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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Oct 08. 2016

빌뉴스의 우리 집은, 1893년생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여행(4. 빌뉴스)








  폴란드를 떠나 발트 3국으로 향한다.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는 폴란드보다 위쪽에 위치한다. 크라쿠프는 폴란드의 남쪽에 있으므로 우선 바르샤바로 다시 올라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 우리 좌석은 여덟 명이 함께 앉는 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짐을 보관할 수 있는 짐칸이 따로 없다. 선반 위에 올려야 한다. 의자 위에 올라서서 무겁고 큰 캐리어를 낑낑대며 겨우 올렸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우리 4명의 러기지를 올리니 여유 칸이 없다. 같은 칸에 앉게 될 4명의 승객도 러기지가 있다면 큰 문제였다. 기차의 통로는 무척 좁았다. 통로에 서 있다가 커피 서비스 카트라도 지나갈라치면 아무 칸이나 문을 열고 잠깐 들어가서 비켜야 할 정도다. 노심초사 걱정을 하고 있는데 어린 아들과 젊은 아빠가 우리 칸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작은 사이즈의 트렁크 라  우리 캐리어 위에 포개어 가까스로 올릴 수 있었다. 그다음엔 역시나 어린 아들과 젊은 엄마가 들어왔다. 그들은 작은 배낭과 손가방이어서 다리 사이의 바닥에 놓아두어도 되었다.     



  바르샤바에 도착할 시간이 얼추 다 되어갔다. 내릴 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통로는 복잡했다. 고속열차처럼 전광판도 없고 안내 방송도 없었다. 우리는 캐리어를 선반에서 미리 내려서 준비를 하고 기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느낌이라는 게 있다. 그 기차는 바르샤바가 종착역인데 여전히 기차 안에는 내리지 않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브로츠와프로 갈 때의 기차를 탔던 바르샤바 역의 분위기가 아니고 작은 간이역 같았다.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니란다. 바르샤바 중앙역은 넥스트란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른다. 행여나 기차가 출발하면 어쩌나 20킬로그램이 넘는 러기지를 번쩍 들어 올려 기차에 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 알았다. 56세 아줌마의 힘이 그렇게 대단하다는 것을. 우리는 바르샤바 중앙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그곳은 바르샤바 Zachodnia역으로 5분을 더 가야 했던 것이다. 가슴이 벌렁벌렁 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그렇게 우리는 바르샤바 중앙역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빌뉴스까지 타고 갈 버스 시각까지는 약 2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김자반과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만들어온 주먹밥과 맥도널드 햄버거, 커피로 점심을 먹었다. 빌뉴스까지는 버스로 8시간 45분을 이동해야 한다. 내심 걱정이다. 멀미는 안 할는지, 휴게소에는 몇 번이나 서게 될지…      



  버스를 타는 곳은 바르샤바 중앙역에서 멀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혹시 모르니 일찌감치 그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몇 사람에게 물어봤으나 모른단다.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니 방향을 가리키며 100m만 가면 된다고 했다. 100m를 갔지만 버스 터미널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웬 남자가 다가오더니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버스 티켓을 보여주니 길 가의 시내버스 번호를 가리키며 더 아래쪽으로 가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안내를 해주겠다고 한다. 너무 친절한 사람은 의심해야 한다. 더구나 그 사람은 이탈리아계 남자인 듯했다. 그때 로컬 버스가 아닌, 그러니까 우리네 시외버스 같은 게 멈추고 사람들이 내렸다. 그 버스 기사에게 물었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타면 되니 기다리란다. 안내를 해주겠다던 너무나 친절한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우리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가 그 자리를 떠났다.     





  우리가 리투아니아 빌뉴스까지로 타고 갈 버스는 말하자면 국제 버스. 기사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운전을 한다. 여권과 티켓을 확인하고 생수 한 병 씩을 주었다. 비행기처럼 앞좌석 등받이에 모니터가 있어서 영화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와이파이도 빵빵하게 터진다. 화장실도 있다. 그래 가보자.     



  간간히 비가 내렸다. 저쪽 먼 하늘에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검은 실루엣의 나무가 쉼 없이 지나갔다. 저녁에서 밤으로 가는 하늘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내가 사진을 찍기 시작하니 여기저기서 셔터 누르는 소리들이 들렸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우리 말고도 대부분 여행자들이었으니까.      





