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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Oct 28. 2016

11. 꿈의 꽃다발

유레일 4,507Km의 끄적임 < 파리 2>






파리 메트로 리옹역



 루브르 지하 출입구에 도착한 시각이 아침 8시 50분, 루브르 박물관이야말로 보고 싶은 그림만 콕콕 짚어서 볼 수밖에 없다. 그런 다음 시간이 되면 다른 작품을 감상하기로 했다. 안내데스크에 한국어 팸플릿이 있다. 주요 작품의 위치가 컬러로 명기되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첫 번 째 목표는 당연히 모나리자, 10여 년 전에 겹겹으로 둘러싸인 사람들 뒤통수만 구경했던 한 풀이라도 할 듯 작정하고 거침없이 모나리자를 향해 직진했다. 모나리자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1등으로 모나리자를 독차지할 수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지하 입구, 쁘렝땅 백화점과도 통한다
1989년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에이오 밍 페이’가 설계한 유리 피라미드는 에펠 탑 건립 때처럼 큰 반대를 불러일으켰지만 지금은 루브르의 상징으로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모나리자



  루브르 박물관은 영국의 대영 박물관, 바티칸시티의 바티칸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루브르가 궁전에서 박물관으로의 탈바꿈을 시작한 건 1682년, 루이 14세가 처소를 베르사유 궁으로 옮기면서부터이다. 1793년 궁전 일부가 중앙 미술관으로 사용되면서 루브르는 궁전의 틀을 벗고 박물관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1층에 있는 <밀로의 비너스>, 2층의 앵그르, 다비드, 들라크루아와 헬레니즘 조각의 걸작인 <사모트라케의 니케>, 2층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3층에는 네덜란드, 플랑드르, 독일 회화가 전시되어 있다. 렘브란트, 루벤스, 반 다이크 등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었다.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 니케 상



  프랑스 대표 작가인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의 대관식], 프랑스 최고의 낭만주의 화가로 칭송되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등도 루브르에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베르메르의 [레이스 짜는 여인]과 독일 낭만주의 화가인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까마귀들이 있는 나무], 렘브란트의 [엠마우스에서의 저녁식사], [목욕하는 밧세바], [도살된 소], 카라바조의 [점쟁이]와 티치아노의 [피에타] 등을 볼 수 있었다. 루브르는 오르세에 있는 작품보다 전 시대의 작품이므로 분위기가 무척 다르다. 그리고 일단 절대적으로 넓은 공간과 질려버릴 정도로 많은 작품에 기가 질린다.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봐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는 게 단점이다. 하지만 전시실마다 넉넉하게 마련된 의자가 있어서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얼마든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자의 시간은 언제든 한정적이므로 맘 편히 앉아있을 여유가 없다. 그게 욕심이라는 걸 알지만 파리는 보고 싶은 게 너무 많으니 조금씩 양보할 수밖에 없다.  



2층 홀
나폴레옹의 대관식, 다비드
가나의 결혼식, 베로네세
주세페 아르침볼도, <사계> 연작
                              사기꾼 G. 드라투르                            
                             가브리엘 데스트레 자매 초상화                               
베르메르의 레이스 짜는 여인
렘브란트 자화상
                               세례 요한의 머리를 건네 받는 살로메                         
루브르 박물관



  오페라 대로에는 오페라 가르니에가 여왕처럼 고고하게 서있다. 2200석의 오페라 가르니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과 함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오페라 극장이다. 1989년 오페라 바스티유가 완성되면서 현재는 발레 전문 극장이 되었지만, 오페라 공연을 원하는 의견도 많아서 다시 오페라도 상연한다. 신 오페라 극장과 구별하기 위해 ‘구 오페라 극장’이라고도 부른다.
 
 

오페라 가르니에
오페라 가르니에를 설계한 건축가 가르니에 흉상




  나폴레옹 3세 때 개최된 오페라 극장 디자인 콩쿠르에서 35세의 무명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의 작품이 당선되어 건축되었다. 가르니에는 당시 유행하던 그리스풍 고전주의를 타파하고 화려하면서도 새로운 건축을 만들어 내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 고전에서 바로크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된 호화로운 건물을 완성했고 그게 오페라 가르니에다. 나폴레옹 3세의 황후가 “이것은 무슨 양식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가르니에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나폴레옹 3세 양식입니다.”
 
