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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Oct 09. 2016

RIGA, 조아스키!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여행(6. 리가)






‘커피마시자스키’

‘조아스키’

‘언제갈까스키?’

‘지금가자스키’     

  이번 여행 스케줄의 마지막은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예정되어 있었다. 3년 전, 상트에 1주일 동안 있었지만 꼭 다시 가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은 처음이기도 했다. 장난 삼아 ~스키 식 대화를 시작했는데 재미있어 자꾸만 쓰고 있었다.     

  라트비아의 리가로 가는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숙소가 차도가 멀어서 택시를 타기 어려웠다. 캐리어를 밀고 가야 하니 우산을 쓰는 것도 무리다. 비옷과 방수가 되는 옷을 입거나 모자를 쓰고 우리는 아파트를 나섰다.       

‘가자스키’     


  빌뉴스에서 리가 까지는 룩스 버스로 4시간, 오던 날의 반 밖에 안 되니 일도 아니다 싶었다. 청회색 구름 가운을 입은 듯 하늘이 멋스럽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늘은 점점 노란 감과 붉은 석류와 보랏빛 포도를 섞어놓은 듯 예쁘고 아름다웠다. 산이 없고 고층 빌딩이 없는 유럽은 유독 하늘이 커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에 가리고, 운전을 하다 보니 유심히 하늘을 바라볼 일이 거의 없다. 여행 중에 만나는 다양한 컬러의 하늘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노을




  리가 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이 밤 11시. 울퉁불퉁한 돌길을 걷고, 트램이 다니는 길을 건너 호텔을 찾아갔다. 캐리어 바퀴에게 많이 미안하다. 고 작은 몸으로 20킬로가 넘는 무게를 이고 지고 굴러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들까? 게다가 잘못 팔려온 나의 바퀴는 팔자에 매끄러운 길이란 없다. 늘 단단하고 뾰족하고 모가 난 돌길만 다니게 된다. 이 얼마나 기막힐 노릇인가? 주인 잘 못 만나 평생 고생이다. 2년에 한 번씩 교체해도 바퀴는 금세 닳아 뼈대를 드러내곤 한다. ‘바퀴야, 미안스키 고마워스키~ .’           





  라디 운 드라우기 호텔은 올드 타운 안에 있다. 4인 1실 룸이지만 깔끔하고 공간도 충분히 넓어 쾌적하다. 당장 먹을 생수가 없었다. 방안에 있는 1리터 생수 한 병이 4유로, 물가가 우리나라의 반도 안 되는 곳이니 만큼 그 물을 그냥 사 먹기엔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 마켓을 찾았으나 없다. 버거와 음료를 파는 익스프레스에서 사 갖고 왔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Gidon Kremer)가 라트비아 사람이다. 반유대주의자로 유명한 독일의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는 1837년부터 1839년까지 2년 동안 리가에 거주할 때,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크리스마스 캐럴의 대명사인 ‘소나무야’(Oh, Tanenbaum)’의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백야의 주연 배우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고향 역시 리가이다. 우리나라에서 심수봉이 번한 가요로 히트한 백만 송이 장미 역시 리가의 작곡가가 만든 라트비아의 노래이다. 러시아 가수 푸가초바의 음반에 수록되어 러시아의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그 내용은 라트비아 전설 속의 이야기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리하르트 바그너





  아침을 먹고 구 시가지로 나갔다.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브레멘 음악대> 조각이다. 브레멘은 독일에 있는 도시이고, 브레멘 음악대는 독일의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 즉 그림 형제가 쓴 동화인데 리가와 무슨 관련이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역사를 살펴보니 이해가 된다. 발트 해가 무역 거점으로서의 가치가 점차 부각되기 시작할 무렵인 1201년, 독일은 발트 해에서의 위치를 확실하게 잡기 위한 거점을 리가로 선택했다. 독일 브레멘의 대주교였던 알베르트가 리가 만에 배를 댄 것이 바로 리가 역사의 시작으로 기록된다. 그러니까 브레멘은 리가를 건설한 알베르트의 고향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리가 구시가지에는 발트 독일인들과, 리가를 거점으로 삼아 무역활동을 해온 중세 상인들이 건설한 건물이 아주 많다. 그 조각 뒤로 베드로 성당이 있다.                       




브레멘 음악대 조형물



                                                                                           

                       

  리가 구시가지에는 유독 높은 첨탑이 많다. 첨탑에는 어김없이 금빛 찬란한 수탉 모양의 풍향계가 있다. 수탉은 리가의 중요한 상징물 중 하나이다. 무역도시였던 리가는 풍향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닭은 어둠을 쫓고 새벽을 부르는 신령한 동물이라는 지역의 토속신앙과도 연결되어 리가의 높은 첨탑에는 어김없이 수탉이 서있게 되었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베드로 성당 꼭대기에 서 있는 금 수탉이다. 13세기 리가 상인들의 헌금에 의해서 건설된 이 성당은, 리가의 중요한 랜드 마크이다. 현재는 첨탑 위에서 구 시가지를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사용되고 있다.      



