 <슬라브 행진곡>을 작곡했던 36세였습니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는 동시대의 작가와 작곡가가 만든 문학과 음악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1880년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를 배경으로 한 소설「안나 카레니나」의 여주인공은 객관적인 행복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듯했습니다.

타고난 미모에 부유한  남편, 귀여운 아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그녀의 인생에도 안전그물은 없었습니다.

안나는 나이 차이가 많고 딱딱한 남편과의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에 권태를 느낍니다.

미남의 젊은 장교 브론스키 백작과 불륜의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한 안나는 가정을 뛰쳐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사랑에의 과도한 집착과 아들에 대한 그리움에 시달리다가 기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죽음의 길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행복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긋나면 불행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걸까요?

영화 시작 부분에 “사랑을 모르는 채 죽는다는 게 죽음보다 더한 공포였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비록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지라도 운명적인 만남을 했고 사랑을 알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삶은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선율은 게오르그 솔티의 탁월한 해석에 의해 영화의 완성도를 한껏 높이고 있습니다.

‘비창 교향곡’ 외에도 피아노 트리오 ‘어느 예술가의 위대한 생애’, ‘백조의 호수’는 안나 카레니나의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긴장감  넘치게 도와주더군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트리오 op.50 중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알기까지는 평생이 걸린다고 합니다.

삶은 끊임없는 선택이며 실수의 연속이기도 하지요.

게다가 인생은 계획대로 착착 실현되지 않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삶의 모든 요소를 다 갖출 필요는 없습니다.

한 가지가 어긋난다고 해서 불행해질 이유도 없습니다.

자신의 삶에 감사하며 만족하려는 마음, 그 한 가지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한 겨울에 만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슬퍼서 더 아름답다는 감상에 빠져있어도 좋았습니다.


사랑은 과거에도 불가능했고 미래에도 불가능하며 오직 이 순간에만 가능하다고 말한 톨스토이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싶은 밤입니다.  


클로드 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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