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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Oct 30. 2016

12. time after time
몽생 미셸

유레일 4,507Km의 끄적임 <렌, 몽생미셸>






  슬픈데 아름다웠다. 온몸의 피가 다 사라져 가듯 스텔라는 창백했다. 음악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스텔라를 위한 콘체르토, 죽음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피아노의 선율이 폐부 깊숙이 파고 들어왔다. 열일곱 살의 나는 작곡 공부를 시작한 시점이었고 영화의 감흥은 더 컸을지도 모른다.  영화 라스트 콘서트(1977년)를 보았을 때부터 줄곧 그리워했던 곳, 몽생미셸이다.       






  피아니스트인 리처드는 손에 상처를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차례가 되어 들어갔다가, 앞서 진찰을 받은 아가씨의 보호자로 착각한 의사로부터 그녀가 백혈병으로 2-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병원을 나온 리처드는 버스정류장에서 그녀를 다시 만난다. 침울한 리처드와는 상반되게 아가씨는 명랑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두 사람을 태운 버스는 해안으로 향한다. 


   그녀는 스텔라(파멜라 빌로레시 분).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애인과 도망친 아버지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한 때는 유명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으나 오랜 슬럼프에 빠져서 우울하게 소일하던 리처드는 스텔라의 티 없는 마음을 접하자 자신의 마음에 자리해 있던 우울함이 깨끗이 씻기는 것 같았다. 이튿날 리처드는 유일하게 자신의 재능을 인정하고 있는 시몬느의 협박으로 파리에 있다는 스텔라의 아버지 집을 찾아 가지만 가정 형편상 스텔라를 받아들일 입장이 못 된다. 리처드는 상심한 스텔라를 위해 몽생미셸로 거처를 옮긴다. 스텔라는 리처드가 용기를 갖도록 위로를 아끼지 않는다. 노력은 결실을 맺어 리처드는 "스텔라에게 바치는 콘체르토를 작곡하여 파리 교향악단과 초연을 하게 된다. 스텔라는 피아노를 치는 리처드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면서 무대 뒤에서 숨을 거둔다.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흐림이 가득하다. 리옹 역에서 RER C를 타고 메시 역에서 렌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탔다. 프랑스 북서쪽에 위치한 노르망디 지역의 겨울 풍광은 아름다웠다. 빈 가지의 나무들은 무채색 꽃 같은 겨우살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평야와 나무는 단 한 번도 똑같지 않은 초록으로 펼쳐져 있었다. 겨울의 황량함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렌 역에서 몽생미셸까지는 버스를 타야 한다.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은 100미터 정도로 가깝다. 버스 터미널로 향하는데 몽생미셸행 버스가 우리 앞으로 지나갔다. 눈앞에서 버스를 놓친 것이다. 몽생미셸행 버스는 그로부터 4시간 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렌을 돌아보기로 하고 가까운 호텔로 들어갔다. 보통 호텔에는 무료로 주는 시티 맵을 가지고 있기 떄문이다.      


  지도를 얻어 살펴보니 딱히 명소라 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냥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보물 찾기에 성공한 사람처럼 탄성을 짓기 시작했다. 그 보물이란 낡음이라는 이름의 목조 건축들이었다. 삐뚤빼뚤한 나무들을 자연스럽게 그대로 사용하여 콜롱바주 형태의 집들은 오랜 세월을 지나며 색이 바랬는데 그게 우리 취향과 딱 들어맞았다. 


‘어머나 너~~~무 예쁘다, 여기 좀 봐 어쩌면 좋아…. 여기 안 왔으면 어쩔 뻔했니?’

버스를 놓침으로 해서 뜻밖의 행운을 만끽하게 된 우리는 탄성과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렌 에도 ‘Hotel de Ville’이 있었다. 저 호텔이 체인인가 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까지도 ‘오뗄 드 빌’이 시청이라는 것을 몰랐다.      











  렌에 취한 듯 걸었다. 배낭을 멘 어깨와 다리가 아팠지만 그만한 고단함은 충분히 감수할만한 시간이었다. 버스를 타고 몽생미셸에 도착하니 5시 45분, 몽생미셸의 석양을 볼 계획은 어긋났다. 하지만 예정대로 도착했어도 잔뜩 흐린 하늘에서 그럴듯한 일몰은 볼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렌 시청


   프랑스 서북부에 위치한 '렌'(Rennes)은 브르타뉴의 중심지면서 수도이기도 하다. 브르타뉴 지방의 전통 양식으로 채색을 하고 버팀목을 두른 오래된 집들이 곳곳에 있다. 중세부터 20세기의 건물들이 뒤섞여 독특한 향기를 발산했다. 렌의 골목을 걷는 동안 자동차가 다니는 걸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승용차가 도심으로의 진입이 제한되어있기 때문이다. 렌이 활기 있으면서 느긋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덕분에 느릿느릿 사진을 찍으며 두리번거리기 좋았다.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처럼 예쁜 벽, 계단





  몽생미셸 종착지에서 버스를 내려 다시 셔틀버스를 갈아타고 호텔 앞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몽생미셸 수도원까지 무료로 운행하는 셔틀버스였다. 주변의 호텔과 레스토랑 앞에는 양 떼과 소 모양의 컬러풀한 장식물이 많았다. 예로부터 몽생미셸 수도원에서 만드는 치즈와 버터가 유명한 이유인 듯했다. 









