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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24. 2016

7. 그레이 룩셈부르크

유레일 4,507Km의 끄적임 <룩셈부르크>




다섯 살 되던 해 겨울,

부모님과 기차를 탔다.

나는 검정 색 모직 바이어스가 둘러진 빨간 코트에 세트로 만들어진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다.

1960년대, 명동의 어린이 전용 맞춤복 집 <예쁘다 양장점>에서 만들어진 코트였다.

출장 가실 때마다 그 양장점에 걸려있는 아동복이 예뻐서 눈동냥만 하시던 아버지께서  큰 맘먹고 딱 한 번 맞춤 주문해주신 옷이다.

우리 아버지는 딸 바보셨다.

 

부모님이 앉으신 뒷좌석이 비었는데 창문이 조금 올려져 있었다.

기차의 꼬리가 어떻게 따라오는지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빼꼼히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자마자 빨간 모자가 휘리릭 날아가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어린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부모님 계신 좌석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동안 앉아서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기차를 타면 그때 기억이 또렷하다.





브뤼겔 미디 역을 출발하여 룩셈부르크로 향했다.

우리가 탑승한 1등석 객차엔 달랑 우리 둘 뿐이다.

책을 읽다가 간간히 눈을 들어 창 밖의 눈 쌓인 풍경을 내다본다.   

도시의 빌딩들이 서서히 몸을 드러내고 있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기차 안에서 점심을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시간도 절약하고 경비도 아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이다.     


룩셈부르크는 국민 평균 소득이 11만 불, 즉 한 사람이 1년에 1억을 번다는 뜻이다.

낸 연봉은 빈민층에 속한다.

제주도의 1.5배 밖에 안 되는 작은 면적,

이 나라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한 게 많다.


룩셈부르크 역


룩셈부르크 역 앞


역사나 역 앞의 풍경은 별 다른 게 없다.

아니다. 별 다른 게 있었다.

길을 건너려고 역사의 오른쪽으로 가는데 남자 화장실 표시가 되어 있는 둥근 구조물이 보였다.

그런데 그 구조물 안쪽 바닥에 노상방뇨의 흔적이 흥건하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풍경이다.

그 화장실의 정체가 아직도 미스터리 하다.


미스테리한 노천 화장실


PAUL이 보여 우리는 냉큼 들어가 바게트 샌드위치와 치킨 샐러드 등을 샀다.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 하늘을 날아가는 게 보였다. 잘 사는 나라답게 물가가 비싸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호텔을 선택했는데 방은 좁지만 침구가 깔끔하고 위치가 좋으니 만족하다.


PAUL빵집
소박하고 조촐하지만 알찬 식사


호텔을 나와 아돌프 다리로 향했다. 다리는 공사 중이다. 커다란 포장으로 감싸져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아쉬웠다. 건물들은 대체로 규모가 크고 오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눈발이 날려 빵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장갑도 챙겼음에도 다리를 건너는 동안 몹시 추웠다.

아돌프 다리는 아돌프 대공작이 통치하던 시기인 1889~1903년에 건설되어 이름 붙여진 아치교로, 높이는 46m,  길이는 153m이며 룩셈부르크의 아르제트 강에 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아치교였다고 한다.

                              

공사중인 아돌프 다리


얼마 전 룩셈부르크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는 결혼식이 열렸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룩셈부르크 총리와 벨기에 출신의 건축가인데 놀랍게도 동성혼이다. 룩셈부르크는 가톨릭 신자가 전체 인구의 87%를 차지하는 보수적인 국가지만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 통과했고, 총리에 이어 내각 이인자인 부총리도 동성애자인 걸로 알려졌다.


룩셈부르크 시청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총리 부부(오른 쪽이 총리) 2015.5.15


인구에 비해 넉넉한 공간의 도심 속 공원이 부러운 유럽


노트르담 성당 하면 흔히 파리를 생각한다.

노트르담은 우리들의 귀부인이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를 이른다.

그러므로 프랑스 대부분의 도시에는 노트르담 성당이 있으며 프랑스어를 쓰는 다른 나라 도시에서도 노트르담 성당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룩셈부르크의 노트르담 성당은 궁전과 시청 등 중요 건물들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있으며  대공가의 결혼식 및 주요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룩셈부르크 노트르담 성당
노트르담 성당 천사상 문고리가 닳아서 반질반질하다.


앙리 대공이 집무소 겸 영빈관으로 사용되는 그랜드 듀칼 궁전은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의 대리석 건물로 1572년 시청사를 궁전으로 개조했는데 정면에 국기가 게양되어 있으면 대공이 집무 중이라는 표시라고 한다.


륙셈부르크 그랜드 두칼 궁전
대공 집무실
우연히 발견한 대공의 승용차
기욤 2세 동상이 있는 기욤 광장

   

기욤 2세(1792~1849)는 네덜란드 왕이자 룩셈부르크 대공으로 1840~1940 재임했다. 기욤은 프랑스식 이름, 네덜란드어 이름은 윌럼, 독일어로는 빌헬름, 영어로는 윌리엄이다. 기욤 2세는 1842년 룩셈부르크에 첫 민주 의회를 만들어서 다른 나라 통치에서 벗어나게 했고 1848년에는 독립국 룩셈부르크의 기틀이 된 자유주의 법을 제정한 사람이다.


                          1차 대전 때 희생된 전몰자를 기리는 황금여신탑                                            

                                                   

헌법광장에 위치한 황금의 여신상 아래쪽에 4개 국어로 된 설명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복포대는 룩셈부르크의 옛 성채 중 유일하게 그 모습을 잘 간직한 부분이며 벤첼 워크라 불리는 성벽 걷기 투어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성벽을 중심으로 룩셈부르크 시티 전체가 지하 공간들로 꼬불꼬불 연결되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절벽 계곡을 따라 이루어진 복포대는 그 전체 길이가 23km에 이르렀다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그 부분만이 남아있는데 그중에서 잘 알려진 곳이 지금의 복포대라고 알려진 부분이다. 우리는 벤첼을 찾기 위해 꼬불꼬불 골목길을 걸었다. 중심가에서 볼 수 없던 풍경이 재미있었다. 굴삭기가 공사 중인 곳, 울퉁불퉁 파헤쳐진 길을 지나 드디어 벤첼를 찾을 수 있었다.  



 


회색 하늘의 조명을 받은 그레이 일색인 지붕들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였다. 꽤 규모가 큰 집들이 빼곡한데 도무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고지대와 저지대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추운 날씨와 허기를 채울 따뜻한 무엇이 필요했다. 걸어갔던 곳을 되짚어 나오니 명동 같은 번화가가 나타났다. 시나몬 페이스츄리와 모카 롤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주변엔 아기자기하고 예쁜 상가들이 즐비하고 맘에 드는 것도 있지만 살 수는 없다. 값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짐이 되는 까닭이다. 여행 초반부터 뭔가를 사는 건 꽤 부담스러운 일이니 눈요기로 만족해야만 했다.



어느덧 거리에 조명이 켜지고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호텔로 돌아갔다.


'방이 좀 추워요'


리셉션의 중년 남자가 이불을 가져다주고 라디에이터를 체크했다.

고맙고 친절한 미소와 따뜻한 말로 인해 곧 따스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호텔 방의 거울과 장미 액자


이튿날,

여전히 하늘도, 공기도, 지붕도

그레이 그레이 딥 그레이~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그레이 속으로 들어갔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하늘은 계속되고 끝내 해는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또 걷고 걸었다.

그렇게 룩셈부르의 기억은 그레이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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