   내부는 베르사유 못지않게 호화롭다. 하얀 바닥, 분홍빛 난간, 녹색 기둥은 프랑스 각처에서 가져온 색색의 대리석을 조합한 것이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정면에 신사 숙녀들의 사교장이었던 대연회장이 있다. 신바로크 양식의 치밀한 장식이 무척 화려했다.
 
   오페라 극장의 내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천장이다. 누가 봐도 한눈에 샤갈 작품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그림 <꿈의 꽃다발>이 극장의 화려함을 부추긴다. 가르니에에는 작은 박물관과 도서관이 있는데 오래된 악보도 전시되어 있었다. 오페라 가수의 의상, 무대 장치의 모형 등이 전시되어 화려한 역사의 무대 뒷면을 엿볼 수 있다



무대 연습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나와 샹젤리제 거리 쪽으로 걷다가 웅장한 기둥이 건물을 둘러싼 마들렌 사원을 만났다. 그리스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나폴레옹 1세가 아테네의 파르테논을 본을 떠서 신전처럼 지은 사원이다. 코린트식 기둥이 건물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 말할 수 없이 웅장하다. 중앙 제대 뒤에 마리아 막달레나의 승천상이 있는데, 마들렌이란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의 프랑스식 이름이라고 한다. 마들렌 사원은 벽에 창문이 없고 천정에 뚫린 네 개의 둥근 창을 통해서만 빛이 들어와 신비로운 기운을 자아낸다.


마들렌 사원



  엘리제 궁 쪽으로 향하는 골목골목 총을 든 군인과 경찰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차량 통행은 물론 보행자의 통행을 막아둔 곳도 있어 돌아 돌아 샹젤리제 거리로 들어섰다. 쁘티 팔레스 부근에 전 세계에서 몰려든 취재진들이 카메라를 세우고 엘리제 궁 쪽을 취재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엘리제 궁 쪽을 향한 취재진(샹젤리제 쁘띠 팔레스 앞)



  샹젤리제는 콩코르드 광장에서 개선문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거리이다. 프랑스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자부하는 명소이자 파리 시내 최대 번화가이기도 하다. 왕비가 '여왕의 산책길'인 튈르리 정원에서 이어지는 센 강을 따라 걷는 산책길을 조성하면서 샹젤리제 거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플라타너스와 마로니에 나무가 우거진 약 2km의 이 아름다운 거리는 그리스 신화에서 낙원이라는 뜻의 '엘리제'를 따서 샹젤리제(엘리제의 들판이라는 의미)라고 불리게 되었다.



샹젤리제 거리가 시작되는 콩코드 광장의 관람차
샹젤리제의 루이비통

 개선문을 바라보며 샹젤리제 거리를 걷다가 카페에 들어갔다. 저편에 셀카에 정신이 팔린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옆모습만 보았을 뿐인데 무척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그는 탤런트 송승헌, 동행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는 않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또 셀카 삼매경에 빠져드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카페에서 만난 송승헌



  파리에는 3개의 개선문이 있다. 튈르리 정원과 루브르 박물관 사이에 있는 카루젤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의 에투알 개선문, 그리고 라 데팡스의 신 개선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 개의 개선문이 직선상에 있고 크기 또한 나중에 만들어진 라테팡스의 신 개선문이 가장 크다.


   개선문은 높이 약 50m, 폭이 약 45m로 우선 웅장한 크기에 압도된다. 개선문은 그 이름대로, 프랑스군의 승리와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명령으로 건립되었다. 공사는 1806년에 시작했지만 나폴레옹 1세의 실각, 7월 혁명 등 격동의 시대를 거쳐 1836년에서야 완성되었다. 개선문의 건축을 지시했던 나폴레옹 1세는 1821년, 유배 중이던 영국의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숨을 거둬 완성된 개선문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1840년 그의 유해는  파리로 운구되어 개선문을 통과해서 앵발리드에 매장되었다. 
   

