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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Oct 03. 2016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

  



  


  ‘섬’~~하고 소리를 내봅니다. 

약간 새는 발음의 자음 시옷과 ㅏ보다는 어두운 어감의 모음 ㅓ, 마지막 ㅁ으로 입술을 다물어 막아주는 느낌이 그야말로 섬을 표현하는 적절한 소리가 아닐까 합니다. 예를 들어 섬을 섬이라 하지 않고 ‘바다’ 라고 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재미있습니다. 어떤 사물의 이미지와 그걸 나타내는 말의 상관성을 바꿔보면 말입니다. 


  섬은 꿈입니다. 

제겐 그랬습니다. 지구상에 150만 개, 우리나라 3,200 여개 중 하나인 제주도, 그 섬에 다녀왔습니다. 공항에서 시간이 남아 꺼낸 책 역시 <섬>(장 그르니에 著)입니다. 가방 속에 늘 책이 들어있지만 하물며 여행길 아닌가요. 섬에 가면 시 벼락을 맞는다는 이생진의 <걸어 다니는 물고기>를 챙겼다가 다시 선택한 책이 <섬>이었습니다. 그래선지 그 여행은 섬에서 섬(우도와 마라도)으로 다녀보기도 했지요. 



  ‘시작이 혼자였으니 끝도 혼자다. 울음으로 시작된 세상, 웃음으로 끝내기 위해 하나에 몰입했다. 흙으로 돌아가 나무가 되고 풀이 되어 꽃 피우고 열매 맺기를 소망했다. 만 가지 생명이 씨줄로 날줄로 어우러진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또 다른 이어도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 김영갑의 사진 에세이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



김영갑이 생전에 사용하던 카메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작업실






  20년의 제주 고행을 마치고 터전을 마련했지만 겨우 49세의 나이에 루게릭병으로 세상을떠나야 했던 비운의 사진작가 김영갑, 그가 잠들어 있는 두모악 갤러리의 두모악은 제주도의 옛 이름(머리가 없는 산이라는 뜻으로 불린 산의 변형된 이름)이었습니다.   


  제주시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는 인사동이나 삼청동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갤러리가 아닙니다. 명품으로 치장하고 가능한 한 우아한 미소를 짓느라 얼굴 근육의 경련을 참는 여인들이 거니는 곳도 아닙니다. 폐교가 된 삼달분교엔 제주의 차가운 돌덩어리도 휴머니스트가 되고 오름을 넘나드는 구름도 뜨거운 심장을 달게 됨을 느끼게 하는 김영갑의 사진이 있을 뿐이죠.



  갤러리에 들어서며 그의 사진을 보았어요. 순간 가슴 한 쪽이 쿵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지요. 처음 본 그의 생전 모습이 왜 그리 진폭이 컸는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사진속의 그는 살아있는 듯 했습니다. 쥔장을 잃은 작가의 방엔 발을 잃은 카메라들과 네 개의 책상들이 머리를 맞대고 묵언 중이었습니다. 서랍 속에 들어있을 다 쓰지 못한 필름과 인화지들이 보이는 듯 했지요. 전시실은 ‘두모악’과 ‘하날 오름’이라는 이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머리를 질끈 묶고 갈옷을 입은 젊은 시절의 그는 갤러리 입구에 걸린 사진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물론 20년 세월이라곤 하지만 그를 할퀴고 간 병마의 발톱이 얼마나 질긴 것인가를 짐작케 했지요.




  전시실 바닥에 깔려있는 제주의 돌무더기 틈에서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그가 생전에 즐겨 듣던 명상음악 'Indian road'였지요. 돌멩이의 구멍구멍이 토해내는 울음으로 느껴졌습니다. 그의 사진에서 바람이 불어나옵니다. 그 바람 줄기들에는 음표가 달려있습니다. 한라산을 휘돌아 나온 슬픔의 소리가 머릿속 구석구석을 휩쓸고 다니더군요. 김영갑에 의해서 제주의 바람과 하늘이 다시 태어나는 순간들이 작품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20년을 바라본 구름이 한 날도 같은 적이 없더라’ 하던 그의 말처럼 하늘과 오름은 모두 다른 빛이었습니다. 



  사진작가 김영갑은 평생 제주의 바람과 구름을 찍다가 2005년 봄, 이어도의 구름이 되었습니다. 작업실로 쓰던 폐교 감나무 밑과 운동장에 바람을 덮고 영혼으로 잠들었지요. 그의 체취를 느끼기라도 하려는 듯, 아니면 어딘가에 남아있을 영혼의 손가락 하나라도 잡아보려는 듯, 그가 뿌려졌다는 감나무를 찾아 건물을 돌고 또 돌았습니다. 



  운동장이었던 갤러리 정원엔 동자석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비슷하지만 같은 건 하나도 없는 토우들이 돌무덤 위에 즐비했지요. 대추나무, 호박 넝쿨, 감나무 등 식물들이 토해내는 초록의 무성함이 무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은 결코 웃을 수도 이야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가 머물렀을 지루한 시간 속에 아주 잠깐 한 쪽 발을 들여놓았을 뿐이었지요. 살아있는 그를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이게 슬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섬에서 섬으로, 또 섬으로, 두모악으로 가는 길목은 영혼의 충전이었고 까르륵거린 바람의 웃음은 인생의 칼로리였습니다. 여행 중에 들은 음악은 정신의 비타민으로, 사람들과의 대화는 노랑나비의 팔랑거림으로 소중히 피어났지요. 지금 섬은 내 앞에 없습니다. 마음 저 깊은 아래쪽에 묻혀있지요. 하지만 제주의 추억은 힘이 될 것을 믿습니다. 그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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