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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Oct 07. 2016

떠나기 싫은 폴란드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여행(3. 크라쿠프)






크라쿠츠 시가지를 가득 메운 청년들



  세계 가톨릭 청년대회가 개최되는 중심도시였던 크라쿠프 역에 도착했다.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역 입구에 임시로 설치된 안내데스크의 도우미들에게 아파트 주소를 보여주고 길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지도의 반대쪽을 가리켰다. 주변엔 경찰관들이 많았다. 유럽은 어딜 가나  경찰관들의 덩치가 크다. 잘못한 게 없어도 경찰은 괜히 껄끄럽다. 그러나 저 사람들은 알 테지 싶었다. 그들이 알려준 대로 계단을 올라갔지만 역시 막다른 길이다. 노점상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영어는 알아듣지 못해도 글씨는 읽을 수 있는 아주머니는 주소를 유심히 보더니 손짓으로 방향을 가르쳐주었다. 지하도를 건너고 포석이 깔린 돌길을 지나 아파트를 찾아갔다. 인도, 차도 할 것 없이 복잡했다. 지나가는 트램에는 사람들이 콩나물처럼 빡빡하게 들어차 있었다. 가톨릭 대회에 참가한 젊은이들이 귀향길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리라 추측했다. 게다가 앰뷸런스인지 경찰차인지 소방차인지 여기저기서 삐~요 삐~요 하는 경적이 끊임없이 울렸다. 그야말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정신이 없었다.




  크라쿠프의 숙소 이름은 해피 게스트 아파트먼트. 호스트는 우리 일정에 대해 친절한 안내 메일을 보내왔었다. 역시나 명랑하고 유쾌하면서 긍정적인 마인드로 똘똘 뭉친 청년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데 묵을 곳은 3층이다. 여행 캐리어를 옮기는 게 문제였다. 우리의 걱정을 눈치챈 청년은 자기가 옮겨줄 거니 걱정마라고 했다. 과연 젊은 남자다웠다. 그는 홍길동처럼 순식간에 우리의 캐리어를 모두 옮겨주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청년이 아들처럼 측은했다.  감사의 말과 팁을 주니 웃으며 손 사레를 치다가 우리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받았다. 믿음이 가는 청년이었다.      


다정한 언니와 동생



  그가 추천해준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공원을 가로지르니 바로 올드 타운이다. Miod marina는 인테리어가 럭셔리하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었다. 음식점 안쪽 중정에는 레몬 컬러의 벽과 상반된 핑크 색의 테이블보의 매칭이 싱그럽다. 2층 테라스에서 늘어뜨려진 녹색 식물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내부의 중앙 등은 그레이 빛 나무 구슬이 늘어진 끝에 오렌지 빛 전등갓이 씌워져 있고 아치형 천장엔 고대 그리스 벽화처럼 포도송이가 그려져 있다. 매끄럽게 다림질된 하얀 린넨 커튼이 정갈하게 창문을 덮고 있어서 깔끔하다.    


  



  출입구 쪽 창문 너머로 폴란드 와인 바 종업원 아가씨가 에이프런을 두르고 지루한 듯 길거리에 나와 서 있단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창문을 프레임 삼아 그녀의 표정을 여러 컷 찍었다. 뭔가 수심이 있는 표정이다.   




상념에 젖은 웨이트리스 

    

레스토랑 안 쪽에서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가 마음도 편하고 음식 맛도 훌륭했다. 게다가 저렴한 값이 또 한 번 기분 좋게 한다. 서유럽의 1/3 수준? 디저트로 티라미수와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miod marina  점심 식사








  비가 오락가락해서 일단 아파트로 돌아갔다. 체크인할 때 아직 청소 중이라고 해서 들어가 보지 못했었다. 이박삼일 동안 짧게 머무를 곳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숙소는 궁금하다. 나무계단이 무척 아름다웠다. 윤기가 돌만큼 반질반질하게 질이 잘 난 계단은 맨발로 다녀도 될 만큼 깨끗했다. 현관에 들어서니 선반에 게스트용 우산이 걸려있다. 거실 한 켠 서랍 장위엔 여행 가이드 책자와 펜, 그리고 깜찍한 화분이 놓여있다. 하얀 벽엔 마티스의 색종이 시리즈 그림액자가 걸려있고 하얀 식탁엔 빨간색 식탁 러너가 깔려있다. 카키색 소파 위엔 푹신한 린넨 쿠션이 놓여있고 거실보다 높이를 다르게 만든 공간엔 아이들을 위한 침대와 장난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칠판이 놓여 있다.      



  두 개의 침실 중 하나, 태어나서 처음 보는 창문이다. 비스듬한 천장에는 대칭을 이룬 천창이 있고, 벽엔 잠수함에서 볼 법한 동그란 창문이 쌍으로 있다. 그런데 벽체가 20cm는 족히 될 것 같다. 주방과 욕실까지 어느 한 가지도 불편함 없이 깨끗하고 예뻤다. 아~ 예뻐, 예뻐하며 우리 모두 아파트에 만족해했다. 발코니로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장방형 정원 가운데 작은 분수가 있다. 중세 시대 어느 가정집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였다. 천창으로 떨어지는 리드미컬한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비가 그치는듯하여 올드 타운으로 향했다.      