  8시간 45분을 가자면 2~3 번은 쉬겠지? 우리나라 휴게소처럼 구운 감자, 호두과자는 아니더라도 아이스크림이나 햄버거 정도는 있겠지? 했다. 그러나 출발한 지 4시간이 넘어도 버스는 도무지 멈출 기세가 아니다. 5시간이 거의 다되어 갈 무렵 속도를 늦추더니 쉬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쉬는 시간이 5분이란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어이가 없었다. 관절이 다 굳었는지 로봇처럼 뻣뻣하고 찌릿찌릿하여 겨우 몸을 일으켜 땅을 밞았다. 다른 승객들도 서둘러 우르르 내렸다. 휴게소는 없다. 그냥 길가에 잠깐 정차했을 뿐이다.

     

그때 친구가 물었다.

‘여기가 어딜까?’

내가 말했다.

‘여기 발가’

어두운데 뭐가 밝다는 거야?

‘여기가 발가 라고~~’ 하며 뒤 쪽을 가리켰다. 

VALGA라는 글씨에 불이 켜 있다. 그곳은 발가 역 앞이었다. 우리는 배를 잡고 웃었다.



발가 역



  에스토니아에서는 발가라고 부르고, 라트비아에서는 발카라고 부르는데 그곳은 한 도시가 두 나라에 속해 있단다. 일렬로 서서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고 다시 뒤로 돌아 두드려주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동승했던 다른 기사가 운전석에 앉았다. 그렇게 크라쿠프를 떠난 지 장장 15시간이 넘어서야 빌뉴스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밤 11시 30분. 사위는 어둡고 택시가 두어 대 서있다. 사람들은 금세 모두 사라지고 우리만 남았다. 원래 빌뉴스 시티 센터에서 하차하는 것으로 예약을 했었다. 하지만 구글맵으로 검색하니 우리가 묵을 아파트는 코치 스테이션에서 내려야 더 가까운 것을 알았다. 호스트와 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우리를 태우러 온다는 약속을 받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못 온다는 메시지가 왔다.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버스 터미널에서 700m 거리에 집이 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10유로를 달라고 했다. 택시 기사는 집을 잘 못 찾는 눈치다. 호스트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어서 가까스로 집 앞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니 호스트의 와이프가 바로 도착했다.     


  1893년에 지어진 집은 어떤 느낌일까? 빌뉴스의 그 아파트를 선택한 건 허름하긴 하지만 1층이고 마당이 있다는 것, 역이나 올드 타운과의 거리를 볼 때 위치가 적당하다는 것,  가격이 저렴한 것,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1893년에 지어진 집이라는 사실이 가장 매력적인 요인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1893년에 지어진 집


  오랜 시간 힘들게 이동한 탓에 정신없이 딱 떨어져 잠이 들었다. 바깥 풍경이 궁금했다. 밤 12시가 너머 도착했기에 마당이 어떤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간 밤에 비가 내렸느보다. 나뭇잎에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창고로 보이는 낡은 판자문엔 보기 어울림이 멋스러운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수국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백 년의 세월을 머금었을 법한 곰팡이들이 회색 벽돌의 처마 밑에서 향기를 내뿜고 있다. 새소리가 들렸다. 싱그러운 공기가 기분 좋게 다가왔다. 서늘했다. 이제 반소매 옷을 못 입겠구나 싶은 예감이 들었다.        



낡은 문의 색깔이 맘에 들었다.



  리투아니아는 린넨이 유명하다. 세계적인 품질을 자랑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고가에 팔린다. 린넨은 인류 문명에서 가장 오래된 천이다. 아마로 실을 만들어 천을 짠다. 이집트의 미이라도 린넨으로 감싸 만들었다고 한다. 나와 친구 M은 린넨을 무척 좋아한다. 혹자는 구김이 많이 가서 싫다고 하지만 자연스러운 구김도 좋다. 가슬 거리면서도 툭 떨어지는 멋스러움을 사랑한다. 리투아니아에 가면 린넨을 한 가방 사 오자고 했었다. 그야말로 벼르고 별렀던 곳에 온 것이다.       



CD로 장식한 벽




  어디로 가자, 무엇을 보자 하는 것 없이 집을 나섰다. 거리는 한가롭고 소박했다. 화려한 집도 장식도 없었다. 천천히 걷는 아침 산책이 대나무 그림자가 장구채처럼 한지 창에 어른거리듯 고상하게 느껴졌다. 나무토막을 잘라 만든 인형은 머리에 꽃을 이고 있는 상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기자기한 소품과 인형들이 여기저기서 손짓하듯 우리를 흥분시켰다. 눈이 즐거웠다. 리투아니아에서는 린넨을 Lino라고 한다. 쇼핑이 시작됐다. 린넨에 수를 놓를 놓아 만든 갈색 가방과 겨자색 린넨 스카프를 샀다. 네 명이 각각 다른 색깔로 산 린넨 모자를 쓰고 열일곱 여고생이 된 듯 깔깔거리며 즐거워했다. J가 해피 모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모자만 쓰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고...      