베드로 성당과 리가의 상징 수탉

 



  테라스에 맷돌을 연상시키는 돌을 장식한 카페로 들어갔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에 구수하고 담백한 맛의 빵과 진한 커피 한 잔은 언제나 비타민이었다. 그리고 그 맛은 한 번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베드로 성당과 견줄만한 중요한 건물은 돔 성당이다. 1201년 알베르트 대주교가 리가 건설을 시작했을 당시부터 대주교 관저와 대성당으로 사용되었던 이 성당은 수백 년 동안 증축되면서 세 가지 건축양식이 한 곳에 자리 잡게 된 특징이 있다. 초기 고딕 양식의 기반 위에 바로크 양식의 첨탑을 중심으로 바실리카 양식이 혼합된 웅장한 모습 이외에도 1884년 완성되어 한때는 세계 최대 규모였던 파이프 오르간 역시 중요한 자랑거리다.  


    

돔 성당





  시청광장에는 시청과 더불어 아주 화려한 장식의 건물이 눈길을 끈다. 리가에서 가장 대표적인 검은 머리 전당이다. 이 건물을 사용했던 검은 머리 길드는 아프리카, 남미 등지를 돌아다니며 무역을 해온 미혼 상인들이 결성한 무역 조합이다. 이집트 출신의 한 흑인 성인을 수호신으로 여겨 건물마다 그 성인의 얼굴을 장식했다. 당시 이 건물은 상인들이 리가에 머무는 동안 숙소 또는 연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광장 벤치에 앉아있는데 한 무리의 한국 단체 관광객이 몰려왔다.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비슷한 모양의 리본이 달린 모자, 반짝이는 보석? 이 붙은 화려한 선글라스, 골프용 티셔츠와 알록달록한 아웃도어 룩 때문이다. 게다가 왁자지껄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처음 만나는 한국인이었다.      

 


  

검은 머리 전당



  검은 머리 전당 광장 앞 한쪽 구석에는 세계 최초로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자리에 팔각형 모양의 표지석이 있다.


      

  

세계 최초르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졌던 표지석(각국의 문자로 표시되어 있다)




  에스토니아의 탈린에는 ‘세 자매’ 건물이 있다. 그런데 리가에는 ‘삼 형제 건물’이 있다. 특이할 것 없는 생김새에 비해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명물이다. 리가의 석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만들어진 건물 세 채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오른편 흰 건물이 15세기에 세워진 가장 맏형으로, 왼편으로 갈수록 나이가 한 세기씩 젊어진다. 현재는 라트비아 건축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웨딩 촬영을 하는 신랑 신부가 행복한 시간이 채색되고 있었다. 한쪽에는 호른과 튜바를 연주하는 거리 악사가 바흐를 연주한다.    



에스토니아 탈린에 있는 세 자매 건물, 현재는 호텔


리가의 삼 형제 건물

 

삼 형제 건물 앞에서 웨딩 촬영을 하는 신랑신부

 

거리 악사




  삼 형제 건물을 찾아가다 우연히 발견한 Hobby Wool에 들어갔다. 건물 밖에 있는 물받이 홈통까지 뜨개질로 만든 옷을 입혀놓았다. 빌뉴스에서 나무 둥치에 뜨개 옷을 입혀놓은 것을 보았을 때도 신기했는데 홈통까지…. <hand made with love>라는 문구가 답이다. 온통 실과 손뜨개질로 만들어진 제품들로 가득했다. 오래된 재봉틀과 앙증맞은 아이 옷, 인형, 판초 등이 눈길을 끌었다. 뜨개질을 하고 계신 아주머니의 모습이 하도 고와 당신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녀는 영어를 못한다고 말했다. 내가 카메라를 들어 보이니 웃으며 끄덕하셨다. 그렇게 그녀는 내 카메라 프레임에 들어와서 추억의 한 페이지에 저장되었다.      



손뜨개 하는 여인

  



  리가는 언뜻 보면 작고 아담해 보인다. 그러나 곳곳에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이 숨어 있는 흥미로운 곳이었다. 자잘한 보라색 꽃이 푸짐하게 피어있는 화단을 보면 시골 전원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보라와 초록의 조화가 그토록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주는지 몰랐다. 돌을 쪼아 만든 갖가지 동물 형상과 탐이 나던 대리석 핸드백을 전시한 공간 중심에는 기념품을 파는 미니 상점들이 빼곡하다. 1221년, 1293년 등 수백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저마다 특색 있는 디자인의 간판으로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긴 불자동차도 예술이네 하며 광장에 세워진 빨간 자동차로 다가가 보니 그건 소방차가 아니라 맥주를 담은 호프 트럭이었다. 대형 파라솔에 형형색색의 꽃바구니를 걸어놓고 여행자를 유혹하는 광장의 카페들, 그 중심에 누구보다 행복한 우리가 있었다. 내가 아닌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호프를 파는 자동차