  유태인을 대상으로 한 대표적인 영화 쉰들러 리스트와 피아니스트의 촬영지는 ‘오슈비엥침’이다. 폴란드어로 ‘오슈비엥침’은 독일어로 ‘아우슈비츠’이다. 폴란드에서는 14세가 되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방문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에 가지 않기로 했다. 그 슬픔의 한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라쿠프는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기기 전 500년 간 정치문화의 중심지로 국왕이 살았던 도시이다. 세계 가톨릭 청년대회로 인해 유난히 많은 수녀님과 신부님을 볼 수 있었다. 시장광장 광장은 유럽에 남아 있는 중세 광장 중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다음으로 넓다고 한다. 1220년에 건축된 르네상스 양식의 성 마리안 성당에서는 매시간 나팔수가 직접 나와 나팔을 분다. 광장 중앙에는 ‘폴란드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의 동상이 서 있고 동상 뒤편은 직물 회관 (수키엔니체)이다.


성 마리안 성당
아담 미츠키에비치의 동상


      

  광장엔 당장이라도 하늘로 날아가고 싶은 오색 풍선들과 강렬하고 화려한 장식의 마차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그곳엔 유난히 여성 마부가 많았다. 셀 수 없이 많은 비둘기 떼와 같은 컬러의 배낭을 멘 젊은이들이 어우러져 축제의 뒤풀이를 하고 있었다.



글라스로 연주하는 길거리 악사


시장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비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우산으로도 가릴 수 없는 빗줄기였다. 너나 할 것 없이 직물 회관 처마 아래로 모여들었다. 판초를 입은 사람들 몇이 유유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비는 그칠 기색이 없었다. 더위는 오간 곳 없고 한기가 느껴졌다.         



  



  당초 계획은 크라쿠프에서의 2일 차에 근교 도시인 자코파네를 다녀오기로 했다. 이미 기차를 모두 예매한 상태였다. 세계 가톨릭 청년대회 때문에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폴란드 철도청에서 메일을 받았다. 7월 31일과 8월 1일 양일간 기차를 이용해서 크라쿠프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유의 사항이었다. 그 내용은 이랬다. 

1. 적어도 기차 출발 시각보다 최소한 1시간 일찍 역에 도착할 것

2. 임시로 마련된 광장에서 대기할 것

3. 광장에 설치된 전광판으로 보고 출발 플랫폼 확인할 것

4. 기차를 타러 들어가는 입구가 제한적이니 확인할 것

아마도 그 양일간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대규모로 크라쿠프를 떠나므로 역이 무척 복잡하여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방책이거나 교황님이 기차를 타고 떠나시나 보다 추측했다. 자코파네로 가려면 아침 시 35분 기차를 타야 한다. 메일의 지시대로 하자면 집에서 6시 전에 출발해야 된다는 이야기였다.        


   

  




  점점 거세지는 비가 그치기를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냥 숙소로 돌아가서 느긋하게 지내고 다음 날 자코파네 일정을 취소하기로 했다. 바람은 우산을 수시로 뒤집어놓았다. 여행용 우산은 작고 가볍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김치전에 막걸리가 딱이지만 누룽지 백숙도 좋지 않겠어?, 닭 사 갖고 들어가자.’

그러나 닭을 판매할 것 같은 마트가 보이지 않았다. 몇 군데 들어가 보았지만 허사였다. 아파트 근처 모퉁이의 작은 마트에 허실 삼아 들어가 보았다. 온전한 닭 한 마리는 아니지만 꽤 실한 닭다리가 있었다. 다리 4개를 샀다. 그날 우리는 천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함께 고소한 누룽지 백숙을 만들어 먹었다. 홈쇼핑에 론칭하면 불티나게 팔릴 것 같은 친구 D의 잡곡 누룽지는 크로아티아에 이어 대히트였다. 폴란드 전통 문양이 프린트된 푹신한 이불을 덮고 누웠더니 지난밤 브로츠와프의 개미 호텔이 떠올랐다. 슬몃 웃음이 났다.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하늘은 감기 걸린 듯 찌뿌둥한 얼굴이다. 창문을 열어보니 여름은 어느새 문을 닫고 떠난 게 분명했다. 서늘한 게 아니라 춥다 라는 느낌이다. 소매가 긴 셔츠에 겉옷까지 챙겨 입었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시가지는 한가하다. 드문드문 신부님과 수녀님이 지나갈 뿐 여행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시장광장 한쪽에 있던 구 시청사는 무너지고 시청사 탑만 남아있다. 건물 아래쪽에 박혀있는 닥종이 같은 색깔의 돌이 드문드문 멋스럽다. 직물 회관은 길이가 약 100m쯤 되는 길쭉한 건물이다. 건물의 바깥쪽 회랑은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건물 안쪽 1층에는 호박으로 만들어진 액세서리 등 갖가지 기념품 상점이 수없이 늘어서 있다. 컵을 모으는 취미를 가진 J와 D는 컵을, M은 나무로 만들어진 인형을 사고 나는 린넨 사에 자잘한 호박을 엮어 만든 목걸이를 샀다.      