  몽생미셸은 수도원 내에 있는 호텔이 가장 좋다고 한다. 하지만 수도원 내 호텔은 값도 무척 비싸려니와 수도원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선택한 호텔 가브리엘, 좋은 위치와 저렴한 가격, 그러나 내부 사진이 유치원 아이들에게 딱 어울릴법한 컬러가 유치하게 느껴져서 약간 망설이다 예약을 한 곳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사진과는 완전히 달랐다. 빗나간 예상이  기분 좋을 때도 있었다. 파스텔 톤의 다양한 컬러와 아기자기한 소품, 화려한 암 체어와 신데렐라 공주방처럼 예쁜 전등갓이 있는 예쁘고 쾌적한 로비, 넓고 아늑한 침실엔 퀸과 싱글베드가 있었다. 






웰컴 기프트 : 앙증맞은 종이 상자에 캐러멜이 들어있었음


  겨울철이라 사람이 많지 않으니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문을 닫았다. 저녁 식사할 레스토랑이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아직 문을 닫지 않아서 빵과 치즈, 우유, 캐러멜 등을 살 수 있었다.  

   

  수도원 야경을 보기 위해 셔틀버스를 탔다. 2명의 외국인과 우리, 4명뿐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달려가니 아래에서 위로 성을 비치는 조명으로 환상적인 운치가 느껴졌다. 바람은 차고 그 시각에 수도원에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올 예정이니 불빛에 비친 수도원의 풍광만 밖에서 본 후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은 조식마저 어메이징하게 우리를 감동시켰다. 좀처럼 해가 얼굴을 내밀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수도원으로 향했다. 갯벌은 온통 재색, 마치 흑백 사진 같은 풍경이 펼쳐져있었다.        




나무마다 유난히 많은 겨우살이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몽생미셸








무료 셔틀버스가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천사의 명을 받아 수도원을 짓기 시작한 신부님은 상상이나 했을까? 천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이 수도원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어 한 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불러들이게 되리라는 것을? 몽생미셸(MontSt-Michel)은 프랑스 북서쪽 노르망디의 해변에 뜬 작은 섬이다. 거주 인구 41명, 면적은 0.97㎢에 불과한 이 작은 섬이 어떻게 파리 다음으로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었을까?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소개되어 온 한 장의 사진이 전하는 강렬한 인상, 바다 위에 홀로 솟구친 마법의 성처럼 보이는 수도원의 신비한 분위기 때문일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도원은 바위섬 꼭대기에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조수간만의 차가 15미터에 이르는 이 섬에 수도원이 들어선 것은 8세기. 전설의 주인공은 아브랑슈의 주교인 성 오베르(St. Aubert). 어느 날 밤 그의 꿈에 천사장 미카엘이 나타나 이 섬에 수도원을 지을 것을 명했다. 당연히 성 오베르는 꿈을 무시했다. 분노한 천사장은 재차 꿈에 나타났고, 이번에는 손가락을 내밀어 신부의 머리를 태웠다. 꿈에서 깨어나 이마의 구멍을 확인한 후에야 신부는 공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네이버 캐스트 중)    



 

  티켓을 사서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서있는데 한 무리의 일본 관광객들이 우리 뒤를 따라왔다. 일본인들은 늘 진지하고 조용하다. 천 년의 세월을 대변하듯 신비로운 수도원은 우리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넓은 갯벌이 한눈에 들어왔다. 스텔라를 위한 협주곡이 귓가에서 은은하게 들려왔다. 라스트 콘서트를 본 후 몽생미셸은 꿈이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38년이 걸렸지만 소박한 꿈 하나를 이루어낸 셈이다. 그 뜻을 조용히 새기며 희미한 바다 저 쪽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렌에서 파리로 돌아온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파리 야경을 보기로 했다. 유람선을 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각기 다른 대답을 했다. 메트로 인포 아저씨는 다리를 건너면 바로 가깝다고 했다. 그러나 그곳으로 찾아가니 불빛 사이로 비치는 선내에는 턱시도와 이브닝드레스를 차려입은 사람들이 영화 장면처럼 오가고 있었다.  디너와 함께하는 크루즈 선착장이었다. 매표소 아가씨에게 물어보니 다리를 세 개나 지나야 한다며 멀다고 했다. 그녀 말을 듣고 택시를 타려고 기사에게 물어보니 다리 건너서 도보로 5분이면 되니까 걸어가라 했다. 알고 보니 센강에는 유람선 타는 곳은 여러 곳 있는데 우리가 가진 티켓은 바토무슈 선착장에서 타야 하는 것이었다. 오래도록 다리품을 팔긴 했지만  실로 어마어마한 에펠탑의 야경은 힘들고 지친 우리에게 비타민 같았다. 어렵게 찾은 바토무슈에서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을 타기까지 너무 고생을 해서 기대치가 더 높아졌는지도 모른다. 파리의 야경은 생각만큼 화려하거나 아름답지 않았다. 게다가 바람이 하도 거세게 불어서 선내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센 유람선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유람선에서 내려 호텔로 가는 메트로를 타려고 내려가서 티켓을 각인했다. 그런데 아뿔싸! 그곳은 반대 방향이었다. 다시 계단을 올라가서 반대 방향으로 내려갔지만 티켓 판매소가 없었다. 우리는 마지막 카르네를 이미 각인시켰고 남은 게 없는데 난감했다. 어떤 흑인이 긴 다리를 이용해 개찰구를 훌쩍 넘어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우리도 그를 따라 무임승차하는 사람처럼 개찰구를 넘었다. 리옹 역 앞 호텔 테르니우스에 도착하니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느낌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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