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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Oct 04. 2016

브로츠와프의 개미와 땡땡이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여행(2. 브로츠와프)






브로츠와프 올드 타운

  


  브로츠와프 역에서 호텔까지는 500m 남짓 되었다. 당초 4인용 객실 하나를 예약했었다. 그런데 프런트 데스크의 아가씨는 아무 설명도 없이 룸 키 2개를 주는 거다. 게다가 아직 오전인데 얼리 체크인도 가능했다. 물론 엑스트라 차지는 없었다. 왜 키를 2개 주냐고 물어보니 4인실이 없어서 같은 값에 2인실 룸 2개를 준다는 거란다. 우리로선 나쁠 게 없었다. M과 M의 동생 J, 그러니까 자매가 한 방을 쓰고, D와 내가 또 다른 방을 쓰기로 했다. 러기지를 옮기고 지도를 챙긴 후 구 시가지를 찾아 나섰다.      

  

  호텔을 나와 오른쪽으로 100m쯤 갔을 때 충격적인 장면이 눈앞에 떡~ 하니 펼쳐졌다.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쓴 듯 회색이 도는 청동 빛 사람들이 땅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길 건너편의 사람들은 이쪽과 반대로 땅속에서 걸어 나온다. 브로츠와프에는 난쟁이 동상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일반적인 사람과 똑같은 크기였다. 그러니 분명 난쟁이는 아니다.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들면서 섬뜩했다.      

  

익명의 보행자





  <익명의 보행자(The Anonymous Pedestrians)>라는 제목으로 폴란드의 Jerzy Kalina가 만들어서 설치한 작품이다. 1981년 폴란드에 내려진 계엄령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2년 동안 억압되었던 걸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계엄 선포 24주기였던 2005년에 설치했다고 한다. 이 작품으로 인해 나 같은 여행자가 폴란드의 역사적인 하나의 사건을 알게 되었으니 그의 뜻은 성공한 셈이다.    

  

브로츠와프 시청사 측면

  

  올드 타운으로 들어가는 중간부터 보행자 전용 거리였다. 그 거리에서 왠지 독일 분위기가 느껴지면서 드레스덴이 생각났다. 그런데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사실 브로츠와프는 1945년까지 독일 영토로 브레슬라우(Breslau)였다. 2차 대전 때 독일이 패망한 후 폴란드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은 독일 사람들을 추방하여 폴란드의 영토가 된 것이다. 브레슬라우라는 지명이 익숙한 이유는 브람스 때문이다. 브람스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제안한 명예박사 학위를 거절했다. 영어도 못하는데다가 배 타기를 싫어하는 이유가 컸을 거라는 추측이 있다. 3개월 후 브람스는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제안한 박사학위는 수락했다. 그리고 학위의 답례로 작곡해준 곡이 바로 대학축전 서곡(Academic Festival Overture,1880)이다. 그러니까 대학축전 서곡은 브레슬라우 대학, 지금의 브로츠와프 대학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난장이들






  브로츠와프는 난쟁이 조각들이 숨바꼭질하는 곳이다. 마치 스머프 마을 같다. 30cm도 채 안 되는 크기의 난쟁이 160여 개가 도시의 곳곳에 숨어있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난쟁이 동상의 익살스러운 모습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난쟁이 동상들은 땅바닥에 서 있기도 하고, 건물 벽에 붙어 있거나, 창턱, 가로등에 매달려 있는 등 여기저기 상상을 초월하면서 뜬금없이 나타난다. 일부러 찾는 재미보다 갑자기 발견되는 난쟁이가 더욱 익살스러워 보였다. 난쟁이는 현재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두 몇 개인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이 난쟁이 동상은 1982년 공산주의 정권에 반대하는 오렌지 운동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어느 날 반공산주의 구호가 적힌 장난스러운 모자를 쓴 난쟁이가 미소를 띠며 시위대 앞에 서 있는 걸 TV에서 본 토마사 모체크(Tomasz Moczek)라는 조각가가 5개의 난쟁이를 만들어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폴란드에는 난쟁이 요정들이 사람 가까이 살면서 농사를 돕거나 나쁜 사람을 물리쳐주는 등 고마운 존재로 등장하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거리 곳곳에서 심심찮게 나타나는 난쟁이들의 사진을 찍다 보니 리넥(Rynek)에 도착했다. 리넥은 폴란드어로 광장이나 시장을 칭하는 말이다. 구시가지로 들어서며 맨 처음 눈을 사로잡은 것은 브로츠와프 시청이다. 건물 전면의 화려한 건축 양식과 컬러를 보고 깜짝 놀랐다. 1290년에 시작해서 증개축을 거듭해 250년 만에 완성했는데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을 함께 지닌 건축물이다. 다행히 제2차 세계대전 때 큰 피해를 입지 않아 고스란히 남아있다.      