  




  광장 한쪽, 하얀 피튜니아와 보라색 쿠션의 조화가 아름다운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어딜 가나 음식이 맛있다. 게다가 서로 다른 플레이팅이 재미있어서 먹기 전에 눈이 즐겁다. 작렬하는 태양을 그대로 껴안은 채 건물에 기대어 왼 손으로 몸에 지지된 화판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청년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지만 참선하듯 그의 표정은 온화했다. 도서관의 정적 속에서 책을 읽는 숙연함처럼 그의 신경은 온통 그림에 몰입해 있었다. 집중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식사를 하면서 자꾸 흘낏거렸다.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까는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내 카메라의 프레임에 들어왔으니까….     





그림에 몰두한 청년

  





  리가에도 린넨 샵이 많았다. 겉보기에 무척 고급스럽게 보이는 ARS TELA에 들어갔다. 중년 부인과 남자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말을 건넸다. 


‘우리 제품은 구찌나 프라다 같은 명품 브랜드에 납품하는 고급 제품이에요. 여기 작업장이 있는데 구경해볼래요? 


우리는 흔쾌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따라 들어갔다. 


‘햇빛이 무척 따가운데 찬 음료나 커피를 좀 드릴까요?’


우리는 방금 마셔서 괜찮다고 사양했다. 나이가 무척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와 젊은 아가씨가 수직 베틀에서 린넨을 짜고 있다. 주변엔 각종 린넨 실과 천들이 싸여있다. 씨실과 날실을 북에 넣어 한 올 한 올 직조했다. 집중력과 날렵한 손놀림이 필요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울 제품도 있는데 색감이 아주 훌륭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브라운, 그레이, 블루, 베이지, 카키…. 그러나 가격은 만만치 않다. 물론 우리나라보다는 저렴했다. 그들의 과잉 친절이 살짝 부담스러운 이유일까?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고 발길을 돌려 나왔다. 하지만 리가를 떠나 두고두고 후회를 했다. 


‘그레이 울 머플러 하나를 샀어야해스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원통형 화약 탑을 초록의 담쟁이덩굴이 머플러처럼 보기 좋게 휘감고 있다. 지금은 전쟁박물관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들어가지 않고 근처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조도를 한껏 높이던 하늘이 갑자기 표정을 바꾸는가 싶더니 비를 우르르 쏟아냈다. 당초 계획은 근교에 있는 해변 도시 유르밀라에 갔다 올 예정이었지만 그냥 호텔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웰컴 드링크를 마시러 레스토랑으로 갔다. 레몬 샴페인을 가져온 웨이트리스가 실수로 잔을 떨어트렸다. 글라스는 박살이 났고 친구 M의 카디건과 티셔츠가 흠뻑 젖었다. 그런데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바닥을 정리한 후 휙 하니 가버린다. 아이보리 색 카디건에는 옅은 노란 물이 들었다. 호텔에서 세탁 서비스를 해주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가씨를 불러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프런트 데스크에 물어보겠다는 말을 하고는 사라지더니 함흥차사다. 웰컴이고 뭐고 매우 불쾌했다. 기다리다 못해 프런트 데스크로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호텔 매니저가 와서 사과의 말을 건네며 흔쾌히 세탁을 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내일 저녁 5시에 리가를 떠날 예정이니 그전까지 완료해달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카디건과 티셔츠는 말끔하게 세탁되어 전달되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깐 낮잠을 자고 나니 비가 그쳐있었다. 스테이크를 잘 한다는 맛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도중 다시 비가 오락가락했다. 사각형의 작은 광장은 뺑뺑 돌아가며 모두 음식점이다. 가족, 연인, 친구,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한다. 자연스러운 풍경이지만 특별히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여유라는 느낌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선택한 테라스 좌석은 천장 블라인드가 고장이 났다면서 다른 좌석을 추천했다. 비를 가릴 수 있는 다른 자리에 앉았다. 허브를 넣어 새 알처럼 동그랗게 빚은 노란색 치즈와 곡물 빵이 고소했다. 나무 받침 위에 주물로 만들어진 앙증맞은 프라이팬이 귀엽다. 스테이크가  맛나다.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물가가 저렴하다고 알려진 발트 3국은 폴란드에 비해 비싼 편이었다.     







  버스 터미널 맞은편에 리가 중앙시장이 있다. 시장 구경을 하러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물어보니 6시에 끝났다고 한다. 다음 날 시굴다에 갔다 오면서 들러 과일과 채소를 사기로 했다. 그렇게 리가에서의 두 번째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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