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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Oct 31. 2016

13. 마티스 미술관엔  마티스가 없다.

유레일 4,507Km의 끄적임 <니스>


니스 역
프랑스 대부분의 역 근처에 있는 PAUL



  남쪽의 태양은 달랐다. 1년에 300일이 맑다는 남프랑스의 해는 겨울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쨍쨍했다. 이른 아침 파리에서 테제베를 타고 아비뇽, 툴롱, 칸을 거쳐 5시간 35분 만에 도착한 니스는 코트다쥐르(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에 속한다.    



오른 쪽 길 : 프롬나드 데 장글레

   


  김화영의 책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알베르 까뮈, 장 그르니에, 미셸 투르니에, 쌩떽쥐베리도 좋아하게 되었다. 김화영은 저서와 역서를 합해 10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행복의 충격』은 그의 나이 서른다섯에 처음으로 출간되어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절판된 적이 없다. 그의 글은 멋지고 황홀하다. 사진으로 도배하다시피 한 요즘 여행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여행자의 눈에 비친 지중해 플로방스의 정경은 한 줄 한 줄  시다.



  ‘1969년 가을, 이 지구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을 등으로 밀어내면서 나는 지중해를 향하여 떠났다. 내 청춘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늙지 않고 잠겨 있는 곳이 될 이 소도시에 나는 이처럼 수줍고 말없이 도착하였다. 병풍 그림이나 외국의 원색판 사진첩이나 화집 같은 곳에 그려진 행복한 풍경 속으로 나 자신도 모르게 들어오게 된 틈입자만 같아서 안절부절못하였다. 수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나는, 그때의 얄궂은 저항감이나 불안정감은 아마도 내가 최초고 받은 '행복의 충격'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지중해 사람들은 약속하지 않는다. 과거의 추억을 반추하지 않는다. 지중해 사람들은 헤어지지 않는다. 지중해는 사람들이 만나는 땅이다.’


(김화영, 행복의 충격 중)





  약국의 약사에게 길을 물어 호텔을 찾았다. 그런데 리셉션에 있는 중년 남자가 내 예약이 없다고 한다. 나는 예약 바우처를 꺼내 보여주었다. 젊은 여성이 오고 나서야 예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니스에 간 가장 큰 이유는 마티스와 샤갈 미술관을 가기 위해서다. 우리는 서둘러 미술관을 찾아 나섰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미술관이 문을 닫으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먼저 마티스를 찾아갔다. 주황색 건물이 마치 입체적 유화를 보듯 아름다웠다. 키 작은 오렌지 나무가 하얀 나무 박스에 앙증맞게 심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마티스 미술관에 마티스의 그림이 없었다. 브론즈 조각과 스케치, 색종이를 잘라 붙인 콜라주 외엔 그림이 없었다. 유아들이 모여 앉아 색종이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입장료, 심지어 복도에 놓인 의자조차 사진도 못 찍게 하는 사나운 인심에 그만 기분이 상했다. 마티스 그림을 너무나 좋아하는 우리로서는 무슨 사기를 당한 양 무척 기분이 언짢았다. 그러나 어쩌랴, 가보지 않았으면 늘 머리 속에 마티스 미술관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았을 테니 그로서 만족하기로 했다. 미술관 앞에는 올리브 나무들을 전지 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쇠구슬을 자석에 붙이는 놀이를 하는 할아버지들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티스 미술관
마티스 미술관의 색종이 작품
마티스 미술관 앞 올리브 나무



  마티스를 나와 10 여분쯤 걸어 샤갈 미술관에 도착했다. 하얀색 현대식 건물과 종려나무 침엽수가 적절하게 심어진 정원은 정갈하고 단정했다. 샤갈 미술관엔 그의 화려한 색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큼지막한 그림들이 많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그곳 역시 샤갈의 대표작으로 유명하게 알려진 그림은 없었다. 모두 성경을 바탕으로 한 종교화 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일찍부터 성서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려 온 샤갈은 방스에 살던 노년 시절, 마티스가 3년여에 걸쳐 제작한 방스의 로사리오 성당의 성화 작품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마티스처럼 방스 교외의 카르멜 예배당을 위한 작품 제작에 들어갔으나 구약성서의 '아가서'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지나치게 에로틱하다는 이유로 교회에 의해 작품 설치가 거부되었다고 한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가 교회 대신 국가가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창세기, 탈출기 주제의 유화 12점, 아가서 주제 유화 5점, 과슈 39점, 판화 180점, 모자이크, 스테인드글라스, 조각 등 샤갈의 보석 같은 작품이 이 새 미술관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노인들이었다. 의자에 앉아 오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발걸음 소리가 방해될까 봐 조심스러웠다.      
















  미술관에서 나와 영국인의 산책로라고 알려진 프롬나드 데 장글레로 향했다. 산책로는 공항으로부터 지중해를 따라 동쪽 에타 쥐니 길 까지 약 7km의 해변도로이다. 마세나는 니스의 중심 광장인데 매년 2월이면 카니발이 열린다고 한다. 붉은 건물들이 빙 둘러 세우져 있고 바둑판 모양의 타일이 깔려있다. 관람차와 포세이돈 분수, 사람 모양의 조형물이 몇 개의 기둥에 세워져 있다. 트램이 다니는 선로와 인도만 있고 자동차 도로는 없다. 뭔가 현대적이고 독특한 이미지인데 우리 취향은 아니었다.      



마세나 광장, 포세이돈 분수
니스 해변으로 나가는 길




  니스는 몽돌 해변이다. 바닷가 근처에 공항이 있는지 바다 위로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하루 종일 맑음 맑음 하던 하늘에는 어느새 새털구름 몇 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 위로 붉은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도넛과 커피를 사서 바닷가에 앉았다. 친구와 나는 그 겨울 니스 해변에 하릴 없이, 말 없이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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