  


브로츠와프 시청사



  시청 옆 광장을 뺑뺑 돌아가며 빼곡하게 채운 집들의 벽과 지붕의 색깔이 놀랄 만큼 아름답고 조화롭다. 유럽의 올드 타운을 많이 다녀봤지만 여태껏 본 것과는 또 다른 새로움과 다채로운 아름다움이었다. 박공지붕의 양쪽 끄트머리마다 높은음자리표처럼 둥글게 굴려서 만든 매무새가 아름다웠다. 물론 브로츠와프 라는 지명도 알지 못했고, 그 도시에 대한 정보도 없이 찾아온 영향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올드 타운






  모양이 다른 대형 파스텔을 세워 놓은 듯 밝은 컬러의 집만큼이나 우리들의 표정과 발걸음도 유쾌하고 가벼웠다. 성 엘리자베스 성당 앞의 노천카페에 앉았다. 그 카페가 우리를 유혹한 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다. 모양과 크기, 나무의 색이 각각 다른 삐걱거리는 의자와 테이블이 따뜻하고 정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옷이 흠뻑 젖도록 물보라 속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비눗방울 속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꽃을 피우는 아이들, 너나 할 것 없이 행복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기온은 25도쯤으로 쾌적한 수준이지만 브로츠와프의 태양은 가히 슈퍼 울트라 LED급이었다. 쨍쨍거리는 강도가 너무 지나쳐서인지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도 잠시, 우리 모두 피곤을  느꼈다. 일단 호텔로 돌아가 쉬다가 해와 달이 바통터치할 무렵 다시 나오기로 했다. 호텔로 향하는데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음식점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두툼한 버거를 먹고 있는데 그 비주얼이 가히 예술작품 같아 보였다. 그곳은 <PASIBUS>라는 수제 버거집인데 소문난 맛 집 일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PASIBUS 버거



“버거 먹고 갈까?”, 

“좋아 좋아”

4명이 거의 일심인 양 만장일치이다. 버거 속에 들어가는 고기 패티(patty)를 직접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어서 스테이크처럼 미디엄인지, 웰던인지 주문을 받아 구워준다. 물론 사이드 메뉴나 드레싱의 종류까지 선택할 수 있다. 친구들이 한참을 줄 서서 힘들게 기다렸지만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맛이었다. 지금껏 먹어본 버거 중 단연 최고였다. 패티는 입안에서 살살 녹는 듯 식감이 부드럽고 구수했고, 겉은 바삭하면서 안쪽이 부드러운 빵은 고소했다. 곁들여진 루꼴라와의 밸런스 역시 아주 좋았다. 아직도 그 맛이 생생하다. 

  

  

성 엘리자베스 성당


  여름 해는 꼬리가 길다. 저녁 6시가 넘었는데도 여전히 팔팔한 청춘이다. 광장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북적댔다. 성 엘리자베스 성당의 종탑에 올라가기로 했다. 달팽이처럼 생긴 좁은 나선형 계단으로 만들어진 종탑을 빙글빙글 오르는 일은 언제라도 힘이 든다. 하지만 어린 꼬마도 오르고 나이 드신 어르신도 내려오신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하지 않던가? 평지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높은 곳에서 보는 브로츠와프는 훨씬 더 아름다웠다. 때마침 천지창조라도 할 듯 구름 속에서 웅장한 빛이 더해진 하늘도 더없이 근사했다.      

  


  종탑에서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후들하다. 네 명이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세상 좋은 구경 많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중 최고는 단연코 사람 구경이지.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여자들이 모이면 별 거 아닌 것 갖고도 웃음보가 터진다. 지나고 나면 그때 우리가 왜 그렇게 눈물까지 흘리며 배를 쥐고 웃었지? 의문하기도 한다. 우리가 앉은 왼편에서 할머니 세 분이 걸어오시고 계셨다. 모두의 얼굴에서 고운 세월이 느껴졌다. 하얀 원피스에 주황색 목걸이와 같은 색의 샌들을 신고 계신 할머니 1, 병아리처럼 연노랑 원피스에 갈색 크로스백과 갈색 샌들을 신은 할머니2, 살구색 스커트에 민트색 블라우스를 입은 할머니 3, 센스 있는 의상과 액세서리가 기품 있어 보였다. ‘우리도 저렇게 품위 있게 늙어가자’ 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세 할머니께서 우리 앞을 지나침과 동시에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순간 기품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말았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어떻게든 참아야 했다. 왜냐하면 품위를 지켜야 하니까,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예의를 아는 사람이니까….  