  개선문의 나선형 계단 272개를 올라가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꼭대기에 올라가면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된다. 방사형으로 뻗은 12개의 도로가 마치 별과 같은 모양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에투알(Etoilé, 별) 이란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12개의 방사형 도로 구획이 나폴레옹 시대에 세워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앞쪽으로 콩코르드 광장과 루브르 박물관이 보이고, 뒤로는 현대 건축물의 집약지인 라 데팡스가 보인다. 



에투알 개선문

 

  

  개선문에서 몽마르트르로 가려면 M2를 다면 된다. 그런데 역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중절모를 쓴 퉁퉁한 할아버지가 우리 옆에 서 계셨다. 메트로를 어디서 타느냐고 물으니 대답 대신 지팡이로 방향을 가리키셨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우리가 서있는 곳에서 5m도 채 되지 않은 곳에 M이라는 표시가 보였다. 할아버지도 웃고 우리도 웃고 그렇게 고마움을 웃음으로 표시했다.



샤를 드골 에투알(개선문) 메트로 역




  파리에서 가장 높은 몽마르트르는 해발 130m에 불과한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파리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높은 지대이다. 꼬불꼬불한 골목이 이어진 길을 따라 계단을 오르다 보면 시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꼭대기에 다다른다. 몽마르트르는 자유분방함을 즐기는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유명하다. 몽마르트르의 마르트르(martre)는 ‘순교자(martyrs)’에서 유래했으며 언덕을 뜻하는 ‘몽(Mont)’과 합쳐져 ‘순교자의 언덕’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크뢰케르 성당
몽 마르트르에서 내려다 본 파리
사크레쾨르 성당 내부



  몽마르트르로 오르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크레 쾨르 성당(BasiliqueduSacré Cœur)은 상처 입은 파리 시민들과 가톨릭교도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몽마르트르 언덕에 조성된 몽마르트르 묘지에는 스탕달, 드가, 모로, 졸라 등 문인과 화가들의 묘지가 있다. 사크레쾨르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버스커들이 노래를 하고 성당 문 입구에는 구걸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날씨도 쌀쌀하고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아몬드 볶음을 사 먹었다. 평소 같으면 너무 달콤해서 거부감을 가졌겠지만 게 눈 감추듯 금세 다 먹어버렸다.

  

  


  사크레 쾨르 성당 옆길로 사람들을 따라 걷다 보면 여행자들의 초상화나 풍경을 그리는 화가들의 이젤이 보이기 시작한다. 테르트르 광장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몽마르트르는 예전의 보헤미안적인 느낌을 잃었다. 그러나 수많은 예술작품이 탄생한 본거지로서의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몽마르트르에 가면 꼭 찾아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고흐와 피카소, 모딜리아니나 로트렉, 위트릴로 등이 즐겨 찾던 카페, 세탁선, 오 라팽 아질, 검은 고양이, 갈레트 풍차, 물랭 루즈 등이다. 초록색 압생트를 마시며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예술을 살았던 곳, 그러나 단 한 곳도 찾지 못했다. 스타 벅스 마저 오래된 벽화처럼 올드한 분위기였다. 광장 주변에는 많은 레스토랑과 카페, 아이스크림 가게,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했다.






 고흐와 동생 테오가 함께 살았던 ‘반 고흐의 집’, ‘조르주 비제의 집’은 찾지 못했지만 내려오는 길에 ‘에릭 사티의 벽장 박물관’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 ‘몽마르트르 미술관’ 등을 볼 수 있었다. 물랭 루즈를 찾으러 가다가 우연히 천 가게들이 밀집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재주가 좋은 친구 M을 따라 몇 군데 가게를 구경했다. 값싸고 예쁜 천이 많았다. 그러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아주 가벼운 소재의 천을 헐값에 샀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무엇에 홀린 듯 보는데 정신이 팔려 걷다 보면 끼니를 놓칠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우리는 서둘러 근처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짧게 스쳐가듯 지난 것 같지만 우리의 발길을 되짚어보면 매우 긴 하루였다.      



몽마르트르 미술관
에릭 사티의 집
몽 마르트르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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