리투아니아 린네 숍

  



   주물로 만들어진 타원형 액자 틀에 정갈한 전통복장을 입은 여인이 찻잔이 담긴 쟁반을 들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간판이 멋스러운 카페 필리에스 케피켈레(piless kepyklele)로 들어갔다. 커피와 크레페를 먹으며 노랑, 보라, 자주, 민트 색의 린넨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길가에 앉아있었다. 카페 안쪽에 있던 젊은 부인이 우리를 지켜보았는지 우리 넷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해왔다. 모자가 너무 예쁘게 잘 어울린다, 보기 좋다, 아름답다 라는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빌뉴스 거리 




  도자기로 만든 주전자를 벽 속에 부착시킨 레스토랑, 골목 깊숙이 자리한 린넨 샵들,  한결같이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주물로 만들어진 간판은 똑같은 것 하나 없이 아름다웠다. 빌뉴스는 오래된 향기가 나는 도시였다. 붉은 벽돌로 휘감긴 고풍스러운 바로크 양식들이 주를 이루는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폴란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주변 국가들의 문화적 중심지로 활약하던 중세 시대부터 이어진 역사의 숨결이 골목마다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중 가장 넓은 면적과 인구를 가진 나라로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나라이다.     



 



  지붕을 제외한 건물 전체가 온통 새하얀 대성당과 종탑이 보였다. 리투아니아는 국민의 90%가 가톨릭을 믿는다고 한다. 광장엔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추앙받는 게디미나스 공작의 동상이 서있다. 대성당 앞 돌판 위에는 리투아니아어로 스테부클라스(Stebuklas) 기적이라는 뜻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곳에서  620㎞의 인간 띠가 시작된 지점이다. 1989년 8월 23일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라트비아 리가, 리투아니아 빌뉴스를 잇는 '발트의 길'이 완성됐다. 발트의 길은 세계에서 가장 긴 인간 사슬이다. 사람들은 손에 손을 잡고 인간 띠로 상징되는 자유와 독립의 길이었다.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외쳤다. ‘라이스베스(Laisves,자유)!’ 이후 발트의 모든 것은 그 길 위에서 생동했다.        



'스테부클라스(Stebuklas)기적이라는 뜻



  대성당 광장 옆에 리투아니아 국립 박물관이 있다. 그 옆길을 따라 오르면  게디미나스 성(Gediminas Tower)이다. 푸니쿨라를 탈 수도 있지만 우리는 걷기로 했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갈색과 회백색 돌로 만들어진 돌담과 성벽이 아름다웠다. 바람은 선선하고 노랗고 하얀 들꽃들이 보기좋게 피어있다.  


  성터에는 리투아니아 노랑 초록 빨강의 3 색기가 걸린 전망대가 있고 구 시가지가 오롯이 다 보였다. 멀리 3개의 십자가 언덕이 보였다. 리투아니아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가 전해졌을 때 가톨릭 수도사 일 곱 명이 빌뉴스에서 순교하였다. 그 순교자를 기리기 위해서 3개의 십자가를 설치하였는데 성부와 성자 성령을 의미한다.       

  


 




  호스트가 추천해준 전통음식점 포르토 드바라스(Forto Dvaras)를 찾아갔다. 바깥과 1층은 좌석이 없고 지하에는 있다고 했다. 우리는 흔쾌히 들어갔다. 지하라고 하기엔 너무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멋지고 아름다웠다. 계단을 내려가는 벽은 중세 동굴 벽화를 연상시키는 그림과 말린 야생화로 꾸며져 있다. 천장은 울퉁불퉁한 동굴 형태로 마감되어 있고 몬드리안 그림을 연상시키는 타일이 바닥에 깔려 있다. 집기와 가구는 모두 고풍스러운 앤틱이었다. 호스트가 추천했던 리투아니아 전통 음식인 체펠리나이(cepelinai)는 겉은 우리나라 감자떡처럼 겉은 투명한고 모양은 길쭉한 게 왕만두 같다. 속에 고기를 넣고 기름을 발라 쪄낸 느낌인데 약간 느끼했다. 샤워 크림에 찍어먹으니 훨씬 부드러웠다. 샐러드와 키비아니, 스테이크와 꼬치 등 여러 가지 골고루 주문해서 먹었다. 그 집 역시 빌뉴스의 맛 집인지 사람들이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빌뉴스 대학 도서관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온통 오렌지색으로 장식한  할머니가 앉아있다. 정신이상인지 그런 퍼포먼스로 벌어먹는 사람인지 알 수 없으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1달러를 주고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몇 년 전 인도 파테푸르 시크리에서 만났던 걸인 할아버지의 노란 옷이 생각났다.  