큰 웃음을 주었던 물방울 다이아 무늬(사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풍선은 공기를 많이 불어넣을수록 더 큰 소리를 내며 빵 터지는 법, 할머니들이 우리를 지나서 10여 m 쯤 가셨을까? 그쯤 되면 예의는 지켰다고 하는 시점이었나 보다. 네 개의 풍선이 한꺼번에 터지듯 우리는 폭소를 가누지 못했다. 눈물이 질질 나도록 웃고 또 웃었다. 기품이 빵구 난 순간이란? 물방울 다이아만 한 크기의 땡땡이 무늬가 원인이었다. 가운데 하얀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의 팬티가 검은색 물방울 다이아 무늬를 자랑하며 너무도 환하게 내비쳐보였기 때문이다. 여세를 몰아 이제는 별로 웃기지 않은 사람들까지 별 희한한 꼬투리를 갖다 붙이며 웃음 바이러스가 여세를 몰아갔다. 우리는 여한 없이 웃고 또 웃었다.         


 






  어느새 해가 내려앉아 어스름해진 광장 한 켠에는 불 쇼가 이어지고 그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다. 그런 퍼포먼스에는 별 흥미가 없는 우리는 그저 카페마다 놓이거나 걸어놓은 갖가지 색의 꽃과, 예쁜 간판과, 골목골목 구석진 낡은 벽을 구경했다. 아름다웠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 찍기도 불편하고 무엇보다 고적한 맛을 느낄 수 없는 게 아쉬웠다. 내일 이른 새벽에 차분히 사진을 찍으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웃었는지 허기가 졌다. 이런 저녁엔 고기 좀 먹어줘야 한다며 우리는 치킨을 잡으러 KFC로 갔다. 수제 버거를 먹었던 FASIBUS 옆에 KFC가 있는데 낮엔 텅 비어 있더니 저녁이 되니 사람이 많았다. FASIBUS가 영업을 마쳤기 때문이다. 유럽은 대체로 물티슈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냅킨이다. 물티슈를 달라고 하면 의아한 표정으로 그런 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음식점에서 흔히, 아니 필수처럼 사용하는 물티슈는 대체 어느 나라에서 온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발동했다.       


KFC





‘여기 개미가 있네’

‘무슨 개미? 어디?’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테이블 위에도 있고 카펫에도 있어’


유럽에서는 형광등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부분 조명, 또는 국소 조명이라 은은한 맛은 좋으나 산뜻하게 밝지는 않다. 더구나 진한 컬러의 카펫이 깔려있어서 개미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개미가 발견되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싶었다. 개미는 없어야 옳다. 돋보기를 끼고, 스마트폰의 조명을 켜서 방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맙소사… 이건 사건이다. ‘개미가 있네’ 정도가 아니었다. 우리가 멋모르고 겁도 없이 개미 소굴에 들어온 격이었다. 소름이 좍 돋았다.     



  당장 프런트 데스크로 인터폰을 했다. 방안에 개미가 무척 많으니 방을 바꿔달라고 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미안하지만 바꿔줄 수 있는 빈 방이 ‘없다’였다. 오후 늦게 단체 손님이 들어왔다는 거다. 그러면서 1시간 내로 경비원을 보낼 테니 기다려달라는 것이다. 우선 버그 킬러라도 달라는 말을 전하고 통화를 끝냈다. 일단 친구와 나는 개미 유인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여행 가방 안으로, 침대로 온통 개미 판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도시를 옮길 때마다, 아니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개미들과 함께 여행을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끔찍했다. 우선 카펫과 테이블 위에 비스킷을 군데군데 놓아두었다. 그러다 보니 화가 났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람, 호텔 직원을 데리고 와서 직접 보게 해야겠어.’ 

띵동! 내가 탄 엘리베이터가 로비 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검은 물소 같이 우람하고 뚱뚱한 흑인 보안요원이 엘리베이터 문을 가로막을 듯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내게 302호 투숙객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지금 우리 방으로 가는 중이란다. 그의 손엔 버그 킬러가 들려있었다. 체격이 큰 남자가 들고 있는 버그 킬러가 미니어처처럼 작아 보였다. 에프 킬러 같은 스프레이를 카펫에 뿌리는 게 고작이었다. 더구나 그 통은 거의 비어있는 듯 바람 빠지는 소리만 피식피식 들렸다. 버그 킬러를 내게 달라고 했다. 예상대로 가뿐하다. 거의 빈 깡통이었다. 다른 거 없냐고 하니 없단다. 대답하는 그의 얼굴이 세상 걱정 없는 표정이다. 그깟 개미가 무슨 대수냐는 뜻으로 보였다.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각, 버그 킬러를 살 수도 없고 우리나라 방역업체 세스코를 부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구글 검색을 했다. 여러가지 <개미 퇴치 방법>들이 채택되길 바라는듯 자세히 써있었다. 그중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소금. 여행 중 대부분의 숙소가 아파트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간단한 양념을 준비해 갔으니 소금은 당연히 있었다. 소금을 물에 타서 개미가 다니는 곳에 뿌렸다. 아니 뿌렸다기보다 대량 살포했다는 말이 옳다. 특히 침대 주변과 바닥 거의 대부분에 소금을 뿌렸다. 마치 귀신 쫓는 의식처럼 신중하게 공을 들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Paul에서 샀던 그 비싸디 비싼 빵 하나를 욕실 바닥에 놓아두었다.      