왼쪽이 시청사 탑, 오른 쪽이 직물회관
직물회관
직물회관 1층의 기념품 상점들


  길거리 수레에서 베이글 비슷한 모양의 폴란드 전통 빵 오버르잔키(Obwarzanki)를 샀다. 치아 시드가 붙어있는 플레인과 치즈 맛을 샀는데 담백하고 고소하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빵 값은 450원, 갈수록 폴란드가 맘에 든다.    


폴란드 전통 빵 오버르잔키(Obwarzanki)
오버르잔키를 파는 수레는 모두 파란색



  신부이면서 천문학자였던 코페르니쿠스와 2004년 타계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다녔던  야기엘론스키 대학을 찾아갔다. 1364년, 카지미에즈 비 엘르 키 왕이 이 대학을 설립하고자 했을 때 왕비가 보석을 팔아주었단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만들어진 학교라서 위인들을 배출했난 싶다. 우리나라의 대학교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냥 작고 소박한 건물이다. 내부로 들어가니 뭔가 진지한 토론과 연구가 진행되는 듯 조용하고 고풍스럽다. 



        

야기엘론스키 대학


  어느새 광장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사람 머리 모양의 구조물 앞에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시끌벅적하다. 수박을 먹던 청년이 우리에게 헬로~ 하기에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니 들고 있던 수박을 어찌할 줄 몰라 어정쩡해하는 모습에 그들도 웃고, 우리도 웃고, 그렇게 그냥 즐거웠다. 그건 아무것도 아닌데, 크게 웃을 정도로 우습지도 재미있는 일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냥 행복했다.     


시장 광장의 청동 조형물



  12 사도 성상이 있는 성 베드로와 바오로 성당을 지나 바벨 성으로 향했다. 여전히 청년들은 군데군데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마차는 또각또각 말발굽으로 장단을 맞춰준다. 세그웨이 전동차를 탄 무리들이 그들을 스쳐 유유히 멀어진다. 같은 시간에 똑같이 동그란 바퀴지만 참 다른 모습이었다. 



성 베드로와 바오로 성당


바벨성 가는 길




  비스와 강은 넓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강변 역시 보잘것이 없었다. 그러나 언덕 위의 바벨성은 달랐다. 11세기에 시작해서 16세기에 완성된 왕궁인 바벨성은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건축 양식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성에 들어서자마자 발견한 레스토랑에서 피자와 샐러드로 요기를 했다. 



성에서 내려다 본 비스와 강
바벨 성
금색 지붕이 왕궁 내 성당




  정원의 꽃들을 가꾸는 사람들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저들의 수고로움 덕에 우리들 눈이 행복하구나 싶었다. 바벨성은 폴란드 국왕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던 곳이었는데 수도를 바르샤바로 옮긴 후 도 대관식만은 그곳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고 한다.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과 르네상스풍의 지그문트 탑은 작고 소박하지만 예술미가 뛰어나다. 파자마를 연상시키는 무늬 옷을 입은 아프리카 사람 뒤를 졸졸 따라갔다. 왕궁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다. 12유로나 되는 비싼 입장료를 냈다.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곧 후회했다. 내 의지대로 멈추거나 빨리 가거나 할 수가 없었다. 정해진 루트대로 앞사람을 따라 걸어가며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는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에 플로리안 게이트와 망루를 우연히 발견했다. 옛날에는 구시가지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성 플로리안 게이트는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성문이다. 옛날에는 이 망루 주변으로 해자가 있었고, 게이트와 연결되는 통로도 있었단다. 이 망루는 쉽게 말하면 감시탑, 사진으로 봤을 때 평범해 보일 수도 있지만 벽 두께가 무려 3미터나 된다고 한다. 





  다음 날, 다시 바르샤바로 가서 리투아니아의 빌뉴스로 이동해야 한다. 기차로 3시간 반, 그리고 룩스 버스를 타고 8시간 반을 달려가야 한다. 폴란드를 떠나는 날이니만큼 얼마 남진  않았지만 즈워티를 다 쓰기로 했다. 역으로 가던 중 빵집에 들어갔다. 크루아상, 애플파이 등  다섯 개의 빵을 샀다. 공장에서 만들어낸 삼립빵이 아니다. 엄연한 베이커리에서 만든 수제 빵이다. 그러나 값은 2,100원, 파이 하나 값도 되지 않는다. 폴란드를 떠나는 게 슬퍼졌다.       



세계 각국에서 오신 수녀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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