인도 파테푸르 시크리에서 만났던 걸인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슈퍼마켓 리마에서 생수와 요거트, 우유, 납작 복숭아들을 샀다. 그런데 근처에서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사람들이 뭔가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서있었다. 이동식 레스토랑이 크레인에 연결되어 있다. 타원형의 둥그런 식탁에 안전벨트를 맨 사람들이 1인용 의자에 앉아있다.  <디너 인 더 스카이>이다.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기상천외한 10대 레스토랑’ 중 하나이다. 지상 50m의 허공에 둥둥 떠서 아찔한 전망과 럭셔리한 디너를 즐기는 스릴과 재미 만점의 이 레스토랑은 120톤의 크레인이 레스토랑을 통째 들어 올려 하늘 위에서 식사를 한다. 



  가격은 상당히 고가로 4코스 요리와 샴페인 등이 포함되는 기본 디너가 399.95 달러, 5개 코스의 비즈니스 클래스는 699.95 달러, 5코스 요리에 샴페인 와인 및 VIP 좌석과 라운지가 제공되는 퍼스트 클래스의 디너 가격은 999.95달러에 달한다. 22명의 손님과 요리사까지 25명 정도가 탑승하게 되며 손님들은 중앙 요리대를 둘러싼 대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한 채로 셰프의 서빙을 받으며 식사를 하게 된다.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의 식사 시간 동안 레스토랑은 50m 높이에서 180도 회전하면서 건물이나 유리창에 가리지 않은 시원한 경치와 함께 고급 요리를 선사한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진행 요원에게 요청하면 1분 만에  레스토랑을 지상으로 내려준다고 한다. 아찔해서 음식이 넘어가기는 할까?      






  올드 타운 옆의 빌넬레 강 건너에 우주피스 공화국이 있다. 우주피스란 강 건너 마을이란 뜻이라고 한다. 20세기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기 시작해서 만들어진 이곳은 리투아니아 영토 내에 있지만 그들만의 국기와 헌법을 쓴다. 4월 1일 만우절에 딱 하루 존재하는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나라다. 건국일인 4월 1일에는 손바닥 도장 입국 스탬프도 찍어준다고 한다. 강을 건너자마자 우주피스에 왔다는 현수막에 손바닥이 그려져 있다. 

반가스? 방가방가라는 뜻?



32개국의 문자로 우주피스의 헌법이 써 는 벽



  이 공화국은 단 하루뿐 일지라도 제법 형태를 갖추고 있다. 벽면에 붙여진 이 '헌법'이 그 증거이다. 
 그중 몇 개의 내용을 보면 
 "모든 사람은 빌넬레 강 주변에 살 권리가 있고, 빌넬레 강은 모든 사람 주변을 흐를 권리가 있다. “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를 가진다.” 

“아울러 행복하지 않을 권리 또한 갖는다.”

“모든 사람은 아무런 권리도 갖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실수를 할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사랑을 할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게으를 권리가 있다.”
 “싸우지 말라. 이기지 말라. 항복하지 말라.”     


  카페 간판부터 보헤미안 냄새가 폴폴 풍긴다. 벽에는 그림과 그라피티들이 화려하다.      



  우주피스 공화국에서 나와 조금 더 걸어가니 나폴레옹이 "손바닥에 얹어 파리로 가져가고 싶다."라고 말했던 것으로 더욱 유명한 성 안나 교회가 나왔다. 리투아니아 고딕 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성 오나 성당 위로 열기구들이 둥둥 떠 있다. 





  성당을 지나 거미줄 같이 좁다란 골목길에는 아름다운 린넨 샵들이 즐비하다. 중국음식점이 보였다. 다른 나라의 중국음식점엔 짜장면이 없다. 짬뽕도 없다. 새우볶음밥, 볶음국수, 딤섬 등을 먹었다. 맛을 쏘쏘~     



르네 마그리트 그림을 연상시켰던 집과 빛


 


 많이도 걸었다. 이제 123년 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아름다운 빌뉴스, 오늘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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