  203호를 쓰는 두 자매의 방은 어떤지 묻지 않기로 했다. 언니나 동생이나 자매 아니랄까 봐 새색시처럼 얌전한 데다가, 천상 여자인지라 소심하고 겁이 많은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만일 그 방도 개미가 있는데, 그걸 모르고 평온하게 잘 자는데, 우리가 ‘그 방에는 개미 없어?’라고 물었다가는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곳에도 개미가 있다면, 그야말로 두고두고 날 샌 이야기를 하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친구 D는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나 역시 뒤척이다가 어찌어찌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날이 밝았다. 일어나자마자 일단 이불을 걷고 침대를 살폈다. 구석구석 바닥도 살폈다. 개미들은 우리를 습격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카펫과 테이블에 놓아둔 비스킷에는 소수의 개미들이 모여 있고 카펫 바닥에 돌아다니는 개미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욕실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호텔 출신 개미들다웠다. 고급진 입맛답게 욕실 타일에 놓아둔 Paul 빵에는 거의 사단 급 개미 행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로비로 나갔다. M이 나와 있었다. 간밤의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그네들 방에서는 개미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행이라며 우리 둘은 익숙한 걸음으로 구시가지로 향했다.      



  우리의 예상은, 아니 우리의 소박한 꿈은 여지없이 날아갔다. 불금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펍과 클럽에서는 여전히 하드 록이 흘러나오고, 군데군데 모여 있는 사람들은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벤치는 물론 아예 길거리에 누운 여자들도 있었다. 브로츠와프 구시가지의  아름답고 경이로웠던 첫인상이 깨지고 말았다. 그 아름다운 도시를 오롯이 홀로 조용히 느끼고 싶어 찾아간 새벽이, 취한 젊은이들의 고성과 노래로 여지없이 망가지고 있었다. 어디에도 고요는 없었다. 광란의 파티는 그때까지 진행형이었다. 속상함만 잔뜩 안고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조식 먹을 시간 약속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니 친구 D가 깨 있었다.         



토요일 새벽까지 이어진 불금의 잔해


  욕실 타일 바닥에 놓인 Paul 빵을 둘러싼 개미산을 간신히 넘어서 샤워 부스로 들어갔다. 서둘러 씻고 짐을 챙겨 개미 소굴에서 탈출하여 로비로 내려왔다. 다른 방을 사용한 자매는 평온한 표정이다. 내 얘기를 듣고 샅샅이 훑어보았지만 개미가 없었단다. 다행이다 싶었다. 프런트 데스크에는 어제와 다른 두 명의 직원이 앉아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간단하게 지난밤의 사건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아침에 찍은 따끈따끈한 두 컷의 사단 급 개미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놀라는 표정을 하며 뭔가를 의논하는 눈치였다.

“정말 미안합니다. 어제 만실이라 방을 바꿔드리지 못해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그 대신 사용하신 방 하나의 값은 환불 처리해드릴게요. 그렇게 해드리는 걸로 괜찮으신가요?”     

호텔이란 전 세계인이 찾고 사용하는 곳이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사용자의 평점과 평을 바탕으로 예약한다. 나 역시 그렇다. 내가 만일 그 호텔의 사용 후기에 개미 사진이라도 올린다면? 그러나 우리는 협박 사기꾼이 아니다.      

‘방 값을 환불해주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당신들은 호텔 청결에 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그들의 제안에 못 이기는 척 동의했다. 네 명이 자고, 씻고, 쉬고, 아침을 먹었는데 4만 원 남짓, 그러니 1인당 만 원 정도 들어간 셈이다. 그러니 가히 나쁘진 않은 거라고 위로했다. 빵과 커피, 치즈와 햄, 요거트와 시리얼의 호텔 조식이 갑자기 훌륭하게 느껴진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리라. 그 후 우리는 숙소를 옮길 때마다 개미 이야기를 무슨 전설 따라 삼천리처럼 두고두고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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